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역시…….’
상황은 정확하게 로건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다.
용병을 다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바로 돈과 힘이었다.
돈을 받고 무력을 파는 것이 용병이고, 무력을 파는 일은 생명을 거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본능적으로 강자를 알아보고 친하게 지내려 했다.
동료로서는 강자의 옆에서 생존의 확률을 높이고, 만약 적으로 만나더라도 일말의 인정을 기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용병 일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영혼에 박히듯 각인되는 생존 본능이었다.
전생에서 수십 년을 용병으로 살아온 로건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영지의 의사에게 부탁해 포션까지 쓰게 해 줄 테니, 며칠 앓으면 회복될 거다. 다들 귀족모독죄 처벌이 이 정도면 가벼운 거 알지?”
툭.
발끝으로 쓰러진 용병을 건드리자, 기절한 용병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것을 보면서도 ‘귀족의 아들은 정식 귀족이 아니고, 귀족모독죄는 기껏해야 태형 정도’라는 진실을 언급할 간 큰 사람은 없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포스유저?!”
“저 나이에?”
“미친, 이게 말이 돼?”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들에는 놀란 마음이 뚜렷이 새겨져 있었고, 비아냥거리던 이들은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돌려 로건의 시선을 피했다.
로건의 손에서 줄기줄기 뿜어지는 선명한 황금색의 빛이 만들어 낸 광경.
“으음.”
어렴풋이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던 카이조차 침음성을 흘렸으나, 할 말은 해야 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소, 고용주?”
“이들은 자네 같은 A급 용병이 아니야. 계약을 완전히 어기지는 않더라도 허술하게 이행할 수는 있겠지.”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제가 통제를 잘하면…….”
카이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지만, 로건은 굳이 그를 납득시킬 생각이 없었다.
차후에 이들에게 지급될 그 무기 때문이라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으니까.
“어차피 내가 나중에 이끌어야 할 이들인데, 힘으로 한번 눌러 두면 앞으로 내 말을 허투루 듣는 일은 없겠지. 그래야 너도 훈련 시키기 편할걸?”
로건이 이렇게 나오니, 카이도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병정놀이로 끝낼 생각은 아니었나 보군.’
석궁기마병이라는 황당한 병과를 듣고 풀어졌던 카이의 마음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그 모습에 로건이 내심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로건이 이 퍼포먼스를 통해 노린 두 번째 효과였다.
“내가 바로 여러분을 불러 모은 로건 맥라인이다.”
한바탕 소란이 끝난 뒤에야 정식 인사가 시작되었다.
준비된 단상 위에 올라선 로건이 담담하게 소개말을 건넸지만, 그가 조금 전 보인 실력 행사로 인해 연병장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즐기며 로건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돈을 뿌려가며 여러분을 불러 모은 이유가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로건은 잠시 말을 끊고 용병들의 불타는 눈동자를 하나하나 바라보다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노파심에 미리 말하자면 그동안 기다린 일당 정도는 알아서 쳐줄 것이다. 몬스터 고기를 먹고 미친 얼간이가 헛소리로 사기를 치려는 것이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
피식거리는 헛웃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조금은 긴장이 풀린 그들에게 로건이 간도 보지 않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나는 여러분을 훈련 시켜 기마병으로 키우고자 한다. 당연히 1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기본으로 한다.”
“우아아!”
“정말?!”
흔히들 말하는 칼밥을 먹고 사는, 목숨을 건 전투로 돈을 버는 용병들에게 장기계약은 그야말로 꿀 같은 계약이었다.
당장 예정된 전투가 있는 경우엔 의뢰인은 장기계약을 하지 않는다.
한 번의 전투라도 치르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 용병들의 목숨이었기에, 전투를 앞두고서는 장기계약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즉, 장기계약은 가까운 시일 내에 전투가 없다는 보증이자, 긴 시간 동안 꾸준한 수입이 보장된다는 뜻이었다.
“단! 필수적으로 여기 이 A급 용병 카이에게 훈련을 받아야 한다. 훈련 기간은 최소 3개월 이상이다.”
그 말에 용병들의 환호성이 잦아들었다.
“이건 좀…….”
“에이, 아무리 그래도 보수가 얼만데.”
“우리가 이 나이에 왜?”
“아, 고민되네.”
용병들이 좀 전과는 다른 의미로 소란스러워졌지만, 이내 이어진 로건의 말이 그들을 다시 침묵하게 했다.
