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아이언 블러드는 확실히 윈드 브레이커보다 한 수 위의 검법이다. 중급 검술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군.”
호르헤의 말에 그의 주위를 둘러싼 기사들의 표정이 변했다.
이마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초라한 몰골이기는 했지만, 아무도 그 꼴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모습이건, 그가 구 칼리아 기사단에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했다.
“설마 상급 검술…….”
“상급 검술은 오러유저를 위한 검술을 말하는 거다, 덴밀.”
“아, 죄송합니다.”
“씁. 아무튼, 상관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최선을 다해 배워라. 맥라인 기사단의 강함은 진짜다.”
“……예!”
호르헤는 그렇게 옛 부하들을 다독인 뒤, 연무장으로 향했다.
‘나를 가르칠 사람은 영주 아니면 로건 대공자일 것이다. 이건 나로서도 기회야.’
하지만 그렇게 다짐하고 간 그곳에서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예? 디그롬…… 경이요?”
호르헤는 실망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래. 경지로 따지자면 마땅히 나나 아버지께서 그대를 가르쳐야겠지만, 미안하게도 우리가 좀 바빠. 검술의 요체야 상급기사인 디그롬 경도 충분히 전할 수 있는데, 혹시 스승이 마음에 들지 않나?”
“아, 아닙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래, 좋아. 철혈검을 몸에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대는 확실히 더 강해질 거야. 잘 배워 보도록 해. ”
“예. 감사합니다!”
그의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건은 그 한마디를 끝으로 바로 돌아섰다.
그렇게 로건이 연무장을 나서기가 무섭게.
임시 사제 간으로 묶인 기사단은 모두가 예상한 대로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이런 속도로 오늘 안에 천 번 반복하는 게 가능하겠나! 정신 못 차려?!”
“쌍…….”
“거기, 지금 뭐라고 했지?”
“쌩쌩 바람이 날릴 정도로 열심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상적인 속도로 풀어 내면 한 번 시전하는 데에만 30분이 걸리는 철혈검을 하루에 천 번 하라는 놈이 있질 않나.
“연습은 실전처럼! 기사가 그것도 모르나! 덤벼!!”
“그런데 왜 저는 목검……?”
“불리한 상황을 가정한 대련 수련이다.”
“하…….”
“뭐?”
“……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대련 수련을 빙자한 구타 수련은 양반이요.
“방어식 수련이다. 무조건 막아라.”
“막기만 하면 됩니까?”
“그래. 무조건. 내가 멈출 때까지.”
“씨부……”
“뭐?”
“……부서질 때까지 버텨 보겠습니다!”
대놓고 상대를 때려잡으려고 하는 기사도 있었다.
멀리 관저의 집무실에서 그 모든 광경을 하나하나 지켜보던 패드릭은 혀를 차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아무래도 기존 우리 기사들이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다.”
“다 누구한테 배운 걸 그대로 하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뭐? 그게 누구냐! 누가 저딴 수련을…….”
“…….”
자신을 노골적으로 빤히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에, 그제야 답을 얻은 패드릭이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흠. 흠. 나야 상황이 좋지 않았으니까 좀 자극적으로……. 흠, 날씨가 참 좋구나.”
시선을 회피하는 아버지를 보며 피식 웃은 로건은 소란스러운 연무장 안에서도 유독 조용한 한군데를 바라보았다.
앞서 난리를 치고 있는 인간들은 그래도 모두 예상 범위 안이었는데.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광경은 정말로 예상 밖이었으니까.
파아앙.
포스를 싣지는 않았지만, 올바른 검로에 올바른 검의(劍義)를 담은 것만으로도 공기가 터져 나갈 듯한 폭음이 만들어졌다.
잘 단련된 최상급기사의 본능은 자신이 처음으로 올바른 철혈검을 시전했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해 주었다.
고작 10일 만에 이룬 성과.
