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저희가 무너진다면 그다음 목표는 중립 세력이 될 겁니다. 저희에게 호응했다는 핑계를 대겠죠. 3왕자님도 가만두지 않을 테고요.]
‘싸가지 없는 놈. 지가 벌인 일 때문에 생긴 일을…….’
제자의 협박 같은 요청을 떠올린 검공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하지만 그 협박의 이유가 너무나도 타당했기에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 에스페란자 기사단과 기마병만요?! 위험합니다! 중립 세력을 총결집시켜서 가도 한참 모자랄 마당에…….
– 그 사이에 맥라인이 끝장날지 모른다.
– 그렇게 가셔도 마찬가지입니다. 맥라인은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우리 가문의 병력만 박살 난다니까요, 각하!
[저희는 버틸 수 있습니다.]부관인 루이스의 현실적인 만류와 제자의 근거 없는 확신.
그 사이에서 후자를 택한 것은 제자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러유저의 감 때문이었을까.
오랜 세월 수양을 쌓았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마음마저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검공은 이미 벌여 버린 일의 핑계를 찾는 것보다,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멀리서 수많은 사람이 뒤섞인 아수라장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거창 준비!”
“예!”
두두두두.
250명의 기사단과 3,000명의 기마병.
그리고 자신.
얼추 보아도 몇만은 넘을 듯한 눈앞의 적군에 비교하면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을 초라한 병력에 불과했다.
하지만 검공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수는 발터마임 기사단에 밀릴지라도, 그 구성원 하나하나의 수준만큼은 자신의 기사단이 왕국 최강이라고.
정식 기사의 자격이 포스유저 중급인 데다가 상급기사만 마흔. 최상급기사 둘에 오러유저인 자신까지.
루이스를 비롯한 정예 일부가 3왕자의 호위를 위해 빠졌다 할지라도 왕국 최강이라 자부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더군다나 타 영지라면 정식 기사 자격을 받았을 수습기사가 뒤따르는 기마병들의 조장을 맡아 300명 가까이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마침 시기도 완벽했다.
적들의 정예는 전방에서 공성에 여념이 없었고, 심지어 기세를 탔는지 더욱 앞쪽으로 몰려가는 형국.
말발굽 소리를 들었는지 뒤를 돌아보는 적군 후방 병력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가는 것이 그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일직선으로 돌파해 적들의 중심을 부순다!”
“예!”
소수의 병력으로 전쟁을 끝내는 확실한 방법.
검공의 칼끝이 2왕자 군의 본진을 향했다.
* * * 스승의 검이 전면을 향하는 순간, 그 앞으로 용감하게 달려들던 모 자작의 기사단원들 대다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흡사 마법 같은 광경이었지만, 멀리서 지켜보던 로건만은 그 원리를 알 수 있었다.
‘중압검을 저렇게…….’
달려들던 말들이 무형의 기세에 묶여 일제히 발을 멈추고 나뒹굴어 버린 것이었다.
곧이어 아주 일순간이나마 허공을 유영하는 기사들의 앞으로 붉은빛 선이 그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이윽고 꼴사납게 허공으로 튕겨 나가 허우적대던 이십 명의 기사가 빨간 선을 기준으로 동시에 상하 두 쪽으로 나누어져 버리는 거짓말 같은 광경이 이어졌다.
‘음속 가르기(Sonic Blade).’
자신은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가르쳐 주지 않은, 스승의 비기 중 하나.
하지만 저 놀라운 광경을 보니 배우고 싶은 마음이 넘치도록 생겨났다.
운 좋게도 그 일격에서 살아남은 기사들은 스승의 뒤를 따라 짓쳐들어온 에스페란자 기사단에게 그대로 짓밟혔다.
작은 반항조차 용납하지 않은, 그야말로 압살.
50여 명에 이르던 자작가의 기사단이 한순간에 전멸하는 모습을 필두로, 2왕자 진영의 후방이 그대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정말로 그런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2왕자 군의 후방이 그대로 찢겨 나가는 듯한 모습은 그런 소리가 저절로 뇌리에 떠오를 만큼 인상적이었다.
압도적. 말 그대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합해 보였다.
물론 파벌의 정예들이 대부분 토성 앞에 몰려 있는 상황이라서 더욱 극적으로 압살한 것이겠지만, 어찌 되었든 로건에게는 전황이 기울어지던 상황에서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내려온 것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사실상 한눈을 판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로 인한 위기는 없었다.
그것이 로건에게만 인상적인 광경일 리는 없었으니까.
그와 상대하던 위켄의 눈동자 역시 경악으로 물들어 사실상 공방이 멈춘 상태.
그런 위켄을 돌아보던 로건의 눈에, 적의 귓가로 한줄기 옅은 마나가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놈이 움찔하는 순간.
