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이제는 버티는 게 아니다.
승리.
눈앞의 초인을 죽여야만 한다.
그것도 왕국에서 두 번째로 강하다는 오러유저를.
허공에 체류하는 짧은 시간 동안, 로건은 머릿속으로 온갖 계획을 떠올려 보았다.
들은 것도 많고 상상 속에서나마 수도 없이 결투 장면을 그려 본 사람 중 하나인지라 견적은 쉽게 나왔지만, 그중 긍정적인 결과는 거의 없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확률 몇 가지를 되새기며 로건은 굳은 표정으로 땅에 착지했다.
요르단 공작의 불과 10여 미터 앞.
‘그래도 부하들을 동원하지는 않는군.’
일단 최악의 사태는 피한 것에 만족한 로건은 다른 중요한 ‘목표’의 위치를 곁눈질로 확인했다.
그리고.
“참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저질렀구나. 그 황당한…….”
탓.
여유로운 표정의 요르단이 무어라 입을 여는 순간, 그대로 그 앞을 향해 돌진했다.
번쩍.
휘리릭.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살아 있는 뱀처럼 휘어지며 요르단의 목을 노리는 순간, 초인의 눈매가 조금 일그러졌다.
– 요르단? 그 녀석 말이냐? 흠, 너도 알 테지만 초인이 되며 불꽃의 속성을 특화한 녀석이긴 한데. 검술도 제법이고, 모종의 방법으로 육체 특화 못지않게 신체도 강화한 것 같더구나. 당연히 특별한 약점 같은 건 없지.
스승이 언급한 요르단 발터마임의 특징은 절망적이었지만.
– 그런데도 내가 어떻게 녀석보다 더 강하냐고? 간단하다. 내가 그 녀석보다 훨씬 빠르거든.
무술의 기본은 공간의 장악.
그리고 공간의 장악은 힘이 아닌 속도가 좌우했다.
– 나는 놈을 일방적으로 때릴 수 있고, 녀석은 나를 맞추지 못하니까.
아무리 경지가 차이 나더라도, 맞지 않고 때릴 수 있으면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은.
‘바람 속성의 위켄 칼리아와도 대등하게 겨뤘었다.’
로건이 조금이나마 승리를 기대해 볼 수 있었던 건 그 점에 있었다.
하지만.
“흥. 잔재주를.”
나직한 코웃음과 함께 휘둘러진 붉은 오러의 대검은 스네이크 블레이드가 힘을 흘릴 틈도 주지 않고 그 중단을 강타했다.
쾅!
“윽!”
주르르륵.
며칠 동안 연속적으로 폭풍검을 상대하며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단 일 검에 속절없이 밀려났다.
검에 담긴 그 강력한 힘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검의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는 것.
일전에 경험했던, 클레이튼의 마법에 당한 상태에서 한 수를 겨룰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한 번의 움직임으로도 요르단의 민첩함이 자신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로건은 절망하지 않았다.
‘첫 번째 계획은 파기. 두 번째 계획으로 간다.’
로건은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이글거리는 붉은 오러를 보면서 몸을 비스듬히 틀어 그 옆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그대로 충돌한다면 자신은 중상을 면치 못하겠지만 상대 역시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도록.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오러와 비스듬히 부딪치면서도 존재감을 유지하며 적의 급소를 노렸다.
그에 다시금 눈썹을 꿈틀거린 요르단의 대검이 먼저 변화를 보였다.
파아아앙!
“귀족답지 않게 태연하게 미친 짓을 하는구나.”
“칭찬 감사!”
튕겨 나간 로건이 헛소리를 내뱉으면서 다시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그 순간, 몸 전체에서 불꽃의 오러를 피워 올린 요르단이 더욱 빠르게 쏘아져 들어왔다.
일순간에 둘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며 맞붙는 순간.
왼쪽 아래에서 비스듬히 상단으로 휘둘러지며 몸 전체를 갈라 오는 대검을 무시하며, 로건은 그대로 황금빛 빛줄기를 쏘아 냈다.
좀 전처럼 사이좋게 칼침 한방씩 놓자는 것도 아닌, 이대로 같이 죽자는 식의 공격.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진 요르단이 멈칫한 것도 잠시, 그의 몸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로건의 후방을 점했다.
그러나.
사아악.
유려한 보법으로 점한 후방에서의 일격은 귀신처럼 사라진 로건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곧이어 바짝 엎드린 채 요르단에게 접근한 로건의 검에서 뿜어진 황금빛이 요르단의 고간을 향했다.
