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맥라인 영지에서 새로운 병사를 모집한다.
총원 5,000명.
16~20세 남자.
(……하략…….)
병사 모집 공고에 대한 반응은 예상대로 뜨거웠다.
5천 명을 뽑는다고 했는데 맥라인 타운에서만 2천 명이 넘는 지원자가 발생했을 정도.
20개의 성을 모두 합치니 무려 3만 명이 넘는 지원자가 나왔다.
예상을 뛰어넘는 지원 행렬에 헤인켈과 카이솔론을 비롯한 병사 담당 교관들과 행정 관리들의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수뇌부로서는 그저 기꺼울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로건의 마음은 더 특별했다.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 안에는 처음 뽑았던 녀석들 가운데에서 각성자가 나올 확률이 높아.’
생각대로만 된다면 새로운 기준을 정하고 병사 훈련을 시작한 지 불과 4~5년 만에 포스를 각성하는 이가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맥라인의 군대가 수많은 전장을 겪어 내며 극적인 자극을 많이 받았다 치더라도 엄청나게 짧은 기간.
그런 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고, 그 뒤에 뽑은 병사들과 지금 뽑기 시작한 새로운 지원자들이 몇 년의 간격을 두고 폭발적으로 각성하기 시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국을 상대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지.’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맥라인의 병사 선발법을 전국에서 따라 하기 시작할 것이다. 자발적으로.’
사실 이미 정권을 장악한 이후 귀족들에게 병사들의 선발법을 한차례 말해 준 적이 있지만, 똑같이 시행하고 있다는 이는 아직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병사 선발 기준까지 강제하고 강요하기에는 그로서도 무리한 일.
그렇기에 자연스레 흐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좋은 기분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 에일렌이 찾아왔다.
영지로 귀환한 뒤 줄곧 정신없이 바빴기에 오랜만에 보는 얼굴.
자신도 모르게 환한 웃음을 짓던 로건의 얼굴은 굳은 표정의 그녀를 마주하는 순간 경직되었다.
“에일렌, 무슨 일……?”
“로건 공자. 병사 모집 건에 관해 제안할 게 있어요.”
“아…… 하하, 난 또 뭐라고. 말해 봐요. 의견이야 언제든 환영이죠.”
“대대적으로 병사를 모집하는 김에 여자 병사도 뽑으면 안 될까요?”
“……예?”
갑작스러운 제안에 로건은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언젠가 하려던 일이긴 해.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에일렌을 영입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녀의 재능보다는 상징성이었다.
그녀가 유명해짐으로써 여기사와 여자 병력도 충분한 전력이 된다는 것을 왕국에 인식시키고, 나아가 여성 병력을 뽑기 위한 것.
하지만 내전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면서 그녀의 이름은 맥라인 영지와 그 인근, 그리고 수도의 사교계에만 퍼진 상태였다.
그나마도 여기사보다는 로건 맥라인의 약혼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상태.
그것은 명백하게 자신의 계산 실수였다.
그랬기에 언젠가부터 그는 에일렌에게 그저 초인이 될 가능성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먼저 이런 말을 꺼내다니.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요?”
“그간 생각을 많이 해 봤어요. 내가 이 가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알아요.”
피식.
자신감 넘치는 대꾸를 던지고 스스로 웃은 것도 잠시.
“공자를 만나고 맥라인에 와서 저는 제 길을 찾았죠. 짝도 찾았지만.”
험험.
에일렌은 붉어진 얼굴로 딴청을 피우는 제 약혼자를 보며 또다시 미소를 짓고는 이내 다시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더군요. 이 영지에, 이 나라에 나 같은 여자가 과연 나뿐일까 하는.”
“아아…….”
“예. 저는 공자 덕분에 제가 얻었던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도 열어 주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결국 그것이 맥라인 가문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있어요. 공자 생각은 어때요?”
로건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자신과 닮은 붉은 머리칼을, 그리고 자신과 전혀 다른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하고자 했던 일.
하지만 반쯤 포기하고 있었던 일.
