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아이기스, 신의 방패라. 정말 그렇게 돼야 할 텐데.”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로건은 자신감 어린 미소로 아버지의 불안감을 달래려 했지만, 패드릭의 표정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
“너도 그렇고 로니안도 그렇고. 네 약혼녀와 빅토르 녀석까지. 모두 이 자리에서 죽기에는 아까운 인재들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너희들이라도…….”
“절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아버지.”
자신의 말을 끊고 나온 로건의 단호한 표정에, 패드릭 역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야겠지.”
“저희가 가진 무기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지어진 요새도 있습니다. 단기간에 예산을 퍼부어서 새로 만들어 낸.”
“그래, 사람도 쥐어짰고. 네 악명이 자자하더구나.”
“어쩔 수 없는 상황…….”
“농담이다, 녀석.”
더럽게 재미없는 농담이라 생각했지만, 로건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위기.
좋은 말만 하기에도 부족할 상황이었으니까.
“어쨌건 요새만큼이나 기사들의 역할도 막중합니다. 성벽 위로 뛰어오르는 기사들을 최대한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혹시 초인이 나서면 말씀드린 대로…….”
“그래. 귀에 박히겠다. 이제 그만 말해도 된다. 그런데 정말 할 수 있겠느냐?”
“가능합니다. 제가 언제 안 되는 걸 된다고 한 적 있습니까? 미리 보여 드린 것도 있고요.”
“그래. 그랬지.”
며칠 전 로건이 보여 준 ‘그것’을 떠올린 패드릭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그런 스스로의 감정을 느끼면서 또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나도 늙었나. 왜 자꾸 불안감만 드는 건지.’
억지로 용기를 불어넣고 웃음을 지어 보는데.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거들었다.
“‘그것’이 없을 때도 로건 공자는 초인의 공격을 몇 번은 버텨 냈어요. 믿으세요, 영주님.”
“며느…… 아, 공녀. 아니, 에일렌 경. 커험.”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영주님.”
유난히 튀어 보이는, 아름답기까지 한 갑옷에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까지 장비한 에일렌의 미소에 패드릭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며느리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암, 그럼. 손주 볼 때까지 살아야지.’
패드릭은 스며드는 불안감을 이겨 낸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속내를 알았다면 로건이나 에일렌은 다시 정색했겠지만.
‘그래. 최악의 경우라도 이 아이들만 살리면…….’
그때, 패드릭의 속마음과 비슷한 생각을 하던 또 다른 이가 끼어들었다.
“형수님. 그래도 걱정이 안 될 수가 있습니까. 형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홀로 초인을 상대하시는 건…….”
로니안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않았다.
최근 신검 비전의 포스코어, 환인공을 전수한 데다가 프리구스라는 4클래스급의 아티팩트까지 얻은 에일렌의 고양된 기분은 이해하지만, 그 때문에 자신감이 과해졌다 여긴 것이다.
로건이 그런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형을 믿어라. 후안 더글라스나 요르단 공작이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면 버티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설령 안 되더라도 어떻게든 버텨 낼 것이다.
“클레이튼 님도 있고.”
자기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아는 듯, 멀리 서 있던 험악한 인상의 중년 마법사가 로건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역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상 이 수성전을 이길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 로건과 그였으니까.
두 사람이 초인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는 전제가 이 수성전이 성립할 수 있는 기본이었다.
그 생각에 로건이 서서히 표정을 굳히는데.
“저, 적입니다!!”
밖에서 들려온 외침에 그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 * *
“맥라인 성이 보입…… 아니, 맥라인 성이 아닙니다. 다른 성이 보입니다!!”
정찰대의 보고를 들은 1왕자파 지휘부의 반응은 빨랐다.
“성문도 없는…… 토성이군요. 토성치고는 규모가 엄청나지만,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위켄 칼리아가 멀리 보이는 토성을 세세히 살피며 자신의 오른쪽에 선, 후안 더글라스에게 말을 전했다.
아무리 자신이 육체가 아닌 속성 특화의 초인이라고 한들, 오러유저인 자신이 마도사인 그보다야 시력이 훨씬 좋은 것이 당연했기에 묻기 전에 미리 말을 해 준 것이다.
하지만 하룬 성 전투 이후 왜인지 다소 삐딱하게 그를 대하는 장인의 표정은 여전히 모호하기만 했다.
