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그날 이후 두 번의 전투가 더 있었다.
합이 맞지 않는 두 파벌의 틈을 노린 화력 집중에 연합군은 번번이 피해만 본 채 물러서는 것을 반복했다.
하지만 마지막 전투 후, 3일간의 공백을 깨고 파벌 연합군이 다시금 진군을 시작했을 때는.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조금 다르구나.”
“예. 2왕자 군은 오히려 쉽게 되었지만…….”
2왕자 군의 최전선에는 루터 카일이 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대신 요르단 공작이 모습을 감췄다.
덕분에 2왕자 군은 오히려 무게감이 떨어지는 모습이었지만, 남쪽의 1왕자 군은 사뭇 달랐다.
위켄 칼리아가 전면에 나선 것은 여전했지만, 그의 바로 뒤에서 새하얀 로브를 입은 백금발의 중년 마법사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일그러져 보이는 기괴한 현상, 마나를 초월한 이능, 마력(Magic force)의 힘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후안 더글라스까지 전면에 나오다니, 왕자의 곁을 비워 뒀겠군요. 이건…….”
“모종의 합의가 됐다고 봐야겠지. 그런 것치고 요르단 공작은 왜 나서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만.”
“열화검이 갑자기 튀어나올 것도 고려해야겠습니다.”
“그 수법을 또 쓰는 건 안 되겠지?”
“이젠 심어 둔 사람도 없습니다. 해 봤자 안 통할 테구요. 어차피 한 번만 쓸 수 있는 수법이었습니다.”
놈들이 이렇게 빨리 합의를 볼 줄은 몰랐습니다만.
지금 상황에 필요 없는 부언은 그저 목구멍으로 삼켰다.
대화를 나누던 맥라인 부자의 얼굴이 그렇게 굳어져 갈 때.
파벌 연합군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화살에 힘이 떨어지고 있다.”
장궁도 아니고, 석궁. 그것도 그들도 소수 가지고 있는 연발식 석궁의 쿼렐에 힘이 떨어진다는 표현은 솔직히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후안의 그 표현에 딴지를 거는 이는 없었다.
실제로 토성에서 날아오기 시작한 쿼렐의 수는 이삼일 전과 비교하면 절반이나 될까 말까였으니까.
“자원이 떨어져 가던지, 아니면 병사들이 지쳐 가는 거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둘 다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래. 확실히 끝낼 때가 됐어. 그런데 요르단 놈은…….”
동북쪽, 라이벌이 자리한 2왕자 진영의 본진을 본 후안은 작게 혀를 찼지만, 위켄은 그 뒷모습을 보며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 번 약속을 어겼는데, 믿는 게 더 이상하지.’
3일 만에 끝낼 수 있었던 이 전투에 괜한 피해가 누적된 것이 과연 누구 때문일까.
위켄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장인의 변명을 믿지 않았다.
그가 아는 후안 더글라스라면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뒤통수를 치는 짓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사람이었으니까.
아마도 2왕자의 호위가 생각보다 강했기에 실패했을 뿐일 것이다.
요르단 공작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손해를 감수해 가며 움직이지 않는 것일 테고.
아, 그러고 보니 요르단 발터마임도 음흉하기로 따지면 장인보다 더…….
“로히터 전하는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시나 저쪽에서 엉뚱한 생각을 한다면…….”
“하루 정도라면 괜찮아.”
“예?”
“요르단이나 루터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절대 안전하도록 조치를 취해 놨으니까. 오러유저와 차별되는 마도사의 또 하나의 강점이지.”
쉽게 전선에 나선다 했을 때 짐작을 하긴 했지만, 역시나 자신에게도 말하지 않은 한 수가 더 있었던 모양이다.
씁쓸했지만 위켄은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았다.
지금 같은 시기에 장인과 괜한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직접 나설 경우가 신경이 쓰여서 그렇습니다.”
“흐. 역시 자네는 초인답지 않게 소심하단 말이야. 내가 아무 방비도 없이 그냥 나섰을까? 최전방에 있는 놈이야 그냥 눈으로 봐도 보이고, 요르단이야 뭐, 움직이면 바로 알 수 있으니까.”
“역시 대단하십니다.”
바로 곁에 첩자도 뒀단 말이지.
새삼 저번 일에 대한 심증을 굳히면서 위켄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편이 감춰 놓은 수가 많다는 것은 찜찜한 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든든한 것이기도 했다.
위켄은 혹시나 했던 노파심을 버렸다.
“자, 그럼 가 보자고. 약속대로 반쪽짜리 거인을 벌벌 떨게 하는 마도사부터 제압해야지.”
“예!”
간 보기는 끝났다.
위켄의 호기로운 대답과 함께 1왕자 군의 정예가 화살과 마법 폭탄이 빗발치는 전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다!”
짤막한 외침에 남쪽과 서쪽 성벽에서 석궁을 쏘아 대던 병사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 가기 시작했다.
