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숨겨 두었던 한 수.
위기에 몰리면서도 끝까지 아껴 두었던 룩스의 시간 가속이 완벽한 타이밍에 발휘되었다.
마치 자살이라도 하는 듯한 허무한 표정 연기도 한몫했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자기만족일까.
“끄, 끄륵…….”
피를 내뿜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요르단의 뱀눈에 어린 감정은 억울함과 분노, 그 두 가지뿐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여력이 바닥난 줄 알았던 적이 갑자기 세 배 이상 빨라진 데다가, 격돌하는 순간 자신의 오러 일부가 잘려 나갈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그 잘려 나간 오러의 일부로 인해 드러난 틈새로 작렬한 공격이, 균열 난 애검을 박살 내고 목에 틀어박힐 줄은 더더욱.
사실 그것은 공격한 로건조차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었다.
‘운이 좋았어. 흐…….’
시간 가속과 불꽃 가르기, 그리고 운이 조화된 기적 같은 일격이었다.
그렇게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
포위당한 상태에서 공격받기 시작한 아군을 본 로건은 황급히 요르단의 목을 완전히 날려 버리며 확인 사살을 했다.
그리고.
“오, 오지 마! 가,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스각.
대답해 주기도 아까운 소리를 지껄이는 버러지의 목을 단번에 베어 냈다.
잘린 머리를 칼끝에 꽂아 든 로건은 곧 큰 소리로 외쳤다.
“왕자들은 모두 죽었다! 싸움을 멈춰라!!”
전장 전체에 울려 퍼진 외침은 이내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대공자님이 해냈다!”
“왕자를 죽였어!”
“우리가 이겼어! 이긴 거라고!”
완전히 구축된 포위망 안에서 힘겹게 공격을 받아 내고 있던 맥라인의 정예가 로건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했다.
혹시나 적들이 못 들었을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가며.
그다음으로, 자신들이 따르던 군주와 왕자의 죽음을 확인한 발터마임 기사단이 넋을 잃은 표정으로 하나둘 검을 놓았다.
“이럴 수가…….”
“어떻게 각하께서…….”
포위망을 구축하고 전군을 독려하던 핵심 전력이 손을 놓는 순간. 그 주변의 병사들 역시 공격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며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안 싸워?”
“전쟁이 끝났……다는데?”
“무슨 헛소리야?!”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2왕자 군 본진을 중심으로 병사들이 하나둘 무기를 내려놓으며 공세가 곧 멈춰졌다.
가장 확연하게 변화를 보이는 이들은 일선에서 맥라인이나 에스페란자 기사단을 상대하기 위해 휘하 병력을 독려하던 남, 자작들이었다.
“더 싸워 봤자…….”
“의미 없지. 난 항복하겠네.”
“뭐, 우리야 로드의 명을 따른 것뿐이잖아.”
애초에 자신이 모시는 왕자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벌어진 내전.
그런데 그 왕자가 죽었다.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어디 은신처에 숨겨 두지도 못하고 파벌의 정점에 있는 초인들이 언제나 곁에 두고 지키던 왕자가.
더구나 2왕자를 지키던 초인이자 파벌의 수뇌, 요르단 발터마임까지 생각지도 못한 이에게 패사(敗死)했다.
그러니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
“프렉탈 남작가는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의지가 없다!”
“로헨 자작가 역시 마찬가지!”
“앤소니 남작가 역시 깃발을 거두겠소!”
파벌의 머리나 몸통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손발 정도는 되는 병력들이 그 주인의 지시에 따라 무기를 거두고.
각 가문의 병력을 대표하던 깃발을 내리며 물러서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러자 후안 더글라스의 외침에 무작정 맥라인을 쫓던 1왕자 군 역시 그제야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공작가도 망한 것 같은데?”
“전쟁이…….”
“이러면 어찌 되는 거야?”
웅성웅성.
전장의 광기가 삽시간에 가라앉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싸움을 멈추려 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
“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이상, 자신 혼자만 엿 되는 것보다야 경쟁자도 같이 엿 되는 게 좋았다.
물론 그 경쟁자가 같이 엿 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죽어 버릴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지만.
이것은 후안 더글라스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선 파국이었다.