“이 전투를 위해서 지었다고 봐야 할까?”
“그럴 리가요. 저도 각하께서 명령을 내리신 다음에나 알았는데요. 아무리 토성이라도 2주 안에 짓기는 무립니다.”
“그래. 한참 전부터 준비했다면 놈이 예언자일 테고.”
“놈이 예언자라면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았겠죠.”
두 초인은 동시에 붉은 눈, 붉은 머리의 건방진 애송이를 떠올렸다.
지금 정벌하고자 하는 땅의 영주도 아닌, 그저 그 자식놈을.
“허허. 정말 간도 큰 미친놈이지. 어느 쪽이 승리해도 정리 대상 1순위가 될 놈들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으니. 그냥 정신 나간 놈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정신 나간 놈이라기에는 벌려 놓은 일의 결과가 만만치 않습니다, 각하. 검공을 감시하기 위해 붙여 둔 자들이 없었다면 눈치도 채지 못했을 테구요. 혹시나 다른 수가 있을 수도 있음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위켄 칼리아의 말에 후안 더글라스 역시 인상을 찌푸렸다.
압도적인 전력에는 어떤 전술도 소용이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왔다.
놈의 잔꾀가 들통난 순간 맥라인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불안감은 남아 있었다.
“확실히 지난 반년간 쌓인 피해보다 놈들이 한 달간 만들어 놓은 피해가 훨씬 크지. 우리든 요르단 쪽이든. 우습게도 놈들의 참전 이후 생긴 결과는 양 파벌 모두 치명적인 피해뿐이고.”
“그 말씀은?”
“가만히 있었어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던 놈들이 제 무덤을 팠으니 확실하게 흙을 덮어 줘야지. 신중하게.”
“그리하겠습니다.”
“그래도 요르단 놈보다는 먼저 그놈을 잡아 꿇려야 한다.”
“예.”
“좋아. 지켜보지.”
구체적인 지시도 없이 물러서는 후안 더글라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던 위켄 칼리아가 그를 대신하여 전군에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그들의 진영에서 조금 떨어진 2왕자 군 역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며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얼마 후, 파벌 연합군 군세가 지은 지 일주일도 안 된 토성, 아이기스(Aegis)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 * *
“전군 전투 준비!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우리의 터전을 지키자!!”
로건의 우렁찬 목소리가 토성에 퍼지는 순간, 병사와 자경단들의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심장을 떨리게 하던 짙은 불안감이 투지로 바뀌는 기분이었다.
일반인들이야 전장의 분위기에 휩쓸린 것이려니 했지만, 포스유저로서 신체 변화에 민감한 기사들은 모두 로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약간이지만 혈류가 안정되면서도 순환이 빨라지는데.’
‘무슨 아티팩트라도 쓰셨나?’
‘이런 건 또 처음 보는데?’
물론 언제나 예상외의 능력을 보여 주는 대공자였기에 의문은 이내 감탄으로 바뀌었다.
엄청난 능력을 주는 마법 같은 효과는 아니더라도, 병사들의 사기를 조금이나마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아군에게 분명 유리한 일이었으니까.
기사들의 생각은 결국 언제나처럼 다들 동일한 방향으로 수렴했다.
– 역시 대공자님!
불끈 쥐인 주먹과 함께 목소리가 자연스레 높아졌다.
“자자, 서둘러라!”
“침략자들의 머리에 화살을 꽂아 주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병사들과 달리, 뛰어난 지휘관의 능력을 확인하며 사기가 오른 기사들은 연신 소리치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
빅토르는 투구의 바이저를 내리다 말고 시선을 돌려 넓은 성벽 위 안쪽 깊숙한 곳에서 대기 중인 열두 명의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가장 끄트머리에 서 있는 동생을.
– 내. 걱. 정. 하. 지. 마.
자신과 눈이 마주친 동생이 말없이 입 모양만으로 그 뜻을 전하는 것을 보며, 그는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겠냐. 클레이튼 님도 없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주군의 명령 덕에 마음 놓고 동생을 지킬 수 있었다.
가득 쌓인 리베라티오의 앞.
마법사들이 있는 성벽 안쪽의 작은 성벽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빅토르는 적청의 오드아이를 빛내며 굳은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이 뒤로는 누구도 보내지 않는다.’
