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하악. 하악.”
“미친…….”
“이건 미친 짓이야.”
훈련을 받는 이적생들 사이에서 괴로움에 찬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연무장에서 시작된 새벽 구보가 이 커다란 맥라인 타운의 외곽을 열 바퀴 도는 것으로 이어질 때만 해도 대부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부터 모두를 당황하게 한, 자신의 말을 들어 올린 채 달리는 승마 훈련에서는 반수 이상의 기사들에게서 힘에 겨운 비명이 터져 나왔고.
돌덩이를 매달고 암벽 타기를 시작했을 때에는 거의 모든 기사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정말 다 쳐내려고 하는 건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무식한 체력 훈련은 최근 십여 년간 체력 훈련 대신 검술 훈련만 해 온 최상급기사 호르헤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히게 만들었으니까.
하나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훈련에 임했다.
맥라인에 정착하겠다는 그의 의지도 의지였지만.
“대, 대장. 대장이 나서서 뭐라고 말 좀…….”
“시끄럽다, 덴밀. 앞을 봐라. 이 상황에서 내가 뭐라 하겠나.”
“끄응. 그렇긴 하지만.”
분명히 교관의 역할임에도 기존 맥라인 기사들 역시 자신들과 똑같은 훈련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지시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같이 훈련에 참여하고 있는데 어찌 자신이 먼저 포기하겠는가.
무엇보다 저들은 평기사들조차 이 지옥 같은 훈련을 평온한 표정으로 해내고 있었다.
“이게 맥라인 기사단의 평소 훈련이라는 거다. 이 미친 훈련이. 과연 강한 이유가 있었어.”
그 말에 덴밀의 불만이 쑥 들어가고, 주변에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다른 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전이 끝난 직후에 퍼진 맥라인에 대한 평가는 주로 로건 맥라인에 대한 소문과 그들의 무기, 그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그들과 직접 칼을 맞대 본 기사들은 대부분 거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보탰다.
– 맥라인 기사들은 같은 경지의 다른 기사들보다 강하다. 동급의 기사들은 쉽게 압도하고, 상위의 기사도 괴롭힐 수 있다.
호르헤는 오늘 그 저력의 근원을 일부 엿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미처 몰랐지만, 그 대화는 멀리서 가장 앞장서 달리면서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로건의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 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자, 모두 휴식!”
“우와아아! 살았다!”
“시, 시끄러. 귀 울려.”
상상치도 못한 강도에 결국 평기사들 10여 명이 낙오하며 체력 훈련이 끝났다.
‘지독한…….’
호르헤가 혀를 찰 정도의 훈련.
특히나 그가 독하다고 생각한 것은 절벽에서의 체력 훈련이 끝나고 나서 연무장으로 귀환할 때.
그때마저도 말을 둘러메게 한 악마 같은 마무리 훈련 때문이었다.
말을 타고 돌아갈 생각에 안심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
10여 명의 낙오자는 대부분 거기서 생긴 것이었다.
“이 기사단은 말을…… 씨. 들고 다니기만, 후욱. 해. 이게 말이 돼?”
“이, 이유가 있겠지.”
“그래. 괴롭히려는 이유.”
생전 겪어 본 적 없는 과격한 훈련에 모두가 탈진하여 주저앉은 그때.
“이제부터 맥라인 기사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철혈검을 전수하겠다. 우리 기사단이 보유한 중급 검술이자, 중급 검술 중에서도 최상급의 검술이라 자부한다. 모두 제자리에 일어서!”
“으어어!”
“중급 검술?”
비명과 의문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데.
“검술의 지도는 2인당 한 명의 교관, 즉 기존의 맥라인 기사가 동급의 기사 두 명을 가르친다. 배우는 자들은 배우는 기간만이라도 스승으로 여기고 겸손히 모셔라. 그리고 그 스승은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앞으로도 임시 제자들의 선임 기사가 되어 맥라인의 문화를 가르치는 책임도 함께 진다.”
맥라인 출신 기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공자께서 정말 우리를 우대해 주시려는 거구나.’
하지만 동시에 쓰러져 있던 신입 기사들의 얼굴에는 찬바람이 돌았다.
그들은 며칠간 잘 대해 준 것도 다 이 훈련에서 갈구기 위한 밑밥 깔기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독한 놈들.’
그런데 칼을 들고 훈련을? 그것도 제자의 예로 스승처럼 모셔라?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쓰러진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몰렸다.
그 시선을 받은 호르헤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역시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다른 이유로.
