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예상을 뛰어넘는 맥라인의 병력과 루터 카일의 부상으로 물러난 파벌 연합군은 곧바로 다시 진군하지는 않았다.
지휘부가 둘로 나뉘어 있는 만큼 움직임이 더딜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아이기스의 맥라인 병력은 2교대로 경계 병력을 운용하며 사방을 주시했고, 기사들을 비롯한 주요 수뇌부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혹시 검공 각하께선 무슨 연락이 없었느냐?”
“……중립 세력의 병력은 아직 다 결집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거기다 진군하는 시간까지 따지면, 적어도 한 달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니 놈들도 저리 여유가 있는 것일 테지요.”
“우리에겐 막막한 말이구나.”
“버틸 수 있습니다. 없어도 있게 만들어야지요. 그리고 이미 한 번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로건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도 패드릭의 불안감을 완전히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열화검과 빙결의 마도사는 폭풍검이나 반거인보다 한 수 위라고 알려져 있다. 그들도 막아 낼 수 있겠느냐?”
“그자들은 전쟁의 명분이라 할 수 있는 1, 2 왕자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합니다. 어제처럼 후안 더글라스의 마법이나 간간이 날아오겠지요. 그리고 그 정도는…….”
“그래, 며느리가 잘 막아 내 줬지. 그 검 참 잘 줬어.”
“며느, 흠. 흠. 예.”
“후우, 그래. 자꾸 약한 소리만 해서 미안하구나. 좀 더 힘내 보자.”
패드릭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은 다음 날 아침.
맥라인은 예상과 조금 다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웅크린 맥라인의 겁쟁이들아, 목을 길게 늘여라!”
전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우렁우렁한 음성.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 회색 머리 거한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그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거한이 질주하는 순간 붉은 아지랑이가 이내 거대한 불길이 되어 타오르며, 일순간 붉은 유성이 달려오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
거리가 멀어 처음에는 누군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이들도 왕국 최고의 유명인사 중 한 명의 상징과도 같은 그 모습에 곧바로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열화검!”
“발터마임 공작이다!”
어제와는 달리 2왕자 진영에서 튀어나온 초인은 반거인(Half Giant) 루터 카일이 아닌 열화검(The Flame Sword) 요르단 발터마임.
왕국의 2인자로 알려진 오러유저.
그리고 대치하고 있는 적군의 수장 중 한 명이었다.
“죽여!”
“저놈만 죽이면!”
로건이 채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몇몇 병사들의 손에서 석궁이 쏘아졌다.
요르단 공작이 사거리 안에 들어오기도 전에 벌어진 일에, 주변의 병사들도 덩달아 석궁을 쏘아 댔는데.
결과적으로는 이상할 정도로 가속한 불덩어리가(?) 그 쿼렐의 소나기에 뛰어든 꼴이 되어 버렸다.
그에 분노를 토하려던 로건이 멈칫하는데.
역시나.
파바바박.
쿼렐들이 형편없이 튕겨 나가고, 불덩어리는 그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은 듯 그대로 성벽 위로 쏘아지듯 솟구쳤다.
“어딜!”
이번에도 역시 로건이 뭐라 요청하기도 전에 뒤쪽에서 거대한 마력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솟구치던 불덩어리가 그대로 지면으로 고꾸라졌다.
그래비티 컨트롤(Gravity Control).
루터 카일을 고꾸라트리며 자신감을 얻은 클레이튼의 마법이 그보다 상위의 초인인 요르단에게도 통한 것이다.
“던져!”
그리고 그런 요르단을 향해 가까이 있던 기사들이 붉게 달아오른 돌들을 빠르게 집어 던졌다.
순식간에 30여 개의 리베라티오가 정확하게 불덩이에 적중하고.
콰콰콰콰쾅!
거대한 폭발과 함께 거대한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잡았……!”
“계속 던져! 멈추지 마!”
주변의 병사들이 섣불리 환호성을 터트리려는 순간, 로건의 고함이 기사들을 독촉했다.
“귀찮은 것들!!”
거대한 맹수, 아니 마수의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과 함께 흙먼지 사이로 붉은 오러가 넘실거리는데.
콰콰콰쾅!
재차 떨어지는 리베라티오의 세례에 솟아오르려던 요르단 발터마임이 다시 지면으로 처박혔다.
하지만 맥라인의 신무기가 초인에게 미친 영향은 고작 그 정도.
흙먼지 사이로 보이는 붉은 오러는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1, 2, 3조 전부 공작에게만 집중해라! 계속 던져!”
로건의 고함에 기사들의 투척은 계속 이어졌고.
“자경단 1~5조! 전부 저 목표만 노린다! 나랑 머리 색도 똑같잖아! 나라고 생각하고 죽여 버려!!”
총교관이자, 악마 교관으로 유명한 카이솔론의 외침과 함께 다시금 쿼렐의 비가 쏘아졌다.
“하찮은 놈들이……!”
파바바박.
꽈아아앙!
