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맥라인 영지에서 관리를 구한다는 공고를 영지의 모든 성에 뿌린 것은 불과 십여 일 전.
하지만 애초 예정했던 기한인 한 달이 다 차기도 전에 맥라인 타운의 관저 앞은 그 지원자들로 들끓었다.
“자, 자. 줄 서시오. 줄!”
“거, 관리가 되겠다는 분들이 질서를…… 아, 쫌!”
“거기! 자꾸 새치기하면 면접 감점이오!”
30여 명을 뽑는다고 낸 공고에 오늘 하루의 지원자만 300명이 넘었다.
그 인원을 통제하느라 십여 명의 병사들이 진땀을 빼고 있을 때.
그 모든 인원의 면접을 진행하고, 인재를 골라 내야 하는 드웨인과 루펜, 페란의 얼굴은 벌써 반쪽이 되어 있었다.
맥라인 관저의 3대 뚱보들이 실시간으로 강제 다이어트를 당하고 있는 모습.
결국, 볼살이 반쪽이 된 페란이 들고 있던 서류를 집어 던졌다.
“아, 아니 뭐가 이렇게 많습니까! 정작 우리 일도 못 하고 있잖아요!”
“시끄러, 페란. 지금 너만 힘든 거 아냐!”
“아니, 그래도.”
“둘. 다. 닥. 쳐.”
눈 밑 그늘이 턱까지 내려온 드웨인이 음산한 목소리로 부하 직원들의 소란을 진압했다.
며칠간 빗지도 못한 그의 머리와 수염은 이미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헝클어져 있었고,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루펜은 목을 움츠리며 다시 이력서를 훑어보았다.
‘빌어먹을. 죄다 귀족이야.’
지원자 중에는 어중이떠중이도 많았지만, 제법 괜찮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꽤 있었다.
문제라면 그렇게 괜찮아 보이는 경력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 작위가 있는 귀족이라는 것.
아무리 그들이 계승권 없는 단승 귀족, 준남작이라 해도 자신은 평민에 불과했기에, 이들이 관리로 들어오게 되면 모셔야 할 사람만 늘어나는 셈이었다.
‘칼리아 영지의 관리 출신은 그렇다 쳐도 더글라스나 발터마임 쪽은 공고도 안 붙였는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미치겠네.’
어찌 된 것인지 망한 대영지의 하급 관리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이미 심중의 갈등은 포화 상태.
솔직히 일과 면접으로 인한 피로보다 그 갈등이 주는 스트레스가 더 심할 지경이었다.
상사인 드웨인의 생각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동료 페란의 표정은 그와 비슷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어 보지만, 그런다고 변하는 것은 없었다.
최종 결정은 그들이 내리는 게 아니었으니까.
“대영지 출신 관리들은 다 2차 면접으로 올려. 영주님이 알아서 판단하시겠지.”
“드웨인 님, 그럼 저희가 졸지에 상관을 모시게 되는 건데…….”
“됐어. 영지 일이 중요하지 우리가 중요한가.”
“드웨, 아니. 형님! 그럼 우린……!”
“시끄러워. 밖에 다 들린다. 그리고 우리야 영주님이 알아서 잘 챙겨 주시겠지.”
드웨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타일렀지만, 루펜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니, 그래도…….”
“전쟁 끝나고 포상금 받은 것만 해도 평생 먹고살 정도잖아. 루펜, 우리 욕심부리지 말자.”
“하…… 아우, 형님은 정말 충신이시오. 난 속 좁은 놈이고.”
“나도 속 아파 이놈아.”
“됐소이다. 나만 나쁜 놈이지. 나만.”
루펜이 툴툴거리자, 옆에 있던 페란이 끼어들었다.
“스트레스받으면 살 빠져. 차라리 그냥 자.”
“닥쳐, 페란! 이 돼지야! 이 와중에 뭘 또 처먹고…….”
“아 좀! 둘 다 그만!!”
루펜과 페란은 그렇게 투덕거리면서도 드웨인의 뜻을 따랐다.
그리고 맥라인 영지에서만 20년을 근무한 털보 재무행정관은 씁쓸한 눈으로 밖에서 기다리는 지원자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영지가 그만큼 잘된 덕분이야. 그래, 좋게 생각하자.’
하지만 그 광경이 왜인지 그리 기쁘지만은 않았다.
* * *
“테스론 성 수확기 준비는요?”
“책상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행정관님.”
“타운 장벽 공사 관련한 건은?”
“책상 오른편에 있는 서류입니다.”
“그다음에는, 음…….”
“테스론에서 실반과 비프로스까지 도로 건설에 관한 의제였습니다. 아직 정리 중입니다. 내일 아침까지 받아 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파비안…… 님.”
“아닙니다, 드웨인 님. 뽑아 주신 영주님께 제 능력을 보여 드려야죠.”
