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로건은 왕의 반응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왕이 계속 이렇게 엇나가게 두면 안 돼.’
아직 진정으로 넘어야 할 큰 산이 남아 있었다.
왕국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전심전력으로 부딪쳐야 할 위기가.
그때를 앞두고 내부에서 생긴 분란을 오래 끌 수는 없었다.
‘수작을 부린 놈들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그 각오는 처음부터 장벽에 부딪혔다.
“왕실 마탑주 체이슨 공이 흔적도 못 찾겠다고 하더구나.”
“체이슨 공이라면?”
“위자드 학파 5클래스의 마법사지. 그가 찾지 못한다면 마법으로는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서클 마법사보다 속성 마법이나 전투력은 떨어진다고 해도, 클래스 마법의 효용성은 서클 마법과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5클래스의 마법사라면 비전투적 측면에서는 6서클의 마도사 못지않은 전력.
그가 못 찾는다면 못 찾는 거다.
“우리 에스페란자의 추적자들도, 왕실감찰단도 놈들을 찾지 못했지. 그래서 더욱 내부 인물을 의심한 거고.”
한마디로 단서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수도 근방에 펼쳐진 검문검색도 이제는 의례적일 뿐.
범인을 특정할 근거가 없으니, 수색하는 이들도 그저 수상하다 싶으면 일단 족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수배범들만 몇 체포하게 된 상황.
‘한숨만 나오는군.’
로건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천재가 그 갑갑한 마음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며 영지에 통신을 연결했다.
그런데.
[예? 그런 걸 왜 저에게 물으십니까?]“……뭐?”
[제게 그런 극비 정보를 알려 주시는 건 그만큼 저를 믿으신다는 뜻이겠고,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왕실을 습격한 범인을 잡을 아이디어를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 건지……?]데미안이 정말 당황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읽혔다.
[전 그저 시를 잘 썼다고 뽑힌 행정관일 뿐인데…… 혹시 그놈들이 무슨 시라도 남겨 둔 건가요?]“아…….”
그래. 그랬었다.
이 시점의 데미안 나달은 그냥 집안이 망한 뒤 거둬들인 행정관일 뿐이었다.
‘설마 내가 손을 대지 않은 전생에서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해서 재능을 각성한 걸까?’
그렇다면 자신은 인재를 선점한다는 미명으로 거창한 삽질을 한 게 된다.
지끈.
갑작스레 두통이 몰려왔다.
좀 더 신중해지자고 그렇게 다짐해 놓고서는, 결국 또 전생의 정보를 맹신하며 일반화했다.
최근 모든 일이 잘 풀려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또 방심하여 막연히 데미안에게 맡기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고 있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되면 정보 조직 관련 계획을 기본부터 모두 바꿔야 하니까.
그렇게 속으로 자책하고 있는데.
통신구 속 데미안이 솔깃한 말을 꺼냈다.
[시는 없는가 보군요. 뭐, 그래도 제 의견을 듣고 싶으시다면,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해결책이 있어?!”
[그, 그게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그냥 아이디어 정도인데, 말씀드렸듯이 제가 이런 쪽은 잘 몰라서…….]일순간 솟구쳐 오른 기대는 그보다 빠르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로건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뭐든 좋은 생각이 있으면 일단 말해 봐.”
[음. 일단 전제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들은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라고 가정하면…….]“사실이야.”
[예. 사실이라면, 그놈들 애초에 왕을 죽일 생각이 없었던 거 아닐까요?]“……뭐?”
[예로부터 군주에 대한 암살 시도는 대부분 필사적이었습니다. 목표했던 결과를 이뤄 내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바뀌니까요. 놈들이 정말 폐하를 죽이고자 했다가 실패한 경우라면, 그렇게 깨끗한 뒤처리가 가능할 리 없습니다. 애초에 실패할 경우를 철저히 준비한 것이 아니고서야…….]“아……!!”
뒤통수를 한 대 후려 맞은 듯한 깨달음.
미심쩍다고 느끼면서도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습격에 대한 찜찜함을 데미안이 정확히 해소해 주고 있었다.
“그럼 그놈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 사건으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이 범인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이득을 보는 자가 없으니, 이 사건은 이로 인해 피해를 볼 사람을 노렸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나?”
[예? 그게 무슨……?]통신구를 통해 들려오는 어리둥절한 목소리에, 로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설명했다.
