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좋은 생각이다. 로니안이 기특한 생각을 했어.”
패드릭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로건은 같이 웃을 수가 없었다.
창백한 안색에 흐릿한 미소가 어린 아버지의 얼굴은 절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설마 아직도 다 안 나으신 겁니까?”
“사제가 2주는 더 절대 안정을 취하라더구나. 남은 오러의 잔재는 뽑아냈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동안 오러, 오러 말만 했는데 직접 당해 보니 아주 지독해. 그러니 너도 조심하거라.”
로건에게는 전혀 체감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초인하고 싸우면서 후유증이나 걱정하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그냥 전력을 다해도 한참 모자랄 판에.”
“……그래. 허허, 그렇겠지.”
“몸조리 잘하십시오. 그럼 이 검은 말씀하신 대로 에일렌 공녀에게 주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혹시 공녀가 받지 않는다고 하거든, 예물이라고 말하거라.”
“예?”
“시국이 이렇다 보니 약혼식이고 결혼식이고 올리지 못했는데, 예물을 겸하는 셈 치면 억지로라도 받지 않겠느냐. 훈련할 때 보면 그 아이도 쓸데없는 고집이 있어.”
“……알겠습니다.”
설마 그냥 준다는 아티팩트, 그것도 4클래스급 아티팩트를 거절할까.
로건은 그런 생각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제가 이것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선물이라기엔 너무 과하구요.”
아버지의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며, 로건은 다시금 자신의 부족한 안목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음……. 선물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겁니까?”
로건의 말에 에일렌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지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면서도 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니 그녀도 갈등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막상 나오는 말은 달랐다.
“말했잖아요. 과하다고요. 큰 공을 세우지도 않은 제가 이런 보물을 받는 건 다른 기사들 사기에도 문제가 될 거예요. 지금의 제겐 너무 과분해요.”
그 말에 로건은 오히려 결심을 굳혔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이 검은 기사 에일렌이 아닌, 제 약혼녀 에일렌 공녀께 드리는 예물이니까요.”
“예?”
“시국이 이런지라 약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 뭐 하나 해 준 것도 없지 않습니까. 아니, 오히려 부려 먹기만 했네요.”
“아니, 그건 제가…….”
“그러니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 검이 언젠가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의 증거가 되었으면 합니다.”
본디 예물이란 그런 의미.
그리고 이 검이 당신이 더욱 강력한 무력을 성취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뿐이었는데.
“지금 청혼……하시는 건가요?”
얼굴이 화르륵 붉어진 에일렌의 말에 로건은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예? 어…… 예. 그렇……다면 그런 거긴 한데…….”
어차피 결혼하기로 한 사이 아닌가?
왜 새삼스레 그런 걸 묻는 거지?
로건이 조금 당황하는 가운데.
에일렌은 그가 보았던 어느 때보다 화사한 웃음을 보였다.
“검으로 받은 청혼이라……. 감사해요, 공자. 저한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청혼은 없을 것 같아요.”
반지나 목걸이가 아닌 검으로 하는 청혼.
생각해 보니 분명 에일렌에게 잘 어울리는 것은 맞지만, 로건은 가슴이 뜨끔할 뿐이었다.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군.’
로니안한테 먼저 주려다 말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절대!’
아버지와 동생의 입도 철저히 단속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 환한 웃음을 지은 에일렌이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저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뭐, 뭘?
거, 검술 말하는 거겠지?
“가요. 오랜만에 대련이나 해요!”
환하게 웃는 에일렌의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로건은 무의식중에 그녀를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닥쳐올 미래의 위험 역시 잠시나마 잊은 채로.
* * * 맥라인이 내전에서 빠져나가겠다는 선언을 한 그날 이후.
하룬 성 공방전은 한동안 심각하게 달아올랐다.
그러다 가장 최근의 결전에서 양 파벌 모두가 심각한 피해를 본 이후, 전쟁은 한동안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표면적으로는 양 진영이 피해를 수습하고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 정비의 기간이 누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오래 지속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이제는 전쟁을 지켜보는 모두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그때.
