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아레스 제국 특사. 크리스티앙 몰랑 백작 각하 드십니다.
쿠궁.
기사의 외침과 함께 십여 명의 사람들이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검은 머리, 노란 피부의 장년인.
“피부색 좀 봐…….”
“진짜 제국 귀족…….”
검은 머리에 검은 눈, 노란 피부는 제국 황실의 상징.
대륙 사람들 대다수가 가진 흰 피부와 확실히 구별되는 특징으로, 제국의 귀족들은 그런 특징이 두드러질수록 황실과 혈연이 깊은 것으로 생각해 자부심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 들어오는 장년인, 크리스티앙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웅성거리는 대신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의 미소 역시 진해졌다.
“제국의 크리스티앙 몰랑이 그란디아의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무릎을 꿇는 최고의 공경 표시 대신 그저 허리만 숙이는 자세.
타국의 왕에게는 절대 극공경의 예를 취하지 않는다는 제국 귀족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 제국의 사절이 이 먼 곳까진 무슨 일로 왔는가?”
왕은 제국의 사신이 그리 달갑지 않은 듯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신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전하.
그것은 일국의 왕자, 혹은 황제를 모시는 제국의 군왕들에게나 붙는 호칭이었으니까.
제국의 속국이 아닌, 오롯한 주권 국가로서 폐하라는 존칭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그란디아의 왕으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조금 늦었지만 전하의 즉위를 축하드리며, 저희 황제 폐하께서 보내신 선물들을 전달해 드리고자 왔습니다.”
크리스티앙 몰랑의 손짓에 따라 놓이는 물건을 보는 순간, 왕의 얼굴에 떠올랐던 불쾌한 표정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첫 번째 선물은 제국 북부의 극지방에서 십 년에 하나 정도 발견된다는 귀한 영약, 달빛의 정수입니다.”
크리스티앙이 손짓하자 앞으로 나온 시종이 내려놓은 투명한 상자.
그 상자 안에는 작은 포션 병이 있었고, 그 안에 담긴 푸른 액체는 상서로운 빛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달빛의 정수는 이 한 병을 온전히 취하면 20년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천고의 영약입니다. 연금술로도, 마법으로도 제조가 되지 않는 천혜의 보물이지요.”
“오오!”
“저런 귀물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달빛의 정수는 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보물.
제국에서도 귀하게 여겨지는 영약을 타국의 왕에게 선물로 내어놓은 것이었다.
거기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두번째 선물은 제국의 황실 마탑에서 심혈을 다해 만들어 낸 아티팩트, 엘로힘입니다.”
또 다른 시종이 내려놓은 상자 안에는 황금빛의 화려한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무려 5클래스의 아티팩트로,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피로를 풀어 주며 머리를 맑게 해 주는 등의 건강을 보조하는 마법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양식 있는 귀족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저게 무슨 어마어마한 낭비란 말인가.’
7서클, 혹은 7클래스의 대마도사가 극히 희귀한 재료로 드물게 만들어 낼 수 있는 5클래스급 아티팩트를 고작 건강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다니.
하지만 로건은 그 인력 낭비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저 아티팩트의 존재로 인해 자연스레 추론되는 사안 때문에 더욱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저걸 선물을 위해 만들었다면……?’
어느샌가 다시 표정이 굳어진 왕이 그런 로건의 의문을 대신 해결해 주었다.
“제국에 대마도사가 나타난 모양이군. 축하해 줘야 하나.”
흔히 초인으로 분류되는 6서클은 그중에서도 비기너, 익스퍼트, 마스터로 수준이 나뉘었다.
그 단계별 수준차만 해도 마도사의 힘이 천양지차로 달라진다고 알려진 꿈의 경지이자, 거대한 장벽 자체인 것이 바로 6서클.
그것마저도 돌파한 대마도사의 출현이라면 국가적 보물이라 보아도 무방한 인재의 등장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종종 대립해 왔던 인접국에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괴물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아니오나, 저희 황실 마탑 최고 수준의 마법사가 그 바로 아래 단계의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비전을 최근에 완성하였습니다. 덕분에 만들어진 선물입니다.”
크리스티앙의 설명에도 왕의 표정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기존의 아티팩트 제작 공식을 무너트리는 비전이라면, 그것 역시 바로 국력으로 연결되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로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철렁했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아, 맞다. 저런 것도 있었지.’
크리스티앙이 내민 저 선물은 일종의 과시였다.