그것을 그 계획의 대상자가 자진해서 말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예뻐 보이는 자신의 약혼자를 보며 로건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여성 병력 육성을 목표로 삼고, 그 책임을 에일렌 경이 맡아 주면 되겠군요.”
“예? 제가요?”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에일렌이 조금 당황했다.
“병사 훈련이라면 저보다 더 훌륭하신 분들이…….”
“그분들이 에일렌 경만큼 여자에 대해 잘 알지는 않겠죠. 그분들이 신경 쓸 수 없는 것들을 에일렌 경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런 꿈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모을 구심점으로 에일렌 경이 딱입니다. 왕국 최초의 여기사이자, 최초로 작위를 받은 귀족. 에일렌 플로이드 남작님.”
내전을 통해 남작위를 얻은 에일렌.
한동안 수도의 사교계가 그 때문에 시끄러웠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것은 엄연히 그녀가 세운 공훈으로 얻은 훈장이었다.
그녀의 앞에 붙은 거창한 수식어에 부끄러움은 없었다.
“아…….”
약간 상기된 표정을 보니 본인은 조금 부끄러운 것 같았지만.
그 모습도 예뻐 보여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던 로건은 애써 자제하며 예상되는 문제를 차분하게 일러 주었다.
“다만,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각오요?”
“이상은 좋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겁니다. 힘들 거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처음 했던 막연한 생각처럼 에일렌이 ‘무력으로’ 유명해지지는 못했으니까.
여자 중급기사라는 것만으로도 이 나라에서는 충분히 유명해질 만했지만, 자신이 그녀의 옆에서 모든 시선을 끌어 버린 탓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힘든 만큼 과실도 클 테니까.”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눈은 확고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이 이상의 경고는 잔소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로건은 그저 그녀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역시 예상대로 상황이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 * *
– 맥라인 영지에서 여자도 병사로 뽑는다는데?
– 여군? 무슨 헛소리야?
– 에이, 여자가 어떻게.
– 누가 못된 장난을 친 거겠지. 저거 떼 버려.
며칠 지나지 않아 붙여진 추가 공고.
하지만 공식적인 모집 공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에 로건은 직접 여성 전용 병사 훈련소와 숙소 건설까지 명하며 그것이 누군가의 장난이 아닌 맥라인 가문의 뜻임을 알렸다.
그리고 에일렌과 이야기했던 대로, 공고문에 그녀의 이름까지 박아 넣었다.
조금 과장해서.
– 우리 왕국 최강의 여기사 에일렌 플로이드 경이 직접 여군을 지도하고 육성할 것이다.
왕국에 여기사가 그녀 한 명뿐이라는 말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고.
– 왕국 역사상 최초의 공식 ‘여’귀족이 명예를 걸었다.
명예를 건다고는 했지만, 사실 실패한다 해도 그녀에게 책임을 물을 사람은 없다는 것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으며.
– 맥라인이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다.
기존 병사들에게도 평등하게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는 말은 굳이 적어 넣지 않았다.
그리고 그 2차 공고에 대한 반응은 내부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쾅!
“로건!!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코앞에 있는데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핏대가 선 아버지의 목을 보며 로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올 게 왔군.’
완고한 기사, 아버지의 관점에서는 이 일이 가문의 명예에 똥칠을 하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전권을 넘겼다고 일을 이따위로 해!”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반발.
“아버지. 이건 가문의 미래에…….”
로건은 크게 심호흡하며 아버지의 앞에 섰다.
그런데.
“왜 여자 ‘병사’만 뽑느냐! 며느리 같은 포스유저도 있을 수 있는데!”
“도움이…… 예? 지금 뭐라고……?”
로건의 혼란스러운 시선이 아버지를 향하는데.
그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아니, 애매하게 여자 병사를 뽑는다고 하면 포스유저는 지원을 안 할 거 아니냐! 기사도 뽑아야지, 기사도!”
“아…… 제가 그 생각을 못 했네요. 하하하. 수정하겠습니다.”
이 아저씨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머리를 핑핑 굴려 봐도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로건의 입에서 결국 질문이 튀어 나갔다.
“그런데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요?”
“반대? 내가 왜?”
