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갑작스럽게 열린 가족회의.
로니안의 말을 들은 부모님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
“상급기사라면 어딜 가든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겠지. 난 찬성이다.”
대견하다며 미소를 짓는 아버지와.
“왜?! 왜 굳이 험한 일을 자청하겠다는 거야! 왜?!”
표정이 확 변한 새어머니.
일부 동의하는 바였지만, 로건은 동생과 약속한 대로 새어머니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로니안도 세상을 공부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안 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네가 전쟁 나갈 때마다 이 엄마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니? 이제야 좀 평화로워졌는데 다시 마음 졸이면서 살라고?!”
“여보, 나한테는 힘내라더니……?”
“당신하고 애하고 같아요?!”
“…….”
내전 중에 중상을 입고 실려 온 적도 있는 가장은 상처 입은 표정으로 축 가라앉았지만, 메리안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아무튼, 절대 안 돼!”
“어머니…….”
로니안의 간절한 표정을 외면하는 것은 혹여나 설득당할까 두려워서일까.
메리안은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엄마는 절대 반대다. 더 얘기할 필요도 없어!”
얘기를 듣지도 않겠다는 마음이 여실히 보이는데.
로니안은 차마 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로건만 바라보았다.
‘형님. 전 어머니 설득 못 해요. 제발!’
눈빛으로 전달되는 그 뚜렷한 호소에 작게 한숨을 내쉰 로건이 돌아서는 새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어머니, 로니안도 곧 성인입니다. 언제까지 품 안의 자식으로 키우실 수는 없습니다. 로니안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말 잘했다. 곧 성인이지 아직 성인이 된 게 아니야! 그런 애를 그냥 맨몸으로 세상에 내보내겠다고?”
아니, 맨몸이 아니라 두둑하게 챙겨 주긴 할 건…….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머니. 말씀하신 대로 로니안은 아직 어리지만, 이미 몇 번이고 전쟁을 겪은 역전의 용사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만한 자격이 충분합니다.”
설득을 위한 정석적인 대사였지만, 이미 아들 걱정에 눈이 돌아간 메리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혹시 네가 바람을 넣은 거니? 세상에 나가서 고생 좀 하고 오라고?”
거의 예전에 자신과 새어머니가 대립하던 때가 떠오르는 살벌한 눈빛에, 로건의 한숨이 진해졌다.
“저도 처음엔 반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다가 로니안에게 설득당했지요.”
“뭐?”
“세상에 나가서 많은 경험을 하고 저를 능가해 보겠답니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과정을 생략한 짤막한 결론.
그것만으로 설득이 될 리가 없었기에 로건은 설명을 덧붙였다.
“로니안은 정말로 재능이 있습니다. 어머니, 로니안이 단순히 맥라인의 둘째 아들로 남길 바라시는 겁니까? 녀석에겐 왕국 최고의 기사가 될 재능이 있습니다. 녀석의 미래를 위해 여기서는 뜻대로 해 주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로건은 침착하게 미래를 이야기했다.
아들의 안전, 그리고 아들의 성공.
메리안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다시 전자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위험하게…….”
“상급기사인 로니안의 생명이 위험할 정도면 이 세상은 이미 지옥일 겁니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과한 걱정이라는 거.”
“…….”
물론 로니안은 수행을 위해 조금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긴 하겠지만.
로건은 설득을 위해 그런 말은 쏙 빼 두었다.
그러나.
“로니안이 잘못되면 그게 나한테는 지옥이야! 품 안의 자식이라는 게 뭐 어때서! 아직 성인도 아니잖니! 그 무사 수행이라는 걸 꼭 지금 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조금만, 조금만 더…….”
메리안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침묵하던 로니안이 앞으로 나섰다.
“어머니. 걱정하시는 이유가 제가 부족해서라는 거 알아요.”
“아니, 네가 왜 부족해. 우리 든든한 아들이…….”
“수행을 떠난다는 것이 형님이었다면, 어머니께서 이렇게 반대하셨을까요?”
“……그런 말이 아니잖니. 나는!”
“어머니. 꼭 무사히 돌아올게요. 더욱더 성장해서, 형님보다 강해져서 더욱더 든든한 아들이 되어 돌아올게요. 믿어 주세요.”
