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마나를 움직이면서 괜히 그 마법과 상관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은 집중력을 해치고 마법의 성공을 방해하기에 금기로 여겨진다.
제자들에게도 항상 그렇게 가르쳐 온 클레이튼이었지만, 지금은 신에게 빌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제발…….”
동원하는 마나는 고작 1서클 수준, 그 마나가 주목표로 삼고 있는 금속 역시 평범한 강철.
하지만 그 강철의 주변에 흐르고 있는 푸르스름한 액체는 미스릴과 블랙메탈이라는 희귀한 마법 금속 용액을 농축한 것으로, 실패하게 되면 무려 100만 골드에 가까운 거액이 허공으로 증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이 실험은 대공자에게 부탁해 당겨 받은 천만 골드에 달하는 예산의 나머지 잔고가 모조리 들어간 것.
실패하는 순간 차기 실험도 기약이 없어지는, 살이 떨릴 수밖에 없는 마지막 실험이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천지를 굽어살피는 9대신이시여, 제발 도와주소서!”
마법사 체면이 무색하게 무릎까지 꿇고 신을 찾는 추태를 보였지만, 클레이튼은 그만큼 간절했다.
‘대공자에게 그리 장담을 해 놨는데 또 실패하면 안 돼!’
가문에 면목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마도사로서의 자긍심도 무너질 테니까.
하지만.
신은 그를 외면했다.
푸시식.
부글거리던 특수 용액이 미묘한 소리와 함께 식어 버리는 순간.
“아, 안 돼!”
클레이튼은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 깃든 마나와 특이 성분이 날아가 버린 미스릴과 블랙메탈은 그저 굳어진 잡철일 뿐이었으니까.
“배, 백만 골드. 백만 골드가아아아아!!!”
머리를 움켜쥐고 절규하는 클레이튼의 모습은 실로 처절했다.
마도사 또한 예산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한낱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한 모습.
좌절한 마도사는 제자들이 비명을 듣고 달려와 문을 두드릴 때까지 그 자리에 엎어진 채 일어날 수가 없었고, 그 정신적 데미지를 회복하고 실험을 복기하기 시작하는 것에만 무려 이틀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론은 틀림없다. 분명히 완벽하게 개선했어. 그런데 왜……?”
클레이튼이 로건에게 당당하게 예산을 요구했던 것은 그런 자신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잇따른 몇 번의 실패 끝에 완벽하다고 생각한 이론에 흠결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버린 상황.
어떻게든 개선점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실험을 복기하며 궁리한 끝에 클레이튼은 결정적인 힌트를 찾아냈다.
“그래! 그거야. 거기서 잘못된 거야! 젠장! 그것만 고치면.”
하지만 그것에는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개선점을 찾아서 이론을 증명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을 얻어 내려면 증명부터 해야 한다.’
그 치명적인 아이러니.
게다가 그는 이틀 전 마지막 남은 예산을 허공에 증발시킨 후였다.
“빌어먹을! 이런 등신 같은 놈! 좀 남겨 놨어야지. 계속 실패해 놓고서는 왜 마지막 실험이 될 거라고 확신한 거야! 으으!!”
머리를 두드리며 며칠 전의 자신을 수도 없이 원망해 봤지만.
‘어? 나 이 상황 전에도 겪은 것 같은데? 뭐지? 나한테 예지력이 있었나?’
기시감이 생길 정도로 반복되어 온 일상이라는 자각은 그의 드높은 자부심에 막혀 표면으로 떠오르지 못했다.
“돈, 돈이 필요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솔직히 돈을 받은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안면에 철판을 깔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연구…… 아니 영지의 발전을 위해서.
‘그래. 이게 다 영지를 위해서야.’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난 클레이튼은 결연한 각오를 담아 관저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로건 앞에서 다소곳이 손을 모으곤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천만 골드를 두 달도 안 돼서 다 쓰셨다고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감정이 듬뿍 실린 음성.
누가 들어도 어이없는 소리니 저런 감정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말을 듣는 당사자가 자신이라는 점.
클레이튼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수그러드는 고개를 억지로 치켜들며 최대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실험에 작은, 아주 작은 착오가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쪼그라든 가슴을 애써 펴 보이며 두 눈에 힘을 줘 봤지만, 대공자의 차갑게 식은 눈빛은 이미 도박에 빠진 중독자를 보는 시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저, 정말로 확실한 개선점을 찾았습니다. 실험 비용도 줄일 수 있고, 성공만 하면 투자한 비용 정도야 푼돈으로 여길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연구입니다. 공자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강력한 호소가 통한 것일까.
