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내전이 벌어지기 한참 전부터 그란디아 왕국의 초인들에 관한 소문은 무성했다.
아니, 오히려 초인들이 직접 전선이나 전장에서 힘을 쓰는 일이 별로 없었기에 소문이 더욱 무성한 건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많은 소문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소문은 언제나 하나였다.
– 그래서 그중에 누가 제일 센데?
오러유저도 경지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누구도 초인에게 직접 그 경지를 물어보지 못했고.
왕국의 초인 중에는 마도사도 있었기에 경지를 안다 해도 직접 비교하는 건 어려웠다.
그 때문에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한 가지로 정리가 되었다.
초인 중 누구 한 명은 직간접적으로 강력한 불만을 표했던 기존의 소문들과는 달리, 초인들 스스로가 대체로 수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리에 따르면.
가장 어린 반거인(Half Giant) 루터 카일과 폭풍검(The Storm Blade) 위켄 칼리아가 엇비슷했으며.
그 위로 열화검(The Flame Blade) 요르단 발터마임과 빙결의 마도사(Freezing Wizard) 후안 더글라스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평해졌고.
검공(The Sword of Loyal) 펠릭스 에스페란자가 가장 정점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전장에 있는 이들은 그 소문의 진실성을 어느 정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얼어붙은 재앙의 손아귀(The grip of frozen disaster)!”
후안 더글라스가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마력을 동원하여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즉발형 개인 속박 마법으로 움직임을 묶고.
“흐아아압!”
흰색 바람을 전신에 휘감은 위켄 칼리아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번개 같은 연격을 퍼부었다.
“으와압!”
그리고 그렇게 궁지에 몰린 검공을 향해 괴력의 초인이 자신의 몸만 한 워 해머를 휘둘렀다.
꽈아아아아앙!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십여 미터의 지반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는 순간.
흙먼지 가득한 그 공간 사이에서 한 줄기 붉은 빛살이 번뜩였다.
그리고.
“큭!”
“빌어먹을!”
“마법 제대로 쓰고 있는 거 맞소?!”
가까이 붙어 싸우던 위켄과 루터는 물론, 20여 미터는 떨어져 있던 후안 더글라스의 몸에까지 생긴 길쭉한 상처.
오직 단 한 번 칼을 휘둘러서 만든 결과라고 하기에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부상에 루터 카일이 짜증을 냈다.
“아니었다면 네놈이 상대나 할 수 있었을까? 한눈팔지 말고 집중해!”
지팡이를 잡은 손에 기다란 자상을 입고서도 후안 더글라스는 흉흉한 살기를 뿜어냈다.
그들이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후안의 호언장담이 거짓은 아닌 듯, 검공 역시 창백한 얼굴에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느껴지는 기세 역시 처음과 비교하면 확연히 약해져 있었다.
그만큼 그가 많이 지쳤다는 증거.
하지만.
그런 그를 보는 세 초인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만이 가득했다.
셋이서 합공을 하는데도 검공이 버텨 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전장 여기저기에선 원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나 후안과 위켄은 연신 그들의 본진을 바라보기에 바빴다.
“셋이서 안 될 것 같으면 요르단 녀석도 부르지 그래?”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에 비해 여유가 느껴지는 검공의 음성.
그 역시 반전되는 전장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검공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멀리 남쪽을 향했다.
* * *
“나를 따르라!”
“뚫어라!”
두두두두.
연이은 격전 끝에 이젠 150여 명밖에 남지 않은 기사단.
그리고 1,300여 명의 석궁기마병.
고작 그 수로 여전히 3만에 가까운 수를 자랑하는 적의 본진을 돌파한다는 것은 얼핏 자살행위로 보였다.
아무리 적들을 지휘하는 초인이 없다 해도, 일점 돌파를 위한 돌격 진형으로는 맥라인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석궁기마대의 위력을 온전히 보여 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자살행위 같은 짓은 몇 가지 변수로 인해 너무도 수월하게 먹혀들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변수는 기사단의 가장 앞에 선 로건이었다.
“타아!”
단순히 검을 뻗는 것만으로 달려오던 기사들의 말이 꼬꾸라지면서 진형이 균형을 잃었다.
균형을 잃지 않은, 기습적인 상황에서도 포스로 말을 통제할 수 있는 강자는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유려한 곡선을 그려 내며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강자가 여럿이라면, 전방 수십 미터를 절반으로 쪼개 버리는 황금빛 거인의 검이 적 기사단을 초토화했다.
단순한 최상급기사의 무용을 아득히 초월하는 괴물 같은 기세.
