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축제 기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로건은 바로 다음 날 맥라인의 전 병력을 이끌고 수도를 떠날 뜻을 밝혔다.
“정말 다 데리고 가는 거냐? 폐하께서 너를 많이 믿고 계시다. 맥라인 기사들 몇몇만 의전용 호위 조로 남겨 두어도 좋아하실 텐데.”
검공이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왕은 자신의 최측근 호위만큼은 왕실 기사단이 아닌, 맥라인 기사단이나 에스페란자 기사단이 맡아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로건은 그 역할을 기꺼이 에스페란자 기사단에 양보했다.
“자꾸 떠보지 마십시오, 스승님. 정말 그러고 싶어지니까요.”
“그럴 생각이 있긴 했다는 뜻이냐?”
“네. 수도에 오기 직전까지는요.”
“…….”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일은 애초에 자신이 왕에게 심어 놓은 왕실 기사단에 대한 불신이 원인이었으니까.
로건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포기했으니까요. 다만 말씀드렸던 그것만큼은 꼭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제국…… 말이냐.”
“예. 제국의 침략에 대비하고, 그에 관련된 일이라면 전폭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신 말씀, 믿고 있겠습니다.”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이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당장 지금부터 대비를 해 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로건의 단호한 눈빛과 어조에, 검공의 표정도 진지하게 바뀌었다.
“……정말 제국이 쳐들어올 것이라고 믿는 거구나.”
“네.”
“흠……. 사실 전에 네 말을 듣고 따로 조사해 보았었다. 하지만 아직 제국은 황위 경쟁도 끝나지 않았더구나. 적어도 5년은 더 끌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우리처럼 내전이 아닌, 그저 관례화된 후계자 경쟁이라지만 그 기간 내에 제국이 타국을 침략한 전력은 없었어.”
“그 직후에 침략한 적은 수도 없이 많지요.”
“제국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네 말은 그 전에…… 아니, 아니다. 어찌 되었건 그것만큼은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서부 국경의 절반을 맡은 만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을 테니까.”
전생에도 그리하셨지만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스승님.
‘물론 그때와는 환경이 하늘과 땅 차이지만.’
어쨌거나 스승이 저 약속을 지켜 준다면, 굳이 자신이 스승과 반목하면서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목적이 같다면 스승의 칼은 결국 그의 칼과 마찬가지이니까.
‘그리고 여차하면…….’
로건은 스승이 안다면 경을 칠 생각을 조용히 묻어 둔 채 미소를 지었다.
“예, 믿고 있습니다. 맥라인의 무기도 최대한 싼 가격에 넘겨드리겠습니다. 병사들 장비도 든든히 해 두셔야지요.”
“……나한테도 장사를 하겠다는 뜻이냐?”
“그럼요. 땅 판다고 석궁이나 마법 폭탄이 튀어나옵니까. 저희도 남기는 건 있어야지요.”
피식거리며 서로를 바라본 사제는 이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그렇게 웃은 뒤에야 사제는 아쉬운 얼굴로 진짜 작별 인사를 전했다.
“수도에 자주 올라오거라. 아무리 자문 역을 맡았다고 한들, 내가 이 나이에 대신들 일일이 쫓아다니며 단속하고 싶진 않구나. 올라와서 욕심부리는 놈들 좀 종종 눌러 줘.”
“……제가 가능한 왕실과 멀어지길 바란 거 아니셨습니까?”
“네가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다. 그런 너라면 폐하에게 훌륭한 지표가 될 수 있겠지.”
“몇 살 차이 나지도 않습니다만.”
“그래. 그래서 더욱 좋지 않겠느냐.”
스승의 미소가 오늘따라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것이 왕실에 대한 충심과 3왕자, 아니 로저스 왕에 대한 기대 심리가 이성을 살짝 가린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신하를 좋아하는 왕이 역사에 몇이나 있었던가요.’
물론 실제로 자신이 잘난 점이야 무력밖에 없다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선은 그렇지 않을 터였다.
성군의 자질이라 평가받았던 로저스 왕이 진실로 그 자질을 개화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로건은 그리 생각하며 스승을 향해 마주 웃었다.
맥라인 가문이 수도를 ‘완전히’ 떠난다.
