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
15화패드릭은 큰아들이 나간 방문을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1년 안에 제 행동의 이유를 증명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동안만 제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눈감아 주셨으면 합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아들의 눈빛은 굳건했지만,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패드릭은 그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그날’ 이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지금처럼 괴행을 일삼는 것이 아닌, 온갖 패악질을 저지를 때에도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부탁이라…….’
부모와 자식 간에 흔히 할 수 있는 그 말이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다니, 패드릭은 쓴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말에 흔들려 한발 물러서 준 만큼, 만약 1년 뒤에도 로건이 자신의 말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확실히 결단을 내려야겠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는 아버지이기 이전에, 맥라인 가문을 지켜야 하는 가주였으니까.
“하아…….”
딸깍.
긴 한숨과 함께 움직인 힘없는 손길에 수수한 펜던트가 열리며 안쪽의 초상화가 드러났다.
환하게 웃는 푸른 머리 미녀의 익숙한 얼굴이 오늘따라 두 눈을 유난히 아프게 파고들었다.
“레이나…… 미안하오. 우리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구려. 꼭 지키겠다고,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는데…….”
……내가 너무 소홀했었나 보오.
힘없이 흩어진 마지막 말은 결국 자책 어린 비수가 되었고, 가주가 아닌 한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 * * 쿵 하고 닫히는 집무실의 문소리가 무겁게 가슴을 두들겼다.
“어머니라…….”
단순히 그 말을 내뱉는 것만으로, 이제는 아련하게만 느껴지던 추억들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전생의 삶까지 있는 로건의 기억으로는 이제 수십 년도 더 된, 흐릿한 옛 기억들임에도.
어머니란 단어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로건은 그래서 더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 말을 꺼내실 줄은 몰랐는데…….’
전생에서는 가문에서 쫓겨날 때도 끝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 자신이 벌인 일이 전생의 그 칼부림보다 심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 그 이유는 나름대로 예상이 되었다.
‘그나마 약간의 기대는 놓지 않으신 건가.’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뒤숭숭한 마음으로 복도를 걷는데 맞은 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니이임!”
“로니안?”
동생 로니안이 불편한 표정의 기사 두 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형님! 괜찮으신 거죠?”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니 또 수련 도중에 헐레벌떡 뛰어온 듯했다.
너무 익숙한 패턴이었지만 지금은 그 익숙함이 반가웠다.
“당연히 괜찮지. 오랜만이구나, 로니.”
“휴, 다행이네요. 소문이 너무 좋지 않아서 걱정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는 로니안의 모습, 그 여전하고 변치 않는 태도가…….
‘응? 뭔가 다른데?’
물론 동생이 자신을 걱정해 준 것과 안도하는 모습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은근히 상기된 모습과 묘한 기대감을 담은 눈동자가 평소와 달랐다.
그리고 이상하게 활기차 보이는 모습까지.
‘오호?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에 녀석의 내면에 감각을 집중하자, 몸속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이능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 순간 로건의 눈이 확 커졌다.
“너 이 녀석! 그냥 안부 때문에 온 게 아니구나! 벌써……?!”
“역시! 형님은 바로 알아보실 줄 알았습니다.”
환하게 웃는 로니안의 모습에서 성취를 자랑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로건은 순수하게 감탄하고 말았다.
“고작 열네 살에…… 허.”
로건의 기억 속 전생의 로니안은 영지전 때가 되어서나 포스를 각성했다.
그래서 회귀한 자신이 미래를 바꿈으로써 동생의 성취가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성취가 앞당겨졌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다 형님 덕분입니다. 돌아오셨다는 얘기에 형님을 만나려고 나오려다 기사들이 방해하는 바람에…….”
“……뭐?”
그제야 로니안의 뒤에 서 있는 기사들의 갑옷 곳곳에 있는 일그러진 듯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각성의 계기도 황당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각성하자마자 기사 둘을 피해 빠져나왔다고?’
그것은 녀석의 재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었고, 우울했던 기분을 확 날려버리는 기쁜 소식이기도 했다.
“하, 하하, 크하하하! 잘했다. 잘했어, 로니!”
전생의 최연소 오러유저의 성취가 더욱 빨라졌다.
거기에…….
‘로니의 포스가 안정되는 대로 신검의 비전까지 가르친다면?’
동생에게 진 마음의 빚도 갚고, 동시에 미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로건으로서는 여러모로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로니안의 성취에 기뻐한 것은 당연히 로건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로니안의 포스 각성 소식은 맥라인 가문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포스를 일찍 각성한다 해도 그 사람이 반드시 오러유저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률은 확실히 높아진다.
