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7)
17화영지에 돌아온 지 일주일째.
로건이 자신의 수련에 집중하며 간간이 로니안과 빅토르, 용병대를 점검해 주고 있던 때.
카일에서 운송된 첫 번째 카록의 고기와 트리탄 영지의 철목과 부품들이 맥라인 영지에 도착했다.
그러자 로건은 하마르를 불러들여 하나의 도면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하마르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도면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나름 내 지식 선에서 최대한 자세히 그려 본 것이다.”
로건이 전문 기술자는 아니었지만, 수십 년 동안 써 왔던 무기였기에 얼추 아마추어 기술자 수준의 도면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하마르의 기준으로 보면 한없이 조잡한 도면일 뿐이었지만.
“석궁의 뒤에 볼트를 보관하는 카트리지를 달고 자동으로 장전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거기다 시위는 삼단으로 한 번에 세 발을 연달아 쏠 수 있어야 하고요?”
하마르가 도면과 로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쳐도, 연사라면 현이 견디지 못합니다. 한 번 쓰고 말 무기를 만드실 생각입니까?”
“어…….”
“거기다 바로 뒤에 이런 나무 상자를 달면 석궁을 쏘는 사람도 불편합니다. 이런 엉터리를 도대체 누가…….”
“나다.”
“커허험. 흐흠. 다시 보니 아이디어는 기발하긴 하군요.”
‘그 엉터리가 나중에 우리 왕국의 재앙이 된다, 인마.’
다행히 지금 하마르가 제기한 문제는 로건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볼트의 크기를 줄여서 카트리지 자체 크기를 줄여. 그리고 한 번 쓰고 말 거 맞아. 대신 카트리지를 조립식으로 만들어서 쏠 때마다 재장전을 하게 만들면 돼.”
“……예?”
“편의상 탄창(彈倉)이라고 부르지.”
뛰어난 기술력이 아닌, 그저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해결책에 하마르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마, 말도 안 돼! 최근에 무슨 염소 발 닮은 도구로 1분에 네다섯 발씩 장전하는 것이 나왔다고 들었는데, 이건 월등히…….”
그의 상식으로 현재의 석궁은 숙련된 사수라고 해도 1분에 두 발을 쏘기 힘든, 단발형 사출 무기였다.
로건이 말하는 석궁은 그가 알고 있는 상식을, 시대를 월등히 초월하는 무기였다.
차라리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라고 했으면 믿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걸 카트리지 하나 달아서 만들 수 있다고요?”
“확실히 돼. 일단 만들어봐.”
로건의 호언장담에 하마르는 더 이상 반문을 하지 못했다.
그가 보기에도 로건이 한 설명은 단순히 아이디어가 아니라, 많이 사용해 본 이의 느낌이 물씬 났다.
“흐음. 그런 획기적인 무기에 추가되는 것이 카트리지 하나, 거기다 부품이 태엽과 아교에 활줄뿐이라……. 이거 도전의욕이 나는군요. 좋습니다. 만들어보지요.”
“언제까지 가능할 것 같은가?”
“듣도 보도 못한 물건을 만들라고 해놓고 기한까지 정하실 겁니까?”
“그래 봤자 인간도 만들었던 무기다.”
“……예? 말도 안 돼! 어, 어디서? 누가요?!”
“몰라도 돼. 못할 것 같으면 포기하고.”
“끄응. 거참. 좋습니다, 좋아요. 한 달. 그 안에 훨씬 뛰어난 물건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드워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 하마르는 호기롭게 외쳤다.
그 대답을 듣고서야 로건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석궁은 갑옷도 관통할 수 있을 정도로 파괴력이 월등하지만, 그 느린 장전시간 때문에 전시에는 외면받는 사냥꾼용 무기였다.
다수의 병력이 서로 부딪치는 현대의 전쟁에서는 병사들에게 짧은 시간에 활을 많이 쏘게 하는 것이 효율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0년 뒤 제국이 전쟁을 시작했을 때, 그들은 연사 석궁이라는 무기를 만들어 대량의 석궁 부대를 운용했다.