“대공자님. 죄송하지만 칼리아 기사단 출신은 윈드 브레이커라는 중급 검술을 이미 익히고 있습니다. 이제 와 새삼…….”
“배우기 싫다?”
“그것이 아니오라…….”
“호르헤 경. 그럼 일단 그대가 먼저 시험해 보겠나?”
히죽.
붉은 눈에 담긴 재미있다는 감정을 읽어 낸 호르헤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난 철혈검만 쓰지. 그대는 쓸 수 있는 수법을 모두 동원해도 좋아.”
자신감 넘치는 그 한마디는 아무래도 좋았다.
호르헤는 로건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아주 잘 인식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탕.
“자, 검을 들게. 아, 자네는 애검을 써도 돼.”
“……예?”
로건이 목검을 집어 들며 하는 말에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제 애검은 3클래스 아티팩트…….”
“상관없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보도록.”
“…….”
호르헤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그가 원하는 건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지, 무시를 당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뿌득.
자신은 불가능하지만, 최상급기사 중에서도 특출난 이들은 검이 없이도 포스블레이드를 운용해 검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저 로건 맥라인이라는 괴물은 그게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진검과 목검의 차이는 컸다.
검을 대신할 수 있는 경지라는 것이 검이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외부로 발현되는 포스의 힘은 가지고 있는 무기의 힘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 본연의 특징. 목검으로 진검을 상대하겠다는 것은 명백히 한 수 아래의 상대에게나 하는 짓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아티팩트를 들어도 상관없다고?
‘당신도 그 검과 다른 아티팩트 덕분에 초인과 대적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맨몸에 목검으로? 나를? 이 호르헤를?’
울컥한 마음이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원하신다면…….”
스릉.
“명하신 대로.”
그의 애검, 포르티투도(Fortitudo)의 끝에서 붉은빛이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빠악!
“기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뻐억!
“그런데 이런 검술로 뭐?!”
뻐어억!
“커, 커윽…….”
연달아 울려 퍼지는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호르헤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최상급기사가 동급으로 알려진 상대에게 단 일격도 적중시키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하다가 쓰러진 것이다.
지켜보던 이들의 두 배는 커진 눈이 처참하게 나뒹구는 호르헤를 향할 때.
정작 그 당사자는 부끄러움은커녕 놀라움만 가득한 눈으로 로건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쿨럭.
“어, 어떻게 이런 차이가. 설마……?”
“검술의 차이일 뿐이다.”
그 시선에서 생략된 말을 이해한 로건은 피식 웃으며 목검을 내던졌다.
호르헤의 이마에.
빠악.
“끄으으…….”
“혹시 또 쓸 만한 중급 검술 안다는 사람?”
최상급기사가 마빡에서 피를 흘리며 기절한 마당.
손을 들 수 있는 용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 * * 첫날의 검술 훈련은 모두 함께 기본자세를 잡고 형을 외우는 것으로 대신했다.
맥라인 기사들에게도 통보되지 않았던 임시 사제 정책이었기에 누가 누구를 맡을지부터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존 기사단들의 조장들을 불러 모은 로건은 처음부터 파격적인 말을 꺼냈다.
“마음껏 굴려라.”
“예?!”
“마음에 들 때까지 굴려도 된다는 말이다.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지만 말고.”
“주군…….”
곁에 시립해 있던 빅토르가 황당한 시선을 보내오고.
에일렌조차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면서도 로건은 어깨를 한 번 으쓱했을 뿐 말을 바꾸지는 않았다.
너무나 당황스러운 말에 기사들 대부분이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 싸운 적이었으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겠지. 찜찜하기도 할 거고. 어쩌면 자리를 뺏긴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마음들을 풀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소리다.”
솔깃한 소리.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디그롬은 오히려 안색이 굳었다.
‘텃세를 막으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오히려 대공자가 이를 조장한다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바보다.
괜히 그랬다가 정말 기사들이 관두기라도 하면…….
“……정말 그래도 됩니까?”
아니, 저 바보가?!
디그롬의 목이 휙 돌아갔다.
다행히 자신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 듯, 모두가 말을 꺼낸 핸더슨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놈은 작위를 받아도 여전히 뇌가 없는 것인지…….’
그런데.
“물론이다. 그 정도로 낙오하는 이들은 애초에 우리 기사단에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그러니 마음 놓고 굴려라. 마음에 들 때까지.”
대공자가 거기에 호응해 줬다.
‘진심이구나.’
모두가 그것을 느끼는 순간, 분위기는 일변했다.
혹시나 텃세나 태업이라는 말이 나올까 그간 얼마나 조심해 왔던가.