맥라인 남작가는 본래 오러유저였던 선대가 세운 가문이었고, 로니안이 그 조상처럼 가문의 성세를 가져올 천재라는 설레발에 가문 전체가 들썩였다.
한편 그간의 기행으로 더욱 비교 대상이 된 로건은 대차게 까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사자는 그와 상관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 생각보다 말을 탈 줄 아는 C급 용병들이 많았습니다. 장기 계약인 데다 말도 준다는 조건에 전국의 C급 용병들이 모조리 몰려들 뻔했지요.
– 예? 좋다구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 하아……. 뭐 그중에서도 신용도 높은 이들만으로 350명 정도 추렸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간신히 그 선에서 끊어 낸 겁니다.
– 예? 더 받았어야 했다고요? 이런 미친…… 아하하하. 죄송합니다. 미천한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드웨인은 일을 과하게 잘했다.
무려 350명의 C급 용병들, 달리 말해 몇 개 중대급의 병력이 무장한 채로 맥라인 영지에 모여 있었다.
맥라인 남작가를 어찌할 수 있는 전력은 아니지만, 분란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숫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길게는 열흘, 짧게는 5일 이상을 맥라인 영지 남부의 다 쓰러져 가는 별장에서 기사들의 감시 속에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하루하루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연히 용병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설마 우리한테 사기를 친 건 아니겠지?”
“일개 남작가가 미치지 않고서야 용병 길드와 척을 질 리가…….”
“모르지 미쳤을지도. 우리를 불렀다는 그 큰아들 소문이 영 안 좋던데.”
“아, 그건 나도 들었어. 그놈은 진짜 미쳤을 수도 있어.”
“이런 씨, 그럼 우리 지금 삽질하고 있는 거야?”
“생각 좀 하고 입을 열어라. 용병 길드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남작가에서 어련히 알아서 보상해 줄걸.”
“뭐, 임마?!”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로건의 소문과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로 인해 용병들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문의 주인공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 * *
“석궁기마병으로…… 말입니까?”
“그래.”
로건의 덤덤한 대답에, 카이는 다시 한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궁기병을 착각하신 건 아닙니까?”
“그래. 그냥 활이 아니라 석궁을 들게 할 거야.”
“저기…… 로건 님. 석궁은 기마병이 쓰기에 효율적인 무기가 아닙니다. 아니 전쟁에서도…….”
“알아.”
“……예?”
활에 비해 파괴력은 월등하지만, 땅 위에서 장전한다 해도 미숙련자는 1분 이상 걸리는 것이 석궁이었다.
그것으로 기마부대를 만든다면?
장전된 석궁을 서너 개씩 주렁주렁 매달고 다녀도 1분 이상 교전하면 화력이 없어지는 조루 부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카이가 저리 황당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로건은 명령을 취소할 생각이 없었다.
“설령 내가 돈지랄 병정놀이를 한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움찔.
“……일단 철저히 훈련시켜 줘.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카이를 보며 로건은 피식 웃었다.
그냥 해 본 말이었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것으로 트집 잡을 생각은 없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저 용병들을 확실히 휘어잡아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로건의 시선이 멀리 별장의 연병장에서 옥신거리는 수많은 용병에게 향했다.
자유롭게 살아온 티가 나는 각양각색의 복색에, 약간의 시비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무질서한 모습들.
얼핏 본 것만으로도 그들을 하나의 부대로 묶어서 훈련을 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게 느껴졌다.
‘일단 기강부터 잡아야지.’
로건의 얼굴에 살벌한 미소가 번질 때.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로건의 시선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직감한 카이가 나섰다.
“아니, 자네가 나서면 조용해지기야 하겠지. 표면적으로는 말이야.”
“예?”
“그냥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지켜봐.”
“……?”
용병들은 돈을 따라 움직이는 인간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퍼 주기만 하면 그 대상을 완전히 호구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칼밥을 먹고 사는 거친 인생들의 어쩔 수 없는 단면이었다.
그리고 전생의 노회한 전사는 그런 그들을 장악할 방법 역시 잘 알고 있었다.
* * *
“야, 저기 봐.”
“음?”
“오호? 불꽃 문양. 애송이 귀족이네?”
“쉿, 아마 그 큰아들일 거야.”
로건이 별장으로 접근하는 순간부터 들려오던 수군거리는 소리는 그가 연병장으로 쓰이는 큰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더욱 시끌벅적하게 퍼져 나갔다.
“이야, 저 솜털 좀 봐라.”
“성년은 된 거야?”
“안 되었다는데 내 손모가지를 건다.”
“니 손모가지를 어디다 쓰냐.”
그중에는 이런 그럭저럭 들어 줄 만한 말부터…….