기사의 신호는 다름 아닌 가장 주의해야 할 인간, 초인의 등장을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압도적인 화력을 쏟아부어도 너끈히 버텨 내는, 병사들의 사기를 실시간으로 떨어트리는 괴물들.
더구나 이번에는 대공자가 가까스로 막아 내던 괴물로도 모자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다른 괴물이 더해졌다.
“저자, 저자가 빙결의 마도사다! 집중해서 노려!”
기사의 말은 가뜩이나 피곤이 풀리지 않아 눈가가 퀭한 병사들의 얼굴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로건이 성 안팎이 울릴 정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도사는 오러유저와는 또 다르다! 정신없이 몰아쳐라! 주문을 쓸 여유만 주지 않으면 돼! 그리고 폭풍검은 여느 때처럼 내가 맡는다. 버텨라! 버티면 이긴다!”
지난 일주일간 지겹도록 들어 온 말.
하지만 그 말이 병사들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화색을 돌게 해 주었다.
“그래. 할 수 있어!”
“해 보자고!”
“여태 우리가 계속 이겼잖아!”
한 발짝 떨어져 제삼자의 관점으로 보면 언뜻 이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지휘관의 말이라지만, 근거 없는 막연한 장담에 사기가 오르는 광경이라니.
하지만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들은 그 이상함을 체감할 수가 없었다.
그 광경을 만들어 낸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아직은 잔재주에 불과하지만.’
포스를 뛰어넘어 더 근본적인 에너지를 인식하게 되면서 생긴 재주.
자신을 믿는 이들의 기세를 아주 조금이나마 원하는 방향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기예.
로건은 지금 자신이 마주한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 이 재주도 엄청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물론 그 전에…….’
이 난관을 이겨 내야겠지만.
눈앞에 마도사를 두고 돌아서는 것이 참으로 꺼림칙했지만, 맥라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석궁과 리베라티오가 전혀 통하지 않는 위켄 칼리아는 자신이 아니면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경지의 위아래를 떠나 그 속성 때문에, 적어도 맥라인 가문에 있어서는 위켄 칼리아가 가장 위험한 초인이었으니까.
“버텨라! 버티면 이긴다!”
성안에서 들려오는 당치도 않은 헛소리에 후안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이제까지와는 다를 거야, 애송이. 이 내가, 직접 나섰으니까.’
오러유저도 아니면서 위켄과 대등하게 싸운 그 저력은 아직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달리 말하면 고작해야 그 정도.
위켄이 아닌 자신에게 덤벼든다면 차 한잔 마실 시간 안에 얼음덩어리로 만들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물론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놈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쉽지만.’
2왕자 군의 루터를 패퇴시키고 요르단에게 상처를 입힌 가장 큰 원인은, 저들의 신무기가 아닌 적군 마도사의 기묘한 마법이었다.
물론 ‘진짜’ 마도사인 자신이 보기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는 마법이었지만.
‘우선 경지에 오르다 만 반편이부터…….’
우우웅.
의지가 움직임에 따라 주변을 물들여 가는 마력.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얼음 속성 서클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얻은 바람 속성이 더해진 초월적인 힘이 움직이며 성안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마력의 소유자를 탐색했다.
‘찾았다.’
그리고 그 즉시.
‘멈춰라. 그리고 가둬라.’
얼음 속성의 상위 개념인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마법과, 바람 속성의 개념을 역으로 이용한 모든 움직임을 막는 마법이 합쳐지면서 ‘진짜’ 마도사의 힘이 드러났다.
진짜 마도사라면 이중 속성에 의지만이 더해진 이 마력 간섭 정도야 쉽게 뿌리치겠지만.
‘역시…….’
편법으로 6서클 마법을 써 대던 반쪽짜리는 이조차 뿌리치지 못했다.
접촉한 마력의 느낌만으로도 놈이 당황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러자 후안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신의 아티팩트, 켈라한의 지팡이를 들어 눈앞의 성벽 위를 겨눴다.
“놈들의 무기는 내가 막아 낸다! 진군하라!”
마력 간섭을 진행하여 반쪽짜리를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최전선 아군의 머리 위에 바람과 얼음의 보호막을 씌웠다.
이미 진행 중인 더 중요한 작업이 있는 만큼 아군 전부를 보호하지는 못하지만, 최전선에 있는 백여 명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쿼렐과 폭탄은 그 위력이 반 이하로 뚝 떨어지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기사들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공격이 약해졌다!”
“어서 올라가!”
“기회다!”
‘어떠냐. 이것이 바로 진짜 마도사의 힘이다.’
왕자라는 약점을 잠시나마 벗은 진짜 마도사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변화하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쏴!!”
“모조리 쏟아부어!”
우르르릉.
꽈아아앙!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초전에서 그리 형편없게 패퇴했던 덩치만 큰 초인이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날뛰고 있었다.
