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우와아, 저게 다 뭐야?”
“수레가 몇 대야 대체?”
“어? 저건 맥라인 가문 깃발인데 뭘 하는 거지?”
“무슨 상단이라던데?”
“뭐?”
“아, 저기 대공자님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로건이 모습을 드러내자, 타운의 입구에 모여 있던 인파가 갈라지며 저절로 길을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 속에서 로건이 천천히 상단의 전면으로 나아가자 평소에 입던 것과는 수준이 다른 비단옷, 화려한 의상이 어색한 듯 몸을 돌아보던 필립이 황급히 그를 맞이했다.
“공자님. 직접 나오실 필요는…….”
“아니. 내가 시킨 일인데 환송 인사 정도는 해 줘야지. 줄 것도 있고.”
“예? 아니, 지금까지 해 주신 것만 해도 과분합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이게 빠졌잖아, 이게.”
“……엇?”
로건이 꺼내서 흔드는 종이를 보는 순간, 필립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푸르스름한 마나가 감도는 범상치 않은 서류, 아니 계약서.
그 안에 적힌 글귀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제 계약서…… 그런데 그건 왜 가지고 오셨습니까?”
설마 나를 아직도 믿지 못해서 그러는 건가?
필립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는데.
찌이익.
로건이 그가 보는 앞에서 마법 계약서를 찢어 버렸다.
“공자님?!”
필립의 눈이 두 배로 커지는 순간.
그와 로건의 몸에서 새어 나온 미미한 푸른 빛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계약서에 담겨 있던 마나가 사라지는 광경에 필립이 멍하니 로건을 바라보았고.
로건은 씩 웃으며 찢어진 계약서를 필립의 손에 쥐여 주었다.
“늦었지만, 포상이야. 그동안 애썼는데 내가 전쟁만 신경 쓰느라 그 뒤에서 노력한 사람들의 공을 잊고 있었어. 드웨인도 그랬었고.”
흘깃 돌아본 뒤쪽에서 털보 행정관이 필립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러다 베론과 시선이 마주치면 다시금 인상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필립은 복잡한 마음에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성과급 제안은 동일하니까 일 제대로 해 보라고, 필립 상단주. 알겠지?”
“……예. 예, 공자님. 당연하지요. 무조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다 들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목소리.
정중히 숙인 필립의 고개 아래로 작은 물방울이 아주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 * *
“드디어 새 영지에 가 보겠군.”
급한 일들이 일단락되자, 로건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염두에 두었던 다른 일을 시작했다.
“칼리아 지방에 직접 가 보시려구요?”
“아니. 타렌.”
“네에?”
논공행상의 결과로 얻게 된 칼리아 지방은 몰라도, 타렌 지방은 가신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공자님이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라며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충신도 있었다.
말하자면 드웨인 같은.
“황무지랑 폐광산 구경하는 취미라도 있으십니까?”
“……맥라인 평야도 원래 황무지였어. 잊은 거야?”
“아…… 그럼 타렌 지방도? 근데 물이…….”
“그거야 당연한 거고, 따로 확인할 것도 있어.”
“어, 예?”
“아무튼, 가는 길에 하마르와 클레이튼 님도 같이 갈 생각이니까 일정 좀 알아보고 조율해 봐. 지금 공방은 일거리 좀 줄었지?”
드웨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하마르 공은 일정 조율이 쉬울 겁니다만, 클레이트 님은 요새 실험실에 박혀서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공자님과 말씀하신 그 실험 때문인 것 같은데…….”
“흠, 그것도 중요하긴 한데……. 아냐, 그래도 이게 먼저야. 클레이튼 님에게 실험은 좀 미루라고 전해.”
“제 말은 안 들으실 텐데요? 무엇보다 실험실에 처박혀서 안 나오는 마도사를 제가 무슨 수로 끄집어냅니까!”
하아.
“그럼 내가 직접 가지. 씁.”
직접 확인하고 결재해야 할 업무가 모두 사라진 지금, 로건의 발걸음은 어느 때 보다 가벼웠다.