그것은 호르헤 자신의 검술에 대한 이해와 포스의 경지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좋군요. 이제 익숙해지도록 더 연습하기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눈앞에서 차분한 어조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 ‘스승’의 가르침이 훌륭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에 호르헤는 진심을 담아 이 어린 스승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디그롬 경. 모두 경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것이 예상외였을까.
살짝 당황하던 디그롬은 곧바로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호르헤 경께서 열심히 노력하신 덕분이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진심을 담은 인사에도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디그롬.
그 뒷모습을 본 호르헤는 지난 며칠간 담아 두기만 했던 말을 불쑥 내뱉고 말았다.
“왜 저를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십니까?”
그 말에 멈칫한 디그롬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태연한 어조로 답했다.
“저는 위에서 내려온 명대로 수행한 것뿐입니다.”
“경은 제가 고깝지 않으십니까?”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얼마 전까지 저는 경의 적이었습니다.”
“여기 그런 사람 많습니다.”
디그롬이 덤덤하게 대답하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호르헤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부끄럽지만 제 부하, 아니 옛 부하들은 어쩌면 제가 기사단의 중책을 맡을 수 있을 거라 설레발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소문으로 들은 대공자님의 성향이라면 혹시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디그롬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 대답은 호르헤의 예상과는 또 달랐다.
“……대공자님은 실력을 중시하십니다. 명예보다 실리를 따지시지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경의 마음입니다.”
“……예?”
“경은 그래도 불만이 없으십니까?”
디그롬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대답은 지체 없이 나왔다.
“기사는 주군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제 마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저는 우리 기사단이 강해질 수 만 있다면 어떤 방향이라도 좋습니다. 대공자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니 중책을 맡으신다면, 그 점만 유의해 주십시오.”
그 말에 호르헤는 디그롬의 푸른 눈을 빤히 응시했다.
정말 단 한 점의 욕심도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대답.
이게 정말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답인가.
하지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그의 눈을 보고서야 호르헤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연무장의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저 호르헤는 주군의 명에 따라 디그롬 경을 제 선임 기사로서 존중하고 따를 것을 맹세합니다.”
디그롬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호르헤 경?”
그제야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디그롬을 보며, 호르헤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본 패드릭이 고개를 갸웃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행동만큼은 시야에 보였으니까.
“저 둘이 가장 문제라고 하지 않았더냐? 화해한 것 같은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흠. 생각보다 빠르구나.”
“예. 미래의 기사단장감도 정해진 것 같고요.”
“뭐?”
아버지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로건이 미소를 지으며 들은 이야기를 설명하려는데.
“미래의 기사단장은 로니안 아니었느냐?”
이어진 아버지의 말이 그를 당황하게 했다.
“네?”
“네라니? 네가 가문을 잇게 된다면 동생에겐 뭘 시킬 생각이었냐? 자작위 준 김에 그냥 영지 독립이라도 시켜 주려고? 그런 무재를 가진 동생을?”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로니안은 만약의 경우에는 저나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한데 기사단장이라니요. 그건 좀……. 헤인켈 경을 대신할 차세대 기사단장은 저들 중에서 뽑아야지요.”
언젠가 상황이 허락한다면 그 이상의 역할도 해 주어야 합니다.
로건이 마음속 깊숙한 생각을 꿀꺽 삼키는데.
아버지는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굳이?”
“예?”
“전시라면 모를까, 로니안이 아직은 부족하다 해도 이 평화로운 시기에는 괜찮지 않겠느냐? 차차 경험을 쌓아 가고 경지도 상승하면 자격은 넘치도록 충분해지겠지. 기사단장이라고 해서 네가 자리를 비웠을 때 대행을 못 할 것도 아니고.”
“아…….”
로건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치명적인 인식의 차이를 그제야 알아챘다.
하지만 그가 뭐라 부언을 하기도 전에.
“그러니 내게 네 말은 꼭 몇 년 안에 또 난리가 날 것 같다는 말처럼 들리는구나. 그게 맞느냐?”
