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로건, 클레이튼, 하마르.
이 단출한 세 일행이 타렌 지방에 도착한 것은 맥라인 타운을 출발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휘이이잉.
“진짜 아무것도 없네.”
하마르의 말대로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메마른 땅뿐이었다.
“주인, 우리 여기 뭐 하러 온 거요?”
“좀 더 가 보면 알아. 네가 원하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줄 것이 저 너머에 있다.”
“설마 이 황무지에 대공방을 짓겠다는 건……?”
대공방.
로건이 하마르에게 약속한 부귀영화의 근간.
수백, 수천의 장인을 모아서 물품을 생산하게 만들고 그 책임자로 하마르를 앉히겠다는 약속이었다.
“당연히 아니지. 이 황무지를 지나면 나오는 광산 지대, 그곳이 진짜 공방을 지을 곳이다.”
로건의 대답에 하마르가 한껏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얼굴이 실망으로 일그러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데서 뭘 한다고?”
“말했잖아. 지금은 폐광산들뿐이라고. 그래도 한때는 왕국 최고의 광업 도시가 있던 자리야.”
“그…… 정말 흔적만 있군. 젠장.”
하마르의 시선이 산맥 아래, 언젠가 성이 있었던 것 같은 흔적만 남아 있는 자리를 지나 숲 자체가 깎여 나가 암벽의 깊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산등성이로 향했다.
타렌 지방의 ‘폐’ 광산 지대.
성이 있던 터에서 사방으로 이어지는 돌길조차 사이사이로 듬성듬성 자라난 잡초들 덕분에 간신히 흔적만 보이는 곳.
2백 년 전까지만 해도 왕실의 재정을 절반 이상 담당했던 광업 도시가 몰락한 흔적은 이처럼 황폐했다.
“폐광산들이라면 이미 더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버린 땅일 텐데, 왕국에서도 찾지 못한 것을 주인이 찾았다는 말이오?”
“찾았다는 게 아니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때 맥라인 금광처럼.”
그 말에 당시의 고단했던 생활을 떠올린 하마르의 안색이 확 굳어질 때.
여전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클레이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공자님?”
그에 로건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하마르가 소리를 지르며 끼어들었다.
“예전처럼 그냥 있으니까 파라는 둥 대책 없는 소리 할 거면 이번에는 진짜 안 하오! 그거 진짜 사람, 아니 드워프 잡는 짓이란 말이오! 폐광산의 광맥이라면 이미 다른 이들이 조사할 만큼 다 해 봤을 텐데……!”
“있으니까 파라고 할 거였으면 그때처럼 페일이랑 광부들도 다 데려왔겠지.”
로건의 지체 없는 답변에 하마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번엔 나도 정확한 위치 특정을 못 해서 다 찾아본 다음에 파야 해.”
그것은 사전 개고생을 훨씬 많이 해야 한다는 예고일 뿐이었다.
“……나 안 해! 아니 못 해! 갱도가 몇 개나 있을지 모르는 폐 광맥 아래 막장까지 내려가서 일일이 조사하라고?! 절대 못 해!!”
“아니, 그게 아니라…….”
“갱도가 무너져 있지만 않아도 다행일 판에, 더구나 주인 말에 따르면 폐광산이 한두 개도 아니라며!”
정확히는 철광 다섯 개, 금광 두 개, 구리 광산 세 개가 존재하던 대광맥이었다.
그 말은 각 광산의 갱도가 열 개씩만 된다 해도 100개의 갱도를 조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최소 30년 넘게 파 내려갔을 테니 갱도 하나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를 광산들을.
그것도 남들이 다 조사한 뒤 얻을 게 없다고 이미 결론까지 내린 갱도를.
하나 로건 역시 그렇게 막막하기 그지없는 막노동을 주문할 생각은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렇게 고생할 필요는 없어. 그럴 거면 정말 인원을 대대적으로 끌고 왔지, 이렇게 단출하게 왔겠어?”
다행히 그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까.
“우리에겐 이제 왕국 유일의 마도사가 된, 특히나 ‘대지’ 계열의 마도사인 클레이튼 님이 있잖아.”
마치 숨겨 뒀던 선물을 내보이듯 뒤를 향해 두 팔을 벌리는 로건의 뒤에서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클레이튼.
그에 하마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그러니까 광부나 인간들을 왕창 동원하는 대신에 저 마법사 양반을 써먹겠다는 거요?”
“그렇지.”
“……저 양반은 대체 무슨 죄를 지은 거요? 응? 물어나 봅시다.”
“글쎄. 한 천만 골드쯤 날려 먹은 죄?”
“뭐요?! 진짜 죄지은 거였소? 마법사 양반?!”
놀라서 눈이 두 배로 커진 하마르의 물음에, 지은 죄(?) 때문에 아무런 반발도 할 수 없었던 클레이튼은 그저 억지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그 역시 사전에 로건에게 들은 것이 있기에 일단 노력은 해 볼 생각이었다.