그 사실은 수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떤 이는 기회라 생각했으며.
어떤 이는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고.
대다수의 생각이 있는 이들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 애써 잡은 실권을 놓고 왕의 곁을 떠난다고?
아무리 장인이 재상이고, 스승이 대공이라 한들 자신이 직접 왕의 곁에 있는 것과는 무게감이 달랐다.
심복을 왕의 바로 곁에 심어 놓는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데, 손을 아예 털어 버린 듯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 왕과 로건 맥라인의 유대가 보이는 것보다 더 깊구나.
그것은 결국 로건을 비롯한 맥라인의 군대가 영지로 귀환하는 내내 각종 초청에 시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몇 시간 단위로 쉴 새 없이 이어진 초청장의 행렬.
심지어 맥라인 군의 행로에서 하루 이상의 거리가 떨어진 영지에서도 초청장을 보내왔다.
그것도 전부 다수의 기사와 선물까지 동원해 나름의 예의를 차리면서.
“일천이 넘는 정예 병력을 영지의 심장부에 자청해서 들이겠다는 미친놈들이 이렇게 많다니.”
로건은 한탄하며 피로하다는 핑계로 모든 초대를 거절하고 노숙을 택했다.
얼마간은 괜찮았지만, 노숙을 이어 가다 보니 한두 군데 정도는 초대를 받아들일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극심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밤하늘 가득한 별빛 아래, 타닥타닥 타오르는 야영지의 불꽃이 몸을 나른하게 하는 지금 같은 경우는 더욱.
‘아니, 아니야. 벌써 늘어지면 안 돼. 정신 차리자.’
로건은 제 뺨을 양손으로 가볍게 내리치며 스승과의 수련을 떠올렸다.
돌이켜 보면 확실히 알찬 시간이었다. 성과도 적잖이 얻었다.
쉬지 않고 수련을 한 것이 옳은 선택임은 분명했다.
다시금 각오를 다지는 로건의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출발한 이후부터 내내 안색이 무겁던데, 고민이 있다면 주변에 좀 털어놓으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머리 위의 별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
며칠 전 냉기를 풀풀 날렸던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호의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네. 설마 아버지의 그 충고가 정답이었나?’
에일렌이 알았다면 어처구니없어할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로건은 헛기침을 했다.
“별일 아닙니다. 사소한 일들까지 다 털어놓을 필요는 없죠.”
괜히 걱정만 끼칠 테니까.
하지만 그 말에 에일렌의 표정이 또다시 살짝 흐려졌다.
‘내가 또 뭘 잘못 말했나?’
뜨악한 마음에 살짝 눈치를 보는데.
“……뭐, 확실히. 그러실 필요는 없지요.”
작게 한숨을 내쉰 에일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유는 몰라도 무언가 잡아야 할 것 같은 느낌에 같이 일어서는데.
“말은 안 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군대의 책임자인 공자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승전군으로서 어깨를 펴고 있어야 할 다른 이들이 덩달아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이어진 그녀의 말에 ‘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얼마나 먼 곳을 보고 계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옆이나 뒤를 돌아보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럼 전 이만.”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돌아서는 에일렌의 팔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 생각이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약간의 후회를 한 것 같습니다.”
“……예?”
에일렌의 얼굴에 냉정함 대신 황당함이 자리했다.
그 모습을 보며 로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사소한 일이라니까.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축제 구경을 하거나 수도의 명소라도 둘러볼 걸 그랬나, 뭐 그런 사소한 후회들이요.”
그 말에 에일렌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 모습이 어쩐지 안심이 되어서였을까.
“기왕이면 당신과 함께요.”
헙!
스스로 한 말에 화들짝 놀라 잡은 팔을 놓고 한발 물러서는데.
“아하하하! 뭐예요, 그게……!”
뭐가 그리 웃긴지 큰 소리로 웃는 에일렌.
순간 야영지의 시선을 집중시킨 그녀는 찔끔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 내고는 로건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말했으면 되잖아요. 바보같이…….”
그 말이 그렇게 웃긴 말이었나.
어디가 웃긴지 나도 좀 알면 안 될까요?
어리둥절한 기분도 잠시.
“돌아가면 많이 해요. 같이. 그게 뭐든지요.”
