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고오오오.
맥라인의 북쪽, 이름 없는 산의 등성이 한쪽 귀퉁이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며 거대한 골렘의 모습으로 화했다.
쿵. 쿵.
체고만 30m는 될 듯한 어마어마한 덩치의 골렘이 들판에 깊은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오는 모습은 지켜보는 모든 이를 압도하는 박력이 있었다.
그렇게 박력 있게 걸음을 옮긴 골렘은 특정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우르르르.
“자, 한 열댓 번만 더 하면 성 하나 지을 흙과 돌은 나오겠네. 힘내라고 마법사 양반.”
“흐. 흐흐흐.”
허리춤에 올까 말까 한 드워프의 깐족거림에 클레이튼이 실성한 듯 웃었다.
같은 얘기를 이미 열 번째 듣고 있었으니까.
그의 상식으로는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흙과 돌만으로도 성 하나는 충분히 나올 것 같았지만, 전문가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그렇게 클레이튼은 최고의 아티팩트를 얻어 증폭된 힘을 보여 주듯, 하루 만에 산등성이 하나를 통째로 뽑아 옮기는 기염을 토해 냈다.
그 말 그대로 산더미같이 쌓인 흙과 돌무더기를 향해 수많은 이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스승님은 아티팩트를 얻었다고 치고, 우리는 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물이라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왜?”
“……하긴, 우리를 위해서 여기 정착하신다고 하셨는데 어째 전보다 더 고생하는 느낌이긴 해.”
“사형들! 일 안 해요?! 자꾸 그러면 스승님한테 다 이를 거예요!!”
열심히 투덜거리던 그릭과 에난은 뒤통수에 날아든 날카로운 음성에 펄쩍 뛰어올라 뒤를 바라보았다.
“리아?!”
“어, 언제 왔니? 우리 리아. 아. 하하.”
대지의 마탑 시절부터 함께한 그들 사이에 유일하게 이 영지에 온 뒤로 새롭게 스승의 제자가 된 빅토리아.
그 작은 소녀는 그 귀여움과 천재성으로 스승뿐만 아니라 사형제들 모두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보고 있었거든요! 내가 진짜…….”
도끼눈을 뜨고 허리춤에 손을 올리는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워 보일 정도로.
하지만 그런 귀여운 모습으로 스승을 들먹이며 하는 협박은 그들을 두렵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릭과 에난은 식은땀을 흘리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전면을 가리켰다.
“하, 하고 있다! 봐! 봐봐! 내 골렘!”
“나도! 누구보다 빠르게 일하고 있는데!”
그런 그들의 표정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4서클 초입이 된 그릭의 골렘은 무려 5m를 훌쩍 넘은 거대한 덩치로 삽질을 하고 있었고, 최근에 3서클로 성장한 에난의 골렘 역시 3m에 가까운 거대한 육체로 연신 흙을 퍼 나르고 있었으니까.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자동으로 움직이는 골렘들, 클레이튼의 수석 제자와 차석 제자로서의 면모가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실 맥라인이 망하면 자신들한테도 큰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그들이 불평만 하며 놀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변명은 빅토리아에게 먹히지 않았다.
“왜 딴 마법은 안 써요?! 다른 사형들이 힘들어하잖아요!”
“그, 그게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경지가 상승한 지 얼마 안 되서…….”
“골렘 조절도 힘들…….”
나름대로 핑계 아닌 핑계를 대 보지만.
“그럼 저는요?!”
짐짓 위협하듯 인상을 쓰는 이 천재 사매의 뒤쪽으로는 2m에 가까운 골렘 ‘셋’이 연신 삽질을 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전쟁터를 몇 번 경험하더니 여기서 공사를 하며 또다시 성장해 버린 그들의 괴물 사매는, 고작 2서클의 마나만으로 골렘을 셋이나 부리는 기가 막힌 재주를 선보이고 있었다.
‘하긴, 1서클 때도 골렘 마법을 사용했지. 원래 못 써야 정상인데.’
‘성장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렇게 자유롭게…….’
그들로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이었지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아니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형 체면이 있지.’
‘나도 한다. 해!’
이를 악문 그들은 좀 전의 불평도 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어스 월(Earth Wall)!”
“솔리드 그라운드(Solid Ground)!”
그들이 쥐어짜 낸 마나는 지반의 흙을 크게 솟구치게 만든 다음 곧바로 단단하게 굳혔다.
오랜 기간 함께한 사형제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훌륭한 합동 마법.