“로니안…….”
어머니의 양손을 움켜잡은 로니안의 붉은 눈은 처음과는 달리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흔들리던 어머니의 검은 눈동자도 급격히 안정을 찾아 갔다.
그 순간 로건은 어머니가 아들의 호소에 넘어갔음을 직감했다.
‘짜식, 잘할 수 있으면서.’
그리고 그 예상대로.
“……그 어린 것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작은 한숨과 함께 메리안의 입에서 불과 몇 시간 전 로건이 했던 생각과 비슷한 말이 흘러나왔다.
걱정 섞인 손길로 아들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던 메리안은 어느새 아들이 자신보다 더 컸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당사자를 포함한 가족들이 아무 말 못 하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감정을 추스른 메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꼭 그렇게 해야겠니?”
“예. 그게 제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위험한 일은 안 할 거지?”
“……예. 물론이죠.”
순간 당황하던 로니안은 형의 눈짓을 받고서 황급히 얼버무렸다.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 정도는 나쁘지 않을 테니까.
그에 메리안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사히 다녀오너라.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거 잊지 말고.”
“예, 어머니.”
“어휴. 내 아들이 언제 이렇게…….”
이어지는 두 모자의 포옹.
그것으로 로니안의 무사 수행이 확정되었다.
* * *
“정말 이렇게 단출하게 가도 되겠느냐?”
로건의 시선이 휑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문의 둘째 아들이 얼마나 걸릴지 모를 여정을 나서는데, 지켜보는 것은 자신과 뒤쪽의 부모님뿐.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거창한 행사를 한사코 거부한 당사자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거창하게 할 필요 있겠습니까. 잠시 나갔다 오는 것뿐인데요, 뭐.”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여정을 잠깐의 외출처럼 표현하는 동생.
며칠 전에 이 안건을 꺼낼 때와 비교해서도 정신적인 여유가 느껴졌다.
“그래.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되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돌아오거라.”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씨익 웃는 동생을 말없이 한번 꽉 안아 주고 보내려는데, 쓸데없이 발달한 감각이 뒤쪽에서 흐느끼는 작은 울음을 감지했다.
‘어머니…….’
동생을 믿는 마음은 확고하지만, 그럼에도 홀로 세상에 나서는 것이 처음인 동생을 위해 약간의 충고는 해 주는 것이 나을 듯했다.
“그래. 이미 몇 번 말한 것 같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자. 홀로 용병이나 자유 기사로 돌아다닐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 왜지?”
“실력이나 재력을 보이면,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접근하는 이들이 반드시 생기기 때문입니다.”
로건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에서 휘두르는 칼날은 실력으로 막을 수 있지만, 뒤에서 찌르는 칼은 인식하지 못한 사이 치명상을 만든다. 사람을 조심하거라.”
“예, 형님.”
“아, 그리고…….”
“……?”
“특히나 여자를 조심하거라. 네 실력이나 외모라면 분명히 어디서든 꼬이는 여자가 있을 건데, 그때는…….”
“형님.”
“응?”
“이미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랬지. 그래도 다시 한번 들어라. 그때는…….”
형의 노파심이 웃겼는지 로니안이 피식 웃음을 흘렸지만, 로건은 진지했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야, 인마.’
동생의 실력은 믿지만, 아무래도 여러 가지 더러운 수작에 쉽사리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경험이 중요했으니까.
전생에 수십 년간 구른 경험을 아낌없이 전해 주어야 했다.
동생을 위해서.
하지만 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혀, 형님. 이제 좀 그만…….”
“응? 아니, 지금 한참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잖아. 한 번만 더 들어라. 그러니까 전위에 나섰다가 포위가 되면…….”
“형님! 벌써 세 번째예요, 그 얘기…….”
“응?”
질려 버린 듯한 표정의 동생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해의 위치도 조금 바뀐 것 같았다.
거기다.
“……이러다 내일 출발하겠네.”
“전 이대로 안 보내는 것도 괜찮아요.”
“어허, 여보. 그래도.”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구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로건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 그래. 잘 다녀오너라. 정기적인 연락과 위치 보고 잊지 말고. 늦어지면 이 형이 바로 찾으러 갈 거니까, 꼭!”
