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영주님 드십니다.
기사의 목소리와 함께 대전의 문이 열리고, 붉은 머리 붉은 눈의 두 부자가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
“어? 대공자님? 영주님이 대공자님 일주일 동안 일 안 시킨다고, 찾아가는 사람은 친히 조져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 네. 죄송합니다.”
눈치 없이 큰 목소리를 내던 핸더슨이 패드릭의 눈총에 입을 다물고.
하나둘 모여든 가신들이 사방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두 부자가 상석에 나란히 착석했다.
“맥라인 후작가의 첫 정례 회의를 시작하겠다.”
패드릭이 회의의 시작을 알리자, 로건이 바로 나섰다.
“전쟁이 끝나고, 가문이 승작되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나씩 문제점을 얘기하고 해결책을 찾아봅시다. 먼저 얘기하실 분?”
그 말에 드웨인이 먼저 손을 들었다.
“일전에 말씀드렸듯이 모든 것에 앞서서 행정 인력부터 충원해야 합니다. 가문의 이름으로 관리들을 더 뽑아야 합니다.”
“그건 듣긴 했는데, 왜 그렇게 관리들이 부족한 거야? 비프로스의 관리들은 그대로 승계하지 않았어? 고위 관리들 빼고는.”
“……영주님께서 사람을 가려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조금이라도 비리를 저질렀거나, 비프로스 일가와 관련이 있는 자들은 모두 배제하다 보니 절대적인 인원이 너무 부족해졌습니다.”
“아…….”
로건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비리에 연루된 자와 비프로스 가문 관련자를 제외해서 사람이 부족하다는데, 거기서 더 뭐라 할 것인가.
“그래, 일단 알겠어. 그럼 다른 분들은 문제없습니까?”
로건이 시선을 돌리자, 의외로 클레이튼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대공자님이 의뢰하신 연구의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에 관한 연구 비용이 필요합니다.”
“오……!”
의뢰하신 연구라는 말에 로건의 눈에서 번쩍 빛이 나는데.
클레이튼의 말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거기다 제 입으로 하기 부끄러운 말이지만, 제가 유명해지면서 마탑에 떠돌이 마법사가 찾아오거나, 마법사가 되고 싶다고 지원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건 좋은 거 아닙니까?”
마도사의 경지에 올라 골렘 마스터라는 이명을 얻은 클레이튼으로 인해 마법사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리인데.
마탑에 새로운 제자들을 들일 기회 아닌가? 뭐가 문제지?
“그게…… 마법에 재능이 있는 자는 극소수인데 찾아오는 이들은 어중이떠중이가 많고, 떠돌이 마법사는 대부분 이전에 소속되었던 마탑이나 학파에서 문제를 저지르고 쫓겨난 이들입니다. 이런 이들을 걸러 내고 정말 재능 있는 자들을 뽑기 위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흐음.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원하십니까?”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클레이튼 님은 저희 영지의 보물입니다. 뭐든지…….”
“돈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아…….”
……진짜 부끄러울 만하군.
로건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클레이튼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게, 마탑의 경비용 마법과 어린아이들의 재능을 파악하고 측정할 수 있는 아티팩트나 마법진을 만들어야 하고 또…….”
주변의 눈초리가 점점 가늘어지는 것을 느꼈는지.
“결정적으로! 로건 님이 맡기신 그 연구를 위한 실험을 하려면 희귀한 금속 재료가 너무 많이 필요합니다.”
클레이튼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안건을 들이밀었다.
골렘 마탑의 부흥은 곧 맥라인 영지의 힘과도 직접 연결되었다.
그것만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과제이긴 했지만.
‘크라우네의 연구……. 이건 꼭 해내야 한다.’
전생에 제국 기사단 전력을 2할은 증대시킨 비전의 결과물.
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만들어 내야 했다.
로건은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일단 그 문제도 알겠습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으신 분?”
차례를 기다렸던 것인지, 공방의 장으로서 자리에 참석한 하마르의 발언이 바로 이어졌다.
“공방에도 인력이 부족하오. 연사 석궁을 전국에 판매한다고 지시해 놓고선 인력 충원은 없어서 힘들어 죽을 판이오. 제대로 하려면 지금 장인 수의 세 배는 필요하오.”
“세 배나?”
“예. 그것도 우리 드워프들 기준으로 잡은 거요.”
“끄응. 그래? 좀 적게는…….”
“그것도 최소치요, 주인.”
하마르의 요청도 결국 돈이 필요한 문제였다.
로건의 입에서 자꾸만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알겠다. 또 다른 문제 있으신 분?”