“그래요, 알죠. 충분히 알고는 있는데, 이게 지금 예산이……. 허허.”
흔들리는 대공자의 눈빛.
기회다 싶은 클레이튼이 다시 열변을 토해 냈다.
“마탑 제자들도 여섯 명이나 더 늘었습니다. 주신 예산으로 재능을 테스트하는 마법진도 많이 만들었고요. 설령 실험에 실패한다 해도, 새로운 제자들이 어느 정도 마법사로서 자질을 갖추면 영지의 각종 공사에 동원하는 것만으로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저희 학파의 공사 실력은 대공자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자들 고생 안 시키겠다고 저희 영지에 오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푸욱.
자비 없이 양심을 깊게 찌르는 비수에 클레이튼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 그게 공사하면서 마법과 골렘을 동시 운용하고 한계에 도전하면서 제자들도 발전을…….”
구질구질하고 구차한 변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후안 더글라스가 죽고 난 뒤 왕국 유일의 마도사가 된 클레이튼은 이미 예산의 노예가 된 지 오래였다.
“됐습니다.”
쾅!
강하게 책상을 두드리는 손길에 클레이튼의 눈빛이 흐려졌다.
“대, 대공자님…….”
그런데 이어지는 단호한 대답의 내용은 예상외였다.
“여유 자금이 생기는 대로 다시 마탑에 지원하겠습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요.”
“저, 정말입니까?”
“예. 정말입니다.”
“아아아! 대공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클레이튼을 보며 로건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저 양반도 생긴 거와 달리 꽤 순수하다니까.’
그 연구에 대한 실험비는 세세한 내역이 작성되고 있었고, 쓸데없이 빼돌리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했다.
더구나 그 연구 자체가 자신이 크라우네의 일지를 주면서 부탁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느새 푹 빠져 버려서 오히려 역으로 부탁을 하고 있으니.
마도사씩이나 된 인물의 그 순진한 모습이 기꺼워 뼈아픈 비용 소모에 대한 아픔도 조금은 잊히는 듯했다.
게다가 어차피 클레이튼을 만나려고도 했었다.
“클레이튼 님, 실험을 잠시 안 하신다면 시간 여유가 좀 있으시죠?”
“예? 아, 예. 제자 선발이야 기존 제자들이 알아서 하고 있으니 저야 뭐…….”
“잘 됐습니다. 예산이 다시 마련되기 전까지 저와 어디 좀 함께 다녀오시죠.”
“예? 어딜요?”
“혹시 타렌 지방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예. 가문에서 새로 받은 영지라는 것은 들었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클레이튼을 본 로건이 웃으며 말했다.
“거기에 갈 겁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말입니다만, 대지 지반 아래 깊숙한 곳까지 탐색 마법 가능하시죠?”
“예? 그야 당연하죠. 제가 이래 봬도 대지 계열 마도사가 아닙니까.”
“그럼 됐습니다. 하마르도 같이 갈 테니 즉시 준비해 주십시오.”
“……지금 바로요?”
“예.”
예산 받기 싫어?
로건이 은근한 협박이 담긴 눈빛을 쏘아 주는 순간.
“물론 가야죠.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클레이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로건은 곧바로 공방에 들러 142번째 느와르의 눈을 조각하고 있던 하마르를 끌고 나와 말에 실었다.
* * *
“누구는 허락을 구하고, 누구는 그냥 냅다 납치하고. 이거 원 서러워서……. 사람이 이렇게 차별 대우를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불만이 있으면 툴툴거리는 거야 인지상정이라지만, 같은 말을 3일 내내 늘어놓는 것은 어찌 보면 재주라고 할 만했다.
녀석이 타고 있는 조랑말의 귀가 축 늘어진 것이 어쩌면 저 말의 홍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 정도.
‘참 한결같아. 아주…….’
그러면서도 왠지 밉지 않은 드워프라, 로건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새 일거리를 던져 준 뒤에나 주려 했던 포상을 조금 일찍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하마르. 이리 와 봐.”
“넵. 즉시 대령하였습니다. 제가 무슨 힘이 있어서 거부하겠습니까. 까라면 까야죠.”
다각다각 다가오는 조랑말.
아니꼬운 기색이 가득한 하마르를 보며 웃음을 참은 로건은 준비했던 마법 계약서를 꺼내 흔들었다.
“이거 기억하지?”
그러자 하마르의 표정이 더욱더 일그러졌다.