그런데.
똑. 똑.
“형님. 로니안입니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로니. 들어…….”
흔쾌히 대답하려던 로건은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동생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야! 너 무슨 일이야?! 뭐야 그 얼굴은?”
반쪽이 되어 버린 얼굴에 무언가 결연한 결심을 한듯한 표정.
흥미로운 것은 그런 몰골로도 느껴지는 기세는 오히려 이전보다 낫다는 것이었다.
포스 유저 상급의 경지.
그것을 확인한 로건의 표정이 다시 한번 급격하게 바뀌었다.
“너, 이 녀석. 대체 무슨 수련을 했길래 얼굴이 그렇게 된 거야?! 아무리 성과가 있어도 몸을 해치면서 수련하는 건 장기적으로…….”
“수련 때문이 아니에요, 형님.”
“뭐?”
“그냥 마음가짐을 조금 바꿨더니 길이 보이더라구요. 예전 형님 말씀처럼.”
“허……?”
로건으로서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리고 그것 때문에 형님께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어진 말은 로건을 어이없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사 수행? 도대체 그런 케케묵은 관습을 갑자기 왜 하겠다는 거냐?”
무사 수행.
귀족가의 자제가 가문을 떠나 세상을 떠돌며 무예를 시험하고 경험을 쌓아 인격적, 무술적 성장을 도모하는 일.
뜻은 그럴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죽는 이들이 하도 많았기에 사장된 풍습인데, 무슨 생각인지 로니안이 그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오래 생각해 봤지만, 지금 영지에서는 제가 할 일이 없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기사단 훈련도 있고, 치안대의 일도 잘하고 있잖아?”
“그거야 형님이 하셔도 될 일을 제가 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가문의 모든 일을 다 내가 해도 된다. 그럴 순 없으니까 가신들이 있고, 네가 있고, 아버…… 흠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냐!”
예전의 로니안이었다면 이쯤에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을 텐데, 오늘의 그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다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결국 가문에나 형님에게나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검술을 말하는 겁니다. 형님도 말씀하셨잖습니까. 제겐 형님보다 강해질 재능이 있다고.”
“그래. 그거야 당연하지. 너를 아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거다.”
로건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말을 들은 동생은 오히려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글쎄요. 그건 좀 의문입니다만, 형님은 확실히 그렇게 믿고 계신다는 건 알겠네요. 저도 그런 형님을 믿어 보렵니다. 그래서 무사 수행을 가겠다는 겁니다.”
“너 대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은 거야? 대체 어떤 놈이 너한테 그런 바람을 넣었어?!”
로건은 진심으로 짜증이 솟구쳤다.
가만히 가문에서 수련하기만 해도 오러유저가 될 동생이다.
그런 동생이 위험하게 무사 수행을 떠나겠다니.
그런데 이어지는 동생의 대답이 황당했다.
“형님이요.”
풉.
가만히 듣고 있던 드웨인이 헛기침을 하다가, 신경질적인 로건의 시선을 받고는 입을 가리며 돌아섰다.
“……내가? 너한테? 언제?”
“형님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일반적인 수련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전장을 겪고, 실전을 겪으면서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형님을 능가하려면 그 방향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
말문이 턱 막혔다.
이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자신 때문이라니?
미래의 오러유저가 확실한 동생이 자신 때문에 집을 나가서 위험한 일에 뛰어들겠다니.
“안 돼! 절대 안 돼!”
동생을 아끼는 마음으로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마음으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로니안이 이번엔 정말 작정한 듯,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형님은 어려서부터 제게 의지가 되는 기둥이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조금…… 좋지 않은 일이 있었지만요, 하하. 가문의 기둥이 되기 전에도 형님은 언제나 제게는 기둥이셨어요.”