‘모든 것이 망가졌다.’
참혹하게 일그러졌던 그의 표정이 점차 무표정하게 바뀌었다.
사람이 분노의 한계를 넘어서면 오히려 침착해진다더니.
그는 자신이 그런 경험을 직접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모든 게 다 저놈 때문이다.’
멀리서 2왕자의 목을 들고 소리치고 있는 저 어린놈.
저 미꾸라지 한 마리가 모든 것을 망쳤다.
무표정한 얼굴 아래 가라앉은 들끓는 분노가 오직 한 사람에게 쏠렸다.
꿈꾸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고, 되돌릴 방법조차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든 놈에게 분은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네놈만은 무슨 수를 써서든 반드시 죽인다, 로건 맥라인.’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후안 더글라스는 검공을 향해 투사하던 마력의 운용을 멈췄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하겠소, 검공.”
“뭐?!”
“각하!!”
정신없이 검공을 몰아치던 루터와 위켄이 비명을 질렀다.
정면에서 왕국 최강자를 상대하던 그들은 시시각각 변해 가는 정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
느닷없이 아군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명하군, 후안.”
창백한 안색과 입가에 흘러내린 피.
그 모습은 왕국 최강자라는 검공에게도 이 접전이 힘겨운 것이라는 것을 짐작게 했지만, 마도사의 구속에서 풀려난 그의 힘은 무서웠다.
꽈르르르릉.
일순간 천둥소리와 함께 번뜩이며 사라진 검공은 바로 앞에서 대치하던 두 초인의 비명이 울림과 동시에 그 뒤에서 나타났다.
“아악! 끄, 끄으윽!”
“꺼으으으…… 이런 빌어먹…….”
털썩.
오러유저 둘이 한순간에 쓰러졌지만, 후안에게는 그 광경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굉음과 함께 저 믿기 힘든 결과를 만들어 낸 움직임이 바로 검공이 자랑하는 최강의 비기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지독한 수법이 더 무시무시해졌군. 괴물 같은 늙은이.’
이가 갈릴 정도였지만, 다행인 점도 있었다.
지금 쓰러진 루터와 위켄 모두 큰 타격을 입고 정신을 잃었을 뿐, 목숨이 위태로운 치명적인 상처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검공이 자신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로잡으려 한다는 확신이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었다.
‘우선은 잡혀 준다. 그리고 저놈만큼은 반드시…….’
멀리 떨어진 붉은 머리를 다시금 흘깃 바라보자 심중에 가라앉은 분노가 다시 들끓어 올랐다.
후안은 애써 그 마음을 가라앉히며 시선을 돌려 다가오는 검공을 바라보았다.
“생존과 최소한의 권리만 보장해 주셨으면 하오. 승자의 모든 권리를 인정하겠소.”
“그래, 뭐 예상했던 말이야. 그런데…….”
“……?”
피식 웃은 검공의 미소가 불길하게 느껴질 때.
“너는 예전부터 그 속셈이 얼굴에 다 드러나, 후안. 빙결의 마도사는 무슨. 살기나 거두고 말할 것이지.”
“그게 무슨……?!”
후안이 무어라 반발하려 했지만.
스각.
무언가 예리하게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갑자기 세상이 기울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곧 그 느낌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할 여력조차 없어졌고.
허무하게 목을 잃은 육체는 피 분수와 함께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털썩.
마법을 쓰지 않은 마도사의 눈은 검공이 움직이는 기척조차 잡지 못했다.
빙결의 마도사라 불렸던,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세를 자랑하던 귀족의 마지막은 그토록 허무했다.
그리고 그 죽음을 만들어 낸 이는, 멀리 전장을 정리하는 제자의 얼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너와 요르단은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지옥에서 보자, 후안.”
후안이 그 말을 들었다면 더욱 억울했겠지만.
다행히 마도사의 영혼은 그 빈약한 육신을 이미 떠난 후였다.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비단 초인만은 아니었다.
“모두 끝까지 싸워라! 뭐 해! 안 움직여?!”
훌리오 트리탄, 북부 변경백이 휘하 병력을 향해 연신 소리를 질렀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파밀 체르노, 서북부 변경백 역시 버럭버럭 고함을 쳐 댔다.
