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더글라스 공작령의 병사, 티몬은 스스로가 악운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마을을 덮친 전염병에 형제들이 모두 죽을 때에도 그만은 살아남았고, 상단의 짐꾼으로 취직했을 때는 산적을 만나 상단이 전멸하는 상황에서도 홀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내전이 터져 병사가 되었는데도 후방의 영지를 지키는, 소수의 병력 중 하나가 되어 영지에 남았다.
살아온 인생이 그러니 당연히 악운이 강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의 일도 마찬가지로 그 연장 선상이라 생각했다.
부족한 병사를 채운답시고 전방으로 발령받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이내 전쟁을 멈추고 웬 촌구석을 점령하러 간다는 발표가 나왔다.
진짜 전쟁은 잠시 미뤄졌을 뿐이고, 그사이 작은 전쟁이 하나 더 생긴 것뿐이라는 일부의 자조 섞인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를 비롯한 병사들 대부분은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보다야 승리가 확실한 전쟁에 나가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쉬운 전쟁’에서 어쩌다 눈에 띄는 공이라도 세운다면 혹시 아는가, 이어질 진짜 전쟁에서 후방으로 빠질 수 있을지.
티몬은 그런 생각으로 기사단의 뒤쪽에서 용감히 돌진했다.
그런데 막상 벌어진 전쟁의 양상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쒜에에엑.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하늘이 새까맣게 뒤덮이는 듯싶으면.
“아아아악!”
이내 요란한 비명과 함께 앞서 나가던 동료들이 단체로 고꾸라졌다.
그런 동료들 사이로 든든한 기사님들이 화살 비를 쳐 내며 전진하고 있으면.
콰아아앙!
어디선가 떨어진 불덩어리가 반경 몇 미터를 시뻘겋게 물들이며 요란한 폭음을 만들어 냈다.
“끄아아아악!”
티몬은 자신의 앞에서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나뒹구는 기사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뭐야. 얘기가 다르잖아!’
그가 들었던 어떤 전쟁의 모습보다도 처참하게, 아군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앞으로도 새까만 죽음의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쉬, 쉽다며! 쉬운 전쟁이라며 이 개새……!!”
본인도 누구한테 토해 내는지 모를 울분을 미처 다 토하기도 전에.
파바바박.
고슴도치 신세가 된 티몬의 시체가 힘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티몬의 악운은 진짜 전쟁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토성을 향해 진군하고 있는 아군의 뒤에서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적의 반응을 지켜보려던 요르단 발터마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쏟아지는 쿼렐의 세례를 보건대, 저 안에 웅크린 적 병사의 숫자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7, 8천 이상…….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남으로 돌아간 1왕자 군에게도 만만치 않은 수의 쿼렐이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아아악!”
지금은 함께하고 있지만 사실상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군세임에도 그들의 비명이 기분 나쁘게 들릴 정도였다.
‘아니, 훨씬 많아. 만 명도 훌쩍 넘는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당황스러웠지만 그런다고 지금 상황에서 군대를 물릴 수는 없었다.
“루터! 길을 뚫어라! 대체 몇 놈이나 숨어 있는 건지 면상을 끄집어내!”
“……알겠습니다.”
요르단 발터마임의 고함에 거대한 덩치를 지닌 초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왕자 군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 남쪽에서도 새하얀 바람을 휘감은 초인이 토성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보였다.
“온다!!”
쏟아지는 석궁과 리베라티오의 세례에 주춤하는 적 기사단들.
하지만 그 뒤로 질풍처럼 접근하는 두 인영이 맥라인 병력의 이목을 끌었다.
그들이 성벽 가까이 도달했을 때.
‘흡?’
근처 성벽에서 심상치 않은 에너지의 파동을 느낀 로건은 번개처럼 그쪽을 향해 이동했다.
이내 황금빛 뱀과 같은 포스블레이드가 허공을 향해 길게 늘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그었다.
파아아아아앙!
빈 허공에서 강렬한 파공음이 터져 나감과 동시에 새하얀 냉기가 퍼지며 성벽 일부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으, 차가워!”
“뭐, 뭐야?!”
“마법이다! 물러서!”
일부의 병사들이 놀라 주춤하는 동안 로건은 시선을 돌려 멀리 1km도 넘게 떨어진 곳을 노려보았다.