로건이 복잡한 심경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가문의 위기를 극복할 때도, 저는 언제나 형님의 뒤에만 서 있었습니다. 형님이 어떻게든 해 주시려니 하는 그 믿음 하나로 힘든 전투도 버텨 왔고, 그것은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로니안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저라는 놈의 성장은 어느 순간 정체해 버린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은 형님이 해결해 주실 테니 그 뒤만 따라가도 된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 불끈 쥔 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제게 형님을 능가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하셨지요? 어쩌면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고, 가능하면 형님을 뛰어넘어 보겠다고 처음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벽을 넘을 길이 보였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로니안이 고개를 들어 로건과 시선을 마주했다.
“형님. 형님은 가문의 기둥으로 계십시오. 저는 가문의 검이 되겠습니다. 형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형님의 기대대로 정말 초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길입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길게 이어진 동생의 말.
그 말이 하나하나 가슴에 꽂혔다.
무엇보다 그중에서도.
‘내가 이 녀석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었다고?’
그 말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하……. 그게 무슨…….”
얼굴을 감싸고, 머리를 벅벅 긁어 보고, 아닐 거라 억지로 자신을 속여 봤다.
하지만…….
‘전생의 최연소 오러유저 로니안 맥라인은 과연 지금과 같은 성장 단계를 거쳤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망가진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 누구보다 더 처절하게 노력하지 않았을까? 이미 왕국 최고 귀족이 된 맥라인 가문이 과연 그때와 같은 환경일까?’
로니안의 말에 따라 자연히 떠오르는 추론이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동생은 전생보다 조금 빨리 포스를 각성했고, 무엇보다 신검 비전도 익히고 있었다.
그럼 정말 과거보다 빨리, 과거보다 더 강해질까?
‘그럴 리가 없지.’
무엇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간절함이 결여된 자는 성과를 이루기 힘들다는 것을.
왕국 최고 가문의 둘째 아들이 된 로니안이 어디까지 향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성장을 하겠다는 동생을 가로막을 권리가 있는가.’
왜? 무슨 권리로?
동생을 아낀다는 핑계로 가둬 두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결국 로니안을 미래의 위기 극복을 위한 무기로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었나? 그래서 내 시야 안에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연달아 머릿속을 괴롭혔다.
한참을 끙끙대며 고민하던 로건은 간신히 마음을 정리하고 로니안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반쪽이 될 때까지 고민하고, 결국 결정했을 동생을.
긴 침묵의 시간 뒤에도 변치 않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모습을.
“음…….”
마음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네가 나를 능가할 인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역시 놀지 않을 것이니, 네가 세상을 떠돌면서 경험을 쌓는답시고 수련을 게을리하는 것보다 집안에서 진득이 수련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반쯤 허락의 말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일순간 표정이 환해진 로니안이 즉시 대답을 뱉어 냈다.
“맹세하겠습니다. 무사 수행 중에도 절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세상이라는 것이 때로는 전쟁보다 위험할 때도 있다. 인간을 불신하게 되고, 사람을 싫어하게 되다가 네 스스로가 황폐해질 수도 있다.”
“저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스스로 망가진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집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일이건 이겨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형이 세상을 떠돌…… 큼. 용병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알려 주겠다. 절대 잊지 않게 적어서 외워라. 그 후에 보내 주겠다.”
“감사합니다! 형님!!”
로건은 한숨을 쉬며 희색이 만연한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이렇게나 컸구나.’
이미 키는 자신과 비슷할 정도에 육박했음에도 아직은 앳된 기가 남아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가 기억하는 전생의 동생의 모습은 아주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얼굴과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여 적을 베어 넘기던 초인의 얼굴, 그 둘뿐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동생의 얼굴이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믿는다, 로니안 맥라인. 네가 한 말을 꼭 지킬 것이라고.”
그만큼 가슴이 뿌듯했다.
자신이 바꾼 현실이 동생에게 더 큰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자신도 노력하겠다, 그렇게 다짐했다.
“물론입니다, 형님!”
“좋아. 그럼 이제…….”
“아, 그런데 형님.”
“음?”
의욕이 넘치던 로니안이 갑자기 쭈뼛거리며 조심스레 꺼낸 말.
“허락하신 김에, 저 대신 어머니도 좀 설득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순간 뿌듯했던 마음이 절반 정도 깎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