“예. 명심할게요!”
확 밝아지는 표정이 언뜻 해방된 죄수를 보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일 터였다.
“잘 다녀오거라!”
“연락 잘하고!”
부모님의 인사에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동생의 모습에, 로건은 정말로 달라진 미래를 실감할 수 있었다.
“또 울다니. 허허, 내가 곁에 있잖소. 로니안이 돌아보면 바로 보이겠네. 이래서야 걱정돼서 떠날 수나 있겠소? 사람. 참…….”
패드릭은 자신의 품 안에서 훌쩍이는 아내의 등을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훌쩍. 시끄러워요. 흡. 그래서 안 떠나 주면 저야 더 좋죠, 뭐.”
“다 큰 아이들이오. 원하는 대로 살게 내버려 둡시다. 우리는 우리만 생각해요. 이제는 아이들이 우릴 걱정할 나이요.”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걸 어떡해요.”
“아니, 그렇게 걱정 많은 사람이 정말 전쟁 때 내 걱정은 왜 안 했소?”
“무슨 소리예요, 그건 또?”
메리안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패드릭을 바라보았다.
“왜, 저번에 로니안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다 걱정했죠, 당연히. 당신도, 로건도.”
“아…… 하하. 역시 그렇지?”
“뭐예요? 지금 아들을 질투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건 질투가 아니라…….”
피식.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는 걱정 안 할 거예요.”
눈물을 그친 메리안이 무언가 결심한 듯 굳게 다짐했다.
“음? 그게 또 왜 그렇게 되오?”
“걱정 대신 준비를 할 거예요. 로니안이 언제든 돌아와서 편히 쉴 수 있게.”
“……뭐,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비로소 완전히 안심한 패드릭이 환한 미소로 답했다.
“당신은 영지 일 좀 로건한테 그만 맡기고요.”
“알아서 잘하는데 뭐 어떻소. 당신 말대로 우리는 애들이 필요할 때 쉴 수 있도록 준비나 잘합시다.”
“준비는 내가 한다니까요? 당신은 일하라고요. 로건은 요새도 잠을 통 못 잔다던데.”
“아니, 아예 다 맡긴 건 아니고 그래도 기사단은 내가…….”
투덕거리는 부부의 목소리가 어느새 석양이 저물어 가는 맥라인 성을 고요하게 울릴 때.
‘이 모든 걸 지키기 위해 확실하게 준비해야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은 로건은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 * *
“형님도 참…….”
로니안은 저물어 가는 석양을 보며 다시금 헛웃음을 흘렸다.
선 채로 고문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용병 얘기를 몇 시간이나 들은 건가.
모두 자신을 위한 걱정이라는 것은 알지만, 아무래도 여전히 애 취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강해져서 돌아온다.’
그렇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데, 맥라인 평야가 끝나는 서쪽.
넘어가는 태양을 배경으로 서 있는 푸른 머리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듯 흙먼지가 부옇게 내려앉아 있는 남자의 부츠를 보며 피식 웃은 로니안은 그를 보며 크게 소리쳤다.
“빅토르! 얼마나 기다린 거야? 석상인 줄 알았다!”
가까워지는 인영에, 기다리던 빅토르가 피식 웃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도대체 작별 인사를 몇 시간 동안 한 거냐. 난 내가 날짜를 착각한 줄 알았다.”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반말이 정겹게 느껴졌다.
툭.
서로 주먹을 부딪치고, 그 손을 잡아 어깨를 부딪치고, 자연스레 가벼운 포옹이 이어졌다.
“잘 다녀와라.”
짧은 말이었지만 진득한 진심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로니안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돌아올 때쯤에는 널 한 손으로 상대할 수 있을 거야. 긴장하고 있어.”
로니안의 장난스러운 허세에 피식 웃는 빅토르.
“무사히 돌아오기나 해라. 그럼 성장하지 못했더라도 어떻게든 챙겨는 줄 테니.”
“뭐, 인마?”
웃음기 어린 눈빛이 교차하고, 이내 들판을 울리는 폭소로 이어졌다.
그렇게 영지의 유일한 친구의 배웅을 뒤로한 채, 로니안은 기약 없는 길을 힘차게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