방금 자신이 대응하지 않았다면 방금의 마법만으로도 족히 수십 명은 죽어 나갔을 것이다.
‘저 거리에서……! 빌어먹을 마도사.’
하지만 느긋하게 욕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또다시 느껴지는 강렬한 마나 파동에 로건은 정신없이 연달아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로건 님!!”
비명 같은 외침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남쪽 성벽 아래에서 번개같이 솟구치는 새하얀 빛살이 보였다.
“빌어먹을!”
그것을 보는 순간, 로건은 그 이상 후안 더글라스의 마법을 막아 내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리 마도사라도 이런 마법을 준비 없이 계속 쓸 순 없을 거야.’
오직 그것만을 믿으며, 로건은 바로 발밑에서 새하얀 바람을 휘감고 솟구친 초인을 향해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감히 자신을 가로막는 황금빛 포스블레이드를 보며 위켄 칼리아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한 달 전 자신에게 치욕을 선사했던 놈.
그 굴욕을 갚아 줄 완벽한 기회였다.
‘죽여 주마!’
위켄은 허공에서나마 전력을 다해 황금빛 포스블레이드를 후려쳤다.
콰아아앙!
그런데 시원하게 날린 일검은 놈을 주르륵 밀려나게 했을 뿐이었다.
놈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지기는 했지만,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거나 포스의 근간을 뒤흔드는 큰 내상을 입은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허어?’
여력도 남겨 두지 않고 지른 일검이었기에 자신 역시 일시적으로 충격에 밀려 추락하면서도, 위켄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러(Aura)는 파괴의 권능, 동급의 힘이 아니라면 하위의 기운은 그 상서로운 빛살 앞에 존재의 의의를 잃고 스러지는 것이 순리였다.
기운의 크기가 아닌 그 본질의 문제.
더구나 자신의 전력이라면 설사 오러가 아닌 포스블레이드를 휘둘렀어도 최상급기사 정도로는 버티기 힘들어야 하는데 어찌?
“꺼져라!”
가당치 않게도 놈은 오히려 거리를 단축하며 또다시 검을 휘둘러 왔다.
자신의 장기 중 하나인 허공 밟기를 통해 피해 내고 놈을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오기가 생겼다.
‘아티팩트라도 쓴 거겠지.’
그리고 오러가 남긴 충격을 상쇄할 정도의 아티팩트를 연달아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설령 그런 아티팩트를 몇 개씩 갖고 있다 한들 초인이 아닌 이상 당사자의 몸이 견디지 못할 테니까.
그런 확신을 담아, 위켄은 다시금 새하얀 바람의 오러를 집중하여 놈의 검을 후려쳤다.
그런데.
콰아아아앙!
또다시 뒤로 튕겨 나가는 놈의 얼굴 어디에도 그가 원한 표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약간 창백해진 안색이 전부.
‘아티팩트가 아니라고? 대체 어떻게……?’
전투 중임을 잊게 할 정도로 당황스러운 상황.
속절없이 아래로 추락하던 위켄 칼리아는 몇 초간 바람을 조종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놀랐다.
그리고 그런 그의 머리 위로 어느새 수십 미터 크기로 솟구친 황금빛 거검이 내리꽂혔다.
꽈아아아아앙-!!
전투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폭음.
전장의 모든 시선이 몰린 성벽 위에서 로건은 창백한 안색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흐. 역시 이래도 안 되는군.”
그의 시선이 향한 성벽의 아래쪽.
졸지에 해자에 추락하여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위켄 칼리아가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황한 것이 분명한 적을 보며 필살의 일격을 때려 넣었는데, 별다른 부상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로건은 절망하기보다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가장 걱정하고 염려했던, 그 오러의 특성은 무사히 막아 냈다.
더구나.
“우와아아아아!”
갑자기 터져 나온 아군의 함성.
로건이 흘깃 돌아보자, 함성을 지르는 아군 병사들 사이로 전신에 화살이 꽂힌 채 비틀거리는 반거인의 모습이 보였다.
‘대박!’
상처 하나 없는 위켄 칼리아와는 다르게 화살 받이가 되어 비틀거리는 루터 카일을 보자, 클레이튼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가 사용할 수 있게 된 6서클의 마법, 그래비티 컨트롤(Gravity Control)의 특징이.