“계약은 1년 기준, 월봉은 400골드. 거기에 지급된 말도 계약이 끝났을 때 너희 소유로 한다.”
입이 떡 벌어지는 제안에 잠시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던 용병들이 이내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우와아아아아!”
“무조건 한다!”
연병장이 다시금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C급 용병의 기본 몸값이 400골드, 그것도 전쟁 시의 가격이었다.
평시에다가 계약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엔 심하면 절반 이하로 몸값이 떨어지는 일도 있는데, 한 푼도 깎지 않고 꼬박꼬박 400골드를 보장해준단다.
거기다 최소 1천 골드인 말을 지급한다는 것은 계약만 하면 석 달 치 정도의 월봉을 보너스로 준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용병들로서는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단, 나는 너희를 석궁기마병으로 훈련 시킬 생각이다. 어울리지 않는 이들은 받을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어진 조건에 일부 용병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석궁기마병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병과는 둘째 치고, 말을 달리며 활을 쏘려면 몸이 유연하고 민첩해야 한다.
아무리 말을 탈 줄 아는 용병들만 모았다 하더라도, 말을 탈 줄 아는 것과 말을 타며 활을 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러니 이제부터 간단한 자격시험을 시작하겠다.”
용병들의 웅성거림이 커졌지만 반발하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훈련을 받기 싫다는 13명과 시험에서 떨어진 25명의 용병, 도합 38명을 뺀 312명의 용병이 그날 로건과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카이와 용병대는 그들만의 훈련을 시작했다.
* * *
– 나의 기사가 되어라.
빅토르는 새 주인이 제시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영지에 도착한 첫날 주인이 내린 명령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일단 잘 먹고, 잘 자라.”
“예?”
“지금 네가 할 일은 그것뿐이다.”
그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새 주인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거기다 실제로 그날부터 제공된 식사와 잠자리는 빅토르와 동생 리아가 평생 처음 겪는 호사였다.
부드러운 빵과 고기, 그리고 푹신한 잠자리까지.
그 모든 것이 오히려 빅토르를 불안하게 했다.
‘왜지? 왜 이러는 거야.’
혹독한 대우를 참아내겠다 다짐했던 터라 더욱 이상했다.
하지만 3일째 되는 날 아침, 빅토르의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나와라, 빅토르. 훈련 시작이다.”
막 해가 뜨기 시작한 새벽, 그와 새 주인의 하루는 아주 이르게 시작되었다.
“역시 어린 나이라 그런지 며칠 잘 먹고 잘 잤다고 금세 달라지는구나.”
연병장에 빅토르를 세워 놓고 잠시 바라보던 로건이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빅토르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오한이 들었다.
“그럼, 뛰자.”
그리고 그 예감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헤엑. 헤엑.”
“또 발이 느려진다! 넌 더 할 수 있어, 뛰어!”
연병장을 울리는 호통 소리에 빅토르가 다시 이를 악물었다.
물론 그런다 해도 지친 몸이 갑자기 확 빨라지지는 않았지만 사실 로건은 지금 빅토르가 보여 주는 모습만으로도 이미 놀라고 있었다.
‘며칠 좀 잘 먹였다고 이 정도라니…….’
로건은 감탄하며 면밀히 빅토르의 상태를 체크하다 녀석의 몸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딱 훈련을 멈추었다.
“쉬어!”
“허억.”
빅토르는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오빠!”
그런 그를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던 동생, 빅토리아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애처로운 눈으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그에 로건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자, 다다다.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물병과 수건을 들고 자신의 오빠를 향해 뛰어갔다.
로건은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역시, 재능이 있어. 그리고…….”
고작 열네 살, 그것도 잘 먹지도 못해 또래보다 훨씬 작아 보이는 소년이 거의 20km를 뛰고서야 체력이 다했다.
적어도 보통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잠재력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무엇보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임에도 끝까지 달리는 근성이 마음에 들었다.
그 인내심과 참을성이 로건의 걱정 한 가지를 서서히 지워가고 있었다.
‘적어도 귀족학살자가 천성은 아니라는 거지.’
난폭함의 상징과도 같았던 전생의 빅토르지만, 지금껏 지켜본 바로는 그것이 본래의 성격은 아닌 듯했다.
‘저런 녀석이 그렇게 변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아마도…….’
로건의 시선이 작은 손으로 오빠를 향해 열심히 부채질하는 소녀에게 향했다.
그렇게 잠시 남매의 모습을 바라보던 로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단호하게 외쳤다.
“그만! 일어나, 다음 훈련이다.”