“누구 맘대로 중단이야! 싸워! 싸우라고! 저 맥라인 놈들을 작살내!”
2왕자파의 주역으로 내전을 주도한 그들이 항복한다고 해서 좋은 꼴을 볼 리가 없었다.
그들로서는 당연히 끝까지 발악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그것은 남쪽에서 소요 중인 1왕자파의 변경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로건은 그 발악을 지켜만 볼 생각은 없었다.
“내전의 원흉! 변경백들을 잡아라! 저들을 잡아들인 자는 공신으로 우대하겠다!”
전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외침이 파벌 연합군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상황에서 이미 글러 버린 전황을 파악한 변경백 몇몇이 심복인 기사들만을 데리고 도망치는 광경이 보이자, 전장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변경백들이 도망친다! 잡아!”
주저하던 파벌 연합군, 본래는 변경백의 휘하였던 이들이 도망치는 ‘이전의’ 군주들을 거꾸로 뒤쫓기 시작했다.
거기다.
“맥라인의 병력은 도망치는 변경백들을 잡아라!”
“에스페란자 기사단은 내전의 원흉들을 참살하라!”
로건과 검공, 내전을 끝낸 두 세력의 수장들이 내리는 명령에 순식간에 동서의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잡아!”
“나라를 망치려던 자들이다!”
“모두 없애 버려!”
도망치는 변경백들의 충성스러운 기사들은 모두 합해도 고작 100여 명에 불과했고.
그들만으로 맥라인이나 에스페란자 기사단을 상대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결국, 도망치던 변경백들은 대다수가 그대로 붙잡혀 그 자리에서 참수를 당했다.
하지만 모든 변경백들이 그렇게 힘없이 최후를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2왕자파의 루첸 탈로스 백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수하 기사들도 행방을 모른답니다.”
“1왕자파의 카이런 울브스 백작 일행으로 추정되는 극소수가 연사 석궁으로 견제하며 에스페란자 기사단을 우회해서 도망쳤습니다.”
쯧.
로건은 보고를 들으며 아쉬움에 혀를 찼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거침이 없었다.
“뭐, 이제 와 그 둘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잘해야 국외로 도망치는 정도겠지. 전장이나 정리해.”
* * *
“이제 피아 식별은 얼추 된 것 같습니다.”
로건의 말에 검공이 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수없이 많은 희생자가 있었음에도, 살아남은 적군만 양 파벌을 합쳐 거의 6만에 이르렀다.
에스페란자 공작가와 맥라인의 전력을 모두 합친 수가 2만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패잔병의 전력이 승전군보다 세 배는 많다는 기형적인 결과였다.
그렇기에 피아를 식별하고 패잔병의 무구를 빼앗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조차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모든 일이 결국 이 지겨운 전쟁이 끝난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었으니까.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검공이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로건이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스승님. 저는 먼저 수도로 가 보겠습니다. 뒷일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그랑에 남아 있는 파벌의 나머지 세력들도 정리해야지요. 이미 도망쳤다면 모르겠지만, 만일 남아 있다면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까요.”
“수도에 남아 있는 놈들이라고 해 봤자 문관들일 텐데?”
“이곳에서 잡지 못한 이들도 있으니 혹시나 모를 일을 방비하고자 함입니다. 이곳에 남은 일이야 저보다 스승님께서 계시는 것이 훨씬 빠르게 정리가 될 테고요.”
사로잡힌 두 명의 초인들 때문이라도 검공 자신은 이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흠. 그래, 알겠다.”
도망친 두 명의 변경백들 역시 그 무력의 중심인 기사단들 대다수가 이곳에 잡혀 있는 상황.
수작을 부린다 해도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검공은 제자의 노파심을 용인했다.
‘어설프게 찜찜함을 남겨 두는 것보다야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는 게 낫지.’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맥라인 기사단! 석궁기마대 부상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집합하라!”
말을 탈 수 있는 정예 병력만을 빠르게 소집하여 질주하는 로건의 뒷모습을 보자 조금은 불안감이 들었다.
제자의 마지막 모습이 왜인지 살기등등해 보인 것이다.
‘저 녀석,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공은 이미 끝난 전쟁의 마무리를 가능한 서둘러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