드웨인은 자신과 다르게 삐쩍 마른, 그리고 젊은 행정관 파비안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도 틀린 게 없는 말이었다.
불과 며칠뿐이지만 정리해 놓은 서류도 깨끗했고, 업무 처리 속도도 빨랐다.
내용 역시 나무랄 데가 없었고.
‘더글라스 출신이라고 했던가?’
맥라인 영지 내부에만 돌렸던 공고가 수뇌부도 모르는 사이 수도와 왕국 전역으로 알려졌다는 걸 그의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덕분에 맥라인 영지는 그렇게 필요했던 관리 인력을 쉽게 수급할 수 있었지만, 드웨인은 그 상황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지원자들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두 사람, 눈앞의 파비안과 중년 신사 로크만이 작위를 가진 준남작이라는 것이었다.
즉.
‘망할. 부하들에게 존대해야 하는 판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들도 자신에게 존대한다는 것이지만,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아, 전에 검토 말씀하신 서류는 몇 군데 오류를 수정하여 다시 올려놨습니다. 재가 부탁드립니다.”
“오류?”
“예산 계산에 작은 오류가 있었습니다. 로히터식 교차 검증법으로 검증하면…….”
이렇듯 자신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론을 쉽게 이야기하면서 실무에 적용하는 능력자들이라는 것.
그런 그들의 모습이 그에게 자괴감이 들게 했다.
벌써 며칠간 계속된 회의감.
계속된 고민 끝에 드웨인은 결국 결론을 내렸다.
탕!
“그래. 그게 맞아.”
“드웨인 님?”
“어디 가세요?!”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를 산뜻하게 무시한 드웨인의 발걸음은 무척 빨랐지만, 이상하게 아주 무거워 보였다.
탕.
“결재 서류입니다, 공자님.”
“놓고 가. 점점 빨라지네?”
창밖에 보이는 해의 기울기를 따져 본 로건이 피식 웃으며 드웨인을 올려다보았다.
“예. 새로 뽑은 관리들 대다수가 제 몫을 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파비안 님과 로크만 님은 저보다 낫습니다.”
“호? 그 정도야?”
고개를 갸웃하는 로건의 모습에 드웨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해야 할 말은 잊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과 일은 별개의 것이니까.
“네. 확실히 뛰어납니다. 관리들을 계속 뽑고 있으니, 그런 인재들이 몇 명만 더 들어오면 공자님께 올라가는 서류의 부피도 훨씬 줄어들 것 같습니다.”
“오, 좋은 얘기군. 얼른 정상화해서 최대한 내 손은 안 타게 만들어야지. 좋아, 수고했어. 이만 나가 봐.”
“그런데 공자님.”
“음?”
순간 달라진 분위기에 로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저기…….”
“뭔데. 뭘 그리 망설여. 그냥 말해.”
“저…… 일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아? 최근 고생을 하긴 했지. 그럼 며칠 쉬어. 휴가는…….”
“휴가가 아니라 은퇴하고 싶습니다, 공자님.”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로건이 순간 멍한 눈으로 드웨인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이래? 내가 뭐 섭섭하게 한 거 있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젠 더 이상 제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무슨 소리야, 그게?”
“사실 헤인켈 경이 은퇴하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습니다. 저도 같이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그 헤인켈 경은 은퇴하는 대신 지금 훈련 자문으로 갔어. 알고 있지?”
“그것과는 상관없습니다. 제가 제 한계를 느낀 것뿐이니까요.”
“아니, 무슨 한계?”
“새로 고용한 관리들이 저 이상으로 일을 잘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상사로 평민인 제가 있는 건 조직의 능률 면에서도 좋지 않을 겁니다.”
“하…….”
로건은 그 강경한 말에 뭐라 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피로에 찌든 얼굴은 여전했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드웨인은 단단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하아…… 미치겠네.”
“죄송합니다, 대공자님.”
“아니, 자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전혀 몰랐던 내가 미안하지. 잠깐만, 우리 같이 생각을 해 보자고.”
“대공자님…….”
로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며,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골몰했다.
그러다가 한참 뒤.
드웨인의 피곤한 얼굴에 내려앉은 그늘이 조금 더 진해졌을 때.
“좋아. 그럼 자네도 귀족 해! 그럼 되겠네!”
로건이 황당한 소리를 내뱉었다.
“……예?”
무표정을 고수하던 드웨인의 얼굴이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다.
……귀족이 내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거였나?
순간적으로 상식의 혼란까지 생기는데.
눈앞의 대공자는 한 발 더 나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확실히 나나 아버지도 무심했어. 전쟁이 기사나 병사들만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 든든하게 뒤를 받쳐 준 문관 가신들에게는 작위를 줄 생각도 못 했지. 큰 실책이야.”
마치 당장이라도 귀족위를 줄 수 있다는 듯한 말에, 드웨인이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저기, 공자님? 폐하께 받은 작위 수여권은 이미 다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아, 괜찮아. 내가 부탁하면 남작위 하나 정도야 충분하겠지. 설마 폐하께서 내 청을 거절하실까.”
