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안 돼!!’
로건 역시 아버지의 위기를 목격했다.
하지만 쉽게 몸을 뺄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정신없이 몰아치는 은빛 바람의 오러는 감정에 휩쓸려 무리하게 움직여도 상관없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 때문에 로건은 헤인켈이 중상을 입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오러에 입은 중상. 토해 내는 선혈을 보니 단순히 팔 하나를 잃은 것을 넘어 내상 역시 심각할 것이었다.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초인을 앞에 두고 저런 중상을 입은 채 쓰러졌다는 것은 사실상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들쳐업은 아버지가 초인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고 있는 것을 보니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내가 가야……!’
하지만 그렇게 한눈을 판 대가는 금방 찾아왔다.
스각.
욱씬.
‘젠장!’
스치는 것만으로 판금 갑옷과 그 안에 받쳐 입은 체인 메일을 가볍게 잘라 내고 옆구리에 옅지만 긴 상처를 만들어 낸 오러.
그것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로건은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애검 룩스에 내장된 힘을 끌어내었다.
하루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각성 마법, 시간 가속.
초인의 숨통을 끊을 비장의 한 수로 숨겨 왔던 것.
로건은 폭풍검에게 빈틈이 생기길 바라며 여태 아껴 왔던 힘이 발동시켰다.
슈우우욱.
스스로 느끼기에는 조금 전과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는 몸이었지만, 상대가 보기에는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보일 터.
“……!!”
놀란 표정이 여실한 적의 얼굴.
순간적으로 세 배로 가속한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바람의 오러를 피해 유려하게 휘어지며 위켄의 옆구리를 훑었다.
촤아악.
무섭게 굳어지는 위켄의 얼굴.
격전을 벌이고 있다고는 한들 항상 우세했던 그가 처음으로 입은 제대로 된 부상이었다.
하지만 정작 성과를 거둔 로건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젠장. 제대로 기회를 잡았을 때 써야 했는데.’
자신이 당한 부상을 몇 배로 갚아 주었지만, 그 이상의 틈을 노릴 수는 없었다.
더구나 한 번 당했으니, 이제 위켄은 이 시간 가속에 대한 대책을 세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적의 목숨을 끊는 일보다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로건은 미끄러지듯 물러서는 위켄을 쫓는 듯한 자세를 보이다가 그 모습 그대로 귀신처럼 사라졌다.
사라진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쏟아지는 쿼렐과 마법 폭탄을 받아 내면서 움직이던 요르단의 간격 안.
헤인켈을 업고 간신히 회피하던 아버지의 뒤쪽이었다.
우우웅.
“안…….”
창백한 얼굴로 가까스로 초인의 공세를 피해 내던 패드릭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불꽃의 오러를 상대하려 하는 아들의 모습에 일순간 눈을 부릅떴다.
위켄 칼리아와 요르단 발터마임은 수준이 다르다.
폭풍검에게도 고전했던 아들이라면…….
“……돼!”
그런데.
스각.
가벼운 소음과 함께 바로 앞까지 쏟아지던 불꽃의 오러가 좌우로 갈라져 흩어졌다.
콰콰콰콰.
옅어진 불꽃의 오러 사이로 눈에 띄게 흔들리는 뱀눈이 보이는 순간에야 패드릭은 전투 직전 아들이 보여 주었던 기술을 떠올릴 수 있었다.
로건이 초인을 상대할 수 있다고 장담하게 해 주었던 근거.
그 놀라운 광경이 패드릭의 요동치던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게다가.
“윽!”
놀란 탓인지 아니면 무리를 한 결과인지, 흔들리는 붉은 오러 사이로 파고든 쿼렐 하나가 요르단 공작의 어깨에 박혀 드는 것이 보였다.
콰콰콰쾅!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폭탄 세례에 비틀거리며 정신없이 물러서는 모습도.
왕국 전역에 위명을 떨치는 초인, 열화검답지 않은 그 초라한 모습이 조금이나마 그를 안도하게 했고, 그 순간 패드릭은 자신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헤인켈! 정신 차리게! 절대로 정신을 놓으면 안 돼! 알겠지?!”
“흐. 주군…….”
“아버……?!”
그를 진정시키려던 로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패드릭은 전력을 다해 성벽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성벽 안쪽 비교적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자마자 자신의 몫으로 배당된, 영지에 몇 개 없는 최상급 포션을 헤인켈에게 아낌없이 들이부었다.
“죄, 죄송…….”
“자네가 뭐가 죄송해! 내 잘못이지! 부상에만 집중해! 포스를 움직이라고!”