가장 먼저 성벽에 도착한 그가 자신의 몸만 한 워 해머로 성벽을 후려치는 순간, 성 전체가 흔들리는 착각이 들었을 정도.
그러고는.
“흐, 역시 마법으로 뭔 짓을 해 놓은 모양이네.”
자신의 일격에 죽죽 금이 간 성벽의 틈을 밟고서는 그대로 성벽 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막아!!”
그런 그의 앞으로 패드릭이 재빨리 질주해 왔지만, 그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던 병사들의 표정은 파랗게 질려 갔다.
그들 영주의 이글거리는 포스블레이드도, 저 거인이 만들어 낸 붉은 빛이 영롱한 오러에 비하면 그저 흔들리는 촛불같이 느껴질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암울한 예상은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꽈아아아앙!
“피떡을 만들어 주마!”
거대한 워 해머가 지나간 자리.
그야말로 한순간에 사람이 핏물로 변하는 기괴하고도 마법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절대 부딪치면 안 돼.’
몇 번이고 오러유저에게 쓴맛을 본 적이 있는 패드릭은 포스블레이드를 최대한 응축한 채 공격을 전부 회피하며 거인의 빈틈만을 노렸다.
루터 카일이 초인 중에서는 상당히 느린 편이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터엉!
놈의 갑옷에 순간적으로 어린 붉은 오러는 그런 작은 희망조차 부숴 버리기에 충분했다.
“크하하하. 영주란 놈이 하는 짓이 꼭 쥐새끼 같구나!”
파아아앙!
설령 오러가 없어도 스치는 모든 것을 분쇄해 버릴 듯한 흉악한 망치가 그 파괴의 이능을 담고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패드릭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초인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뿐.
당연히 그의 표정은 무참히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번쩍.
따다다당!
“이건 뭐……?!”
신경질적으로 ‘두 줄기’ 광선을 쳐 낸 루터 카일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웬만한 기사의 공격은 그냥 몸으로 때워도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방금 빛줄기들은 그렇게 무시하기엔 꽤 강력한 힘을 담고 있었다.
‘고작해야 상급……도 아닌 것 같은데? 중급이 이런 게 된다고?’
자신으로부터 좌우로 십여 미터씩은 떨어진 두 곳.
자신을 향해 주황색과 회색의 빛줄기를 날린 붉고 푸른 머리의 어린 기사들을 본 루터 카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언뜻 더 흉악하게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그것은 분노보다는 흥미에 가까웠다.
“푸하하하! 기사가 마법 비스름한 것도 쓰는 것인가? 이거 재미있구나. 그래, 좋아. 죄다 덤벼라!”
꽈아아앙!
육체 능력을 극대화한 초인의 무기가 거리낌 없이 다시금 피의 폭풍을 만들어 냈다.
챙. 챙. 챙. 챙.
콰앙!
스각!
“그 수법은 안 쓰나? 계속 아끼다간 그대로 죽게 될 거야!”
화끈한 감각과 함께 스쳐 지나간 검 끝으로 인해 옅게 생긴 볼의 상처.
오러가 스며들며 그대로 괴사하려는 피부가 강렬한 황금빛 포스와 함께 파괴 권능의 잔재를 밀어 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뻗어 낸 스네이크 블레이드가 적에게 똑같은 상처를 낸 것을 보며 로건은 마주 웃었다.
“네 목숨을 끝장낼 때 써야지. 이제 별로 차이도 안 나는 걸 느끼고 있겠지? 후작 나으리.”
일그러지는 위켄 칼리아의 표정.
역도발에 제대로 걸려든 적을 보면서도 로건의 마음은 그리 편할 수만은 없었다.
전반적으로 아군 전체가 밀리는 상황이라는 것을 주변의 분위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으니까.
‘틈, 작은 틈만 보여라. 바로 끝장을 내 주마.’
초인을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전과는 비할 수 없는 성취를 얻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두 개의 강력한 능력치 증폭 아티팩트와 룩스의 힘을 보탠 결과라고 해도, 위켄 칼리아 역시 범상치 않은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그의 개인 무력이 눈앞의 위켄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로건은 이 순간에도 조금씩 발전해 가는 검술과 스스로의 성취에 집중하며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달랬다.
그런데 위켄과의 싸움이 치열해짐에 따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신없이 장소를 옮겨 가며 치고받고 있던 그때.
– 아아아아악!
– 습격이다!
– 뒤!!
멀리, 전장의 후방에서 적들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연적으로 돌아가는 고개.
그러자 멀리 동쪽의 끝에서 2왕자 군의 후방을 몰아치며 진군하는 일단의 군대가 눈에 들어왔다.
파벌의 대군에 비하면 반의반의 반도 안 되는 적은 숫자였지만.
그들의 가장 앞에 선 장년인.
그리고 그 군대의 깃발에 그려진 독수리 문양을 확인한 로건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