“예, 예.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팍팍하게 기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 녀석의 기분이 안 좋을수록 이 선물을 받고 난 뒤의 심정 변화가 더욱 극적일 것 같아, 로건은 조금 더 뜸을 들였다.
“지난 전쟁에서 얻은 게 많은데, 그 가장 큰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자네한테는 해 준 게 없더라고. 뭐, 자네가 큰 부귀영화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고…….”
“……?”
무언가를 느낀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조금씩 변하는 하마르의 표정.
로건은 그 표정을 은근히 즐기며 계약서를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래서 이 노예 계약서를 선물로 줄까 해. 바로 이 자리에서 폐기…….”
그리고 손에 힘을 주는데.
파악!
“안돼!! 동작 그만!! 주인, 그 손 그냥 둬! 어어! 힘주지 마! 씁! 지금 뭐 하는 거요, 이게?!”
조랑말의 안장을 밟고 점프한 드워프가 로건의 두 손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너야말로 뭐 하는 거냐?”
기껏 자유를 주겠다는데?
어처구니가 없어 바라보는데.
“이, 이건 20년…… 아니지, 이제 16년 뒤 내 자유를 보장하는 계약서인데 누구 마음대로 찢어? 찢길?!”
“뭐? 아니, 그러니까 16년 뒤가 아니라 지금 자유를 주겠다고…….”
“주인 이거 찢고 나면 그냥 무기한으로 부려먹을 거잖아! 나 안 놔줄 거잖아! 다 안다고!!”
거의 울먹이면서 소리를 지르는 드워프의 얼굴을 보며 로건은 멍하니 손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약속한다니까. 내 목표만 이루면…….”
“그 목표가 뭔데?”
“…….”
“거봐 말 못 하잖아! 안 놔주려는 수작이지, 이거?!”
사람의 호의를 어찌 이런 악의로 받아들일까.
로건은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새겨지는 것을 느끼며 드워프를 째려보았다.
“그, 그렇게 노려봐도 절대 안 돼! 이, 이 약속만큼은 어기게 둘 수 없어!”
“나 나름대로 약속 잘 지키지 않았냐?”
“허?”
그 말에 일그러지는 하마르의 표정.
몇 가지 떠오르는 일들이 있어서 살짝 양심이 찔려 왔지만, 로건은 뻔뻔하게 철판을 깔았다.
“왜? 뭐?”
“……악마의 종자 같으니라고. 아무튼, 이건 양보 못 해!”
“그, 그래. 네가 쭉 가지고 있어. 뭐, 그렇게라도 선물이 된다면 좋은 거지. 허허.”
선물을 주려다 마음의 상처만 입은 로건이 허탈한 마음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양심상 그냥 넘어가기도 찜찜했다.
“당사자가 보상을 원치 않으니 그럼 이걸 어쩐다……. 인간이면 돈이나 지위를 약속하면 되는데 드워프는 부귀영화에도 관심이 없을 테고, 미스릴이라도 잔뜩 사다 줄까?”
그 말에 하마르가 또 한 번 경기를 일으켰다.
“어떤 개 쌍놈의 새끼가 드워프가 무기 만드는 데서 낭만을 느낀다고 한 건지……! 내가 그놈 잡으면 주둥아리를 확 찢어 버릴 거요! 끔찍한 소리 하지도 마시오.”
“룩스가 울겠네.”
우웅.
정말 말을 들은 것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허리춤에 걸린 애검 룩스가 정말로 살짝 떠는 듯했다.
그에 저도 슬쩍 찔린 것이 있는지 하마르가 로건의 허리춤을 보며 연신 헛기침을 했다.
“뭐, 가끔 룩스처럼 작품이다 싶은 거 만들 때는 좋기도 하고 그렇지만……. 아무튼! 일반적으로는 절대 아니오!”
너무나도 단호한 태도.
그에 로건이 쓴웃음을 저으며 고개를 젓는데.
“그리고 대체 누가 드워프는 부귀영화를 싫어한다고 했소? 나는 주인의 그 우리 종족에 관한 상식이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하오. 도대체 어떤 놈이 주인한테 그런 이상한 상식들을 주입한 건지 정말, 아으으!”
“뭐?”
“나도 맨날 맥주 마시고 고기 뜯고 배 뚜드리면서 뒹굴뒹굴하고 싶다고!! 남들한테 이래라저래라 일만 시키고 호통치고 싶다고! 나 일하기 싫다고! 부귀영화 누리고 싶다고!!”
급기야 땅바닥을 구르며 시위하는 하마르를 달래기 위해, 로건은 실로 많은 것을 약속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