그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웃음이 나왔다.
“예, 그래요.”
그 말에 다시금 활짝 웃는 에일렌.
순간적으로 주변이 환해지는 듯한 느낌에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는데.
“뭐, 저는 지금도…… 괜찮……고요.”
조금 전과는 달리 확연하게 작아지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크기와는 달리, 어느새 바짝 다가온 에일렌이 그 큰 눈으로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근. 두근.
자신도 모르게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 심장이 멋대로 몸을 움직이며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고.
분위기에 이끌린 둘의 입술이 점점 가까워지는데.
텅!
워낙 익숙해져 잊고 있던 서로의 갑옷이 부딪치며 갑작스레 존재감을 드러냈다.
“…….”
“…….”
“어. 음……. 갑옷이 참…… 멋지군요.”
뭣 헛소리야, 미친놈아!
로건은 멋대로 지껄이는 자신의 입술을 후려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수도, 에일렌의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그저 시선을 떨구며 그녀의 흉갑을 원망스레 쳐다보는데.
쪽.
“잘 자요.”
볼에 닿은 말캉한 촉감에 놀라 고개를 드니, 황급히 멀어지는 에일렌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두웠지만 확연히 보일 정도로 빨개진 귀.
두근거림만큼 커진 따스함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 * *
“오신다!”
“들어 올려!”
“북을 울려라!”
둥- 둥- 둥- 둥-로건의 눈에 멀리 타운이 보인다 싶을 때쯤,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야?”
“커다란 천 같은데……. 글씨가 쓰여 있네?”
“전쟁을 끝낸 구국의 영웅, 로건 맥라인과 맥라인 가문 용사들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푸하하하! 뭐야, 저게?!”
1km 밖에서도 보일 것 같은 거대한 현수막은 고향에 돌아와 환호하던 맥라인 병력의 웃음보를 터트렸다.
선두에 선 로건이 웃음을 참으며 가까이 다가가자 아버지와 새어머니, 드웨인과 그 뒤로 가득 늘어선 영지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나라의 영웅! 대공자님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전쟁을 끝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크게 들리는 목소리들.
하지만 환하게 웃음 짓던 로건의 얼굴은 가까이서 그 영지민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점차 경직되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그 사이사이로 붕대를 감고, 다리를 절고, 팔을 잃은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내전이 만들어 낸 후유증.
아니, 정확히는.
‘내가 만들어 낸…….’
뿌듯한 성취감이 차올랐던 마음에 찬물이 끼얹어진 느낌.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런 이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우와아아! 대공자님, 감사합니다!”
내가 저들에게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또 한없이 기분이 착 가라앉으려 하는데.
“손 좀 흔들어 주세요, 형님.”
“음? 아아, 그래.”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까, 저 영지민들 말입니다. 다 형님이 이루어 낸 결과입니다.”
“……내가 아니라 다 함께 이룬 거지.”
“예. 형님 주도로요.”
“인마…….”
“형님, 손!”
“그래. 알았다, 알았어!”
싱긋 웃는 동생의 모습에 고개를 돌리자 뿌듯한 모습의 병사들과 다친 이들보다 훨씬 많은, 건강한 영지민들의 웃음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러면 된 거야. 앞으로도…….’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고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환한 웃음과 함께 손을 크게 흔들었다.
“자! 드디어 돌아왔다! 모두 함성!!”
“우와아아아!!”
구국의 용사들.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저 문구가 진실이 되는 그날까지.
저 많은 이들이 제국의 노예로, 하층민으로, 실험체로 전락하지 않도록.
그리고…….
“잘 돌아왔다, 아들!”
“수고했다, 로건. 로니안?! 빨리 형 옆으로 안 와?! 뭐 하는 거야, 거기서!”
“아, 가요, 가! 아버지, 어머니! 저 돌아왔어요!”
“매달리지 마라, 이놈아. 이제 다 큰 놈이 징그럽게……!”
“푸하하하!”
내 소중한 가족들이 이 웃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도록.
지켜 내겠다.
‘반드시!’
움켜쥔 주먹에 담은 각오를 심장에 새기며.
로건은 환하게 웃었다.
지나가는 길에 저희 영지에 잠시 들렀다 가 주시면 생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