그리고 바로 1할의 주인 마나와 9할의 마정석 동력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골렘들이 연신 땅을 파고 흙을 다지며 성벽과 계단의 형태를 잡아 갔다.
‘크헉. 사, 사형. 나 마나 꼬일 뻔…….’
‘나, 나도. 숨이 막힌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눈빛에는 고통만이 가득했지만.
“어, 어때?”
“우, 우리가 이 정도라고!”
어린 사매를 돌아보는 얼굴에는 미소만이 가득했다.
얼굴에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안쓰러웠지만.
“거 봐요. 할 수 있으면서!”
빅토리아는 그저 엄지를 내밀며 사형들을 띄워 주었다.
“이렇게 계속할 수 있죠? 얼마나 할 수 있어요? 한 시간에 한 번? 두 시간에 한 번?”
“그, 그럼 하, 할 수 있지!”
“우리가 마음먹으면 30분에 한 번도 쓸 수 있……지.”
뭐, 인마?
식겁한 그릭이 에난을 죽일 듯이 쏘아보았고.
그 시선을 받은 에난은 파랗게 변한 낯빛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눈으로는 우는 새로운 재주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불길한 예감을 증명하듯.
“네. 스승님께는 그렇게 보고 드릴게요!”
활달한 얼굴의 빅토리아가 그대로 돌아섰고, 그릭은 에난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기 시작했다.
“너 인마, 할 소리가 있고 못 할 소리가…….”
“사, 사형. 그, 그게 나도 헛말이……. 악! 잘못했다니까요! 사형, 눈 돌아갔…….”
뒤에서 어렴풋이 들리는 에난 사형의 비명을 들으면서 빅토리아는 속으로 절절한 사과를 전했다.
‘미안해요, 사형.’
하지만 빅토리아도 어쩔 수가 없었다.
– 네 재능에 다른 녀석들이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구나.
– 우리 마법은 쓰면 쓸수록, 한계에 도전하면 할수록 성장한다는 것을 나도 최근에나 깨달았다. 그러니 네가…….
스승의 그런 당부도 있었거니와,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더 빨리! 더 튼튼하게 완공해야 해. 그래야 영지가 살아.’
이제는 자신과 오빠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맥라인을 살려야 했다.
그 간절한 마음이 한계를 깨고 마법을 한 단계 성장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 빅토리아에게 토성이 서서히 형태를 갖춰 가는 모습은 여전히 너무 느리게만 보였다.
그러니.
“트루스 사형. 거기서 뭐 하세요!”
“리, 리아! 아, 아니. 잠깐 피곤해서.”
사형들을 쥐어짜는 수밖에.
당황하는 트루스를 보며 리아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은 바쁘시니까.’
멀리서 푸른 지팡이를 치켜든 채 어마어마한 마나로 3m짜리 골렘 20개체를 동시에 부리며 일에 열중하고 있는 스승에게 쓸데없는 보고를 올릴 틈은 없었다.
‘트루스 사형은 2서클 마스터. 한 시간에 한 번 어스 월…….’
빅토리아는 사형들의 한계치를 측정, 암기해 가며 주기적으로 그들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골렘 마탑 사형제들의 눈 밑 그늘은 점점 더 진해졌지만, 그에 비례하듯 토성은 빠르게 높이를 더해 갔다.
* * * 남쪽 산맥의 몬스터들을 방비하기 위해 세워진 맥라인 성의 특성상, 그 위치가 남부에 치우쳐져 있었다.
그 바람에 북쪽 산맥에서 맥라인 성과의 사이. 즉, 맥라인 타운으로 들어올 수 있는 들판의 폭은 무려 10km를 훌쩍 넘었다.
맥라인 성을 무시하고 타운으로 진격해도 충분하고도 남는 너비.
그 신 맥라인 평야로 들어서는 동쪽 들판의 한가운데에서.
열한 명의 마법사와 일만이 넘는 장정들, 그리고 단기간에 쏟아부은 막대한 예산은 불과 일주일 만에 기적을 만들어 냈다.
“해, 해냈다!”
“우리가 해냈어!”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우와아아아!
환호성이 퍼지는 들판.
그것은 흡사 힘겨운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군의 함성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들은 거의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그 누구도 일주일 만에 지어진 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 그대로 웅장한 규모의 성이 들판의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환호성 속에서 클레이튼은 피로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웃음을 지으며 로건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있었다.
“지름 5km, 균일하게 세워진 원형의 성벽에 내부의 시설이 없는 만큼 성벽의 두께를 최대한으로 늘려 50m로 만들고, 성벽의 치(雉 : 성벽 위로 돌출된 부분)를 높이 올린 다음 3단의 구멍을 내어 각 층에 받침대와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병사들이 3층으로 이어진 치의 구멍 사이로 성 밖의 적을 노릴 수 있게요.”
