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질주하는 말 위에서 로건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전쟁의 후유증이 남긴 흥분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
회귀했을 직후에는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큰 산을 넘었다는 자각이 이제야 비로소 느껴진 것이다.
치열한 전쟁을 거치고 살아남은, 지금 자신을 따라 달리는 100여 명의 기사와 1,000여 명의 석궁기마대만 해도 3년 반 전에는 엄두도 못 냈던 전력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바로 뒤에서 말을 달리는 동생과 빅토르, 에일렌 등 미래에 초인이 될 인재들도 모두 무사했다.
무엇보다.
우웅.
‘나도……!’
요르단 공작을 처치하며 보게 된 벽 너머의 경지, 이전에는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경지가 손에 잡힐 듯 느껴지고 있었다.
전생에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성취.
회귀하며 영문도 모르게 얻게 된 재능은 막막하기만 했던 미래에 한 줄기 빛을 더해 주었다.
‘할 수 있어!’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6~7년 뒤에 벌어질 제국과의 전쟁. 그것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 나가기에는 충분한 전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지금 수도에 있는 것들은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
로건은 들뜨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연신 뒤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빨리!”
물론 그 절실한 각오가 온전히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왜 저러실까.”
“난들 아냐? 집중해. 어어, 위험! 졸지 마!”
“잠깐 졸면 굴러떨어진다! 조심!”
전쟁이 끝난 후의 안도감을 채 느껴 보기도 전에 줄기차게 말을 달려온 맥라인 휘하의 기사들.
중간중간 짧은 휴식과 시간 단위의 쪽잠만으로는 전장에서의 피로를 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때문에 피로에 찌든 기사들은 눈 밑 그늘이 점점 진해지고 있었고, 그 뒤를 따르는 석궁기마대는 훨씬 가벼운 무장에도 이미 반쯤은 눈을 감고 달리고 있었다.
낙오하는 이가 나오지 않는 것이 신기한 질주.
그렇게 거침없이 이어진 맥라인의 질주는, 다음날 수도 그랑의 성벽이 보이기 시작한 들판에 도착해서야 멈춰졌다.
히이이잉!
“웬 군대가?”
“뭐야 저것들?”
“수가 좀 많은데?!”
그랑의 웅장한 성벽도 저 멀리에나 보이는, 아직은 먼 거리.
하지만 그 앞에 늘어선 5천이 넘어 보이는 군세는 도저히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었다.
맥라인의 정예들이 굳은 얼굴로 수군거릴 때.
“아군이다!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접근한다!”
초인적인 시력으로 그들 중 가장 앞선 무리의 깃발에서 화려한 꽃문양을 본 로건이 미소를 지었다.
‘몇 주는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애쓰셨군.’
“어서 오게, ‘사위’. 승전 소식은 들었네. 나름대로 애썼는데 결국 원군이 아닌 환영 인파가 되어 버렸군. 면목이 없네그려.”
“아닙니다, ‘장인어른’. 이렇게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에서 내려 서로 반갑게 포옹하는 두 사람.
에일렌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긴 했지만, 그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주변의 귀족들은 맥라인과 플로이드 가문의 연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아니야. 정작 큰일은 돕지도 못했는데 뭘.”
“아닙니다. 지금 모아 주신 병력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음? 지금 와서……?”
“네. 제가 지휘권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수도에 남은 파벌의 잔당들을 정리해야겠습니다.”
“아……! 물론, 당연하지.”
그 순간 수도에 입성하는 맥라인의 병력은 단숨에 세 배로 불어나게 되었다.
난민의 유입을 저지하고 있던 왕실기사단도 7천에 가까운 대군세의 입성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오히려 왕실기사단장이 직접 나와 환영을 표할 정도였다.
“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맥라인 공자님!”
“로건입니다, 단장님. 환대 감사드립니다.”
“아! 아하하하. 이거 제가 무지해서 그만, 죄송합니다. 로건 공자, 3왕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검공 각하의 저택으로 바로 안내해 드릴까요?”