그가 말한 비전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었지만, 그만큼 필요한 자원의 양도 엄청났기에 실제로 제국에서는 사장된 비술이었다.
전생에서 제국은 저것을 버리고 크라우네의 저가 아티팩트 생산을 통 크게 지원하면서 싸게 사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크라우네의 연구는 내가 일찌감치 빼 왔다. 클레이튼 님이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제국이 써먹을 수는 없을 거야.’
그 생각에 자연스레 미소가 나오는데.
크리스티앙은 흔들리는 귀족들을 보고 웃음을 지으며 세 번째 선물을 소개했다.
“세 번째 선물은 대륙의 눈이라 불리는 다이아몬드입니다. 들어 보신 분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시종이 내려놓은 투명한 상자를 가린 천을 치우자, 주먹만 한 푸른색 보석이 그 아리따운 자태를 드러냈다.
“오오!”
직전의 아티팩트 때와는 달리 대전에서 곧바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30년 전 발견된 대륙 최고의 다이아몬드로, 제국 10대 상인 중 한 명이 광산에서 캐내어 황실에 진상했다는 보물.
당시 그 상인이 추정한 가격이…….
“저게 그 추정가 1억 골드짜리 보석인가.”
“다시는 안 나온다던데. 저걸 선물로……?”
“제국의 황제다운 배포라고 해야 할지…….”
주변에서 쏟아지는 탄성을 들으며 미소 지은 크리스티앙 몰랑은 다시 한번 정중히 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께서는 그란디아 왕국과 제국 간의 우호가 영원하길 바라시며 다이아몬드를, 새로 즉위하신 전하께서 오래도록 평화롭게 왕국을 다스리시라는 뜻에서 영약과 아티팩트를 선물로 하사하셨습니다. 부디 전하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사라는 단어가 크게 걸리지도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선물.
왕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귀한 선물에 감사하며, 본국 역시 귀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를 바라네. 그나저나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를 해야 할 텐데…….”
곤란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는 왕. 시선을 마주친 검공과 로건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데.
“아, 황제 폐하께서는 답례까지 바라지는 않으셨습니다. 다만 선물과 상관없이 최근 왕국의 우환을 수습한 젊은 영웅, 로건 맥라인 백작을 한번 황도로 초청하고 싶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분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만.”
‘뭐?!’
갑작스러운 날벼락.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설 뻔한 로건은 제게로 모여드는 시선을 느끼고서 애써 놀란 마음을 다스렸다.
‘황제가 나를?’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일에 분주히 머리를 굴리는데.
“특사가 그리 말하는데, 다녀오시는 게 좋지 않겠소? 두 나라의 우의를 위해서라도 말이오.”
왕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로건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태도와는 다르게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다 마주친 왕의 눈은 분명히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순간적으로 제국의 특사 소식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과 예상치 못한 이 상황이 전부 왕의 수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로건은 곧바로 그 의심을 접었다.
‘제국 황실이 왕의 장단에 맞춰 준다고? 그럴 리가 없지. 반대라면 모를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그거대로 최악의 사태지만.
“아, 저분이 그 젊은 영웅이시군요. 어떠십니까. 황제 폐하의 초청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설마 거절하겠냐는 뜻을 담은 자신만만한 물음.
그 넘치는 자신감은 그럴 만한 것이었다.
그로선 로건이 초대를 거절할 경우 뒤따를 황제의 분노, 양국의 관계 악화 등은 젊은 백작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것이리라 생각할 테니까.
게다가 빨라질 전쟁의 시기 등 혹시나 생겨날 최악의 연쇄 작용은 정말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까진 생각하지 않더라도.
‘황제를 한번 만나 보고 싶다.’
전생의 그란디아 해방 전선이 노리던 주적.
그럼에도 전생에서는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다.
그가 황제일 때도, 물러나 상황의 지위를 가진 채 칩거할 때도.
제국 전쟁을 일으키고 왕국을 점령한 정복자.
한 번쯤은 그를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그게 하필 지금이라는 것이 문제긴 했지만.
“……받아들이겠습니다.”
로건은 한숨을 내쉬며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황제 폐하를 뵙는 만큼, 저도 따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시간을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실까 봐 너그러우신 폐하께서 날짜를 넉넉히 잡으셨습니다. 내년에 황도 아세리안에서 봄맞이 축제가 시작될 때, 그 시기에 맞춰서 오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말에 로건의 안색이 절로 굳어졌다.
‘벌써 날짜도 정해 놨다?’