그 연사 석궁 부대는 마법사의 도움 없이도 위치에 따라 기사단을 상대할 수 있는 파괴력을 발휘했다.
전투 조건에 따라 일개 병사가 기사를 저지할 수도 있는 무기.
초기의 제국 침략 전쟁에서 제국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제국 전쟁 후기에 이르러선 대부분의 나라에서 동일한 물건들을 만들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에는 초기 버전의 경우 조금 비싸기는 해도 하급용병의 필수무기 정도로 흔해진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 시점이라면…….
‘용병대만으로 영지전에서 테스론 자작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전생의 기억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것이 그리 무리한 생각은 아니었다.
‘아니, 너무 희망적인 예상만 해도 곤란하지.’
하마르가 연사 석궁을 제대로 만들지 못할 수도 있고 완성된다 해도 용병대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수도,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 두 가지는 이미 하마르와 카이에게 맡긴 거나 다름없으니 그가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나는 또 다른 대처 방안을 준비한다.’
용병대가 제 역할을 못 해 준다는 최악의 가정하에, 그 대비책이 될 만한 방안이 필요했다.
로건은 그것을 위해 다시 아버지를 찾아갔다.
“기사단 훈련에 참여하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로건의 표정은 굳건했고 눈빛조차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무표정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던 패드릭은 엉뚱한 대답을 꺼내 놓았다.
“버려진 남쪽 별장이 대공자의 놀이터가 되었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예?”
“숙소를 개조하고 창고는 온갖 이상한 것들로 가득 채운 데다가 용병대까지 주둔시켰지. 요즘엔 아예 거기서 산다고 알고 있는데. 왜 거기서 훈련하지 않고?”
“……그 용병들이야 하급 용병들일 뿐이고, 나라와 가문의 진짜 힘은 어디까지나 기사단이 아니겠습니까. 기사단과 함께 훈련함으로써 진짜 기사가 무엇인지 느껴 보고 싶습니다.”
내 입으로 내뱉기엔 부끄러웠지만, 철저히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말만 골라 준비한 멘트였다.
“……네 무력은 인정하지만 네가 기사단에 끼어듦으로써 기사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 그러니 특별 대우는 불가하다. 신입 기사처럼 굴리라고 할 텐데, 그래도 괜찮겠느냐?”
그러니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입니다.”
로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가주님께 연락은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특별 대우를 하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으음.”
흔쾌히 나온 대답, 심지어 그 망나니에게서 나오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존대에도 맥라인 기사단의 단장인 헤인켈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특별대우를 하지 말라고 한들,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누가 뭐라 해도 주군의 아들이었다.
게다가 최근의 기행들로 인해 기사들 사이의 여론도 좋지 않다.
‘차라리 곱게 모시라 했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갈색 머리 틈으로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한 중년의 기사는 흰머리가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느낌에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눈앞의 짐 덩어리가 그의 마음에 쏙 드는 말을 내뱉었다.
“일주일. 일주일 동안 기사단 훈련에 단 한 번이라도 낙오한다면, 없던 일로 하고 알아서 빠지겠습니다.”
“……좋습니다.”
헤인켈은 그 순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기사단 훈련 강도는 세 배다.’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단순히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라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대공자.’
벌써 평기사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헤인켈은 이미 열의에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로건은 헤인켈의 생각처럼 단순히 평판을 개선해 보고자 훈련에 참여하려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가문의 주력은 기사단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들의 마음은 얻어 놔야 해.’
최악의 경우. 그러니까 그가 준비한 무기가 시일을 맞추지 못하거나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로건은 기사단에 합류하여 적극적으로 최전선에 나설 생각이었다.
당장은 그의 무력이 아버지만 못하더라도 웬만한 기사보다는 낫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같이 구르면서 유대감을 쌓아야지.’
로건 개인의 수련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이젠 내 무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신검 비전으로 익힌 포스코어는 육체 수련이 아닌 단순한 명상으로도 성장이 가능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본질은 포스. 육체 단련이 가장 중요한 공부였다.
그러니 기사단의 정식 수련 또한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로건은 그것이 또 하나의 변수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애꿎은 기사들에게 크나큰 폭풍이 되어 몰아닥쳤다.