– 아마 몸이 크고 무거울수록 이 마법의 효과는 더욱더 강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그러니 반거인 루터 카일 후작이라면 제가 반드시…….
로건의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걸릴 때.
파벌 연합군의 시선 대다수는 비틀거리는 초인에게 꽂혀 있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충격적인 광경이었으니까.
“계속 쏴! 초인을 죽여라!”
멀리서 들리는 패드릭의 목소리와 함께 반거인을 노린 압도적인 물량 공세가 쏟아졌고.
연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루터 카일은 그 강대한 육체에 어울리지 않게 초라하게만 보였다.
‘끝장을 내고 싶지만.’
바로 아래에서 눈을 부라리는 또 다른 초인의 모습 때문에 로건은 생각을 바로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그리고 곧.
“후퇴! 후퇴하라!”
생각지도 못한 피해 때문일까. 믿기지 않는 초인의 패퇴 때문일까.
연합군의 군대가 일순간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떠냐! 이놈들아!”
“이겼다!”
“아무리 몰려와 봤자 끄떡없다고!”
자경단의 중년 사내들이 허세 섞인 고함을 지르는 것을 시작으로.
“우와아아!”
아이기스 안의 모든 맥라인 병력이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던 걱정 어린 시선들이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는 게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여실히 느껴졌다.
로건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며 인상을 찡그린 위켄 칼리아는 다시 돌진해 오지 않고 명령대로 본진을 향해 돌아섰고.
그제야 어느새 대부분 멀어진 적군의 모습이 로건의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훈련이 잘된 모습.
하지만 로건은 홀가분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우선 한 번은 막아 냈다. 그리고 한 번 해낸 일이니 두 번은 어렵지 않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한 수는 아직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희망의 빛이 조금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 * *
“이게 말이 되냐고!!”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지휘부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징집병에게 기사도 상대할 수 있는 무기를 쥐여 주고 훈련까지 시켰다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그들 가운데 단 한 명도 없었다.
“진정하십시오, 각하. 그래도 확실한 것은 아직 저희 병력이 우세하다는 것입니다. 초조해하지 마시고 철저히 공략해서 저놈들의 뿌리를 뽑아 버리시면 됩니다.”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 때, 루첸 탈로스가 정론을 말하며 요르단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끄으응. 그거야 당연한 말이지. 후, 그래. 구체적인 전략은?”
“단순히 맥라인을 멸망시키시길 원하신다면 1왕자 군을 놔두고 북쪽으로 우회하여 놈들의 중심이라는 그 타운이라는 것을 박살 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천민들 박살 낸다고 뭐 달라지려고. 정작 잡아야 할 놈들은 다 저기에 있을 텐데.”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 애송이도, 맥라인의 영주도, 그리고 아마도 그 폭탄을 개발했을 마도사도 다 저곳에 있다. 나를 농락한 놈을 찢어 죽이고, 저 신무기의 비밀을 아는 자를 사로잡는다. 그것도 반드시 후안보다 먼저!”
쾅!
요르단이 내려친 탁자가 요란한 소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그게 이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맥라인의 땅덩이 따윈 문제가 아니야. 우리의 진짜 적은 저 건방진 놈들이 아니니까!”
부서진 탁자 위에서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
그 안에 가득한 야망을 보며 루첸 탈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진짜 적은 1왕자와 후안 더글라스 공작이지요.”
“그래. 그러니 그에 맞춰서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해. 놈들보다 최대한 손해를 덜 보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알겠습니다.”
루첸 탈로스가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꾹 삼키며 대답했다.
“어차피 이기는 전쟁이고, 얻을 것은 땅보다는 그 무기지. 후안에게 전해라. 루터가 이렇게 다쳤으니 그 마도사 놈은 우리가 처리하겠다고.”
“……받아들이지는 않을 겁니다.”
“먼저 말을 해 놓는 것뿐이야.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서. 제조법이라면 영주 놈이나 그 애송이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요르단은 저렇게 엄청난 병력을 숨겨 놓고 자신에게 의뭉을 떤 붉은 눈의 애송이를 떠올렸다.
“말하는 김에 그 애송이도 내 몫이라고 전해. 반드시!”
“……예.”
아마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루첸 탈로스는 눈앞의 공작도 알고 있을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