“공자님? 그런 식으로 권력을 남용하시면…….”
“괜찮아, 괜찮아. 욕 좀 먹지 뭐. 충신도 못 챙겨 주는 군주가 되느니, 욕 좀 먹는 게 나아.”
“욕으로 안 끝날 수도 있잖습니까. 혹시 그러다 폐하와 관계라도 멀어지시면…….”
“이 정도는 괜찮아. 여차하면 내가 폐하께 엎드려 빌지 뭐.”
그 단호한 어조에 드웨인은 입만 벙긋거렸을 뿐, 더 이상 말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저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바로 통신실로 뛰어가는 로건의 뒷모습을 보니 울컥한 감정에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으니까.
* * *
그 무렵 수도 그랑에서는 귀족가를 강타한 커다란 화젯거리가 있었다.
도망쳤던 카이런 울브스 백작이 나타났다.
맥라인 전투에서 사라졌던 변경백 중 1인.
모든 변경백들이 처형되고, 그 일가마저도 처형되거나 수배된 상황에서 모습을 감췄던 카이런 울브스가 수도 그랑에 나타난 것이다.
“울브스 가문의 숨겨 둔 모든 재산을 바치겠습니다. 지난 과오에 대한 잘못을 빌겠습니다. 그저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느 순간 왕궁 앞마당에 엎드린 카이런 울브스.
병사들은 왕의 명령을 기다리며 그를 감시했지만, 사흘이 넘도록 왕궁에서는 아무런 명령도 내려오지 않았고.
그렇게 왕궁 앞마당에 계속 방치된 카이런 울브스는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한 채 메말라 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중급의 포스유저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가혹한 일.
폐하께서는 카이런 울브스가 그대로 말라 죽기를 원하신다.
반역자로 수배된 이를 죽이지 않고 왕궁 앞마당에 계속 방치하자 소문은 곧 사실처럼 여겨졌고, 뒤늦게나마 그 소식을 들은 검공이 왕궁으로 향했다.
새롭게 시작된 나라에 흉흉한 소문이 오래 돌게 놔두는 것은 좋지 않았으니까.
‘카이런. 머리를 잘 썼군.’
검공은 왕궁에 들어서기 전 슬쩍 본 카이런 울브스의 메마른 얼굴을 떠올렸다.
전쟁이 끝나고 모든 정리가 끝난 시기.
그럼에도 모든 것이 안정되지는 않은 시기.
왕실로서는 세력도 돈도 한창 필요한 그 상황에서 근 3백여 년간 왕국 3대 상단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 없는 가문의 숨겨 둔 재산을 바칠 테니 오직 목숨만을 살려 주기를 원한다?
왕실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는 거래였다.
다만 의심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말 그런 재산이 있다면 그냥 타국에 망명하여 살아도 될 텐데…….’
물론 평생 왕국의 암살자 걱정은 해야겠지만.
부유한 공포 속 삶 대신 가난한 자유를 택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거겠지. 그래서 폐하께서도 저리 두신 걸 테고.’
뭐가 되었건, 자신은 그저 의견을 전하면 된다. 3일간 놈을 방치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 폐하의 의중을 물어보면서.
“검공, 펠릭스 에스페란자 대공 듭시옵니다.”
– 들어오라.
끼이이익.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왕의 얼굴이 보였다.
대신 관료들이 모두 모여 회의해도 될 법한 커다란 왕의 집무실.
각 부서의 대신들이나 들어올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의 상석에서 왕이 집무를 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던 검공은 이내 왕의 오른편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병을 보고는 살짝 안색을 굳혔다.
‘술?’
술기운으로 추정되는 상기된 왕의 얼굴.
대낮의 왕궁 대전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에 검공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 검공. 어서 오시오.”
“……예, 폐하. 그런데 낮부터 그 술은……?”
“또 우리 딱딱하신 왕사께서 잔소리를 하시려는군. 하하. 너무 그러지 마시오. 이것은 일종의 위로주니까.”
“위로주……요?”
“헛되게 죽은 내 형들에 대한 추모이자,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갑갑하고 답답한 내 과거에 대한 제주(祭酒)라고 해야 할까.”
“…….”
“일평생을 형들의 그늘에 갇혀서 몸부림치며 살아온 나요. 이제야 겨우 자유를 얻었는데, 조금은 즐겨도 되지 않겠소?”
“폐하…….”
“너무 그렇게 보지 마시오.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니. 그래, 그런데 왕사께서 웬일로 먼저 나를 찾아왔소이까?”
“아 그건…….”
검공이 당혹스러운 마음을 숨기고 용건을 꺼내려는 순간.
– 폐하, 분부하신 것들을 대령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끊는 커다란 목소리가 대전 밖에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