실제로도 트럼벨 백작령의 유일한 최상급기사인 발튼 오일이 채 세 합도 받아 내지 못하고 두 쪽이 난 뒤에는 아무도 로건의 앞을 섣불리 가로막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로건의 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넘어지고 균형을 잃은 기사들에게는 일차적으로 쿼렐의 소나기가 쏟아졌고,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 적에게는 맥라인 기사들의 칼이나 말발굽이 작렬했다.
두 번째 변수는 로건의 뒤를 따르는 맥라인의 기사들이었다.
“죽어!”
“뒈져라!”
스각.
챙!
서로 교차한 검격에 한 사람은 옆구리의 갑옷이 갈라지고, 한 사람은 목숨을 잃었다.
“끄, 끄륵. 미, 미친…….”
적의 공격을 무시한 채 일격에 목숨을 노리는 공세.
맥라인 기사들은 하나같이 뼈를 줄 테니 목숨을 내놓으라는 듯한 투지로 적을 도살하고 있었다.
맥라인 기사들의 강검 일변도인 자세가 철혈검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실력 이상의 결과를 연달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변수.
“이건 뭐……!”
“골렘이다! 부숴……! 억!!”
“아아악!”
적병에게도, 아군에게도 생소하기만 한 양손에 철퇴를 단 골렘 30 개체.
그 하나하나가 기사급의 위력을 발휘하는 3m짜리 골렘들이 어느 순간부터 로건의 바로 뒤, 맥라인 기사단의 앞쪽에서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철퇴 모양의 양손이 골렘의 몸체를 파고드는 적 기사의 공격을 무시하며 그대로 적을 후려갈겼다.
사람으로 치자면 심장을 내어 주고 팔다리를 노리는 꼴.
감히 무술이라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운, 그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듯한 공격이었지만.
그 당사자가 심장이 없는 괴물이라는 것, 그리고 가공할 만한 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 허점을 상쇄하고도 남도록 해 주었다.
꽈아앙!
경험 많은 일부 적군 기사들이 골렘에 대한 대책을 내어놨지만.
“빌어먹을! 핵이 없다! 다리를 부숴!”
“아아악! 젠장! 마법사를 찾아! 분명 근처에 있을 거야!”
그들은 다리를 부숴도 불과 십여 초도 지나지 않아 재생하는 괴물들의 주인이 저 멀리 성안에 있다는 것을 절대 짐작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마법이야…….’
다급한 상황에 큰 힘이 되어 준 골렘들.
그 마력의 근원이 클레이튼의 것이라는 것을 로건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마나를 볼 수 있는 그의 눈으로도 어찌 이런 재주가 가능한 것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저 클레이튼에게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만 짐작할 뿐.
‘6서클, 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거야. 그런데 무슨 속성을 얻었길래 이런 게 가능하지?’
마도사의 특기 마법이라기에는 한 번에 발휘할 수 있는 파괴력이 약하기는 했지만, 마법을 발휘할 수 있는 거리와 지속력이 그 단점을 충분히 메꾸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로건은 그 덕분에 일이 한결 쉬워졌다.
“속도를 더 높인다!!”
로건은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며 타고 있는 말에 포스를 더했다.
완벽하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포스가 지친 말의 폐를 강화하고, 근육의 피로를 풀어 힘을 더했다.
우연히 튀어나온 병사들의 창 정도는 생채기만으로 튕겨 낼 정도로 피부가 강화된 것은 덤.
로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휘된 포스 기마술의 최정점이 만들어 낸 이적이었다.
눈에서 불꽃과도 같은 안광을 뿜어낸 로건의 말이 이전보다 월등한 힘으로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한 줄기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적진을 돌파하며 로건의 입가에 미소를 만들었다.
품 안에 챙긴 리베라티오의 소진이나 기사단 다수의 손실 등을 각오했던 것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적진이 너무도 쉽게 두 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 * * ‘저. 저……?’
마력을 집중시켜 검공을 묶고 있던 후안 더글라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본진을 마른 장작 쪼개듯이 가르면서 돌진하는 맥라인의 기사단이 눈에 들어온 탓.
전혀 상정하지 않았던 경우의 수에 심경이 복잡해졌지만.
스각.
“큭!”
그 순간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오러의 칼날에 그는 다시금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다.
오러 샷(Aura Shot).
검공이 오러유저 상급에 올랐다는 증거이자, 지금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고전하고 있는 이유.
“집중!”
그리고 건방진 사위 놈이 반말로 대거리를 해도 어쩔 수 없을 정도의 비상 상황이었다.
