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막 떠오르기 시작한 햇살 아래 따스한 열기가 세상에 뿌려지기 시작한 여름날의 이른 아침.
하지만 새벽의 공기는 아직 서늘하기만 했다.
그 서늘하고 상쾌한 공기를 깊게 들이켜며 로건은 방문 밖으로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좀 조용해졌네.”
며칠 전 일을 생각하니 아직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거창한 환영식. 모두가 기뻐하고 환호하던 분위기.
그 상황에서 이어진 패드릭 맥라인 후작의 축제 선언은 그 분위기를 몇 배로 부풀렸고, 결국 사흘 밤낮으로 이어진 광란의 축제가 되었다.
물론 그동안 로건은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이 좋은 분위기를 계속 지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전쟁이 끝나고 뒷정리가 잘 됐는지는 확인 끝났고. 이제 새로 받은 영지에서 그것 탐색을 시작해야…….’
로건은 해야 할 일들을 마음속으로 차분히 정리하며 집무실로 향했다.
자신이 미리 내용을 파악하고 계획을 짜 놔야 축제가 끝난 뒤 실무진이 움직이기도 편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도착한 집무실.
로건은 집무실의 문을 열자마자 예상치 못한 광경과 마주쳤다.
“아버지?”
자신에게 전권을 맡기기 전에도 새벽부터 서류 작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가 자신보다 먼저 집무실에 나와 있었다.
“역시나. 새벽부터 바로 여기로 오는구나.”
역시나?
그 미묘한 단어 선택에 로건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아버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곁으로 다가왔다.
“며느, 아니 에일렌 경에게 들었다. 내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결국 수도에서도 수련만 하고 있었다더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련과 업무뿐이고……. 남들은 다 축제를 즐길 때도 말이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 필요한 일이었겠지. 수도에서야 너를 대신할 사람도 없을 테니까.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도 뭐라 나무랄 수 없는 일이고.”
말과는 달리 자신을 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진한 염려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서 로건은 그 눈빛의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들아. 혹시 나나 다른 가신들이 못 미더우냐?”
“……예?”
갑자기 무슨 소리를…….
“전장의 뒤처리가 끝나고 새로 얻은 영지를 정리하는 것 정도야 다른 이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더냐.”
뭐, 그거야 그렇지만.
“중요한 안건은 제가 직접 처리하는 게 마음이 놓입니다. 생각해 둔 계획도 있고요.”
“내게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못 믿겠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아버지. 그게 아니라…….”
“그렇지 않다면 왜 네가 굳이 모든 것을 다 처리하려고 하는 것이냐?”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전권을 맡기신 것은 아버지셨습니다.”
“그래, 그랬지. 모든 것이 급하던 전시에는. 하지만 지금은 나나 드웨인이 나중에 처리해도 될 일만 남은 것 아니더냐?”
위기는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미루다가는 될 일도 안 된다.
누가 됐든 해야 할 일, 내가 먼저 하면 더 빨라지지 않나.
등등.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과 닮은 붉은 눈동자에 뚜렷이 보이는 근심 때문에.
“물론 열심히 사는 것은 좋다. 하지만 주변에서 대신해 준다고, 제발 쉬라고 말하는데도 이렇게 못 쉬는 것은 병이다. 가문에 너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예.
목구멍까지 솟구쳐 오른 진심을 뱉어 내기 직전.
“그래서 불안한 것 아니더냐?”
다시 눈에 들어온, 걱정 가득한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지금 맥라인에서 네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만큼, 네가 잘 쉬고 정서적으로 여유를 갖는 게 우리 가문에도 좋아. 그러니 지금은 쉬거라.”
“제가 주변을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래. 그러니까 부디 네가 믿고 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도 알게 해 다오.”
“……예?”
아니, 그래도…….
당황해하는 로건을 보며 패드릭이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일도 수련도 금지다. 네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거라. 알겠지?”
“예?!”
“그 일주일 안에 무언가 또 하려 한다면, 앞으로 한동안 가문의 행사에서 너를 배제하고 생각하겠다.”
“아니, 무슨 그런…….”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인가.
로건이 무언가 항변하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그 기회를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게 너를 걱정해서다. 들어가서 쉬거라. 이대로 쭉 방으로 돌아가.”
“아, 아버지?”
강제로 자신의 등을 돌리고 방문 밖으로 밀어 내는 아버지.
억지로 저항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일을 하겠다고 아버지랑 몸싸움하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어어, 하는 사이 문밖으로 밀려난 로건이 황당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돌아보는데.
“로건. 일주일이다. 일주일만 푹 쉬거라.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와 다른 가신들을 믿어 보거라.”
“허어? 아버지, 그게 아니라 제 말 좀…….”
“그럼 푹 쉬거라, 아들!”
쾅!
로건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거세게 닫히는 집무실의 문.
로건은 그 닫힌 문을 바라보며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끄으응.”
당장 할 일이 많은데.
이런 황당한 방해가 들어올 줄이야.
로건은 침대에 누워 본의 아니게 생겨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궁리를 거듭했다.
“어쩐다…….”
하나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데 억지로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도통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대는데.
“……공자님. 설마 지금 일 못 한다고 괴로워하시는 겁니까?”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릭.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보는 듯한 녀석의 표정이 왜인지 마음에 걸렸던 걸까.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니, 내가 일 중독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런다.”
“그걸 일 중독이라고 하는 겁니다.”
“……어흠. 그, 그게 네가 잘 모르나 본데. 내가 아니면…….”
“다른 분이 하겠지요.”
“…….”
“…….”
침묵 속에서 주종 간의 눈빛이 치열하게 교차하는 순간.
