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로건이 제안을 건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클레이튼은 마탑의 이전을 선언했다.
“왜 또! 설계 다 끝났는데 인제 와서 마탑은 왜 또!! 아으으으!”
한창 공사를 진두지휘하던 한 드워프는 머리를 감싸 쥐었고, 로건은 그 옆에서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도 공방. 크으, 이름만 들어도 멋지다. 생각해 봐. 마탑과 대공방이 연계해서 아티팩트를 찍어 내는 광경을. 그 대공방의 주인이 네가 되는 거야.”
흠칫.
클레이튼의 실험에 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하마르가 솔깃해할 만한 말을 던지고.
“요새화에도 마법 많이 필요하지 않아? 내부에 마법사들이 대량 주둔하면 치안에도 더 좋을 테고.”
“으음, 확실히…….”
현실적인 점도 함께 짚어 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대공방장 하마르 님, 마탑도 있는 전략 도시의 지배자. 어때?”
부귀영화를 원하는 드워프의 음습한 욕망을 자극하는 감언이설까지.
“좋아. 해 보겠소, 주인. 나만 믿으시오! 설계 수정이야 금방이지. 이참에 마탑의 마법까지 고려한 튼튼한 요새 도시를 지어 봅시다!”
야망 넘치는 드워프의 두 눈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힘들어지는 이들도 있었다.
“산등성이 장벽에 발리스타를 대체 왜 설치해?! 누가 산 위로 공성 병기 끌고 오니?”
요새 방벽 설치를 맡은 드워프들도.
“집을 지으랬지, 누가 예술 작품을 만들래?! 그냥 설계도대로 효율적인 집만 똑같이 찍어 내라고!”
도시 설계 담당 드워프들도.
“지지대는 이 정도면 충분해. 흙벽은 다 마법으로 올릴 거니까 이제 마법사들한테 맡기고, 장인들은 세부 물품이나 생산해. 명색이 왕국 최고 광산 도시가 될 건데 주민들도 최소한 철제 도구는 써야지!”
임시 공방에 배치받은 드워프들도.
이상하게 의욕에 차 날뛰는 대장 드워프 때문에 날이 갈수록 눈 밑 그늘이 진해졌다.
20년만 일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열심히 일하려던 드워프들도 이해가 안 갈 수준의 열의.
결국은 신입 드워프들 사이에서 불만에 찬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가 장인이지 도구야?”
“이러다 자유를 얻기도 전에 과로로 죽겠다.”
“공방장은 대체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잠시간의 휴식 시간.
젊은 드워프 셋이 연신 불만을 토해 내는데.
뒤에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왜 열심인지 궁금해?”
“히이익!”
“합!”
“저, 저는 아무 말도…….”
세 드워프가 기겁하여 뒤를 돌아보는데, 정작 그 뒷말의 주인공인 하마르는 그저 싱긋 웃으며 그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도시는 우리 드워프들의 쉼터가 될 거야. 우리 조상들의 자랑이었던 스톰레이지 같은 대도시는 아니더라도, 드워프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만한 대도시. 나는 그것을 만드는 것이 목표거든.”
“자유를 얻는 게 목표가 아니신 겁니까? 해방되어서 산으로…….”
젊은 드워프 중 하나인 검마루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남부 산맥 너머로 사라진 조상님들의 뒤를 따르는 것 말이냐?”
검마루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것은 인간이 장악한 대륙에 남아 노예로 전락한 대부분의 이종족들이 가진 꿈.
산속에 숨어 살던 부족이 아니라 이미 노예가 된 부모 아래 인간사회에서 태어난 검마루조차 단 한 번도 잊어 본 적 없는,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데.
“남부 산맥을 어떻게 넘어갈 생각이냐? 그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남부 산맥 심처에 있다는 전설의 몬스터들한테 걸리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꼴을 당할걸?”
“그거야 말뿐인 거 아니었습니까?”
“그게 정말 말뿐이라면 인간들이 이미 남부 산맥까지 개척했을 거다.”
그 말에 태생부터 인간 사회에서 살아온, 인간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아는 젊은 드워프들이 말을 잃었다.
“나도 젊었을 때는 그랬지만, 남부 산맥에만 들어가면 무슨 조상의 영령이라도 나타나서 도와줄 줄 아는가 본데 절대 아니야.”
“하마르 님, 어찌 그런 말씀을…….”
검마루가 분한 얼굴로 발끈하는데.
하마르는 그것을 무시한 채 태연히 말을 이었다.