“감히!!”
콰아앙!
분노와 함께 폭발한 일격에, 달려들던 로건이 다시 주르륵 미끄러지며 밀려났다.
“네놈은 귀족으로서의 품위가……!”
“없다, 이 꼰대야!”
헛소리로 가득 찬 도발이 적의 이성을 조금이라도 흔들기를 바라면서 다시금 거리를 좁힌 로건.
그런 그를 환영해 준 것은 전면을 뒤덮는 시뻘건 붉은 오러였다.
요르단의 대검이 로건의 전신을 뒤덮을 만큼 넓은 오러를 뿜어낸 것.
그에 대한 로건의 반격은 거대한 기둥 같은 황금빛 거인의 검이었다.
꽝!!
넓은 범위를 노린 탓에 힘이 흩어진 공격과 한 줄기 선에 집중된 공격.
로건에게는 유감스럽게도 그 충돌의 결과는 그의 비세였다.
둘 다 비틀거리며 물러나긴 했지만, 요르단은 고작 몇 발자국을 물러난 반면에 로건은 수십 미터나 밀려난 것.
‘큽!’
로건이 숨을 고르며 울렁거리는 속을 억지로 달래는데.
정작 손해를 덜 본 요르단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진 것이 보였다.
“흐. 정말로 오러를 버티는구나. 뭐, 좋아. 이제부터 진지하게 상대해 주마. 장난 같은 꼼수는 그만두고 진심으로 덤벼라. 그대로 죽고 싶지 않거든.”
로건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자존심이 꽤 상했나 본데. 벌써 그러면 곤란하지.
“그럼 분부하신 대로……!”
로건은 말과 동시에 번개 같은 속도로 요르단에게 달려들었다.
포스까지 잔뜩 끌어올린 그는 최고의 강적 앞에서 자신의 속에 든 모든 것을 솔직하게 내보였다.
“우웩!!”
좀 전의 충돌로 흔들린 내부 덕분일까.
로건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진심’이 포스까지 싣고 요르단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그것은 기대 이상으로 상대방의 격한 감동을 이끌어 냈다.
“이 더러운 새……!!”
여태껏 들어 본 그의 음성 중에서 가장 큰 목소리.
로건은 그 뜨거운 ‘진심’의 뒤에 숨어, 감격한 상대의 아래쪽 급소를 노리고 황금빛 빛줄기를 쏘아 냈다.
스각.
콰아아아앙!
‘됐다!’
강력한 충격에 밀려나면서도 로건은 자신의 손에 느껴진 감각에 통쾌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찢어 죽여 주마! 이 버러지 같은 놈!”
열화검의 전매특허 수법, 불의 군주(The Lord of Fire)가 발동되며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어 돌진해 오는 요르단의 몸에 생긴 상처는 허벅지 안쪽의 깊게 찢어진 상처 하나뿐이었다.
‘젠장, 아깝다!’
두 번째 계획이 고스란히 먹혀들었음에도 적을 한 방에 보낼 기회를 놓쳤다.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이 긴박한 상황에서 아쉬움을 되새김질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 불의 군주? 요르단 녀석이 이름만 거창하게 지은 거지 원리는 간단하다. 불꽃의 오러를 주변에 둘러치고 접근하는 모든 것을 태우는 것뿐이야. 오러니까 웬만한 마법보다 더 뜨겁긴 하지.
– 하지만 사실 그건 부차적인 거고, 진짜 목적은 그것을 견디고 접근하는 자를 자신의 간격 안에서 압살하기 위한 거지. 적어도 그 간격 안에서는 놈의 오러가 공기까지 제어하니까.
– 어떻게 깨냐고? 그냥……. 아, 네 수준에서 말이냐? 불가능한 일이지만…… 뭐, 억지로 방법을 찾자면…….
‘간격 밖에서의 중장거리 저격뿐.’
스승의 말을 떠올린 로건의 검 끝에 황금빛이 뭉쳐 들었다.
‘일반적인 공격으론 안 돼.’
한 줄기 빛살만 쏘아 내는 무쇠 가르기의 한계는 이미 한 번 넘어본 적이 있었다.
한 번에 쏟아 내는 에너지를 넓게, 그물처럼 퍼트려 쏟아지는 리베라티오를 허공에서 터트렸던 일.
그때의 경험을 반대로 적용하여 몇 번이고 중첩한 에너지를 단 일격에 때려 넣으면…….
번쩍!