로건이 먼저 움직였다.
스각.
“윽! 이놈이?!”
젠장. 지금 그걸 썼어야 했나.
“아깝군.”
로건은 아쉬움을 감춘 채 비릿한 웃음으로 적을 자극했다.
하지만 빠드득 이를 간 위켄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지겨운 놈. 좀 이따가 보자.”
“음?”
파아아앙.
말을 남겨 놓기가 무섭게 바람처럼 사라지는 적.
위켄 칼리아의 가장 큰 장점인 속도는 로건이 시간 가속을 사용하지 않는 한, 아직은 귀신 그림자로도 따라잡기 어려웠다.
‘굳이 따라잡을 필요도 없고.’
위켄이 향하는 방향.
그리고 남쪽 성벽에서 느껴지던 이질적이고 강력한 마력의 주인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목적이 확실했으니까.
‘스승님을 노리는 거로군.’
– 우하하하! 검공?! 좋지. 이런 애송이들보다야……!
멀리 반대편에 있다가 벌써 아련히 멀어지고 있는 루터 카일의 목소리까지 고려하면 최소 초인 세 명이 스승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로건은 생각을 마치는 즉시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동쪽 성벽 위로 향했다.
‘음?’
비슷한 위치에서 파리한 안색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은 아버지와 빅토르, 로니안을 보며 흠칫한 것도 잠시.
“초인들이 전선에서 빠져나갔다! 있는 자원을 모두 쏟아부어! 남은 적과 돌아서는 적을 요격하라!”
로건은 초인의 갑작스러운 이탈로 당황하는, 성벽 위에 얼마 남지 않은 적 기사들을 순식간에 정리해 갔다.
7, 8m의 사거리를 두고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스네이크 블레이드와 극에 이른 반응 속도.
초인과 대적하던 로건의 공격을 일격이라도 제대로 막아 내는 적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림없다! 내가 상대……!”
푸우욱.
“컥……!?”
“말이 너무 많아.”
트리탄 영지의 기사단장이자 철갑의 요새라는 이명을 가진 최상급기사, 하비 밀러조차도 맞찌르기를 노리다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끄으윽. 어, 어떻게…….”
하비 밀러는 변형된 포스블레이드를 갑옷과 철퇴에 두른, 동급에 한해서는 무적을 자랑하던 자신의 방어 기술이 속절없이 뚫렸다는 것을 죽어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믿지 못했다.
초인이 성벽 위에서 홀로 적군과 대적하는 틈을 타 침입한 뒤 맥라인의 병력을 학살하던 최상급기사의 허무한 최후.
그를 마지막으로 잠시나마 아이기스의 성벽에 올랐던 적군 기사들은 모조리 사살되었다.
파바바박.
콰콰콰쾅!
“아아악!”
성벽 아래에서는 거세진 맥라인의 반격에 연신 비명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1, 2, 3, 4조. 각 성벽에 한 조씩 대기하고, 나머지 기사단과 석궁기마대는 말에 올라라! 에스페란자 공작가를 도와 적들을 꿰뚫는다!”
“형님!”
“로건 공자!”
1~4조는 가장 강력한 중급기사들인 로니안과 빅토르, 에일렌과 핸더슨이 조장으로 있는 기사들.
그 지시에 로건과 가까운 이들이 바로 반발했지만.
“성벽을 지켜! 소수로 성벽을 지킬 수 있는 건 너희들뿐이야!”
로건은 단호한 외침으로 그 항의를 일축했다.
“카이! 일반 병사들과 자경단을 지휘해! 그리고 적이 물러선다 싶으면 즉시……!”
“예! 제게 맡기십시오!”
긴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카이솔론이 로건의 말을 끊었다.
안색이 창백하고 옆구리의 갑옷 아래가 붉게 물든 것이 그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휘에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로건은 그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성벽 안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 혈색을 어느 정도 회복한 아버지가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어서 서둘러!”
남쪽 성벽에서 다른 기사들을 독려하며 성벽 안으로 내려온 에일렌과 눈빛이 마주친 것도 잠시.
히이이잉!
“그릭, 에난! 남쪽 성문을 열어라! 출격한다!”
말을 탄 로건이 재빨리 클레이튼의 수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주저 없이 명령을 따랐지만, 바로 옆에서는 의아함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쪽?! 1왕자 군 방향으로 말이냐? 지금 검공 각하는 2왕자 군 쪽에…….”
“이 틈에 왕자들을 죽여야 합니다.”
“뭐?! 지금 우리 기사단만으로 1왕자 군의 본진을 공략하자는 소리냐?!”