“기사단 관련한 문제는 헤인켈 ‘자작’이 말해 주게.”
패드릭이 특정 단어를 강조하며 단상 아래 자리한 헤인켈에게 은근히 눈짓했다.
“지금 제가 기사단 문제에 관여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부쩍 늘어난 주름살과 흰머리.
사라진 오른팔 대신 나무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의수를 쓰다듬는 헤인켈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안쓰럽게만 보였다.
왕궁에서의 논공행상 이후,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헤인켈과 클레이튼, 로니안은 패드릭의 주도하에 승계권을 가진 자작의 신분을 받았다.
그 외에 빅토르와 에일렌을 비롯한 기사단 1~10번 조의 수위기사들과 총교관 카이솔론까지, 로니안을 제외한 열 명이 모두 남작 위를 받은 것에 비해 한 단계 위의 보상.
하지만 그 보상조차도 상급기사가 팔과 포스를 잃은 충격을 메꾸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았다.
자연히 그를 바라보는 패드릭의 표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직접 말하지. 칼리아 북부 지방이 우리 영지에 포함되면서 기존 칼리아 기사단의 대다수가 그 자리에 남아 우리 영지에 복속되는 방향을 택했다.”
“대다수가요?”
작은 한숨과 함께 시작된 그 말에 로건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기사가 늘어난다면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요?”
“전쟁을 치르고 남은 우리 기사단의 수가 112명. 한데 이적을 택한 칼리아 기사단의 수가 무려 201명이다.”
“허…… 위켄 칼리아의 속이 뒤집혔겠군요.”
“아니. 오히려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더구나.”
“……예?”
“칼리아에 남아 감시를 당하며 제약 속에 사느니 새로운 실세가 된 우리 맥라인으로 가서 날개를 펴라고 위켄 칼리아 후작, 아니 백작이 말했다더구나. 그래서 그런지 칼리아 기사단장 호르헤 경도 우리 쪽으로 왔다.”
“네? 최상급기사가요?!”
“그래. 그래서 더 문제다.”
로건은 아버지의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위켄 칼리아의 선택은 의외지만, 공식적으로 이 나라 기사들의 최고 주군인 왕의 명령으로 소속 영지가 맥라인에 복속된 것이니만큼 기사들이 이적을 택한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기존 인원보다 훨씬 많은 수의 기사가, 그것도 최상급기사가 포함된 이들이 대거 이적해 왔으니 아무리 그들이 복종의 뜻을 표하고 있다고 한들 다루기가 쉽지 않을 듯싶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제는 우리의 상징처럼 된 철혈검을 전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야. 평등하게 대하자니 지금의 영지를 일궈 낸 기존 기사들이 서운해할 것 같고, 그렇다고 차등을 두자니 후에 문제의 소지가 될 것 같고.”
“……굴리다 보면 친해진다, 가 아버지 신조 아니었습니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더구나 지금은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느냐.”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던 영지전이 연달아 일어나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려서 싸우던 시기는 끝났다.
혼란의 시기와 평화의 시기. 기사들을 대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로건은 한숨을 내쉬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다른 안건은 없습니까?”
다시 나서는 이는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로건은 드웨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자, 그럼 드웨인 행정관이 말한 관리를 뽑는 문제부터 의논해 봅시다. 관리 모집 공고를 내는 것이야 어렵지 않은 일인데, 구체적으로 몇이나 뽑아야 하는 거지?”
“성이 20개인데 관리 숫자가 그보다 적습니다. 그나마 구 비프로스의 관리들이 그 지역에서 애를 써 주고 있긴 합니다만, 전쟁 때문에 감독관 파견을 못 하는 바람에 다수의 다른 성들은 주변 마을 촌장들의 합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영지의 업무 자체가 마비되거나 무너지게 될 겁니다.”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듣고 있던 모든 이의 안색이 굳었다.
“상황이 그렇게나 안 좋다고?”
“지금 저를 포함한 본성 관리들이 쉬는 날도 없이 밤낮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데도 두 개의 타운과 실반, 테스론, 맥라인 성의 행정 업무만도 벅찹니다.”
그런데 축제 때 그렇게 술을 퍼마시면서 놀았다는 말이지.
‘아무리 영주 명령이라도 참…….’
로건은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른 그 말을 꾹 눌러 삼켰다.
이 심각한 상황에 굳이 과거 일까지 꺼내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몇 명이나 더 필요해?”
“즉시 현장 투입이 가능한 경험 있는 관리가 서른 명은 필요합니다.”