‘끔찍할 정도로 튼튼하군. 뭐, 그나마 다행인가.’
로건은 집중포화 속에서도 전혀 기세가 죽지 않은 붉은 오러를 보며 이를 갈았다.
6서클 마법에 당한 상태로도 저렇게 집중되는 공격을 정면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초인이 직접 성벽 위로 올라오는 것은 막아 냈다.
다른 초인도 저렇게 막을 수 있다면 정말 편하겠지만…….
“대공자님! 남쪽에!”
까드득.
“간다!”
1왕자 군의 초인, 위켄 칼리아는 투사체 무기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자였다.
세간에 알려진 초인간의 무력 차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성의 문제.
‘저자만큼은 내가 직접 막아야 한다.’
다행히 지난 전쟁 이후 얻은 성취 덕분에 오러의 파괴 속성을 무시하고 버텨 낼 수 있다는 것은 어제 증명되었다.
‘할 수 있어. 아니 어쩌면 그 이상도…….’
로건은 초인과의 격전을 통해 조금씩이나마 더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전의를 북돋우며 은빛 바람을 휘감고 성벽 위로 날아오르는 초인을 향해 돌진했다.
초전과는 달리 파벌 연합군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예상외였던 맥라인의 전력은 이미 지난 전투로 파악한 상태였고, 초인도 어제와는 달리 전면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무기의 압도적인 화력이 만들어 낸 적지 않은 희생은 파벌 병사들의 사기를 실시간으로 떨어트리고 있었는데.
동쪽 성벽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요르단 공작에게 집중되는 화력 때문에 일부 빈틈이 있었던 것.
그 틈으로 기사들이 미끄럽고 단단한 성벽에 창과 검을 박아 가며 발판을 만들었고, 그를 통해 연달아 성벽 위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스웜프(Swamp)!”
“솔리드(Solid)!”
“클레이 바인딩(Clay binding)!”
갑자기 늪처럼 변한 바닥과 황토색으로 빛나는 덩치 큰 병사들의 방패, 그리고 전신을 옭아매는 진흙의 세례였다.
유독 기사가 많은 2왕자 군 때문에 동쪽 성벽에 몰아서 배치한 골렘 마탑 마법사들의 힘.
“이런!”
“빌어먹을!”
“마법사다!”
그렇게 움직임이 더뎌진 기사들 위로, 맥라인 기사들의 검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으아악!”
그렇게 초반에는 맥라인의 전력 안배가 빛을 발하는 듯했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만 두고 보아도 두 배가 넘는 병력.
그리고 실질적 주력인 기사들의 수에서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연합군의 공세는 끝없이 이어졌고, 성벽 위에 올라서는 기사의 수는 점점 더 늘어 가기만 했다.
“맥라인 영주……!”
촤아악.
“커, 커흑!”
“그래. 그게 나다.”
적 기사들을 정신없이 베어 넘기며, 또 아들의 고전을 지켜보며 타는 속을 참아 내는 패드릭의 눈에 그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들이 보였다.
‘빌어먹을.’
성벽 바로 아래에서 넘실거리는 포스블레이드로 쿼렐과 폭탄을 막아 가며 파고들 기회를 노리는 최상급기사들.
‘칼리아 후작가의 호르헤, 트리탄 백작령의 하비 밀너, 체르노 가문의 올리버 오르테가…….’
언뜻 보이는 면면만 보아도 모두 자신이 들어 본 적 있는 뛰어난 이들.
그 외에 보이지 않는 이들까지 따지면 파벌 연합군의 최상급기사는 열 명이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었다.
‘저놈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패드릭은 자꾸만 암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신없이 이어지던 전투의 흐름이 어느 순간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에일렌은 예민한 기감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질 때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허공에서 충격파와 함께 싸늘한 냉기가 터져 나왔다.
다행히 에일렌의 검, 프리구스(Frigus)가 대부분의 냉기를 중화시켜 주변엔 싸늘한 바람만이 퍼질 뿐이었고, 그마저도 전장의 열기에 휩쓸려 제대로 느끼는 병사도 몇 없었다.
전방에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적을 향해 석궁을 쏘고 칼질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니까.
“웬 여자가……?!”
스각.
“끄. 끄르륵.”
오늘만도 열세 번째 발견한 멍청이가 손쉽게 목숨을 헌납했다.
자신의 성별이 기사로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리 기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기감을 곤두세워 다시금 마도사가 시전하는 장거리 마법의 흔적을 찾아 검을 휘두르고, 올라오는 기사들을 끊임없이 베어 낼 뿐.
북쪽 성벽의 수비를 맡은 자신이 얼떨결에 남쪽 성벽에서 날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뇌리에서 지운 후였다.
‘로건 공자도 저렇게 힘들게 싸우는데.’
창백해진 안색으로 초인과 그들만의 영역에서 싸움을 벌이는 로건.
에일렌은 도울 엄두가 안 나는 그 싸움에서 억지로 시선을 떼며 그저 눈앞에 역할에 몰두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순간.
