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최소한의 호위 기사만 대동하고 급하게 올라온 길.
로건은 수도에 마련된 저택에 들리기도 전에 먼저 스승의 저택으로 향했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암살 미수요?!”
“그래.”
내전이 있기 전, 선왕의 죽음 이후로 유독 많아졌던 스승의 흰머리가 못 본 사이 더욱 늘어난 것 같았다.
그 표정 또한 좋지 않았다.
“일단 외부에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사실을 아는 이들에게 소문 단속을 부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암암리에 소문이 퍼지고 있는 모양이야.”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뜬금없이 암살 시도라니?”
“그러게나 말이다. 거기에 이상한 점도 한둘이 아니다.”
“예?”
천천히 이어진 스승의 설명.
“……일이 그렇게 됐는데, 더욱 큰 문제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증거도, 증인도. 왕실 경비대의 책임자를 국문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 놈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긴 설명에 로건 역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굴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한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군요.”
“그래. 이상하지.”
“대체 이 시국에 그럴 만한 놈들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스승님, 설마 정말 1왕손 파벌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느냐. 설령 그들이 왕을 죽인다 해도 즉위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그 말에 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의 앞에서 대놓고 말하긴 그래서 생략했지만, 무엇보다 그 아비를 죽이고 새로운 왕을 즉위시킨 로건 자신이 절대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올가미에 제 목을 거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그러느니 피가 흐려질 대로 흐려진 방계 왕족을 찾고 말지.’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이라면 모두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럼 역시 그렇게 말씀하신 건…….”
“일단 가상의 적이라도 상정해 놔야 폐하의 분노가 그곳으로 갈 것 아니냐. 그래서 언급한 것뿐이다.”
“막막하군요.”
“그래. 그렇지. 거기다 루이스의 증언도 조금 이상하다.”
“루이스 경이요?”
“그래. 긴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이면, 왕궁 심처에서 이뤄진 습격치고는 상당히 허술했는데 퇴각은 이상할 정도로 철저했다더구나. 냄새가 나지 않느냐?”
“……예. 구린내가 나는군요. 뭘 노린 걸까요.”
스승의 굳은 얼굴을 따라 로건의 표정도 변하는데, 스승이 한숨을 쉬며 말을 더했다.
“어떤 놈들인지, 놈들이 정말 뭘 노린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도 네게는 가장 곤란한 방향으로.”
“……저요?”
“폐하께서 너를 의심하고 계신다.”
“그게 무슨……!!”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게 만드는 말.
“저는 지금의 폐하를 왕위에 올린 사람입니다. 제가 왜 폐하의 목숨을 노리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지.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더구나…….”
“루이스 경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목숨을 노린 수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문제는 루이스의 증언은 그저 의견일 뿐, 객관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야 루이스를 믿지만…….”
“폐하께서는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는 거군요. 하…….”
로건은 당혹스러운 마음에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스승이 말한 급한 일이라는 게 이미 벌어진 암살 미수 사건이 아니라 이 사태를 말하는 것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네 말대로 모두가 다른 배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상급 이상의 포스유저들을 다수 동원했고, 왕궁 심처 경비대의 교대 일정을 마음대로 조작하기까지 했으니 그게 가능한 것은 나 아니면 너라는 것이고.”
“……그래서 폐하께서 저를 지목하신 겁니까?”
“그래. 노골적으로 말씀하신 건 아니지만…… 내게 너를 불러서 대화를 나눠 보라 하시더구나.”
“허어. 이게 무슨…….”
당혹스러운 일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암살 미수 사건보다 이쪽이 더 당황스러웠다.
‘폐하가 대체 왜 나를?’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데, 결국 그것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폐하를 뵈어야겠습니다.”
“대책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냐?”
“일단 왜 저를 의심하시는지부터 알아야 대책을 세우든 말든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알현을 신청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나도 바로 준비하마.”
“예? 왜 스승님이……?”
“너를 제어할 내가 없다면 독대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씀이 있었다.”
“…….”
아연한 마음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왕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았다.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폐하.”
“그래. 오랜만이오, 로건 공.”
정중히, 정석적으로 주고받는 인사.