“에일렌을 기사 시킨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며느리는 훌륭하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지.”
“어……. 그렇긴 하지요.”
“이 아비가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성과를 보고서도 외면하는 얼간이가 될 수는 없지.”
거참…….
4년 전에도 이러셨으면 제가 좀 덜 힘들었을 텐데요.
“아무튼, 그렇게 해 보거라. 괜히 내 눈치 보느라 못 하고 있나 해서 찾아와 봤다. 소리를 지른 건…… 험험. 뭐, 미안하고.”
고개를 돌리는 아버지의 귀가 빨갛게 물든 것이 보였다.
‘본인도 이상한 거지, 지금?’
아마도 얼마 전까지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을 일들.
가문을 위해, 아들을 위해.
변하려고 노력하는 중년 아버지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로건은 오랜만에 시원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공고의 변화와 대대적인 광고에도, 여자 병사 모집에 응한 인원은 극소수였다.
“232명이요?”
실망한 듯한 에일렌의 물음에 드웨인의 목소리가 더욱 줄어들었다.
“예……. 그것도 공고를 내건 초기에 지원한 이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테스트를 통과한 인원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지원자 수도 300명이 넘지 않았다고 했다.
에일렌이 연신 한숨을 내쉬자 로건이 나섰다.
“당연한 거예요, 에일렌. 우리 각오했었잖아요. 적은 인원이지만 그들이 시작이 되어 주면 됩니다.”
로건의 진심 어린 위로에 에일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들만이라도 제대로 훈련시켜 보죠.”
“……믿어도 되죠?”
“예. 지금 그들을 제대로 훈련해서 최소한의 전력이라도 만들어 내면, 앞으로는 지원자가 더 많아지겠죠.”
“확실히, 우리가 그냥 헛짓거리를 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만 알려져도 지금보다는 지원자가 훨씬 많아질 겁니다.”
“예. 반드시 그렇게 만들 거예요.”
힘줄까지 보일 정도로 꽉 쥔 주먹.
예상보다 적은 지원자가 에일렌의 마음에 오히려 불을 지른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로건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슬쩍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에일렌이나 ‘그 녀석’ 같은 경우만 생각했나 봐. 그런 여자들이 흔할 리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면서.’
눈앞의 에일렌도 그렇고, 전생에서 그나마 가깝게 지낸 여자였던 그 녀석도 다 한 실력 하는 여자였던 탓에 생긴 착각.
하지만 왕국에 그런 여자가 많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리한 것이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캐시 그 녀석도 제국에서 용병 활동을 했다고 했지. 차라리 제국에서 활동하는 왕국 출신 여자 용병들을 대상으로 공고를 붙이는 게 나으려나?’
문득 떠올린 추억에 이어진 실없는 생각에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 * *
“정말 갈 거야, 캐시?”
“응. 당연하지. 내가 어떻게 여기에 더 있겠어.”
“그래도…….”
“괜찮아. 나 몰라? 나 괴력의 카산드라잖아! 잘할 수 있어, 그러니 잘 있어, 애나.”
카산드라는 자신을 걱정하는 소꿉친구를 한 번 꽉 안아 주고는 곧바로 돌아섰다.
억지 혼례 전날 신랑 후보를 두들겨 패서 실신하게 만들었으니, 더 이상 고향에서 살기는 글렀다.
이 타고난 힘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은 역시나 용병 같은 것뿐일 터였다.
‘그것도 이 나라에서는 어림도 없고, 제국으로 가야겠지만.’
그나마 제국 동부의 공용어는 왕국과 억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웬만한 남정네 두세 명은 쉽게 때려잡는 이 힘을 보여 주면 먹고사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카산드라는 그렇게 이십 평생 살아온 고향을 두고 떠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저기, 캐시! 그럼 맥라인으로 가는 거야?”
“뭐? 무슨 말이야. 난 제국으로…….”
“남쪽 맥라인 영지에서 여자 병사나 기사를 뽑는다고 하던데, 기왕이면 가까운 데로 가는 게 낫지 않아? 타국보다는?”
“……뭐? 진짜?!”
로건이 바꾼 미래에, 또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