“암살 미수 사건의 배후로 내가 지목되었었어. 나야 상식적으로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폐하의 생각은 또 다른 모양이더라고.”
[아, 왕보다 강한 신하. 그 신하와 왕의 갈등을 노린 것이겠군요. 그러면 설명이 되지요.]“그래서 자네 생각은?”
[예?]다시 한번 멍하니 되묻는 데미안.
하지만 로건의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놈들을 잡을 방법이 있을까?”
[어…… 그게……. 마법 추적도 안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제가 뭘…….]“자네가 놈들에게 지시를 내린 입장이라면 어떻게 도망쳤을까? 그렇게라도 생각해 봐! 자넨 그런 쪽의 전문가였…… 아니, 전문가가 될 재능이 있으니까.”
그란디아 해방 전선이 그 강력한 제국의 전력을 피해 30년 동안이나 투쟁하게 만든 것이 너였다고.
‘전부 도망쳤겠지. 하지만 혹시나 잡을 방법이 있다면 말해 다오, 제발!’
로건이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통신구를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흐음. 저라면요?]잠시 고민하던 데미안은 생각지도 못한 답을 내놓았다.
[저라면 안 도망치죠.]“……뭐?”
[뭐하러 힘 빠지게 움직입니까. 인상착의도 안 들켰다면서요? 마법 추적도 안 되고, 복면만 벗으면 모른다는 거 아닙니까?]“허…….”
[놈들의 관점으로 보면, 수도 근방은 전부 포위망이 펼쳐져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증거를 안 남겼다고 자신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뜻밖의 대답에 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듯해. 하지만 이미 그 직후부터 성문에 마법사들을 배치해서 지나는 이들을 모두 탐색 마법으로 조사하고 있다. 신분이 증명되지 않은 포스유저라면…….”
[초기 대응이 늦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성문은 벗어날 수 있었겠죠.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 해도, 내성이나 외성 번화가에 숨을 수는 없을 겁니다.]“그렇다면…….”
[예. 놈들이 수도 근처에 남아 있다면 가장 확률이 높은 곳은 외성 밖 빈민가일 겁니다.]차분하게 이어진 데미안의 추론에 로건의 입이 벌어졌다.
“……빈민가라고?”
[인구 조사도 안 되는 방치된 지역. 더구나 팔이 잘린 자도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이야 빈민가엔 흔할 테니 숨기도 좋겠죠. 거기 숨어 있다가 그대로 조용해졌을 때 떠나면 아무도 못 찾을 테니까요.]“왕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놈들이 빈민가에 숨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멀찌감치 도망쳤을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은데.
[놈들이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그냥 제 의견일 뿐입니다. 설마 제 말을 정말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는 건 아니겠죠?]“……아니. 그래도 조사해 볼 가치는 있을 것 같아.”
[예? 그렇지만 수도 빈민가에 대한 소문은 저도 들었습니다. 거기에 이름도, 인상착의도 모르는 놈들이 작정하고 숨으면 누가 찾을 수 있겠습니까?]“찾을 수 있는 놈들이 있지.”
고지식한 스승이나 세상의 때를 덜 탄 데미안은 모르는 놈들이.
로건은 그 즉시 녹스를 찾았다.
바로 그 빈민가에 있는 정보 길드를.
“그날을 전후해서 빈민가에 숨어든 이들의 명단……이요?”
“그래.”
로건의 단호한 대답에 거물 손님을 맞이하여 미소 짓던 중년 사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각하. 저희도 각하의 의뢰라면 어떻게든 나서서 해결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아무리 저희라도 빈민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중 한 놈은 외팔이일 거야. 오른팔이 없는.”
“빈민가에 병신이 한둘도 아니고…….”
“안 된다고?”
절그럭.
로건이 내려놓은 금화 주머니에 눈이 돌아간 중년 사내가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시간만 주시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 그란디아 왕국에서 장사하려면 로건 맥라인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그런 상황에 보상까지 확실하니,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저희 지부의 인원을 총동원해서 찾아내겠습니다. 하루만 기다려 주십시오.”
“티가 나서 놈들이 도망가기라도 하면 곤란해.”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중년 사내는 그렇게 장담했고, 머지않아 말한 대로의 결과를 가져왔다.