영주와 기사단장의 갑작스러운 이탈은 맥라인 병력에 치명적인 동요를 만들어 냈지만.
“열화검이 후퇴한다! 모조리 쓸어 버려!!”
성벽 아래에서 이어진 로건의 고함이 끼친 영향이 더욱 컸다.
요르단 발터마임의 후퇴는 곧 2왕자 군 전체의 사기 저하를 의미했으니까.
실제로 조금씩 후퇴하기 시작한 2왕자 군의 모습에, 맥라인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쏴!”
“다 죽여 버려!”
아직은 건재한 맥라인의 화력이 초인의 공백을 틈타 2왕자 군에게 압도적인 희생을 강요했다.
“요르단이 사거리를 벗어났다! 쓸데없이 화살 낭비하지 마! 성벽 아래 기사들을 중점적으로 요격해라!”
한껏 높아진 총교관 카이솔론의 목소리는 곧 다가올 승리를 암시했다.
2왕자 군이 후퇴하는 모습을 본 1왕자 군 역시 공세를 멈추고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2왕자 군에 비해 피해가 훨씬 적었음에도.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패드릭은 침울해진 목소리로 울분을 토했다.
“저런 오합지졸들 때문에 헤인켈이…….”
강력한 병사가 있으면 뭘 하겠는가.
병력의 수가 많으면 뭘 하겠는가.
연합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협력이 되지 않는 적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친구의 희생이 더욱 안타까웠다.
“서로를 못 믿는 겁니다. 저희야 다행이지만요. 아버지, 괜찮으신 겁니까. 헤인켈 경은……?”
“……팔을 잃었고, 포스의 근간 역시 너무 상했어. 살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패드릭에게 있어서 헤인켈은 부하이기에 앞서 반평생을 함께한 친우이기도 했다.
그가 생사를 오가는 중상을 입은 것은 패드릭의 심정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나 때문에.’
패드릭은 참담한 마음을 아들에게 보이기 싫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눈을 가리는 순간 오히려 더 선명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 신입 기사, 헤인켈입니다. 공자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아. 그래, 나도 잘 부탁해.
서로가 찬란한 젊음을 간직한 채 마주했던 첫 인사가.
– 영주님! 다시 일어서셔야 합니다! 이러고 계시면 안 됩니다! 맥라인 영지를, 가문을 지키셔야죠! 로건 공자님이 보고 계십니다!
자신을 가장 절망하게 했던, 아내 레이나의 죽음에서 그를 일으켜 세웠던 목소리가.
– 아, 글쎄 나 말고 아들을 도와주라고.
– 뭐라고 하셔도 저는 영주님과 함께 은퇴할 겁니다.
– 거, 사람 참……. 허허.
찬란한 미래가 눈앞에 다가왔다 느꼈을 때 나눴던 실없고 훈훈한 대화가.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절대. 절대 이대로 죽게 두지 않아.”
“예. 헤인켈 경은 강인한 사람입니다. 다시 일어설 겁니다.”
“그래. 안다, 알아. 그래도 요르단 놈에게 한칼 먹여 주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구나.”
전투 전 불안감을 드러내며 은퇴를 꿈꾸던 영주는 어느새 사라지고, 불안감 대신 차가운 분노만을 품은 이가 남아 있었다.
그 앞에서 로건은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 *
“파벌 군이 계속 이렇게 바보짓을 반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본 다음에는 이제까지처럼 중간에 물러나는 일 없이 끝장을 보러 달려들겠지요. 하지만!”
쾅!
로건이 책상을 내리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는 이미 세 차례에 걸쳐 놈들은 완벽하게 밀어냈습니다. 그간 누적시킨 피해만 해도 이미 전력 차는 상당히 줄어든바, 놈들이 그리 나온다 해도 우리는 버텨 낼 수 있습니다. 버티기만 하면 원군이 옵니다.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로건의 호언장담에도 막사에 모인 수위기사들의 얼굴은 그리 밝아지지 않았다.
생명이 위중한 중상을 입고 이탈한 기사단장. 그리고 기약이 없는 원군.
대공자의 호언장담이 가리려 하는 현실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공격이 멈추긴 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이틀 밤을 꼬박 지새운 실정이었다.
그나마 포스유저인 기사들이라 견딜 만한 것이지, 사실상 2교대로 끝없이 전투를 치르는 병사들 중엔 이미 과로로 쓰러지는 이들도 속출하고 있는 상황.
로건 역시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특별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서두른다고 하긴 했지만, 정확한 날짜는…….’
섣불리 장담했다가는 그 시간이 지나는 즉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로건이 입술을 깨물며 다시 할 말을 고민할 때.
