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로건이 타렌을 떠난 것이 두 달 전.
급히 되돌아온 타렌은 그사이에 벌써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광대한 황무지 중간중간에 넓은 간격으로 파여 있는 고랑.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말을 타고 빠르게 지나치는 로건을 본체만체하며 자기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보이는 드워프 감독관들만이 빠르게 지나치는 로건의 말을 보며 경례를 하는 꼴이, 어째 인간이 드워프의 노예가 된 것 같은 풍경이라 다소 이질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만큼 또 만족스러운 광경이기도 했다.
드워프의 지시를 받으면서도 인부들이 저리 열심히 일하는 것은 식사나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댐 공사는 아직이겠지만, 뭐 진행은 잘 되는 것 같군.’
맥라인의 황무지보다 훨씬 넓은 면적인 만큼,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 있을 댐의 역할을 할 산들은 굳이 찾아가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럴 시간은 없으니까.’
그렇게 서두르며 말을 달렸지만, 이내 드넓은 황무지를 벗어나면서 산줄기를 둘러싼 거대한 토성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말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우와……!”
동쪽에서 서쪽으로 뿌리를 내린 듯한 모습의 낮은 산줄기들.
그중 마정석 광산을 포함하는 광산 지대의 산줄기를 중심으로 산등성이와 평야, 그리고 산 위까지 둘러쳐진 거대한 성벽.
로건이 떠나 있던 사이 어느새 완성된 성벽은 멀리서 보면 산줄기 두 개를 감싸며 이어진 거대한 성처럼 보였다.
틈 하나 보이지 않는 매끈한 성벽들은 불규칙한 지대의 높이와 지반에도 불구하고 정밀하게 이어져 있었고.
절대로 올라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돌이나 흙이 아닌 뾰족하고 살벌한 철창들이 성벽의 치(雉 : 성벽 위로 돌출된 부분)를 대신하고 있었다.
꾸준하게 그 철책을 관리해 줄 수 있는 재료와 인력이 상시 보급 가능한, 광산 도시만이 세울 수 있는 철창의 성벽.
그 위에는 촘촘한 간격으로 늘어선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고, 일정 거리마다 기사의 갑옷도 보였다.
그야말로 요새가 세워진 것이다.
‘반년도 안 되어서 말이야.’
드워프의 기술과 마법의 합작.
다시금 체감한 그 환상의 콜라보에 로건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공자님이다!”
“대공자님이 돌아오셨다!”
왕국 최대의 귀족답지 않게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로건에 대한 소문은 이미 영지 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초인도 쓰러트린 로건에게 안전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이는 없었으니까.
덕분에 병사들은 한 기의 말로 홀로 달려오는 로건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쿠궁.
어떤 성보다 더 깊고 넓어 보이는 해자 위로 철목과 강철로 이루어진 성문이 내려앉자, 그 뒤쪽에 거꾸로 박힌 강철 철창이 촘촘히 연결되어 문을 이룬, 또 하나의 문이 도르래에 말려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성문은 내가 주문한 대로 완성되었고.’
맥라인 타운보다도 몇 배가 큰 이 요새 도시 타렌의 성문은 고작 하나, 바로 지금 그가 들어서는 서문이 유일했다.
로건은 성문이 하나인 만큼 더욱 튼튼하고 난공불락으로 만들라고 요구했고, 드워프와 마법사들은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낸 것 같았다.
‘훌륭해.’
해자의 가교가 된 성문을 밟고 들어서자 30여 미터 간격으로 설치된, 아직은 올라가지 않은 또 하나의 철창문을 보며 로건이 내심 박수를 치고 있을 때.
그 앞에서 익숙한 얼굴의 덩치 큰 기사가 그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공자님.”
“핸더슨. 자네가 직접 왔나?”
“예. 디그롬 단장은 타운에 남아야 하니까요.”
“그래. 경비 태세는…… 부탁한 대로군. 좋아.”
성문 안에서 직접 방문객을 상대하는 기사단 1개 조(6명)와 병사 30명.