전열을 정비한 양 진영의 군대가 일제히 출병했다.
하지만 그 출병은 서로를 노리는 것이 아닌, 나란히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출병이었다.
파벌의 하위 귀족이나 병사들마저도 어리둥절한 와중에.
양 파벌에서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입장을 발표했다.
– 비열한 맥라인의 뿌리를 뽑겠다!
그들이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는 맥라인이 가만히 있는 중립 세력을 부추겨, 정당한 왕위 계승자들(파벌들)의 뒤를 칠 음모를 꾸몄다는 것.
혹자들은 믿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어찌 되었든 피 튀기며 대립하던 1, 2왕자 군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만으로도 사람들은 맥라인의 운명을 짐작할 수 있었다.
– 맥라인 가문은 끝났다.
서로를 견제할 일부의 병력을 남겨 놓긴 했지만, 사전에 병력까지 조율이 되었던 듯 가장 강력한 전력인 초인들이 속한 공?후작의 병력은 모두 맥라인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사실상 양 파벌의 최정예 대군단이 각기 다른 루트로 맥라인을 노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에 그 누구보다 경악한 것은 당연히 맥라인이었다.
쾅!
“로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진정하십시오, 아버지. 일단 자리에 앉으시고요.”
불과 반나절 전의 자신도 저랬으니, 로건은 흥분한 아버지의 마음을 100% 이해했다.
“일이 잘 처리된 것 아니었느냐?! 뭐가 어떻게 됐길래 이런 일이……!?”
모든 것이 잘 풀려 간다고 웃음 지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최악의 위기가 닥쳐왔다.
아버지가 흥분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제 불찰입니다. 하지만 일단 대책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조금만 진정하고 기다려 주십시오.”
로건은 한숨을 내쉬며 로버츠 플로이드 백작과의 통신을 떠올렸다.
[랜버트와 어빈, 크게 신경 쓰지 않던 작은 남작 가문인데 그들이 각 파벌에 따로 선이 닿아 있었던 모양이네.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흘러 나갔는지는 아직 조사 중이야.]전생에서 중립을 깨고 파벌에 합류했던 귀족 가문이 모두 사라진 것은 두 번 세 번 확인한 후였다.
그런데도 첩자가 남아 있었다니.
별다른 세력도 없는 남작 둘이 만들어 낸 파장은 너무도 엄청났다.
‘내 움직임이 걸렸을까? 아니면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중립 세력의 중진들 중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걸까?’
진실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최소 반년 후를 내다보고 벌인 계획이 당장의 재앙을 불러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런 상황도 생각, 아니 상상해 본 적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상상은 말이야. 빌어먹을!’
그래서 로건은 그나마 패닉에 빠졌던 마음을 불과 몇 시간 만에 수습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이 벌어졌지만, 어찌 보면 어차피 벌어질 일이 조금 일찍 벌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뭐라고?”
“돌아왔을 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희는 결국 제국을 상대해야 한다고.”
“그래. 그것을 위해 세력을 결집해야 한다고 했지.”
“세력을 모으더라도 후일에 준비를 제대로 하려면 이 난세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평정해야 합니다. 후에 아무도 반발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힘을 보여 주면서요.”
회귀 직후에는 파벌의 한쪽 편을 들어 승리한 후 같은 파벌의 공작이나 왕자 등을 암살로 처리하고 3왕자를 옹립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 방법은 설령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이후 다른 귀족들의 협조를 얻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로건의 가장 큰 목적인 제국을 막아 낸다는 계획에 커다란 걸림돌을 놓고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꾼 계획이 이렇게 먼 길을 돌아 중립 세력을 결집한다는 것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다시 한번 무리수를 둬야 했다.
“이참에 우리가 양 파벌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 됩니다.”