“서른? 그걸로 충분해?”
“……일단은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로건의 적극적인 호응에 용기를 얻은 드웨인이 슬쩍 좌중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한마디를 보탰다.
“새로 뽑은 관리들을 당장 각 성의 성주로 보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이 안에서 어느 정도 신뢰를 쌓은 사람들을 보내야 각 지방이 문제없이 관리, 감독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한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행정관들이건, 기사들이건 모두가 로건과 패드릭의 입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개의 성을 맡아 주군을 대행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크나큰 명예.
드웨인의 말대로 새로 뽑은 관리를 당장 한 성의 권력자로 임명하는 바보짓을 할 수는 없다.
두 개의 타운까지 성으로 친다면, 이제 무려 20개의 성을 보유한 맥라인 영지.
이곳 맥라인 타운을 제외하더라도 19개에 달하는 명예로운 자리가 이곳에 모인 가신들의 머릿속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동안 수고한 가신 중 인망 있는 이들을 뽑아서 성주로 보내면 되겠나?”
“예. 그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쏜살같이 대답하는 드웨인 역시 마찬가지.
그 표정을 읽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기에 로건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아버지?”
“그래. 어차피 후보자도 다 이 안에 있는데 말 나온 김에 여기서 정하는 게 좋겠지.”
패드릭의 말에 가신들이 본격적으로 눈을 빛냈다.
“그럼 드웨인 자네부터 후보자를 추천해 봐.”
그 말에 털보 행정관의 얼굴이 눈이 보이도록 붉게 달아올랐다.
“혹시 자원도 가능……?”
“아, 물론 자네는 이곳에서 총괄 관리를 해야 하니 제외하고.”
“예?! 왜요?!”
“내가 드웨인 그대를 얼마나 아끼는데 다른 곳에 보내겠나.”
“어, 어흑……. 젠장.”
“그러니 추천이나 해 보라고.”
티 나게 좌절하는 드웨인의 모습을 보며 웃는데, 뒤쪽에서 엉뚱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추천을 받으시더라도, 적어도 한 가지 기준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데미안? 호오, 말해 봐.”
긍정적인 반응에 용기를 얻은 전생의 독립군 정보 총책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의견을 말했다.
“기존의 서남부 영지는 몰라도, 칼리아 지방과 타렌 지방의 성에는 현직 수위기사 분들을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기사들을?”
“예. 예로부터 국가나 영지에 새로 편입된 땅에는 자연히 텃세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적대했던 지방을 합병한 경우는요. 대표적으로는 병사들의 근무 태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하. 그래서?”
“예. 성주가 기사, 그것도 중급 이상의 기사라면 적어도 그 점은 잡고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실질적인 업무를 할 감독관은 따로 보내더라도요.”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하는 데미안을 보며 로건은 남몰래 혀를 찼다.
인사에 관한 아이디어 하나 채택됐다고 좋아하는 ‘이블 브레인(Evil Brain)’ 데미안 나달이라니.
‘전생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 저 친구도 슬슬 재능을 살릴 만한 일을 시켜야 하는데.’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겨났지만, 당장은 영지의 문제가 먼저였다.
“자, 그럼 데미안이 말한 기준을 참고삼아 성주를 정하겠다. 다들 생각나는 대로 추천해 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루겔 하이스 님을 추천합니다!”
“페란 도일 님을 추천…….”
“구 비프로스 출신의 행정관 리액터 경을…….”
성주. 한 성의 주인.
물론 영지에 소속된 일종의 대리자일 뿐이지만, 그 주인과 대립할 것이 아니라면 그 성내에서는 어떤 귀족도 무시할 수 없는 지위였다.
더구나 이 시대의 성주는 제 업무만 잘 해내면 직위에서 내려올 일도 없고, 대를 이어 성주를 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야말로 준 귀족이나 다름없는 지위인 것이다.
그러니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가신들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수위기사 디그롬 경을 추천합니다.”
“저는 엔리케 경을…….”
‘가문이 이렇게 커졌구나.’
불과 3년 반 전만 해도 맥라인은 요새로 만들어진 초라한 성 하나뿐이었다.
그런 가문이 이렇게 커지다니.
로건은 새삼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어 미소를 짓다가, 비슷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심전심.
거기에 휴식을 방해한 것이 새삼 미안한 것인지.
‘다 네 덕분이다.’
아버지는 그런 입 모양과 함께 엄지를 들어 올려 주었다.
19개의 성, 그 파견 행정관과 성주가 모두 정해진 것은 그로부터 꼬박 네 시간이 흐른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