“저 뒤에, 하룬의 카이 아냐?”
“누구?”
“최강의 A급, 카이 말이야.”
“아, 들어 본 것 같아.”
로건의 뒤를 따르는 카이를 알아보는 이들.
“퉤. 아주 곱게 자란 티가 줄줄 나네.”
“아 이 개 같은 인생. 귀족들 볼 때마다 배알이 꼴린다니까.”
“좋겠다 운 좋게 부모 잘 만나서. 썅, 나는 부모 얼굴도 모르는데.”
그리고 거칠게 살아왔다는 티를 있는 대로 다 내는 놈들까지.
모인 인원만큼이나 다양한 반응들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로건이 찾는 인간은 따로 있었다.
“꼴에 갑옷은. 아이고, 칼도 찼네. 병정놀이라도 하려는 건가?”
바로 이렇게 제 딴에는 들리지 않을 줄 알고 숨어서 비웃는 놈.
발걸음을 멈춘 로건이 정확하게 그놈을 짚었다.
“거기, 너.”
“예? 저 말입니까?”
“내가 갑옷 입고 칼 차고 있는 것이 우습나?”
“……무, 무슨 말씀이신지?”
로건이 좀 전에 자신이 하던 말을 모조리 들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용병이 눈알을 굴리며 시침을 떼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만큼 실력이 있다면 말이야.”
“예?”
“그런데 고작 C급 용병이 무슨 실력이 있다고 남을 무시하지? 주제도 모르고.”
그 말 한마디에 알게 모르게 로건을 흉보던 이들은 물론, 조금은 호의적인 시선이던 소수의 용병들까지 안색이 싸늘하게 굳었다.
“주제에 또 자존심은 있나 보네. 내 말이 기분 나빠? 뭐, 좋아.”
연병장의 가운데로 들어온 로건이 주위를 한 바퀴 빙 둘러보며 팔을 벌렸다.
“저기, 저 얼간이가 아니라도 좋다. 누구든 대련해서 나에게 한 방이라도 먹인다면, 1년 치 몸값을 즉시 지급한 뒤 보내 주겠다. 이것은 귀족의 명예를 걸고 한 약속이고, 이곳에 있는 너희 모두가 증인이다.”
예상치 못한 로건의 말에 모두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건의 도발에도 한참을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로건이 뒤에 있던 카이의 무릎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카이가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섰다.
“여기엔 분명 나를 아는 친구들도 있다고 본다. 여기 내 고용주는 한 말은 지킨다. 도전해 볼 사람은 해도 좋아.”
“진짜?!”
“우와아!”
“나! 나!”
카이의 말에 그제야 로건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용병들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로건은 손을 들어 처음 자신을 비웃었던 용병을 콕 찍었다.
“그래, 너부터 해볼까?”
“좋습니다. 딴말하기 없기요!”
호기롭게 앞으로 나선 용병은 2m가 넘는 거대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울룩불룩한 근육과 덩치만큼은 C급이 아니라 A급 용병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또 덩치와 근육이 폼은 아니었는지, 등 뒤에 십자로 교차해 메고 있던 철퇴를 한 손에 하나씩 집어 드는 모습이 굉장히 강력해 보이기도 했다.
“저거 헤일 아냐?”
“어? 그 친구는 B급 아니야?”
“아직은 아닐걸? 뭐, 이번 의뢰 끝내면 되려나?”
물론 로건에게는 그저 우스워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있으셨나 보군.’
용병이 호기롭게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자, 그럼 의뢰인 먼저 덤벼 보시오!”
“내가 먼저? 후회할 텐데?”
“의뢰인이 태어나서 먹은 밥보다 내가 먹은 칼밥이 더 많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호오, 그래? 그럼 원하시는 대로.”
쩌억.
로건의 느긋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도끼로 무언가를 쪼개는 듯한 강렬한 타격음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로건이 갈색 머리 용병의 턱을 후려갈기는 과정을 제대로 인식한 용병은 없었다.
그저 무언가 붉은빛과 황금빛이 번뜩이며 갑작스러운 바람이 일어난 그 순간.
용병의 턱이 하늘 위로 치솟고 있었다.
그들을 주시하던 주위 용병들의 눈이 커질 때.
뻐어억.
우드득.
털썩.
“끄으으.”
엉망으로 망가진 용병의 몸뚱아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주둥이를 털려면 실력이라도 있던가.”
무심한 표정으로 차가운 비아냥을 내뱉은 로건이 시선을 옮겼다.
“혹시 또 주둥이 털고 싶은 놈?”
주변을 둘러싼 모든 용병이 로건의 눈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