로건은 확신이 들었다.
“너, 아버지한테 무슨 소리 들었지?”
“예. 공자님 감시하라고요.”
“허…….”
너무 솔직히 나오니 뭐라 따질 것도 없었다.
그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녀석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좀 무섭습니다, 공자님.”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로건의 눈이 커졌다.
“남들이 그럽니다. 영웅이신 공자님 직속 시종이니 얼마나 좋겠냐고, 미래도 창창하게 보장될 테니 부럽다고.”
“…….”
“예. 좋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 온 공자님이 영웅이 되고, 그 떡고물을 얻어먹는 처지가 좋지 않을 리가 없지요. 하지만 동시에 숨이 막히기도 했습니다.”
“그게 무슨……?”
릭은 로건의 의아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밤에는 자는 시간도 아껴서 수련하신다고 명상을 하시고, 낮에는 일 아니면 수련만 하시니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제가 일이나 수련에 방해가 된다면, 공자님이 절 버리지는 않을까.”
“인마, 내가 그럴 리가……!”
“물론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요. 그냥 제가 소심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공자님, 제게 하나만 솔직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뭘?”
“남들에게 말 못 하는 걱정거리가 지금도 계속 있으신 거죠? 그래서 무언가 하지 않고 계시면 불안하신 거죠? 3년도 더 전에, 쓰러졌다가 깨어나신 그날 이후로 쭉 말이죠.”
흔들리는 갈색 눈동자에 담긴 진심.
그것이 릭 자신도 모르게 로건의 입을 움직였다.
“……그래.”
“역시…… 그랬군요. 그러셨군요. 우리 공자님,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에휴, 젠장. 전담 시종이란 놈이 그것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눈물이…….”
더 캐묻지 않아 주어 고맙다고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데.
눈물을 닦아 낸 녀석이 붉어진 눈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감히 저에게 의지해 주시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영주님도, 다른 분들도 공자님을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쉬세요. 말씀하지 못하시는 그 고민도 잠시만 내려놓으세요. 저도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영주님 말대로 조금 쉬시고 그다음에 다시 열심히 하시면 되잖아요, 예? 공자님…….”
이 간절한 표정을 보며 어찌 안 된다고 할 수 있을까.
로건은 작은 한숨과 함께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다. 쉴게.”
“잘 생각하셨습니다! 누워 계세요. 점심 준비가 되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곧바로 돌아서는 릭의 뒷모습.
그 익숙한 모습을 보자 묘한 감정에 휩쓸려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늘…… 고맙다.”
멈칫하는 뒷모습. 녀석의 고개가 잠시 바닥을 향했다가 이내 천장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이따 뵙겠습니다.”
물기 어린 목소리만 남기고서는 방문을 나섰다.
‘그래. 조금은 쉬자.’
릭을 보내고 나니 정말 긴 한숨이 나왔다.
그러고 나니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
이 정도 여유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 후에 더 열심히 하면 되잖아.
그렇게 결심하며 로건은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원 없이 게으름을 부려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똑똑.
“……누구?”
– 고, 공자님! 도와주십시오!
방문을 뚫고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휴가야.”
– 영주님이 새로 영입된 기사들 면접 본다고 다른 일을 다 저에게 미루셨습니다! 죽을 것 같아요!
“아버지한테 얘기해. 나 잔다.”
– 공자님!
“누가 뭐래도 난 잔…….”
– 아니, 정말 급하다니까요!
쾅!
“으갸갹!”
“드웨인 님! 저 허, 허리!”
방문을 부술 듯 밀고 들어와 바닥에 나뒹구는 두 사람.
“뭐, 뭐야?! 미쳤어?”
드웨인과 루겔의 얼굴을 보며 로건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으으. 이, 이건 실숩니다. 실수. 그런데 진짜 급하거든요! 사람 더 뽑게 허락 좀 해 주세요! 영지는 커졌는데 행정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아버지한테…….”
“영주님은 숫자 셀 줄 알면 다 행정 볼 줄 안다고 생각하세요! 그냥 영지민 중에 아무나 쓰라고 하시는걸요!”
“아니, 그래도 그걸 왜 나한테…….”
“드웨인 님! 저, 저부터요!”
로건이 드웨인의 하소연을 채 끊어 내기도 전에 루겔이 끼어들어 외쳤다.
“대공자님. 본성의 행정 인력도 인력인데, 다른 지역이 더 큰 문제입니다. 촌장들을 임시 성주로 돌리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젠 전시도 아니니 정식으로 발령을 내야 합니다. 성마다 요청 사항이 물밀 듯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냐면요…….”
다급한 표정의 행정관 둘을 보며 로건이 머리를 감싸 쥐는데.
쾅!
“아들!!”
“……아버지?”
“미안한데 기사단 문제로 상의할 것이…… 어? 자네들이 왜 여깄나?”
패드릭과 눈이 마주친 두 행정관이 어색한 웃음으로 시선을 회피하고.
“……그러는 아버지는요?”
로건은 경련이 일 것 같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아버지를 째려보았다.
“아니, 좀 급한 문제가 있어서 의논이 필요한 것 같아…….”
“저 무조건 쉬라면서요.”
“흠. 흠. 물론 다른 이들과 의논해도 되겠지만, 나중에 다 네가 이끌어야 할 기사들이니까…… 지금 좀……. 미안하다, 아들.”
하아아.
‘그래. 내 팔자에 무슨.’
길게 한숨을 내쉰 로건이 짧았던 꿈속에서 깨어났다.
“그냥 대회의 한 번 하시죠. 전부 모아서.”
릭에게는 뭐라고 하지.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