그리고 이중으로 된 철창문 밖에 대기 중인 나머지 2개 조의 기사와 100명의 병사, 그 사이에는 골렘 마탑의 수제자 그릭의 얼굴도 보였다.
왕궁의 정문보다 더욱 철저한 경비 태세.
“어쩌면 앞으로는 이곳이 타운보다 더 중요해질 수도 있어. 알고 있겠지?”
“예, 공자님.”
“그래. 계속 수고해 주게.”
그그그긍.
핸더슨의 신호와 더불어 두 번째 철창문이 올라가자 대기하고 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일제히 로건에게 경례를 보냈고, 그 와중에 그릭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자님.”
“그래. 골렘 마탑의 제자들은 다 옮겨 온 건가?”
“아직은 아닙니다. 저와 에난만 선발대 격으로 먼저 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마탑 건설이 완료되지 않아서 스승님이 애쓰고 계시지요. 말씀하신 대공방도 같이 만들어야 해서요.”
그릭이 가리키는 곳, 요새 도시의 한가운데에는 막 여섯 번째 층이 올라가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마치 연결된 건물인 듯 그 바로 옆에 건설되고 있는 넓고 거대한 3층 건물도.
새로운 마탑과 대공방.
상상만 해 오던 건물들이 거의 완공되어 가는 모습에, 로건의 얼굴엔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 온전히 그 성과를 즐기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기에, 로건은 바로 책임자의 행방을 물었다.
“하마르는?”
“아마 공방에 계실 겁니다. 밤낮으로 거기 살고 계셔서.”
“그래, 알겠다. 수고해.”
유일한 성문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성안의 광경도 기대 이상.
불규칙한 지대임에도 자로 잰 듯 동일한 규격으로 이어져 있는 수많은 집과 거리.
그리고 명확하게 구분된 십자 형태의 거리와 골목길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대부분의 발길이 광산을 향해 있는 것을 보니, 마정석 채굴까지도 그리 긴 기간이 남은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이야.’
수도에서 생긴 변수로 인해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정화되는 느낌.
몇 가지만 더 확인하고 나면 모조리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단기간에 이런 엄청난 일들을 해낸 만큼, 사소한 부작용은 있었다.
“공방장님! 대공자님이…….”
– 대공자? 염병! 또 뭐! 또 시킬 거 있대?! 나 없다고 해!! 씨…….
대공방의 안쪽, 내부에 지어진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자마자 안쪽에서 발작적으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에 붉은 수염의 드워프가 몸을 부르르 떨며 로건의 눈치를 보았지만, 로건은 부드럽게 웃어넘길 뿐이었다.
“괜찮다. 고생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오는 과정에 보았던 성과만 해도 하마르의 짜증 정도는 충분히 웃어넘겨 줄 수 있었다.
쾅!
“하마르, 오랜만이야.”
문을 부순 것은 그냥 그가 안 열어 줬기 때문일 뿐.
절대 일 잘한 하마르를 압박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를 본 하마르가 경기를 일으켰다.
딸꾹.
“아, 하하. 주인, 끅! 수도에 안 있고, 끅! 왜 여기! 끅!”
턱 끝까지 내려올 것 같은 얼굴 그늘에 푸석푸석해진 피부,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이 누가 봐도 과로를 한 티가 역력했다.
“타박할 생각 없으니 경과보고나 해. 열심히 했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끅?!”
그 말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하마르의 눈이 두 배로 커지며 딸꾹질이 멈췄다.
“……진짜?”
“그래. 잘했다고. 하지만 확실한 상황을 듣고 싶다. 낭비할 시간 없으니 빨리!”
“정말로 진짜? 주인이?!”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의심의 기색이 역력한 눈빛에 무의식적으로 이가 갈렸다.
“……쥐어짜 줄까?”
“아, 아니. 그럴 리가. 자, 잠시만. 여, 여기쯤 정리해 둔 자료가 있었는데.”
흉흉한 눈빛에 담긴 진심을 읽었는지 하마르가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서류를 찾았다.
