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자극이 된다. 자극이 돼. 확실히 명상 수련만이 답은 아니었어.’
기사들의 원망 어린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로건은 그보다는 진동하는 심장의 코어에 온통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파혼 사건 이후, 로건은 매일 밤 명상 수련으로 잠을 대신했다.
포스유저 수준을 넘어선 육체를 억지로 단련하는 것보다 그것이 효율적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것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고, 이제는 작은 피로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고행의 순간, 포스코어는 급속도로 힘을 쏟아 내고 회복하기를 반복하며 명상 수련 때보다 확연히 선명해지고 있었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피곤했지만, 실시간으로 발전하는 포스코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번질 뿐이었다.
그렇기에 로건은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었다.
“평상시에도 이런 훈련을 받는 기사들이니 강할 수밖에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로건은 본인의 감상에 더해 다분히 접대용 멘트를 섞은 것뿐이었지만, 그 말로 인해 헤인켈과 기사들의 퇴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하, 하하. 그렇지요. 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헤인켈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은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미친…….’
‘어우, 저 독한 놈. 우릴 얼마나 엿 먹이려고.’
‘대체 왜 온 거야.’
‘이 미친놈아!’
‘제발 꺼져 줘!’
덕분에 로건의 본래 의도와는 정반대로, 그를 향한 기사들의 원망은 깊어져만 갔다.
그날의 두 번째 훈련은 절벽 등반이었고, 기사들 절반이 쓰러짐으로써 맥라인 기사단의 당일 훈련은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지쳐 널브러진 기사들이 무언의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로건은 연신 아쉬운 표정으로 헤인켈의 어깨를 두드렸다.
“앞으로도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 단장님.”
진정으로 하는 칭찬이었지만, 왜인지 헤인켈의 표정은 우울하기만 했다.
해가 지고 나서야 남쪽 별장으로 돌아온 로건은 자신의 방이 아닌 야산으로 향했다.
포스코어 덕분에 체력이 금세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정신적인 피곤함은 별개의 것이었다.
사람의 정신력도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거늘, 로건은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피곤하지가 않았다.
‘이것도 아마…….’
우웅.
자신 덕분이라는 듯 존재감을 뽐내는 포스코어를 느끼며 미소를 지은 로건은 아무도 찾지 않는 으슥한 산등성이에 도착해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흐릿한 황금빛이 손에 쥔 장검에 어렴풋이 맺혔다.
그 빛을 흐뭇하게 내려다보던 로건이 이내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가볍게 휘둘러 보았을 뿐인데도 검이 대기를 가르며 강렬한 충격파를 만들어 낸다.
고작 1성의 포스코어지만, 그것만으로도 중급기사 수준에 근접하는 힘을 보여 준다.
신체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 사물에 그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포스유저 중급의 경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검에 기운을 흘려 보내는 데 성공했으니 시간만 지나면 중급의 경지에 자연스럽게 도달할 듯했다.
전신에 충만하게 느껴지는 진화한 포스의 힘. 힘의 증폭과 넘치는 치유력은 전생에 터득했던 단순한 포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하급기사라면 일개 조도 혼자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수준으로도 이 정도이니, 2성만 이루어도…….’
어쩌면 아버지 패드릭 맥라인과 같은 상급기사에 준하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기세만으로 적을 억압할 수 있는 강력한 힘. 그 경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손이 부르르 떨렸다.
만약 영지전 이전에 그가 한 단계만 더 성장할 수 있다면, 자신의 무력 자체가 전쟁의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석궁기마대 못지않은 강력한 변수가.
“그러니 노력해야지.”
두 눈을 빛낸 로건은 한동안 치열하게 검을 휘두르다 밤이 깊어진 한참 뒤에서야 산에서 내려갔다.
* * *
그날 이후 로건의 일과는 거의 일정하게 돌아갔다.
기사단의 훈련에 충실히 참여하고, 저녁 시간에는 피곤함도 모른 채 홀로 수련에 매진했다.
그러다 며칠 간격으로 하마르의 진척 상황과 용병대의 훈련 상황을 확인했다.
로니안의 검술 훈련이나 빅토르의 상태를 종종 살펴보는 것은 덤이었다.