“차근차근 움직여! 동쪽을 겨누되 어느 순간에는 이쪽으로 돌아올 적들이 생길 테니 반드시 주의하고!”
전장에서 들릴 리 없다고 생각한 여자 목소리에, 자경단 출신의 병사들 대부분은 한 번쯤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날 보지 말고 적을 보라고 적을! 또 그딴 식으로 보면 눈을 파내 버린다!”
서슬 퍼런 여기사의 외침에 황급히 다시 성 밖을 바라보는 광경이 연달아 반복되었다.
“여자?”
“와. 엄청 미인인데…….”
“누구……?”
물론 한창때의 사내들만 잔뜩 모아 놓은 자경단의 특성상, 여기사에게 향하는 관심이 단번에 끊어질 리는 없었다.
기사, 포스유저가 만들어 낸 압박감에 얼른 고개를 돌리면서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자, 그 목소리를 들은 에일렌의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아직도…….’
맥라인 성이나 맥라인 타운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진 그녀였지만, 각 성에서 모인 자경단 인원 중에는 여전히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여자의 몸으로 기사로 입단한 데다가, 동시에 대공자의 약혼녀라는 전례 없는 경우.
맥라인 기사단에서 에일렌이 가지는 위치는 실로 애매했다.
기사단의 막내였지만 기사단장과 가주가 함부로 대하기도 힘든 위치.
다행히 그녀는 자신의 특수한 위치를 누리려 들지 않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으며, 전쟁에서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은.
“미래의 가모 되실 분이다! 불경한 언사가 들리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
옆의 기사가 대신해서 이런 소리를 내뱉어 줄 정도의 위치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자경단들의 반응 역시 금세 바뀌었다.
“예비 가모라면, 대공자님의?”
“에이. 우리가 무슨 안 좋은 말을 한다고.”
“자! 다들 힘내서 예비 가모님을 지켜 드리자고!”
물론 그것은 자신이 아닌 맥라인 가문의, 로건의 이름에 대한 반응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을 수식하는 말이 기사가 아니라 예비 가모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릴 뿐.
자신에 대한 화제가 전장의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 주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굳이 제지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맥라인 기사단 최연소 3인방 중 하나이자, 상급기사인 단장과도 맞상대가 가능한 최강의 중급기사 중 하나였고.
현재는 이 토성 아이기스에서 북쪽 성벽의 방위를 맡은 책임자이기도 했으니까.
“너희들이 지킬 만한 분이…….”
“핸더슨 경, 그냥 내버려 둬요.”
“예? 하지만…….”
“내 얘기라도 하면서 긴장을 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에일렌의 눈빛에서는 진심이 묻어 나왔고, 그것을 읽은 핸더슨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경에게는 미리 미안하다는 말도 해야겠네요.”
“예?”
“만일의 경우에는 난 동쪽 성벽으로 가야 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처음부터 날 대신해서 지휘한다 생각해 줘요.”
대놓고 명령을 위반하겠다는 무책임한 말.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덩치 큰 기사는 그저 씩 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에일렌 님.”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동쪽 성벽으로 향했다.
적의 대군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붉은 눈, 붉은 머리의 청년에게로.
그가 여기 있는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지금 그가 대적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 초인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로건을 믿으라고 큰소리를 친 에일렌이었지만, 사실 내심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그녀였다.
‘또 그때 같은 경우가 생기면…….’
에일렌은 아직도 지난 전투에서 로건이 피를 토하며 기절하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
그때의 무력한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절대 그때처럼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부족하더라도 이 검, 프리구스(Frigus)의 힘이라면 적어도 그에게 한순간의 틈은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내가 지킨다, 반드시!’
본디 시원한 청량감을 전해 줘야 할 검의 손잡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군, 진군하라!”
“우와아아아아아!!”
4만이 넘는 대군이 시야를 가득 메우며 달려오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압박하는 박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성벽 위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로건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밖에서야 잘 안 보이겠지만, 이쪽도 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대기 중이었으니까.
“전체 사격 준비!”
“준비!”
“쏴!!”
그 한마디와 함께 병사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고.
마법사들의 골렘이 연신 붉게 달아오른 돌을 던져 대기 시작했다.
맥라인의 운명을 좌우할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