하지만 국왕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로건을 쏘아보고 있었다.
“최근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탈하시옵니까?”
최대한 정중하게 말을 이어 봤지만.
“이미 이야기도 들었을 테고, 공의 눈으로 이렇게 보고 있으면서 무엇 하러 쓸데없는 말을 하시는 게요.”
왕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스승을 흘깃 보니, 자신을 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괜히 쓸데없는 말 덧붙이지 말라는 뜻 같아, 로건은 말을 돌렸다.
“……무탈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것이 정말 공의 진심이오?”
“예?”
“아쉬운 것이 아닌가 해서 말이오.”
백금발 아래, 시리도록 푸른 눈이 로건을 노려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폐하를 걱정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이오?”
대놓고 자신을 적대하는 왕을 보면서도 로건은 침착하게 반문했다.
“제가 그 사건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신 건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너를 왕위에 올린 사람이 나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러겠어?
그 뜻을 정중하게 포장해 물은 것인데.
왕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대가 영지로 돌아간 이래로 맥라인이 계속해서 병력을 증원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소이다. 심지어 여자들까지 동원하여 군사 훈련을 시킨다고 하던데. 이미 왕국 신하의 정점에 선 그대가 그리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혹시 이 자리를 탐해서 하는 일은 아니오?”
“……예?”
왕의 말에 로건은 얼빠진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당황스러운 깨달음이 로건의 머리를 강타했다.
하지만 거리낄 것이 없는 만큼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사실 저는 몇 년 안에 제국이 저희 왕국을 침략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스승님께도 미리 말씀드린바, 혹시 모를 그 일을 대비하기 위해 병력을 증강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제국의 침략?”
어처구니없다는 눈길이 검공을 향하자.
“사실입니다. 저 역시 서쪽을 예의 주시하며 영지의 병력을 늘리는 중입니다. 거기다 로건은 내전에서 톡톡한 역할을 한 맥라인의 석궁도 이미 저렴한 가격으로 전국에 보급하고 있사옵니다. 모두 왕국을 위해서임을 알아주시기를 부탁드리옵니다.”
검공의 지원 사격에도 로건을 향한 왕의 눈초리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제국이 침략을 준비한다는 증거가 있소이까?”
“……아직은 심증일 뿐이옵니다. 그러나 역사상 제국은 황위 계승전이 끝나 후계가 확립된 후에 주변국을 침략하는 경우가 7할 이상이었사옵니다, 폐하.”
후에 왕을 설득하기 위해 준비했던 말을 이렇게 변명처럼 꺼내 들게 될 줄은 몰랐다.
하나 그럼에도 왕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7할이라. 그래, 참 높은 확률이오. 신하가 계속해서 병력을 끌어모아도 왕이 아무런 말도 못 할 만큼.”
“폐하!”
과하게 비꼬는 어조에 검공이 안색을 굳힌 채 한발 앞으로 나섰다.
“변경백의 역할을 하는 군신들에게 병력의 확충은 왕국법에도 명시된 가문의 재량이옵니다. 맥라인 역시 서남부의 국경을 책임지고 있는 가문으로서 그 도리를 다하고 있는 것뿐이옵니다.”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왕이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한발 물러섰다.
“그래. 내 말이 과했소. 사과하지. 그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짐이 신경이 곤두섰던 것 같소이다.”
그에 검공 역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약주를 좀 줄이심이 어떠시옵니까. 이런 때일수록 더욱 건강에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약주?
로건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왕이 손을 내저었다.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소이다, 대공. 하지만 지금 우리가 나누던 대화는 그런 주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죄송합니다, 폐하.”
스승이 물러서자, 로건이 다시 나섰다.
“미처 폐하의 성심을 고려하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하나 제 마음은 어디까지나 폐하와 왕국을 향해 있음을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렇겠지요. 하…… 내가 과민했던 것 같소이다. 내가 그대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소이까. 내가 누구 덕에 왕이 되었는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왕의 굳은 표정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여전히 나를 의심하고 있어.’
왕위에 올려 주었으니 자신을 향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주리라 생각했는데.
‘3왕자도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었던가.’