물론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훈련의 성과와는 달리, 다른 일에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밖에 못 해? 고작 이게 네 최선이야? 그럼 다 집어치워! 그냥 칼이나 만들래?!”
던져진 석궁과 카트리지가 벽에 부딪혀 나뒹굴었다.
그것을 보는 하마르의 얼굴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주, 주인. 이것은 기존의 석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연사력과 사정거리…….”
“내가 주문한 연사는? 이거 하나 밖에 안 나가는데? 그리고 탄창은? 누가 일체형 필요하대?”
“하, 하지만…….”
“아, 이런. 미안하군. 내가 말을 너무 막 했어.”
“그, 그렇다! 아무리 주인이라도 장인의 자존심을…….”
“정말 이게 네 최선이라면 어쩔 수 없지 뭐.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에휴, 고작 이거 보려고 내가 그 거금을 썼던가…….”
면전에 대고 들으라는 듯 내뱉는 로건의 한탄에 하마르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끄으응…… 일주일. 일주일 안에 다시 만들어 오겠소이다.”
콰직!
결국 스스로 만든 물건을 부숴 버린 드워프가 씩씩거리며 로건의 방을 나섰다.
방문이 닫힌 뒤에야 로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갈구면 엄청난 게 나오겠는데? 역시 드워프야.”
하마르가 들었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만한 말이었다.
* * * 2주 뒤.
다다다다다.
들판을 울리며 달리는 수백의 군마들, 그 위의 기수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사냥꾼들이나 사용하는 석궁이 들려 있었다.
“들어!”
말을 달리면서도 기수들은 일제히 석궁을 들어 한 곳을 겨냥했다.
“쏴!”
샤샤샥.
312명의 기수가 동시에 쏘아 낸 석궁용 화살이 들판을 가로질러 질주하고 있던 한 무리의 크롤 떼를 덮쳤다.
캬아아아악!
불쾌한 비명과 함께 하이에나를 닮은 최하급 몬스터, 크롤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일제 사격 한 번으로 100마리는 넘을 듯한 크롤 무리의 절반 이상을 잡은 것이다.
캬아아악!
눈이 벌게진 크롤 떼가 돌진해 오는데도 기마병들은 응전하지 않고 전장을 우회하며 놈들을 피했다.
다다다다.
한참 후, 몬스터 무리가 쫓다 지칠 때가 되어서야 방향을 돌린 기마부대가 다시금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결과는 섬멸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던 로건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않았다.
“역시 이걸로는 무리인가. 얼마 남지도 않은 잔챙이들을 잡는데 무슨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려.”
“로건 님. 이게 석궁의 한계입니다. 진지하게 쓸 만한 전력을 원하시면 차라리 궁기병 쪽으로…….”
“됐어. 충분해.”
“예?”
“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확인했고, 사격 솜씨도 훈련 기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아. 수고했어. 그리고 조금 더 수고해 줘.”
“아, 예. 저야 뭐 돈 받고 하는 일입니다만.”
로건의 치하에도 카이의 얼굴은 떨떠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아닌 어느 누가 보더라도 지금 용병대가 보여 준 모습에 만족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신뢰도 높은 A급 용병이었고, 많은 보수를 받는 만큼 양심이 찔리기도 한 것이다.
‘진짜 병정놀이인 건가. 헷갈리는군.’
그의 궁금증이 풀리려면 아직도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또다시 이 주의 시간이 흘렀다.
“주인님! 완성했습니다! 완성했어요!”
별장의 구석에 마련된 공방에서 하마르가 자신의 팔만 한, 짤막한 석궁을 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로건을 맞이했다.
“그래, 들었으니까 왔지. 확인해 보자고.”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로건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석궁이 완성됐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하마르가 들고 있는 석궁의 모습이 그가 기대했던 모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저렇게 작아?’
모든 무기가 그렇지만 작으면 작을수록 그 활용도는 떨어졌다.
그중에서도 활이나 석궁 같은 활줄의 장력을 이용하는 사출 무기는 그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위력이 약했다.
그러니 로건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하. 그 표정, 이 크기 때문이죠? 걱정하지 마시길. 주인이 말한 것보다 오히려 성능은 좋을 테니까요.”