다만 그 진실성이 조금 의심되기는 했다.
“공자님. 어째서 이 폐광산들 아래에 그것…… 마정석 광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것도 확률이 꽤 높다면서요?”
클레이튼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추었다.
클레이튼이 그토록 조심스러운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마정석 광맥.
그 말에 하마르가 입을 벌렸다.
“마, 마정석?!”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하마르 역시 이내 몸을 잔득 움츠리며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마법사가 마법을 쓸 때나 아티팩트, 스크롤 혹은 통신용 수정구를 만들 때.
그 모든 경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소모품인 마정석.
그 때문에 마정석 광산은 그 강력했던 제국에서도 국가 기밀로 처리, 운영했다.
단순한 경제적 가치만 따져 봐도 같은 규모의 금광에 수십 배에 달하는 엄청난 자원이었다.
“마정석 광맥이 묻혀 있단 말이오? 여기에?”
하마르는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파던 광맥 아래에 마정석 광맥이 있는데 국가에서 그런 걸 모르고 넘어갔을 리가 있나?”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그래서 전생에 제국이 다른 곳도 아닌 이곳에서 마정석 광산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거고.
“모르고 넘어갔더라고.”
로건이 어깨를 으쓱했지만, 불신의 시선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생에 들었거든. 요새를 만들어 놓고 광산 지대 전체를 철저히 감시하는 통에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지만.’이라고 고백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미리 준비해 둔 핑계를 꺼내 들었다.
정확히는 전생의 그란디아 해방 전선에서 조사 끝에 추론해 냈던 결과를.
“200년 전 폐위된 왕세자가 자료를 조작한 것 같아. 자신을 밟고 왕이 될 자신의 형제를 엿 먹이고 싶었나 보더라고.”
“……그걸 공자님이 어찌 아셨습니까?”
“저번에 왕실에 있을 때 우연히 찾았어.”
“…….”
“…….”
너무나도 거짓말 같았지만, 왕실에서 찾았다는데 뭐라고 할 것인가.
왕궁에 들어가 확인해 볼 것도 아니고.
거기에 로건이 신뢰성을 부여하는 정보를 더했다.
“여기 갱도가 총 120개 정도 된다는데, 그중에 한 곳에서 마법 반응이 왔다나 봐. 막장으로부터도 100m나 더 밑에서 반응이 나온 거라 뒤늦게 발견된 거고.”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의 두 사람을 본 로건이 설명을 이어 갔다.
“하지만 개발을 착수하기도 전에 왕실이 뒤집혔고, 마침 막 폐광을 논의하던 시기라 그대로 그 갱도를 무너트리고 자료는 파기해 버린 거지. 나는 우연히 그 파기된 자료를 발견한 거고. 그러니까 무너진 갱도를 찾으면 될 거야. 쉽겠지?”
로건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설득력은 있었지만, 하마르는 중대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주인. 이백 년 전이라고 하지 않았소……?”
“응.”
“그런데 여지껏 안 무너지고 버틴 갱도가 있을 것 같소?! 더구나 그 시절 인간들 기술로?!”
“……그, 그런가?”
로건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순간, 하마르의 눈이 뒤집혔다.
“결국 다 뒤지라는 거 아냐! 이 인간아!! 사람 안 데려온 거, 그냥 나 개고생시키려고 그러는 거지?! 엉?! 부귀영화는 무슨 부귀영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휘이이잉.
부글부글 끓는 청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듯 느닷없이 찬바람이 불어닥치고.
“염병할…….”
점잖은 클레이튼의 입에서도 결국 욕설이 튀어나왔다.
로건은 그런 그들을 달래기 위해 한참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러니까, 우리끼리 광맥의 존재를 확인한 다음에 그 광맥을 중심으로 채굴 방향성과 광산 재건설 방향을 정하자?”
“그다음에 대량의 인원을 투입해서 광산을 파고 동시에 요새화, 도시화 작업을 시작해서 맥라인에 넘쳐 나는 유민들을 주민으로 영입하고, 또 그 광산을 중심으로 대공방을 만들겠다? 우리가 이해한 것이 맞습니까, 공자?”
옛 성터에 임시로 만들어 낸 막사 안.
로건이 꺼낸 주제에 관해 토론하던 드워프와 마도사의 눈빛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정확해. 왕실에는 폐광산을 되살린다는 명분을 대면 될 테고, 어쩌면 개발 지원을 받을 수도 있겠지. 뭐, 안 받아도 상관없고.”
“그럴듯한 계획이기는 하군요. 다만…….”
“나와 저 마법사 양반이 한동안 개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지.”
말을 하는 하마르와 클레이튼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인원을 왕창 투입해서…….”
“갱도 막장에서 100m 아래 광맥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런 장비를 대여하려면? 혹은 만들려면? 누구나 저기에 뭐가 있나 보다 생각하지 않을까?”
“돈도 많은 양반이…….”