빅토르가 땅바닥에 널브러진 지 고작 15분이 지난 뒤였다.
“지금부터 보여 줄 것은 우리 그란디아 왕국의 기사수련생이라면 누구나 배우는 왕국 검술이다. 이 검술은…….”
설명과 동시에 시범을 보이면서도 로건은 빅토르의 상태를 집중하여 살폈다.
“이 자세에서 후식으로 넘어갈 때는 발을 주의해서…….”
아직 떨리는 몸과 가쁜 호흡, 채 회복되지 않은 체력은 집중력의 저하를 가져올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를 보는 빅토르의 눈동자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좋군.’
로건은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좀 더 자세하고 길게 검술에 대한 시연을 이어 갔다.
빅토르가 조금이라도 더 체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여기서는 호흡이 중요하다. 숨을 들이켤 때…….”
‘집중하자. 집중!’
빅토르는 자꾸만 흐려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져서 자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니, 쓰러진 다음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 그를 지탱하는 것은 한 가지 사실 뿐이었다.
‘좋은 음식, 좋은 잠자리. 그 대가가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빅토르는 과거의 고생을 떠올리며,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러자 한순간 정신이 확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또렷해진 눈으로 빅토르는 새 주인이 보여주는 검술 시범에 집중했다.
“흐으음…….”
로건은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고작 한 번 보여줬는데, 이걸 이렇게 쉽게 따라 한다고?’
아무리 기본적인 검술이라지만 문외한이 한 번 보고 따라 할 만큼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빅토르의 육체를 한계까지 쥐어짠 뒤에 하는 훈련이다.
집중력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는데도 소소한 동작 몇 개 빼고는 틀리는 점이 없었다.
‘내가 저 정도로 하기까지 며칠이나 걸렸더라?’
로건은 자신과는 도무지 비교조차 되지 않아 그가 아는 최고의 천재와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로니안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두 번은 보지 않았던가?’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운 재능이었다. 그러다 문득 새삼스런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이 녀석. 그러고 보니 로니안이랑 동갑이지.’
전생에 이 녀석은 귀족 학살자로 악명을 떨쳤고, 로니안은 최연소 오러유저로 위명을 떨쳤다.
그랬기에 전생에서는 둘을 비교해 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 녀석 어쩌면 로니안보다 더…….’
이제 훈련을 시작한 첫날.
두 가지 훈련만 보고 판단을 내리기에는 다소 일렀지만, 로건은 입가에 번지는 진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뿌듯한 마음을 그대로 담아 외쳤다.
“자, 다시! 발동작이 조금 틀렸다. 오늘 목표는 완벽하게 100번을 시연하는 것이다! 그전에 밥은 없다!”
검술훈련은 그로부터 세 시간 뒤에 끝났다.
“하악. 하악.”
“수고했다. 오늘 한 것이 앞으로 네가 매일 해야 할 기본 훈련이다.”
“헤엑. 후아아.”
“내가 계속해서 훈련을 봐줄 수는 없다. 그러니 앞으로 내가 오지 않을 때는 네가 스스로 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숙지했겠지?”
“흐읍. 후아아.”
로건의 물음에도 그저 쓰러져 숨쉬기 바쁜 빅토르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로건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내려다보았다.
“체력을 다지고 왕국 검술을 1000회 이상 연속으로 완벽하게 펼칠 수 있다면, 아마 그때는 너도 기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포스라는 말 대신, 조금 구체적인 숫자를 말해주었다.
애초에 그렇게 하려면 포스유저의 수준이 아니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 말에 빅토르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기사…….”
그 조건이 얼마나 어려운지, 정말 사실인지조차 빅토르는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단어는 빅토르에게 자유를 의미했고, 성공을 의미했으며, 희망을 의미했다.
그리고…….
‘리아, 내 동생.’
지금도 멀리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동생의 안전을 의미했다.
“할 수 있겠지?”
“예!”
훈련을 시작한 뒤, 가장 의지에 찬 대답이었다.
“좋다. 그밖에 수련을 위해 원하는 게 있다면 릭에게 말해라. 웬만한 것은 챙겨 줄 것이다.”
“……없습니다.”
빅토르는 순간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주 사소한 머뭇거림이었지만 로건이 이를 놓칠 리는 없었다.
“흐음. 정말 없느냐?”
“그냥…….”
“그냥?”
“……지금처럼만, 지금처럼만 제 동생을 보살펴 주십시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예상했던 대답. 하지만 그 말은 로건을 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