– 그날 전후로 들어온 외팔이들은 모두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부랑자일 뿐 포스유저는 없는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 아이코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의뢰하신 결과들도 곧 전해 드리겠습니다. 예? 그, 일전에 이름과 인상착의로 의뢰하신 다섯 명 말입니다. 한 명은 전해 드렸는데……. 예, 예. 그 나머지 중 세 명의 흔적은 곧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소속 초인들.’
덤으로 듣게 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의뢰에 관한 생각은 우선 고개를 흔들어 털어 버렸다.
지금은 암살 미수범들을 찾아야 하는 시간.
로건은 녹스가 전해 준 정보를 되새기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녹스가 알려 준 오른팔이 없는 외팔이는 모두 셋.
병력을 동원하는 수단도 생각해 봤지만, 기사단이나 병사들이 몰려드는 순간 빈민가는 아비규환으로 변할 것이고, 그 순간 놈들을 잡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래서 로건은 직접 낡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해가 저물어 가는 빈민가의 골목을 걸었다.
이미 둘은 확인한 상황. 그들은 상이군인 출신의 부랑자들이었다.
이번에도 꽝이면 정말 일찌감치 도망쳤다고 봐야 했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자신이 놈들을 잡을 확률은 없어지는 것일 테고.
내심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옮기던 로건은 이내 한 골목에서 붉은 눈을 빛냈다.
지붕조차 없는 폐허의 한구석에 흩어져 엎드려 있는 부랑자들 셋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구걸하는 여타 부랑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지만…….
로건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찾았다!’
셋 모두가 포스유저.
그것도 상급에 달하는 포스를 무언가 특수한 수단으로 숨기고 있었다.
상급의 포스유저가 마법적인 수단까지 이용해 포스를 숨겼다면 녹스 같은 정보 길드에서도 모를 만했다.
자신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놈들을 단번에 알아보려면 포스유저 최상급의 실력자가 바로 앞에서 살펴보던가, 마법사가 그 셋에게 작정하고 탐색 마법을 걸었어야 했을 테니까.
‘데미안, 이 녀석. 역시…….’
전생의 이블 브레인은 현생에서도 확실히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적들을 찾아낸 통쾌함과 자신이 데리고 있는 인재에 대한 확신.
그것이 로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했다.
물론 심중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골목을 걷는 로건의 발걸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한 푼만…….”
“한 푼만 줍쇼…….”
피부조차 드러나지 않게 넝마로 감싼 손을 내밀고 있었지만, 저 안에 감춰진 손에 두꺼운 굳은살이 가득할 것이라는 데 전 재산을 걸 용의도 있었다.
무엇보다 구걸할 힘도 없다는 듯 쓰러져 있는 한 놈은 오른팔이 없었다.
루이스가 놈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놈에게 입힌 부상.
로건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품 안에서 금화를 꺼내 들었다.
“쯧. 이거나 받으시게들.”
그의 손안에서 반짝이는 금화들.
그것이 의외였는지 구걸하는 이들의 손이 멈칫하는데.
그 순간 던져진 금화들이 그들의 손이 아닌 명치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푸우욱.
“꺼으으.”
“컥!”
외팔이 하나만이 용케도 금화를 피해 날아올랐다.
“적이다!”
대항할 생각도 없이 곧바로 폐허의 지붕을 타고 달아나는 놈.
하지만 그런 빠른 발재간에도 불구하고 로건은 이미 그의 뒤쪽에 서 있었다.
스각.
“악!”
곧바로 휘둘러진 검이 놈의 남은 한쪽 팔까지 잘라 내는 순간.
로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잡았다. 쓰레기들.”
그런데.
“흐. 우, 웃기지 마…….”
부들부들.
픽.
힘없는 웃음과 함께 시꺼멓게 변하는 외팔이, 아니 양팔이 없는 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로건은 표정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털썩.
황급히 붙잡아 보지만, 오히려 놈이 토해 낸 피가 묻은 손에 저릿저릿한 감각이 몰려왔다.
전생의 마지막 무렵에서나 몇 번 느껴 보았던 더러운 감각.
중독.
“젠장!”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뿜어낸 황금빛 포스가 손을 파고들려는 독기를 억지로 몰아냈다.
그리고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지만.
“이런 빌어먹을…….”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던 나머지 두 놈 역시 검게 물든 안색으로 혀를 빼물고 있었다.
“……환장하겠군.”
그날 로건이 얻은 성과는 중독된 시체 셋이 전부.
암살 미수범들의 흔적은 그것으로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