눈에 이상한 움직임이 보였다.
‘조금씩 물러난다?’
눈에 확 띄는 후퇴는 아니었지만, 하나둘 후방으로 빠지는 ‘1왕자 군’의 기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패드릭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주목하고 있던 최상급기사들도 기회를 틈타 성벽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본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인상을 찡그리고 욕을 하는 듯한 이가 꽤 여럿 보이는 것을 보아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위에서부터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 내려온 것 같았다.
‘왜지?’
그리고 일정 시점이 되자 어느새 성벽 아래에는 쏟아지는 공격을 방어하는 소수의 기사와 성벽 위로 제대로 닿지도 않을 화살을 날려 대는 병사들 일부만이 남아 있었다.
아주 멀리서 보면 엉성하게나마 격전을 계속하는 것으로 착각할 만한 모양새.
하지만 1왕자 군의 공세를 막고 있는 남쪽과 서쪽 성벽의 군사들은 성벽을 뛰어 올라오는 기사가 하나둘 사라지고 전투가 편해지고 있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뭐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제 살 깎아 먹기는 몇 시간이나 계속되었고.
그제야 동쪽 성벽에서 무수한 자원을 잡아먹으며 버티던 요르단 공작의 입에서 거센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전군 후퇴!! 후퇴하라!”
2왕자 군의 머리가 내리는 명령.
그것을 시작으로 2왕자 군이 썰물처럼 물러서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연기(?)를 하던 1왕자 군 역시 황급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어……?!”
“물러간다!”
“우와아아아!”
“우리가 또 이겼다!”
전투에 지쳐 가던 병사들의 함성이 우레와 같이 성벽을 메웠다.
하지만 정작 맥라인의 수뇌부조차 적군이 물러나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던 그때.
“……이유는 뻔합니다.”
“예?”
로건이 차가운 눈빛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벽 아래 시체 수를 비교해 보세요.”
“아……!”
“놈들이 서로 간에 가지고 있는 불신. 그것이 우리가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줄, 놈들의 가장 큰 허점입니다.”
에일렌이 그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고, 로건이 물러나는 양 파벌들을 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을 때.
후퇴한 2왕자 진형의 중앙 막사에서는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쾅!
“이게 무슨 짓거리지, 후안?! 여기까지 와서 협정을 뒤엎자는 건가?!”
[워워. 진정하라고. 우리 병사의 피해가 너무 커서 어쩔 수가 없었다.]“너희들 피해가 크니까 우리에게도 피해를 강요하겠다? 적을 앞에 두고? 세 살 먹은 어린애도 그게 똥멍청이 짓이라는 건 알겠다! 마도사라는 놈이 그 정도로 저능아라니!”
[말조심하게, 요르단. 그만큼 우리 군이 ‘더’ 열심히 싸웠다는 말이 아닌가.]통신구 너머로 보이는 후안 더글라스의 뻔뻔한 표정에, 요르단은 더욱 화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헛소리! 날 바보로 보지 마라, 후안. 그 애송이에게 위켄이 막힌 사이 피해가 가중된 것뿐이겠지. 그게 억울했다면 위켄 대신 네놈이 전선으로 튀어나왔어야 했어. 나처럼! 아, 직접 전선에 나서기엔 네 놈이 너무 겁쟁이였던가?”
[……꼴사납게 중상을 입고 물러간 루터 때문에 억지로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놓고 허세라. 지금 루터가 너 대신 왕자를 잘 지킬 수 있을지 걱정되는군.]“지금 이 상황에서 협박이라. 제정신이냐, 후안? 여기까지 와서 다시 우리끼리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우리 솔직해지자고. 비난 대신 본질적인 문제를 직시해 보는 것이 어떤가.]“지랄은……!”
요르단이 욕지기를 내뱉었지만, 후안은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왜 우리가 왕자 곁에 남아 있었지? 서로를 못 믿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가 잠시만 서로를 믿어 주고 너와 나, 루터와 위켄이 전부 전장에 나선다면 저 토성에 틀어박힌 박쥐 새끼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나?]“푸하하하하! 불과 몇 시간 전에 뒤통수를 친 놈이 다시 서로를 믿자고? 네놈에게 광대의 자질이 있는 줄은 몰랐다, 후안. 제법 웃겼어.”
[먼저 군대를 물린 것은 사과하지.]“……뭐?”
후안에게서 사과라는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요르단이 멈칫했다.
[그러니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협의를 해 보자는 말이야. 네가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너는 어땠을까? 공공의 적을 위해 일방적인 피해를 감수하겠다? 웃기지 마, 요르단. 너도 나와 똑같은 선택을 했을걸?]“…….”
[그래, 부정할 수 없겠지. 그리고 우리가 그러는 동안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저 성안의 박쥐 놈들이야. 상상만 해도 신경에 거슬리지 않나? 그러니 확실한 약속을 하자고.]“……자세히 얘기해 봐.”
두 초인의 통신은 제법 길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