표정의 의미를 눈치챈 하마르가 오히려 호언장담하며 그의 손을 이끌었다.
그리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올라간 야산의 한 공터에서, 로건은 ‘진심인 드워프’가 만들어 낸 작품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현생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팅!
슈슉.
파바박.
장전했던 현이 튀어 나가는 단 한 번의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볼트(석궁용 화살)가 허공을 갈랐다.
시위를 떠난 볼트는 무려 300m가 넘는 거리를 순식간에 가로질러 과녁에 꼬리조차 보이지 않게 깊숙이 박혔다.
로건의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는 위력이었다.
보통 석궁의 유효사거리는 잘해야 150m 남짓이었다.
그런데 크기도 반밖에 되지 않는 석궁이 그 두 배가 넘는 사거리에 두 발을 동시에 꽂았다.
팅!
슈슉.
파바박.
더구나 5초도 되지 않아 똑같은 광경이 또 벌어졌다.
두 개의 석궁을 쏜 것이 아니었다.
하마르가 석궁 옆의 작은 트리거를 당기자, 자동으로 볼트가 장전되었다.
그 속도가 불과 5초밖에 되지 않은 것이었다.
“에헴, 어떻습니까? 최초 요구보다 발사체는 한 발 적지만 이건 한 손에 들기도 편하고 그럼 탄창을 갈기에도…….”
하마르가 젠체하며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지만, 로건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기억하는 제국의 최종 버전보다 유효사거리는 떨어지지만 기마병을 위해서라면 훨씬 나아.’
자신이 준비한 무기 중 하나가 예상보다 월등한 성능으로 완성되었다. 게다가 전생에 영지전이 벌어졌던 때는 아직도 반년이 남아있었다.
갑자기 땅딸막한 하마르의 모습이 어떤 보석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서 로건은 침을 튀겨 가며 무기의 우수함을 설명하는 늙은 드워프를 서슴없이 껴안고 헹가래를 칠 수 있었다.
“으하하하하하! 잘했어! 잘했다, 하마르! 드워프 만세! 아니 하마르 만세다!”
언제나 가슴 한편을 채우고 있는 근심이 이 순간만큼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정작 하마르는 끝까지 즐거울 수가 없었다.
* * *
“몇 개요?”
“넉넉하게 400명분.”
“400개…… 이런 씨벌…….”
울상인 드워프를 보면서도 로건은 전혀 개의치 않고 물었다.
“언제까지 되겠어?”
이것이 완성만 된다면 그가 그리는 미래에 큰 도움이 되었다.
“넉넉하게 6개월…….”
“2개월 안에 다 준비해 줘. 가능하지?”
단숨에 요구 기간을 삼 분의 일로 줄여 버리는 폭거에, 하마르는 그대로 뒤로 드러누웠다.
“안 해! 아니, 못합니다! 그건 절대 안 돼요.”
“최선을 다해도 안 된다는 거야?”
“절대 무립니다! 제조 과정을 생각이나 해 보셨습니까? 시제품 볼트를 사서 길이를 줄이는 것만 해도 손이 가는 게 얼마인데…….”
“그래서 필요한 게 뭐야?”
“절 도울 기술자가 적어도 다섯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로건의 안색이 굳었다.
“이 무기에 대한 비밀이 유출될 수도 있어. 그건 안돼.”
“그럼 하는 수 없지요. 뭐, 6개월 기다리시던가.”
“끄응.”
이번엔 로건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마르가 처음으로 역전된 상황에 미소짓는데,
“기술자 다섯 구해 주면, 두 달 안에 끝낼 수 있어?”
“그것도 힘듭니다. 적어도 서너 달은 되어야…….”
“힘들다는 건, 가능하긴 하다는 거네?”
“……헉.”
역전된 상황은 그저 그 한순간뿐이었다.
“확실히 말해. 가능하지? ‘최선’을 다하면?”
“으으으.”
“된다는 거지?”
“이런 씨…….”
드워프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계약을 했고, 로건의 다그침에는 자비가 없었다.
“으아악! 그래! 됩니다, 돼요! 할 수 있어요. 망할, 내가 왜 그런 조건으로 계약을 해서…….”
하마르의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로건은 흡족한 표정으로 작업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