“우리가 조상들처럼 대지의 정령을 다루고, 정령의 무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들어가 봤자 몰살이야. 아니면 다시 다른 산속에 숨어 노예 사냥꾼이 찾아오지 않길 바라며 덜덜 떨면서 사는 게 고작이겠지.”
그 매몰찬 단언에 젊은 드워프들의 얼굴이 일제히 어두워졌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진실을 일족의 어른이 눈앞에 들이민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나는 다른 가능성을 찾기로 했다.”
절망을 던져 준 어른이 히죽 웃으며 다른 말을 꺼냈다.
“예?”
“환영 인사 때도 일부 언급했지만, 이곳의 영주는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호의……적이다.”
하마르는 그 말을 하면서 왜인지 몸을 살짝 떨었고,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황급히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 요새 몸살기가 좀 있어서.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흠흠. 나는 그 영주의 호의에 힘입어 이 도시를 우리 드워프들이 마음 놓고 살 만한 대도시로 만들고 싶다.”
“……예?”
“환영 인사 때는 너희처럼 반발이 있을 것을 고려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지만, 발판이 아닌 정착지.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도시의 미래다.”
“하마르 님…….”
“하, 하지만 그게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인간들은 우리를 노예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데…….”
“설령 지금의 영주가 호의적이더라도, 후대의 영주가 그 약속을 뒤집어 버리면 전부 끝장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계약을 해야지.”
“예? 계약……이요?”
“우리가 성과를 보여서 우리의 가치를 증명해 내면 1만 골드짜리 마법 계약서 정도는 쓸 수 있을 거다. 거기에 일정 기간…… 음, 맥라인 기준이라면 20년이 되겠지. 그 기간이 지나면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것을 명시하는 계약을 써넣는 거야. 영주와 영주의 후계자를 상대로, 대대로 말이야.”
“아…….”
하마르의 말에 젊은 드워프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평균 300년의 수명을 가진 드워프에게 20년은 결코 긴 기간이 아니었다.
그것도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기간이라면.
그들이 도착했을 때 하마르가 한 말, 그 20년의 의미가 젊은 드워프들의 가슴에 새롭게 틀어박혔다.
“산속에 숨지 않고 대도시에서 우리가 만든 것들을 정당한 대가를 주고 사용하며 권리를 누리는 삶. 멋지지 않으냐?”
“그, 그렇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저희도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그래. 알아줘서 고맙다.”
하마르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젊은 드워프들을 하나하나 안아 주었다.
그리고.
“우리 동족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조금만 더 애써 다오. 일이 좀 힘들어도.”
“네! 불평해서 죄송합니다, 하마르 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일에 관한 불평은 얼마든지 해도 돼.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지. 그런 건 다 이해할 수 있어. 나를 욕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도 상관없다.”
“아, 아닙니다! 앞으로는 불평 없이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그래. 성과를 내서 그 계약서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예. 계약서를 쓸 때까지!”
젊은 드워프들이 굳은 눈빛으로 맹세했다.
“그래. 앞으로도 힘내 주게.”
다시 한번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돌아서는 하마르.
그는 이제 젊은 드워프들의 눈에 거의 성인처럼 보였다.
그들은 하마르의 거창한 그 꿈이 불과 두 달 전에 급조된 것임을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 자청해서 노예 계약서를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애들이 이제 52명. 조금만 더 힘내자. 대공방장 하마르, 광산 도시 타렌의 지배자!”
야망에 불타는 드워프의 눈빛은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 * *
“주인. 요새의 외곽 요충지 건설은 얼추 끝났고, 인부들이 생활할 집도 완공되었소. 광산 개발 준비 역시 끝나 가오.”
“그래, 수고 많았어. 그럼 이제 광산 쪽은 얼추 손 떼도 되겠네?”
칭찬과 함께 날아온 가벼운 질문.
하지만 오랜 기간 로건을 알아 온 하마르는 그 가벼운 질문 속에 섞인 악의(?)를 느끼고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니오, 주인. 그래도 내가 일일이 감독을 하고 중간 과정을 점검해야…….”
“감독만 하면 된다는 얘기잖아.”
“……으흠. 흠. 그게, 도시 계획이 꽤 대규모고 광맥을 뚫는 길도 깊다 보니 감독만 해도 할 일이 많다는 뜻이었소.”
하마르가 집요하게 그 악의를 피해 보려 했지만.
“감독 정도야 다른 애한테 맡겨. 넌 다른 일도 해야 하니까.”