지나칠 정도의 저자세를 보이는 콧수염 중년인을 보는 로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느껴지는 경지는 최상급, 왕실기사단장이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수준이긴 했지만.
이미 로건의 안에서 그 평가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차기 왕이 정해진 뒤에야 튀어나와 그 핵심 세력에 빌붙는다? 프란시스코 로메로 백작, 경지가 아깝군.’
하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은 로건은 왕실과 그랑의 치안을 담당하는 왕실기사단장에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우선 로저스 전하를 뵙기 전에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반역자’들의 잔당을 수색하고자 하는데, 혹시 협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잔당이라뇨? 그럴, 아…… 네. 당연히 해 드려야죠.”
순간적으로 눈빛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단장은 여전히 유연하게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 검공 각하께서는 언제……?”
“이 일이 끝나면 맞춰서 오실 겁니다.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검공이 허락한 일이다. 따라라.
그런 암묵적인 뜻이 담긴 말에, 프란시스코 단장은 차마 그 이상 묻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 로건을 제지하지 못한 것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후회하고 말았다.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끌어내 잡아 와라. 한데 모아서 내가 직접 심판하겠다.”
로건이 발터마임 공작가와 더글라스 공작가의 저택, 그리고 기존 변경백들의 사유지에 대한 전격 수색을 명한 뒤 덧붙인 말이었다.
사로잡힌 두 후작을 제외한 모든 파벌의 주역들을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모조리 지우겠다는 말.
그 과격한 선언에 지켜보던 귀족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고위 귀족의 자제들은 시골의 본인 영지보다 수도의 저택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로건의 말은 그와 적대했던 세력들의 뿌리를 뽑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반발은 있을 수 없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라인 가문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하는 말.
그리고 수도에 남아 있는 귀족 중에는 최고위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조리 그에게 협력하고 있었으니.
“왕실기사들이 장소를 안내해 줄 거다! 모조리 잡아 와! 반항하면 그 자리에서 죽여도 좋다!”
로건의 명령은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새 시대가 왔음을 체감하게 하는 말이었다.
* * * 마법 통신이 발달해 있는 세상.
전쟁의 승패가 전해지고 3일 뒤에 로건이 그랑에 도착했으니, 상식적으로는 파벌을 주도한 변경백의 직계들은 벌써 죄다 도망가고 없어야 정상이었다.
적어도 로건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왜 굳이 이런 일을 벌였냐고 묻는다면…….
‘앞으로 반항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상징. 그 본보기가 필요했을 뿐인데…….’
결과는 또 예상과 달랐다.
“놔라! 놔!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알고!”
대체 뭘까. 저 상황 파악도 못 하는 똥 멍청이는.
쌍검이 교차된, 더글라스 공작가를 상징하는 문양의 옷을 입은 뚱보부터.
“이거 놓지 못 하겠느냐! 이놈!! 내가 바로 로랑 발터마임이다! 요르단 발터마임 공작의 셋째 손자가 나란 말이다!”
울부짖는 사자가 새겨진 방패 문양, 발터마임가를 상징하는 신분 패까지 치켜들며 소리를 지르는 얼간이까지.
왜 도망치지 않고 수도에 남아 있었는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바보들의 행진을 연이어 지켜보고 있자니,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무슨 상식이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란 착각에 빠져 있던 걸까.’
자신이 바보인지, 저놈들이 바보인지조차 헷갈릴 지경.
물론 모든 직계가 다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번듯한 최고위 귀족 가문에 저런 바보들이 한둘씩 끼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묘하게도 저택에 직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가문은 맥라인 전투에서 그 영주의 흔적을 찾지 못한, 아마도 도망친 것으로 추정되는 탈로스 백작가와 울브스 백작가뿐이었다.
‘리이나…… 뭐 그 여우가 여태 남아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살짝 아쉬운 것은 왜일까.
로건은 이내 쓸데없는 상념을 모조리 털어 버리며 왕궁 본성 앞마당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일찍 잡혀 온 사람을 기준으로 이미 반나절은 지난 시간.