* * *
“오늘부터 로건 대공자가 우리 기사단 훈련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
“뭐, 뭐라고요?”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 대공자가 훈련?”
웅성웅성.
이른 새벽, 헤인켈의 말은 소집된 맥라인 기사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패드릭이 걱정했던 대로 좋지 않은 방향이었다.
“그 망나니가?!”
“도미넌을 이겼다고 기사가 우스워 보이나.”
“대공자가 미쳤다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인가?”
“뭐 어때. 훈련은 편해지겠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단장 몰라? 더 심해질걸?”
그 말에 대답하듯 헤인켈이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부터 새로운 훈련을 추가했다.”
“에에이!”
“단장님. 그건 아니죠!”
“아, 이럴 줄 알았어. 젠장.”
여기저기서 극심한 반발이 일었지만 헤인켈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나는 제군들이 기사로서 자긍심을 보여 줄 것이라 믿는다. 설마 대공자 앞에서 나를 망신시킬 놈은 없겠지?”
그 말에 숨은 뜻을 알아챈 기사들이 하나같이 미소를 지었다.
“후아. 그래 다 같이 죽어보자. 대공자가 얼마나 견딜까?”
“난 사흘에 건다.”
“난 이틀.”
“그럼 난 하루?”
“반나절……은 너무 했나?”
“아냐, 그냥 바로 돌아갈 수도 있어.”
낄낄거리며 비아냥대는 말과 함께 비웃음이 퍼졌다.
하지만 그 비웃음 소리는 반나절도 채 이어지지 못했다.
* * * 말도 안 되는 훈련의 시작은 승마 달리기였다.
승마(乘馬 : 말타기)가 아닌, 승마(承馬 : 말을 들어 올리기) 달리기.
당연히 기사들에게도 생소한 미친 훈련이었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약을 먹여 잠재운 말이라지만 그 무게는 적어도 기사들의 다섯 배에 달했다.
그런 말을 어깨에 올리고 산속을 달리는 일은 아무리 포스유저라도 비명을 지를 법한 고행이었다.
그런 팔자에도 없는 고행을 시작한 기사들을 더욱 환장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뭐가 저렇게 빨라?!’
‘이, 이상하잖아. 그 망나니 맞아?’
‘그냥 미친놈이라며?’
이런 고행을 하게 만든 대공자라는 놈이 그들의 가장 앞에서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쫓아 보지만, 거리는 더욱 벌어지기만 했다.
교관 역할을 하는 중급 포스유저인 수위기사들조차 입을 벌린 채 로건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이 고행에 가까운 훈련을 고안해 낸 단장, 헤인켈이었다.
‘이게 말이 돼? 무슨…….’
대하기 불편한 대공자를 빨리 낙오시키기 위해 만든 훈련인데, 가장 앞서 달리는 로건은 땀을 흘리고 있을지언정 오히려 미소가 보였고, 뒤따르는 기사들의 얼굴만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작 낙오하는 것은 평기사들뿐일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와중에, 결국 한 기사가 신음성과 함께 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 저런 한심한 놈!’
헤인켈은 자신이 얼마나 무리한 훈련 코스를 만들었는지는 잊은 채, 쓰러지려는 기사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미 벌린 일을 여기서 관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헤인켈은 포스를 끌어올린 뒤, 산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질렀다.
“모두 그만!”
그 목소리에 기사들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십 분간 휴식한다.”
“으아아!”
헤인켈은 기사들의 비명 같은 한탄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로건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공자님, 어떠십니까? 힘드시죠?”
당연히 힘들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고, 헤인켈은 그것을 핑계로 기사들이 험한 꼴을 보이기 전에 강도를 낮출 생각이었다.
“아, 할 만합니다.”
“역시 강도를…… 예?”
“훌륭한 훈련입니다. 역시 기사단 훈련이 자극이 많이 되는군요.”
“……예에?”
이 말도 안 되는 훈련을 만들어 낸 당사자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고, 옆에서 듣고 있던 기사들 또한 딱 미친 사람 대하는 표정으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