성명식 때 얼핏 느꼈던 그의 실력은 분명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늙은이. 여태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이거지?’
조금이라도 삐끗했다간 당장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판.
본진의 상황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아무리 그 애송이라도, 초인이 아니라면 내 결계를 어찌하지 못해. 아니, 보지도 못할 것이다. 적어도 하루는.’
왕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억지로 본진을 파고든 기사단 정도야 금세 포위 섬멸될 것이다.
후안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불안감을 의식적으로 외면하면서.
* * * 두두두두.
전면의 기사단들을 닥치는 대로 뚫어 내자 어느새 앞이 훤하게 뚫렸다.
1왕자 군의 대응이 완전히 변화했다는 증거.
정면에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강력한 창을 감싸서 부러트리겠다는 포위 전술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로건은 기회다 싶어 오히려 더욱 속도를 냈다.
‘왕자를 찾아야 한다.’
아마도 본진 깊숙한 곳에서 가장 엄중히 보호를 받고 있을 터.
그란디아 왕가를 뜻하는 불사조의 깃발 아래, 십자로 교차하는 검의 문양. 더글라스 공작가의 상징인 깃발을 보며 로건은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정작 앞이 훤히 뚫린 지금, 그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야 할 왕자와 그 호위 병력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후안이 빠져나갔다 해도 최정예 병력이 호위하고 있을 텐데?’
주변 어디에서도 그만한 강자들이 뭉쳐 있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자신들을 포위하기 위해 움직이는 적병의 모습만 보였다.
그 의아한 상황에 로건이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자 그의 초월 감각에 이상한 느낌이 잡혔다.
그 즉시 앞으로 돌진한 그가 이질적인 힘이 흐르는 공간을 향해 거칠게 검을 내뻗었다.
꽈아아아앙!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비어 있던 공간.
하지만 그 공간을 강타한 로건의 검은 거센 폭음과 함께 튕겨 나왔다.
“여기다! 때려 부숴!”
이는 필시 후안 더글라스가 마법으로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것일 터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놈이 없는 지금, 이런 마법 장벽 따위를 부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
……그렇게 생각했다.
연달아 이어진 수많은 기사의 공격에도 그의 기감에 걸린 이질적인 에너지가 전혀 변동이 없음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까아앙!
쾅!
빠바바박.
“……뒤로 물러서!”
기사들을 물린 뒤, 허공 위로 솟구친 황금빛 거검.
지금 로건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물리적 파괴력이 그대로 보이지 않는 장막을 강타했다.
꽈아아앙!
우우우웅.
하지만 이질적인 에너지의 흐름은 한차례 진동을 했을 뿐, 여전히 끄떡없는 위용을 과시했다.
“이런…….”
로건의 얼굴에 낭패감이 떠오르는데.
쿵. 쿵. 쿵.
갑자기 다가온 골렘 하나가 갑자기 빠르게 땅바닥에 글을 썼다.
[마도사가 힘을 퍼부어 만든 마력 결계입니다. 오러나 마력을 쓴 공격이 아니라면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지금은 거리가 멀어서 무리입니다.]“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클레이튼이 새롭게 선보인 재주보다 그 내용이 더 놀라웠다.
[당사자가 자리에 없으니 시간제한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만, 작정하고 자리를 비운 것을 보면 적어도 한두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은 아닐 것입니다. 후퇴하시는 게.]“절대 안 돼!”
로건은 클레이튼이 골렘으로 전하는 퇴각 요청을 무시하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온갖 경우의 수가 맞아떨어져 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이 아깝기도 했지만, 아직은 써 볼 수 있는 수가 더 남아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로건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땅바닥에 글씨를 써 대는 골렘을 무시하고 정신을 집중하며 검을 들었다.
‘아직 미숙하지만…….’
아직 초인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자신이 오러의 파괴 속성을 버티게 해 주고, 온갖 술수에 약해진 상황이었는데도 요르단의 불꽃 오러를 한순간은 가를 수 있게 만들어 준 힘이 있었으니까.
‘할 수 있어!’
신검 비전 4식. 불꽃 가르기(暴炎斬, 폭염참).
그전까지의 비기와는 다른, 형태가 없는 에너지의 근원을 가르는 개념을 담은 비전.
로건의 애검 룩스에서 타오르듯 뿜어진 황금빛이 일순간 흐릿하게 변하는 순간.
쩌어어억.
빈 허공이 요란한 소음과 함께 갈라지며 그 안의 속살을 노출했다.
“그렇지……!”
그 갈라진 틈 안에서 당황한 표정을 짓는 십수 명의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백금발에 푸른 눈의 남자를 본 로건이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