슬슬 분위기를 파악한 포로(?)들은 로건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자신들을 포위한 병사와 기사들에게서 쏟아지는 살기는 비교적 둔감한 귀족들조차 덜덜 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단순 고용인들은 교차 검증해서 빼라고 했으니 이들이 전부 직계나 방계, 아니면 가신들…….’
수백, 아니 병사들까지 포함해 수천 명의 시선을 받으며 로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여기저기서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사, 살려 주시오. 공자!”
사정하는 자.
“지, 지금 뭘 하려는 거요?!”
따지는 자.
“어떤 귀족도 다른 귀족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소이다!”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
“네놈! 당장 나를 풀어 주지 못하겠느냐! 내가 바로…….”
……그냥 등신.
그 다양한 인간 군상을 내려다보던 로건은 담담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모두 죽여라.”
사전에 이야기를 들었던 기사들조차 움찔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말.
하지만 약간의 틈이 생기긴 했어도 그 말은 결국 차질없이 시행되었다.
“아아아악!”
마지막 뚱보의 비명을 끝으로 왕궁 앞마당은 침묵에 잠겼다.
피바다 위에 쓰러진 시체들은 당연히 말이 없었고, 그 시체들을 만들어 낸 이들도 다소 굳은 표정으로 입을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로건은 담담히 고개를 돌렸다.
“확인 끝났나?”
“예. 그랑 내에 반역자들의 핏줄은 단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좋아. 그럼 다음 차례, 왕궁으로 간다.”
“예. ……예?”
이런 학살에도 별달리 표정 변화가 없던 빅토르도 눈이 커지며 반문할 정도의 선언.
‘……설마?’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같은 의문이 떠오를 때.
“1왕자와 2왕자의 자식들. 그리고 왕궁을 방패로 웅크리고 있을 옛 파벌 출신 문관들. 모조리 잡아서 대전으로 끌고 와라.”
로건의 입에서 충격적인 명령이 떨어졌다.
그란디아 역사에 없었던 하극상.
집권 귀족에 의한 왕족 시해.
명령을 들은 기사들도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뒷일은 내가 감당한다! 모조리 끌고 와!”
로건은 추상같은 기세로 다시금 명령을 내렸고.
잠시 주춤하던 기사들이 굳은 안색으로 왕궁을 향해 뛰어갔다.
“저기, 사위. 정말 이거 괜찮……겠나? 정말 검공 각하와 얘기가 된 게 맞나?”
충격으로 하얗게 질린 귀족들을 대표해서 로버츠 플로이드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필요한 일입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로건의 태도는 단호하기만 했다.
‘진짜 저지르고 보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왕족을…….’
‘거슬리지 않게 몸 사려야겠어.’
겁에 질려 하얗고 파랗게, 얼굴빛이 다채롭게 변한 귀족들은 그렇게 로건의 눈치를 보며 한 발짝 더 멀어졌고.
그 모습을 본 로건은 피식 웃으며 왕궁의 정면 대전으로 향했다.
‘내가 단순히 변경백들 핏줄이나 정리하러 서둘렀을까.’
스승에게 전장의 뒷정리를 맡기는 무례를 저지르면서까지 무리하게 달려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3왕자. 로저스 폰 그란디아와 관계없는 왕실 핏줄은 오늘 모두 사라진다.’
앞으로 왕국을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막중한 만큼, 혹시나 모를 걸림돌이 될 존재는 단 하나도 남겨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왕실은 깨끗이 정리될 것이고, 운 좋게 이 횡액을 피한 외부의 왕족들은 그 핏줄을 그들 스스로 부정할 것이다.
잡혀 죽기 싫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리되면 자연스럽게…….’
쾅!
왕궁의 대전을 향하는 문이 거칠게 열리고, 그 가장 상석에 놓인 화려한 옥좌가 눈에 들어왔다.
‘왕도 내 말을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절대!’
왕좌를 바라보는 로건의 얼굴에 복잡한 상념이 깃들었다.
‘제국을 막아 내기 위한 준비는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것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은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내전이라는 큰 고비를 넘어 비로소 쟁취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