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저하게 목적에 맞춰 만들어 낸 성벽이었다.
“토모도 수성전 때처럼 최대한 외부 성벽에 튀어나온 부분이 없게 다듬었고, 타지 않도록 마법적 처리를 한 기름을 발라 굳혀 기사들이 쉽게 뛰어오르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허어, 자신이 지시했지만 이건 생각보다 더…….
“외부의 해자 역시 그때와 동일하게 만들었습니다. 댐의 수로를 일부 비틀었지요. 또한 성문은 사방에 만들었지만, 내부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한 열리지 않게 하고 보통의 성문보다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설명을 듣던 로건의 입이 점점 크게 벌어졌다.
“설계 시공은 하마르 공과 공방의 드워프들이. 작업은 저와 제자들, 그리고 여기서 전투를 치를 자경단의 자발적인 협조를 받았습니다.”
“허…….”
“뭐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럴 리가요. 생각보다 너무 대단해서 놀란 것뿐입니다.”
로건의 감탄에 초췌한 얼굴의 클레이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개고생을 한 보람이 있었다.
“맥라인 성보다 더한 요새를 일주일 만에 만들었네요. 내구성은 의심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보급해 주신 마정석을 모조리 쏟아부어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적어도 석 달 안에 성벽이 무너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해요. 돈이야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크고 튼튼하게…… 예. 이게 최선인 거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농담이라니까요.”
이 이상은 정말 때려죽여도 못 한다.
눈빛으로 전해진 그 메시지는 무사히 받아들여졌다.
“어차피 양쪽 모두 이제 일주일 이내에 도착할 테니까요.”
기간이 넉넉했다면 정말 또 시킬 생각이었냐!
클레이튼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필사적으로 참아 가며, 당장 코앞에 닥친 현실적인 질문을 꺼냈다.
“그런데 정말 막아 내실 수, 아니 승리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왕국 병력의 절반인데.”
“가능합니다. 우리에겐 그들은 없는 무기가 있으니까요.”
그 무기와 물자들은 이미 토성 내부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압도적인 숫자의 연사 석궁과 이제까지 없었던 가성비 넘치는 폭탄, 리베라티오.
그 두 가지는 충분히 그런 자신감을 가질 만한 무기였다.
하지만.
“적들이 사정 범위 바깥에서 진퇴를 반복하고 물자 낭비를 유도하면 어쩌실 겁니까?”
“예?”
“탄창과 리베라티오가 고갈되는 순간, 지금 저희 병력은 사실상 일반인들 2만 명이 대부분입니다.”
클레이튼은 가신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불안감의 정체를 콕 찝어 로건에게 물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질문이었다.
적들이 처음부터 그럴지, 아니면 한두 번 쓴맛을 본 후에야 그런 대처를 시작할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충분히 이뤄질 가능성이 큰.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를 밟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타당한 질문에 대한 로건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 당연히 그전에 전쟁을 끝내야지요.”
기껏 성을 지어 놓고 자경단을 적들에게 돌진이라도 시키겠다는 뜻입니까? 그럼 다 죽습니다!!
클레이튼의 입안이 근질근질해져 오는데.
“일단 버텨 주십시오. 버티기만 해 주시면, 제가 전쟁을 끝내겠습니다.”
이제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 과거.
치열했던 토모도 전장에서 들었던 이야기.
그랬기에 그만큼 불안한 말이기도 했다.
꿀꺽.
“이번엔 정말 확실한 방법이 있는 거겠지요?”
“……물론입니다.”
저 잠깐의 공백이 왜 이렇게 불안할까.
하지만 클레이튼은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만약 억지로 캐물어 나오는 대답을 자신이 납득하지 못할 경우, 지금 마음속에 있는 투지마저 사라질 것을 염려했기에.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어느새 맥라인 사람이 다 됐구나.’
언제 이렇게 변했을까 싶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손안에 쥐어진 바람의 마탑의 보물, 아틀란의 지팡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아티팩트.
이곳에서 얻은 괴물 같은 천재 제자.
불가능한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한 끝에 연달아 성장하기 시작한 제자들.
이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맥라인을 지켜야 했다.
‘이제 이곳이 내 고향이다.’
그는 몰랐지만, 그는 불과 며칠 전 그의 막내 제자가 이곳에서 했던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맥라인 영지는 엄청난 대군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