성군의 자질을 보인다 생각했던 로저스의 생각지 못한 변화에 로건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굳이 가장 간단하고 빠른 해결책을 찾자면 하나뿐.
“제가 그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킨 놈들을 잡아 폐하 앞에 대령하겠습니다.”
“그래. 그대를 믿겠소이다.”
전혀 신뢰하지 않는 표정으로 믿겠다고 말하는 왕.
그런 왕을 두고 로건은 그저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왕과 로건의 모습을 본 검공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 * *
“폐하. 에스페란자 대공께서 독대를 청하셨습니다.”
“대공이? 독대? 흠……. 그리하라.”
복잡한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놓은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오가 곧바로 물러나고 그 문으로 검공이 들어섰다.
“야심한 시각에 홀로 웬일이십니까, 대공? 아, 이건 일과 후의 작은 낙일 뿐이니 뭐라 하지 마시오.”
왕이 술잔을 가리키며 웃는데.
검공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과분하지만 왕의 스승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로서, 전하의 진심을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내 진심? 그게 무슨 뜻이오?”
“일전의 그 사건, 정말 로건의 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멈칫.
쪼르륵 잔에 따라지던 술이 왕의 손을 타고 흘러넘쳤다.
이내 피식 웃은 왕이 손을 대충 털고는 가득 찬 잔을 들어 올려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흠, 좋군. 대공께서도 한잔하시겠소?”
“저는 괜찮습니다.”
대답을 회피하고 잔을 들어 올리는 왕의 모습에 검공은 정중히 거절의 뜻을 전했다.
“하하. 하여간 정말 고지식한 분이오, 대공은.”
“과찬이십니다.”
“칭찬이 아니오, 하하. 거참, 뭐 그런 면이 공의 매력이겠지요. 그런데 나더러 진정 로건 공을 의심하냐 물으셨소?”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로건 공이 진심으로 그런 마음을 먹었다면 나는 이미 예전에 관짝에 누워 있었겠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지체도 없이 나온 대답에 검공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런데 낮에는 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어려운 이야기라 생각했던 말에는 쉽게 답을 하더니, 그 연유를 묻는 말에는 눈빛이 굳어 선뜻 입을 열지 않는다.
검공은 왕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자 왕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잔에 술을 따르더니, 연달아 석 잔을 들이마셨다.
“폐하. 안주도 없이 그리 술을 드시면 건강에…….”
참고 기다리던 검공이 마지못해 말리려는데.
왕이 불쑥 물었다.
“대공. 대체 이 나라의 진짜 왕이 누굽니까?”
“……예?”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검공이 황당해하는데.
“나요? 로건 공이요? 신하들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로건 공에게 허락을 받겠다고 하고, 그대 역시 나보다는 로건 공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소.”
“폐하.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아니, 이렇게 말하면 이 말도 로건 공의 귀에 들어가려나? 그럼 로건 공은 또 뭐라고 할까요? 응? 궁금하구려.”
상기된 얼굴로 히죽 웃으면서 하는 왕의 반문이 검공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어찌,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피식.
“내가 로건 공을 의심하건 말건, 솔직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이까. 그냥 허수아비 왕의 투정이라 생각하시오. 내 생각 따위 얼마든지 무마할 힘이 있지 않소이까, 그대들에겐.”
“……그렇지 않사옵니다.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폐하이십니다.”
흐린 안색의 검공이 고개를 깊이 숙이면서 한 대답에 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오? 하면 내가 공에게 로건 공을 국정에서 배제하라 이르면 그리하실 겁니까?”
“폐하. 로건은 오직 폐하와 이 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오?”
“예?”
“난 지금 로건 공이 잘하고 못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외다. 그냥 로건 공을 압박하라 이르면 하실 거냐는 말이오. 명색이 내가 왕 아니오?”
“…….”
검공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자, 왕이 실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물러가시오. 난 술이나 한잔 더 해야겠소.”
굳어진 얼굴의 검공이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서자, 왕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또다시 연신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언제나 화끈하고 청량하게 막힌 가슴을 뚫어 주던 술이 오늘따라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왜일까.
와장창.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진 술병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으로 흩어지고, 창밖에 떠오른 달은 구름 사이로 슬그머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