까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금속을 힘껏 후려친 것처럼 요란한 타격음이 주변 공간을 메우며 날카롭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정면으로 달려들던 요르단의 신형이 쿵쾅거리며 몇 걸음을 물러섰다.
거대한 불덩어리 같던 불꽃의 오러가 사라진 자리.
“이, 네놈이 감히 내 플람마(Flamma)를…….”
악귀처럼 일그러진 요르단의 얼굴 앞으로 검신의 가운데에 미세한 균열이 간 대검이 세워졌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번뜩이던 대검에서 마나가 새어 나가는 것이 로건의 눈에 똑똑히 보였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젠장!’
회심의 한 수가 또 한 번 실패했다.
불덩어리가 된 요르단이 대부분의 공격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만을 믿고 할 수 있는 최강의 일격을 쏟아부었는데, 고작 검의 마나만 흩어 낸 꼴이라니.
‘그럼 이제 남은 방법은…….’
로건이 3할 이상 비어 버린 포스에 허전함을 느끼며 억지로 머리를 굴리는데.
어느새 그의 눈앞에는 선명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대검이 다가와 있었다.
스각.
“쥐새끼 같은……!!”
아슬아슬하게 주저앉는 순간 솟구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고.
쩌어억.
“……노옴!”
곧바로 옆으로 굴러 피함과 동시에 그가 서 있던 대지가 깊게 파여 나갔다.
로건은 그 모골이 송연한 느낌, 자신이 한없이 작은 생물이 된 느낌을 최대한 원초적으로 살려 감탄사를 내뱉었다.
“찍찍!”
“……하. 이 빌어먹을 새끼가!”
좋아, 도발 성공!
파아아아앙!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몸을 뒤로 빼기가 무섭게 그가 서 있던 자리의 공기가 터져 나갔다.
피부의 솜털까지 바짝 솟아오르는 느낌.
지금까지는 진짜 장난이었다는 듯, 요르단의 공세가 소나기처럼 이어졌다.
로건은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과 수단을 동원하여 회피에만 집중하고도 몇 군데의 옅은 검상을 입고 말았다.
‘근데 내가 왜 도발을 하려고 했더라?’
애초에 그가 노렸던 작전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순간의 연속.
극에 이른 긴장감에 돌처럼 굳어진 머리가 한참 뒤에서나 간신히 마지막 계획을 생각해 냈다.
‘또 다른 목표’를 떠올린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크게 멀어지지 않았어. 나와 줘서 고맙다, 멍청아.’
요르단의 검이 다시 눈앞에 다가온 순간.
‘제발!’
로건은 정말로 죽음이 다가온 듯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요르단이 아닌 한쪽에서 멍청하게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그의 목표, 2왕자 로메인 폰 그란디아를 향해 빛줄기를 쏘아 냈다.
다행히.
콰아아앙!
강렬한 분노로 전력을 다한 공격을 하던 와중에도 요르단 공작은 방향을 틀어 왕자에게 향하던 로건의 공격을 막아 냈다.
하지만 아무리 오러유저라도 급박한 방향 전환 탓에 균형을 잃고 잠시간 비틀거리는 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로건의 검에서 태어난 황금빛 뱀 한 마리가 요르단 공작의 팔을 물었다.
스각.
“으윽! 이, 이놈이……!”
“아깝다…….”
무심결에 나온 진심.
검을 든 요르단의 오른팔에 길게 그어진 검상은 전투력을 다소 떨어트릴지언정 결코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네놈……!”
하지만 그 진심이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던 요르단 공작의 얼굴을 빠르게 진정시켰다.
‘젠장!’
자신의 실책을 절감한 로건은 정말로 귀신의 그림자가 된 것처럼 사방으로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연이어 황금빛 빛줄기를 쏘아 댔다.
스승이 보았다면 가르침을 제대로 소화해 냈다며 감탄해서 박수를 보낼 만한 환상적인 움직임.
그 모든 공격은 오로지 2왕자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이미 냉정을 되찾은 요르단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게다가 신검 비전의 계속된 사용으로 포스코어에도 부담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로건은 결국 이 꼼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요르단 공작의 전면으로 뛰어들었다.
한 수, 아니 사실상 두 수 이상이 차이 나는 요르단이 지금 로건의 신체 상태를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훌륭했다. 너를 키워 낸 검공에게 찬사를 보낸다.”
붉은 대검이 허공에 강렬한 섬광을 그려 냈다.
그리고.
콰직.
균열 난 대검의 반쪽이 공중에 떠오르며 피 분수가 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