“빙결의 마도사와 폭풍검이 전부 스승님을 상대하러 갔습니다. 지금이 1왕자를 죽일 절호의 기회입니다.”
에스페란자 공작가의 병력이 적군의 후방을 박살 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스승을 비롯한 그 병력의 강력함 때문이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기습의 효과도 컸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맥라인과 에스페란자 공작가의 전력을 합치더라도 두 파벌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지금 맥라인이 에스페란자 기사단을 돕는다고 해도 결국엔 물러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까지 전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1왕자를 죽이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여부도.
그저 다급한 마음이 그대로 표정으로 전해지며 이내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 1왕자를 죽이고 2왕자를 향해 돌파를 시작하면 그것만으로도 협공이 되겠지.”
패드릭 역시 가능성의 실현 여부를 따지지 않고 가장 최선의 경우만을 이야기했다.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일찌감치 열을 잡은 기사들과 계단을 통해 구르듯 내려온 석궁기마대가 성벽 안쪽에 준비된 말들에 속속들이 올라탔다.
그리고.
드드드드드.
준비된 주문에 반응한 남쪽 성문의 일부가 열리며 바깥에 있던 적들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돌격!”
맥라인의 정예들이 바람처럼 성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 * *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클레이튼은 전투 시작 초반부터 자신을 옭아매기 시작한 이질적인 마력에 저항하며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자꾸 급해지는 마음에 이미 수십 차례 실패를 거듭할 뿐이었다.
제자들은 골렘을 동원하여 리베라티오를 던지고 보조 마법으로 성벽 위에 올라선 적 병력을 붙들며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정작 스승이라는 작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스스로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결국 그는 아예 주변 상황을 생각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스스로의 내면에 빠져들었다.
아틀란의 지팡이 덕분에 그래비티 컨트롤을 시전하는 데 성공한 이후, 마나(Mana)와 마력(Magic force) 그 경계선 사이에 머물던 자신의 힘으로는 진짜 마도사의 힘을 쉽게 뿌리칠 수 없음을 깨달은 그였다.
방법은 두 가지.
당장 상대 마도사가 자신을 방해할 여력이 없어지거나, 자신이 그 경계선의 한계를 깨고 온전한 마력을 손에 넣는 것.
전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가능성이 없어 보일지라도 후자에 걸어 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현실 도피에 가까운 선택.
그런데 그 현실 도피가 예상외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왕국의 유일한 마도사의 마력 간섭이 그에게 그가 알지 못했던 한계 너머의 가능성을 하나하나 다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마력 간섭이 사라지자, 그의 힘은 온전히 그 깨우침을 받아들이며 진화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심장의 서클에 온전한 하나의 고리가 더해지고.
그가 가진 힘이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또 하나의 속성’을 손에 넣었다는 것과 온전히 마도사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마치 병아리에 불과했던 자신이 하늘의 제왕, 독수리가 된 기분.
클레이튼은 눈을 부릅뜬 채 크게 고함을 질렀다.
“지옥을 보여 주마. 루터 카일! 그래비티 컨…… 어……?!”
하지만 그 자신감 넘치는 외침을 들을 초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미처 끝내지도 못한 외침에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그저.
“스승님! 마도사 갔어요! 폭탄이나 던지세요!”
수제자 그릭의 타박뿐.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게진 것도 잠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빠르게 깨달았다.
우우우웅.
여섯 개의 서클이 힘차게 진동하며 마력을 토해 내고.
“서몬 골렘(Summon Golem)! 움직여라, 땅의 병사들이여!”
그의 주문에 따라 토성 안쪽의 땅 일부가 3m가 넘는 덩치의 골렘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그가 소환하던 골렘들보다 훨씬 견고해 보이는 피부는 마치 갑주를 입은 기사처럼 보였고, 두 손은 사람 손 모양이 아닌 뭉툭한 철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골렘이 무려 30기.
마정석 하나 소모하지 않은 채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더구나.
“가라! 그리고 싸워라! 승리를 위해!”
골렘의 파괴가 마법사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듯 이전과 다른 적극적인 전투 명령까지.
자신에게 날아드는 제자들의 놀란 시선이 직전에 느낀 부끄러움을 희석해 주는 것 같았다.
“스승님 미치셨어요?! 우리한테는 서클 박살 난다고 그리 당부하셔놓고는!!”
……착각이었다.
“시끄러! 이젠 다르다. 성문을 열어라!”
“스승님!!”
끝까지 그를 만류하던 제자들은 클레이튼이 마력을 끌어올려 눈앞에 선명한 증거를 보여 주고 나서야 간신히 물러섰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맥라인의 기사들이 남쪽으로 진군한 지 삼십여 분이나 지난 뒤.
새로운 초인의 비전 마법은 조금 늦은 타이밍에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