로건은 가능한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그 표정에 패드릭의 얼굴에 혹시나 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 가문에 두 파벌 전부를 상대할 힘이 있다고 보느냐?”
“버텨 내는 것이라면 가능합니다.”
“그것으로는 부족해! 버티다가 말라 죽을 참이냐?!”
“그럴 리가요. 발악은 해 봐야죠. 그리고 그것만 성공해도 상황은 바뀔 겁니다.”
“어떻게 말이냐?”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됐다면…….”
로건의 말이 이어질수록 굳었던 패드릭의 얼굴에는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정작 말을 하는 로건의 안색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확실하다고 생각한 계획이 비틀어지며 불확실한 기대에 운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생각대로 되어야 할 텐데.’
로건은 억지로라도 희망적인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다.
만약 이 절망적인 공격을 맥라인의 힘으로 버텨 낼 수 있다면, 후일 그의 입김을 무시할 수 있는 귀족은 이 나라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설령 왕으로 옹립할 3왕자라고 하더라도.
불끈.
“우리가 모루가 될 수는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하지요. 하지만 제대로 된 망치는…….”
로건은 불안한 눈빛으로 서북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어딘가에 통신을 연결했다.
* * * 전쟁의 소문이 퍼지기 무섭게 영주가 자경단을 소집해 내부로 끌어들였다.
그 사실은 맥라인 휘하의 영지민들에게 커다란 불안감을 안겨 주었다.
그 덕분에 적극적인 타운 이주 정책에도 꿈쩍 않던 토착민들조차 튼튼해 보이는 곳으로 피난 행렬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토모도-실반 타운이나 비프로스 성도 금세 사람으로 넘치게 될 겁니다. 그에 따라 자경단에 지원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고무적입니다만.”
보고하는 드웨인의 표정은 미묘했다.
풍전등화의 위기와 그 상황에서 보여 주는 영지민들의 적극적인 호응.
불안감과 희망이 공존하는 그 표정은 대전에 모인 가신들 모두의 얼굴에 엇비슷하게 떠올라 있었다.
“지금 지원자를 훈련시킬 틈은 없다. 일단 예비역으로 빼서 잡일을 맡기고, 기존 자경단은 맥라인 타운에 집중시켜, 다른 성의 방어는 포기한다.”
그 상황에서 패드릭은 핵심 수뇌부 회의에서 나온 결론을 전체에 통보했다.
그 말에 대다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벌 연합군이 침공해 오는 루트는 이미 훤히 알려진 뒤였으니까.
하지만 패드릭은 가신들도 이미 알고 있을 소식을 굳이 다시 한번 설명했다.
“맥라인 타운이 우리의 중심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쪽 산맥은 대군이 움직이기 어렵고, 적들이 모험적인 계략을 쓸 이유도 없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동쪽의 들판, 맥라인 성의 북쪽으로 돌아 들어올 것이다.”
패드릭은 어리둥절한 가신들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맥라인 성과 북쪽 산맥의 사이는 너무 넓어서 맥라인 성만으로 방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맥라인 성의 북쪽으로 길게 토성을 쌓아 방어진을 만들 것이다.”
패드릭의 선언은 대전을 금세 시장통처럼 만들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내가 뭔 소리를 들은 거야?”
“지금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토성을 쌓는단 말입니까? 차라리 맥라인 성에서…….”
와글와글.
“모두 조용! 남은 예산을 모조리 투자하면 일주일이면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더 시끄러워지기 전, 로건은 그리 확언하며 소란을 종식했다.
“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공자님! 대체 무슨 소리를……!”
몇몇 가신들의 의아한 물음이 이어지는 그때.
“우리에겐 최고의 마법사들이 있으니까요.”
로건이 대전의 한 곳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소리쳤지만, 가신들의 시선은 여전히 미심쩍기만 했다.
로건이 바라보는 곳에 서 있던 클레이튼은 그 험상궂은 얼굴에 식은땀을 매달고 좌중을 향해 억지웃음을 보이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