으득.
“응? 지금 이 갈았어?”
“하하하. 그럴 리가, 주인. 그, 그냥 덧니가 가려워서.”
“그렇지. 우리 대마도 공방의 공방장이 되실 분이 그럴 리가 없지.”
“아하하. 그런데 또 뭘 시키려고……?”
하마르가 떨리는 눈가를 애써 눌러 가며 조심스레 물어보는데, 돌아오는 답이 심상치가 않았다.
“요 앞에 황무지가 좀 있잖아?”
“황무지가 좀? 아…… 3일 동안 걸어도 끝이 안 보이던 그 황무지 말이오?”
또렷이 느껴지기 시작한 묘한 기시감.
불길한 예감에 하마르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응. 그게 남북으로는 조금 더 긴데 말야. 남쪽은 얕은 야산 구릉 뒤로 루터 강 하류가 흐르고, 북쪽은 산맥 뒤로 테논 강이 흐르거든?”
“서, 설마…….”
“산 뚫고 댐 건설할 위치 좀 찾아서 보고해. 수로 팔 인부는 드웨인한테 말해 놓을 테니 알아서 동원하고.”
“그럴 줄 알았다!! 왜?! 왜 또 내가?!”
댐을 시공할 위치를 찾는 데만 밤잠까지 설치며 2주를 끌려다녔고, 금광과 댐 건설을 동시에 감독, 지휘하기 위해 카이솔론 그 저주받은 종자의 말에 실려 하루도 쉬지 못하고 두 곳을 왕복했던 그 악몽 같은 기억.
그 기억이 더욱 확장된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뻥이라고 해 주라, 주인. 엉?!”
하마르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댐 만들어 본 드워프가 너뿐인데 어쩌겠어. 클레이튼 님에게도 말해 놨으니까 마탑에서도 충분히 도와줄 거야. 괜찮지?”
“안 괜찮아! 안 괜찮다고!!”
“그래. 역시 하마르야. 자신감 넘치는 대답, 마음에 들어.”
“드워프가 말을 하면 좀 들어!!”
“일 처리는 전적으로 맡길게. 중간중간 보고는 확실히 하고.”
“지금 나 누구랑 대화하니…….”
“나랑 대화하는 거 아니었어?”
“왜 자기 유리한 말만 듣는 건데?!”
“그래, 혈기 넘쳐서 좋네. 힘내 줘.”
“아아아악! 진짜!!”
쿵.
로건은 하마르의 비명을 뒤로하고 임시로 건설된 집무실의 문을 닫았다.
‘요새 도시 타렌이 완성되고 마정석을 채굴하기 시작하면 이제 돈이 마르지 않는 샘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어. 이제 남은 것은…….’
크라우네의 연구 일지.
아마도 그 안에 있을 저서클 아티팩트 대량 생산의 가능성.
그것은 클레이튼의 성과에 따라 달라질 터였다.
‘최악의 경우는 끝내 재현해 내지 못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해. 그렇다면 이 황무지 개간이 준비의 끝이야.’
마정석 광산 개발과 타렌의 황무지를 개간해 평야를 만드는 것.
그것만 마무리되면 마침내 로건이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계획했던 영지 개발 계획이 전부 실현되는 것이었다.
막대한 식량과 막대한 돈.
그것이 모조리 이루어진다는 가정하에, 이제 남은 것은…….
‘제국에 대한 정보 수집과 왕국 전체의 체질 개선. 특히 군사력.’
4년 전에는 정말 이게 될까 막막하기만 했던 일.
그때 세워 두었던 계획의 9부 능선을 넘었다.
‘조심, 조심. 이럴 때일수록 조금 더 신중히. 토모도 때나 내전 때의 실수를 반복해선 안 돼.’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 미래의 모습에 초조해지는 마음을 애써 다스린 로건이 주먹을 쥐었다.
조금 더 침착하게, 신중하게 진행하자.
마음을 다잡은 로건이 맥라인 영지에 마법 통신을 보냈다.
“데미안 나달을 타렌으로 보내. 아, 아니다. 내가 타운으로 가는 게 낫겠군. 지금 가용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좀 뽑아 놓고.”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또 뭘 하시려고?]“돌아가서 말해 줄게. 일단 준비만 해 둬.”
그렇게 대업을 위한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 가던 그때.
[로건. 가능한 한 빠르게 수도로 올라오거라. 급한 일이 생겼다.]스승으로부터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