묵묵히 지켜보던 패드릭이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갑갑하지? 막막하고?”
“…….”
“괜찮다. 나도 그렇다.”
“아버지!”
“영주님……?!”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기사들.
“로건의 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시간은 우리 편이고, 이제까지 우리는 훌륭히 해내 왔다. 다만 남은 난관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위험하고 힘들 것이라는 게 문제지.”
“아버지…….”
끼어들려는 아들을 손을 들어 막은 패드릭이 로건을 등 뒤에 두고 기사들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렸다.
“어쩌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다수가 다음 전투 이후에는 전장에서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 쓰러진 내 친구 헤인켈처럼. 그리고 지금껏 적들의 칼에 희생당한 많은 이들처럼.”
삽시간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죽은 동료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그들과의 추억이 계속해서 떠오를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눈앞에 적을 두고도, 슬픈 생각만 계속 떠오른다.”
영주가 오히려 아군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모습.
‘괜찮으신가 했더니 역시 헤인켈 단장의 일 때문에 마음이 꺾이신 거야. 말려야…….’
로건이 입술을 깨물며 다시 나서려고 할 때.
“하지만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쓰러져 있는 친구가 그런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암울하기만 했던 목소리가 반전되고.
“내 친구가 과연 그로 인한 슬픔에 사로잡혀 이대로 무너지기를 바랄까? 아니면 싸우기를 바랄까?”
“싸우기를 바랄 겁니다.”
무의식중에 한 로건의 대답에 기사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내 친구 헤인켈이라면 그러기를 바랄 것이다. 적이 강해? 그래서 뭐? 그래서 지금까지 누가 이겼지?”
“저희가 이겼습니다!”
주먹을 불끈 쥔 기사들을 보며 패드릭이 씩 웃었다.
“그래. 우리가 이겼다. 사실상 이 왕국 전력의 대부분이라 봐도 무방한 대군을 상대로.”
기사들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고.
“왕국을 통틀어 다섯에 불과한 초인 중 넷이 저 밖에 있다. 그들이 이끄는 두 개의 공작가와 두 개의 후작가의 정예도 모두 몰려와 있지. 그리고 동서의 모든 변경백들까지도. 아, 물론 우리에게 끝장난 비프로스를 제외하고 말이다. 자작? 남작? 굳이 세어 본 사람 있나?”
“없습니다!”
핸더슨의 우렁찬 목소리가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그래. 우리는 그 말도 안 되는 병력을 무려 세 차례나 막아 냈다. 여러분들과! 아쉽게도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동료들 덕분에.”
막사의 분위기가 엄숙해지며 기사들의 눈빛이 뜨겁게 타오르는데.
“나는 언제고 저승에서 지금 함께하지 못한 우리의 동료들을 만나게 됐을 때 자신 있게 말해 주고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일개 남작가에 불과하던 우리가! 왕국 최정예들의 연합을 박살 냈다고!”
“…….”
“그만큼 이미 우리가 이뤄 낸 전과만 해도 엄청나다고 자부한다! 여러분도 그러한가?!”
“그렇습니다!!”
막사가 터져 나갈 것 같은 커다란 목소리.
그 목소리를 배경으로 패드릭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여러분에게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한없이 칭찬하고 싶다. 잘했다고, 너무 훌륭했다고. 이미 내가 상상했던 한계를 몇 번은 더 넘어섰다고.”
패드릭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또한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하고 싶냐고 묻고 싶다. 정말 그러한가?!”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조용해졌던 막사가 다시금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 패드릭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래.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끝? 끝은 우리가 정한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끝까지 가 보자! 저들인지, 우리인지! 누가 먼저 끝장나는지! 우리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볼 때까지!”
“예!!”
“그리고 아쉽게 눈감게 되면 다시 만날 동료들에게 말해 주자. 우리가 본 그 끝을!”
“예!!”
“그리고 난! 기왕이면 그 끝이 우리가 아닌 저들의 끝이었으면 한다. 이견 있는 사람 있나?”
“없습니다!!”
“그래. 우리는 지금껏 승리했고, 앞으로도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영광을 여기 있는 모두와 함께했으면 한다. 그런 우리의 힘을, 우리의 각오를 저들에게 보여 주자!!”
패드릭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직후.
쿵. 쿵.
“맥라인에 영광을!!”
“꺼지지 않을 불꽃을 위해!”
“목숨을 바쳐 명을 따르겠습니다!”
기사들은 연이어 무릎을 꿇으며 가슴에 주먹을 가져다 댔다.
암울한 기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곳에는 뜨거운 열기만이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