왕국에서 제국의 수도 아세리안까지는 천천히 간다면 편도로만 거의 3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올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 시기.
서둘러 말을 달릴 것을 고려해도 로건에게 남은 기간은 고작 한두 달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 준비하겠습니다.”
사실상의 항복 선언에 크리스티앙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자, 이제 특사 크리스티앙 백작의 환영 파티를 준비하라. 양국의 우의를 위해 각부서의 대신들은 필히 참석하기를 바란다.”
뿌듯한 미소를 지은 왕의 선언과 함께 대전에서의 행사가 끝났다.
“여기 황제 폐하의 초청장입니다.”
환영 파티가 시작되기 전, 크리스티앙 백작이 화려한 드래곤 문양이 새겨진 초대장을 로건에게 직접 건넸다.
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황금빛 드래곤 문양.
봉인된 겉표지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몇백 골드는 들었을 듯한 예술적인 세공.
“조금의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 초청장입니다. 황도까지 오실 때, 표지만 내밀어도 제국 전역에서 편의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웃으며 초대장을 건네는 이에게 인상을 찡그리며 답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 파티에서 뵙겠습니다.”
“아, 저는 하루빨리 영지의 일을 정리해야 할 듯해서 파티에서는 뵙지 못할 것 같습니다. 편안히 즐기시길.”
한두 달 안에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당장 파티에 참여해서 웃고 떠들긴 무리였다.
“아. 이런, 아쉽군요. 폐하께서도 인정하신 영웅과의 대화가 이것뿐이라니. 그럼 황도에 오셔서 저를 찾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그날을 기쁘게 기다리겠습니다.”
같은 백작의 작위.
하지만 제국과 왕국의 차이를 생각할 때 크리스티앙의 정중한 태도는 이례적이라 봐야 했다.
황제가 보낸 선물들도 분명 전생에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1왕자든 3왕자든 황제가 그것을 신경 쓸 리는 없으니 역시나 나를 초청한 것과 관계가 있을 텐데.’
이 상황에서 머리를 굴려 봤자 더 떠오를 것도 없었다.
‘우선 처리해야 할 일부터 빨리.’
로건은 크리스티앙 몰랑을 보내고 난 뒤 즉시 스승의 저택으로 향했다.
* * *
“바로 내려가겠다고? 파티에도 참석하지 않고?”
“예. 황제가 허락한 기간이 촉박합니다. 영지에서 해야 할 일도 있구요.”
“허허. 뭘 그리 서두르느냐. 네가 없더라도 될 일은 다 된다.”
“안 되어야 할 일도 되어 버릴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음? 뭐가 그리 불안한 것이냐?”
“스승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없는 동안 폐하를 좀 주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뭐?”
그 말에 웃고 있던 스승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폐하와 화해한 것…… 아니었느냐?”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시해 달라 부탁드리는 겁니다. 물론 저도 나름의 조치를 취해 놓을 겁니다만.”
“허어…….”
제자의 눈을 들여다보던 검공이 이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래. 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구나. 알겠다. 다만, 폐하께서 그 정당한 권력을 행사하시는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다. 그것만 알아 두거라.”
“예? ……아, 예. 제가 걱정하는 것은 폐하께서 저를 과하게 적대하시는 것뿐입니다.”
“그래. 그 정도는 내가 조율해 보마.”
스승의 확언에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그런데 로건. 특사의 태도는 그야말로 우호적이던데, 너는 여전히 제국이 전쟁을 벌일 것으로 생각하느냐?”
“예, 확실합니다.”
“어째서?”
“보낸 선물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선물?”
검공이 의아한 눈으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젊음을 유지하는 영약. 건강을 보조하는 아티팩트. 그리고 황제가 선물했다는 것이 알려져 팔 수도 없는 장식용 보석. 그중에 진정 국력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걸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구나.”
“스승님. 전쟁을 대비하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비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망하겠지. 그래 알겠다. 나도 경계심을 놓지 않으마.”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로건이 인사하고 서둘러 몸을 돌리려는데, 검공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리고 황제의 초청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네가 제국으로 가는 길에 내가 호위를 하나 붙여 주마.”
“예? 제가 무슨 호위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호랑이 아가리로 걸어 들어가는 제자가 걱정되는 스승의 호의로 알거라.”
“예.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보내시려고…….”
“흐흠. 그건 나중의 재미를 위해 비밀로 해 두마.”
빙그레 웃는 스승의 모습이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검공의 저택을 나선 로건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그 즉시 타렌을 향해 말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