그런데 대공자가 직접 기존 기사들을 우대하겠다는 뜻을 확실하게 밝혀 주다니.
수도 없이 갈굼을 당하며 살아온 그들의 본능이 가학적인 농담이 되어 터져 나왔다.
“뼈에 새겨지도록 확실하게 가르치겠습니다!”
우렁찬 핸더슨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꿈속에서도 수련하게 만들어 주겠습니다!”
“제 목표는 두 놈 다 도망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눈도 못 마주치게 만들겠습니다!”
마치 어린애가 된 듯 유치한 말을 연달아 뱉어 내는 동료들을 보며 디그롬은 혀를 찼다.
‘유치하긴…….’
자신이 여기서 조금 과격하게 말을 보탠다면, 동료들은 알아서 자제하게 될 것이다.
“공자님. 맡은 제자가 자살하는 것도 책임 소재에 들어가는지…….”
그는 정말 과열된 분위기를 자제시킬 의도였는데, 그게 좀 과했던 것일까.
삽시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내가 너무 갔나……?
“……왜? 뭐! 그 표정 뭔데? 나만 쓰레기야?!”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 듯한 동료들의 시선.
거기에 더해.
“7조 조장, 디그롬 경. 나를 따라오게.”
주군에게도 찍힌 것 같았다.
디그롬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로건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불벼락을 내릴 것 같던 대공자의 첫마디가 사뭇 따뜻했다.
“그래. 디그롬 세필드 남작. 새로 받은 저택은 마음에 들던가?”
여기서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디그롬은 바짝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예!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잘됐군. 그런데 마음은 좀 불편한 모양이야. 그렇게까지 쌓인 게 많았나?”
역시.
“그냥 혹시나 해서 가능성을 여쭤본 겁니다. 절대! 가문에 해가 되는 일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디그롬은 뒤따라오며 준비한 변명을 번개같이 내뱉었다.
“그래, 그래. 나는 경을 믿고 있어. 그저 농담이었겠지.”
“그렇습니다!”
대공자가 알아줘서 다행이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피식.
“설마 그것 때문에 내가 그대를 불렀을까. 실은 좀 더 빨리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대공자가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지난 전쟁에서 상급의 경지에 올랐다지?”
“예, 그렇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음. 미안하지만 사실 무척 의외라고 생각했어. 상급의 경지에 오른다면 1~4조의 조장들이 먼저일 줄 알았거든.”
로니안, 빅토르, 에일렌. 세 명의 어린 천재들과 디그롬 자신의 입단 동기인 핸더슨을 말함이었다.
디그롬 자신이 보기에도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
세 천재는 고작 몇 년의 수련만으로도 그의 15년을 따라잡았고, 핸더슨은 늘 자신보다 한발 앞서 있던 동기였다.
“아닙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진심이었다.
자신은 지난 전장에서 생명의 위기를 연달아 겪고, 또 운 좋게 그것을 극복하며 경지가 상승했지만, 그들은 그런 것 없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상급의 경지에 오를 인재들이라 생각했으니까.
더구나 1~3조의 조장들은 그 나이를 생각하면 별다른 전쟁 경험도, 중급 검술도 없이 젊은 나이에 상급에 올랐다던 영주님보다 더한 재능의 소유자임이 분명했다.
‘아마도 금세 따라잡히겠지.’
그것이 디그롬이 스스로의 성취를 겸손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공자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도 먼저 경지에 오른 것은 경이었지. 자부심을 품어도 돼. 거기다 경은 인망도 좋은지 다들 다음 대 기사단장으로 경을 꼽고 있더군.”
“……과분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어.”
“예?”
“호르헤 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로건의 그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디그롬의 말문이 콱 막혔다.
“……무슨 말씀이신지?”
“호르헤 경과 경. 둘 중 누가 단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거야.”
설마 했는데…….
너무나 직설적인 물음에 잠시 당황했지만, 디그롬은 평소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기사단은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이끄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막 이적해 온 호르헤 경이 기사단장이 되는 게 옳다?”
“예. 그것이 정석입니다.”
“흠…… 정말 정석적인 대답이긴 한데, 그럼 기존 기사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오늘 말씀하신 조처만으로도 대부분은 만족할 겁니다.”
“아니, 아니지. 머리로는 몰라도 사람의 감정이란 게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진 못할 거야.”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지?
디그롬이 혼란스러워하는데.
“그래서 경에게 선택의 기회를 줄까 해.”
“……예?”
이어진 로건의 말에 그의 눈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