“아. 하하하. 아니,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자신도 모르게 등 뒤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로니안에게 중책을 맡기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일을 맡겨 보며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미래는 저희에게는 너무 멀기만 합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로건, 너도 언젠가는 세월이 일정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올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빠르게 흘러간다는 느낌. 나 정도 나이가 되면 십여 년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 것 같기도 해.”
그 반도 흐르기 전에 이 나라가 결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미래는 항상 멀리 보고 생각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정확히는 5년 반 뒤, 그 전후 시기에 집중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건이 그렇게 진심을 속으로만 말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또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네가 로니안에게 치안대 운용을 아예 맡긴 것은 조금 실수 같구나.”
“예? 그게 왜요? 무슨 문제 생겼습니까?”
“아니. 은퇴한 기사들까지 끌어들여서 만든 조직이 효과가 더 좋더구나. 단번에 타운 내에 일어나던 분란 수가 확 줄었어. 테스론이나 맥라인 성도. 영지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릴 정도다.”
“좋은 일이잖습니까.”
“그래. 한 가지만 빼놓고는.”
그 소식 어디에 나쁠 여지가 있던가?
어리둥절한 로건을 향해 패드릭이 살짝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물론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니다만, 로니안의 이름이 영지민들 사이에서 꽤나 회자되고 있단 말이지.”
“그게 무슨 문제…….”
“아직은 며칠 되지 않은 일이니 걱정 없다만, 로니안이 계속 그 일을 맡으면서 영지민들 사이에 이름을 쌓아 나가면 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로건은 그제야 아버지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받아들이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였지만.
“문제 생길 일은 없습니다, 아버지.”
“그래. 지금은 네 입지도 튼튼하고 로니안도 너를 따르지. 하지만 미래는 모르는 거란다. 로니안이 원치 않아도 승계 문제가 거론될 수 있어.”
그 말에 로건은 자칫 대놓고 커다랗게 웃을 뻔했다.
그래서 반론할 타이밍을 놓쳤는데, 아버지는 거기서 아예 한발 더 나아갔다.
“아무래도 로니안은 밖으로 돌리지 말고 검술 수련만 집중적으로 시키는 게 낫지 않겠느냐? 귀족 가문에서 둘째는 훌륭한 기사면 족하다. 괜히 가문의 분란거리가 될 수도 있어.”
그 순간 느껴지는 지독한 괴리감.
‘전생에 로니안은 홀로 가문을 구했습니다. 끝까지 나라를 지켰구요. 저는 그저 쫓겨난 탕자였을 뿐입니다.’
전생과 현생의 차이가 이토록 진하게 느껴지는 것도 오랜만이라, 절로 허탈한 한숨이 나왔다.
“아버지. 저는 로니안에게 이 영지를 맡길 생각입니다.”
“뭐?! 그게 무슨 헛소리야?”
“들으신 대로입니다.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로니안이 맥라인 영지를 이끌게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패드릭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로건의 표정은 단호했다.
“말이 되는 소리입니다. 녀석도 충분한 자격이 있어요.”
“지금까지 네가 영지를 위해 해 온 공적이 얼만데…….”
“저는 더 큰 것을 노릴 겁니다.”
“……뭐?”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그러니 녀석이 평판을 쌓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에요.”
“너 설마 그래서 회의 때…….”
“예. 로니안이 영지에 관한 의견을 내고 또 해결하는 것 자체가 기꺼웠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건 아니다. 나는 납득할 수 없어!”
“납득하시게 될 겁니다. 이제까지처럼요.”
“너 이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패드릭은 말끝을 흐렸고.
로건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버지…….’
방문을 두드리려던 로니안의 손이 얼어붙은 듯 굳어 버렸다.
그동안의 성과를 자랑하려 고양이 걸음으로 집무실에 몰래 다가가던 길.
포스까지 숨겨 가며 갑자기 나타나 형님을 놀라게 하려 했던 것뿐인데.
듣지 말아야 할 대화를 들어 버렸다.
‘내가 형님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
방문을 두드리려던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가고.
로니안 맥라인은 침울한 표정으로 왔던 길을 거슬러 조용히 사라졌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