“시끄러워! 이 일은 무조건 기밀 유지가 최우선이야. 최소한 개발 전까지, 가능하면 개발 후에도 최대한 오랫동안 아무도 모르도록!”
후자는 사실상 상상에 불과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로건은 이 마정석 광산에 대한 기대가 컸다.
금광이 맥라인을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만들었다면, 마정석 광산은 이 왕국 전체의 경제적 사정을 호전시킬 만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정석 광산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그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대륙사에 흔할 정도였다.
‘제국의 침략을 오히려 앞당기는 짓이 될지도 모르지만,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어.’
전쟁도 결국 돈이었다.
이 개발로 얻게 될 경제적 이득이면 맥라인의 군대를 넘어 왕국의 군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만약 클레이튼에게 부탁한 그 연구가 성공적으로 완성된다면, 이 마정석 광산은 단순히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을 넘어서 왕국 전체의 전력을 향상시킬 새로운 무구의 생산 기지가 될 수도 있다.
제국 전쟁을 막아 내기 위한, 나아가 이겨 내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마정석 광맥을 찾아내고, 비밀리에 개발을 시작한다. 지금 우리 움직임은 버려진 영지에 미련이 남아 조사하는 수준으로 보일 거야. 그러니 이때 해내야 해.”
로건은 절대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클레이튼이 없었다면 주의를 끌 각오를 하고 대인원을 동원했겠지만,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아…….”
“젠장…….”
그렇게 한 드워프와 한 마도사의 한숨을 뒤로한 채 작업이 개시되었다.
다행히 클레이튼의 마법은 개고생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탐사 작업의 효율을 극대화해 주었다.
이제는 그의 상징처럼 알려진 마법, 골렘 아미(Golem Army)로 운용 가능한 골렘이 이미 40개체까지 늘어났고, 그 골렘 하나하나가 각기 무서운 속도로 무너진 갱도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불과 사흘 만에 120개의 갱도가 임시로나마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거기다 클레이튼이 지반을 굳히는 마법을 사용하자,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소수의 인원이 갱도의 끝, 막장까지 진입할 수 있는 임시 갱도가 생겨났다.
“정말, 정말 대단합니다, 클레이튼 님!”
로건은 클레이튼을 향해 연신 엄지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예상을 월등히 뛰어넘는 성과.
‘최고의 공사꾼이 마도사가 되니, 역사에 남을 공사꾼이 되어 버렸어…….’
로건이 당사자가 들었다면 경기를 일으킬 생각을 속으로 삼키는데.
하마르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럴 수가! 혼자서 만 명 역할을 하는 막노동꾼이라니! 마법사 양반, 자네 나와 계약하지 않겠나! 대공방에 수석…… 읍! 읍!”
눈이 휘둥그레진 하마르가 로건에게 입이 막혀 발버둥을 치는데.
다행히 클레이튼은 그 말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자부심을 느끼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요. 이게 되는군요…….”
마도사답지 않게 얼굴에 검댕을 묻힌 클레이튼의 모습.
로건은 아무래도 자신이 마도사라는 최고급 인력을 완전한 공사꾼으로 변신시킨 것 같아 양심이 따끔거렸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외면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자, 그럼 하나씩 확인해 봅시다.”
“으아아아! 잠깐! 이럴 거면 난 왜……?!”
하마르를 둘러멘 로건이 앞장서고, 연신 한숨을 내쉬는 마도사가 그 뒤를 따르며 광맥 탐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과 4일 뒤.
이백 년 전엔 철광이었던 어느 광산 갱도의 끝.
그 한쪽 구석에서 하마르가 반쯤 풀린 눈으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잠 좀 자자, 잠 좀. 광산 길 찾는 거 쉬워. 왜 해 보지도 않고 나한테만……. 망할…….”
그 구시렁거림이 조용한 갱도를 울리는데도 나머지 일행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려 82번째 탐사 중인 갱도.
반복되는 일에 지친 클레이튼이 지루하고 피곤한 안색으로 탐지 마법을 발휘했을 때, 그 느낌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던 것이다.
최소한 로건이나 마도사인 클레이튼은 뭔가 다르다는 직감이 들 정도로.
그리고 그 직감은 이내 현실로 증명되었다.
우우우웅.
“마, 맞습니다! 마정석! 광맥이 느껴집니다!”
집니다다다다다.
우르르르릉.
메아리치는 클레이튼의 고함과 함께 갱도가 울리자 하마르가 기겁을 했지만, 클레이튼은 시꺼메진 얼굴로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그 옆에서 비슷한 꼴의 로건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다음 날.
[하룬에서 드워프 있는 대로 다 사들여. 조금쯤 웃돈을 줘도 상관없어. 그리고 모조리 폐광 지대로 보내. 인부들도 모집하고, 병력도 삼 분의 일 정도 이곳으로 보내!]가신 회의에서 미뤄 뒀던 명령을 즉시 실행하라는 통첩.
로건이 보낸 마법 통신이 맥라인 타운의 행정 관저를 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