찾아낸 서류를 로건에게 건넨 하마르가 요약 설명을 덧붙였다.
“요새 성벽 건설은 99% 완료. 지금은 주민보다 병력이 더 많이 들어온 상태라 치안도 완벽하오. 마정석 광산은 이제 시추를 시작했소이다, 주인.”
“시추? 결과는?”
“품질은 최상. 매장량은 주인이 말한 기준으로 채굴해도 최소 30년 이상은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로건의 주먹이 저절로 불끈 쥐어졌다.
좋아!!
“그럼 정식 채굴 작업은 언제부터?”
“마법사 양반의 도움을 받아도 최소 석 달은 더 걸릴 거요. 워낙 깊은 곳부터 시작해야 해서.”
거기까지는 예상했던 바다.
“황무지 개간은?”
“워낙 넓은 만큼 물길을 끌어오는 일이 맥라인 때보다 배는 힘들 것 같아 댐 설계에 만전을 기했소. 그래서 좀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얼마나 늦어지는데?”
“적어도 내년 초여름에는 개간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소.”
하아아.
다행히 준비했던 모든 것이 순조롭게, 아니 생각보다 더 빠르게 준비되고 있었다.
뜻밖의 제국행이라는 난관을 앞에 두고 무거워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로건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하마르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말, 정말 잘했어, 하마르.”
“……왜, 왜 그러는데 또. 불안하게.”
하마르의 떨떠름한 표정도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내가 좀 멀리 갔다 와야 하는데, 꽤 오래 자리를 비울 수도 있어. 혹여나 일정에 지장이 생기더라도 계획한 일은 그대로 진행해야 해.”
“그, 그거야 당연하지. 그런데 주인, 어딜 가는데?”
“제국.”
“제국?!”
그 말에 눈이 동그래진 하마르를 보며 로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일이 있어. 아무튼, 일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해. 알겠지?”
“아, 알았다. 주인.”
“그래. 그렇게만 되면 내가 없더라도 네게 약속한 모든 것이 이뤄질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 줘.”
“……뭘 또 그런 말까지. 빨리 돌아와서 직접 해 주라고.”
뻘쭘한 표정의 하마르가 고개를 돌리며 하는 말에, 로건은 그저 피식 웃음으로 답했다.
“그래. 그러자.”
로건은 하마르의 어깨를 다시 한번 두드려 준 뒤 곧바로 공사 중인 마탑으로 향했다.
“아, 대공자님. 수도에서 돌아오셨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니까 여기 왔겠죠. 하하.”
로건을 보며 눈을 크게 뜨던 클레이튼은 자문자답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골렘들을 움직이며 마탑 공사의 마무리를 다지는 모습이 이제는 익숙하기만 했다.
“고비는 넘겼습니다만, 다른 문제가 생겼네요. 그나저나 연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예? 아, 그거야 마정석을 대체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몇 가지 실험만 거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비슷한 말을 전에도 종종 들은 것 같습니다만.”
로건이 실눈을 뜨며 미심쩍게 쳐다보자, 클레이튼이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하. 하하하. 이번에는 진짜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마도사의 그 순진한 모습에 로건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늘 믿고 있습니다. 이 도시도 이렇게까지 빠르게 완성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애 많이 쓰셨습니다.”
“……하하.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말씀드린 대로, 마정석 채굴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마탑에 물량을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굳이 실험 예산을 돈으로 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마정석이 곧 돈이다. 그것도 막대한 돈.
클레이튼은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물론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만약 그 연구가 완성되면 아티팩트 생산 단가를 어디까지 낮출 수 있을까요?”
“1클래스는 추정 단가 천 골드 이내, 2클래스의 아티팩트도 3천 골드 이내로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로건이 헛숨을 삼켰다.
크게는 천분의 일, 적어도 수백분의 일로의 가격 절감.
가격 자체도 예상보다 더욱 저렴했지만, 기존 방식으로는 아티팩트 제작에 들어가는 재료가 희귀하여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실질적인 효율성은 그보다 훨씬 클 것이다.
‘기사들에게 2클래스 강화 마법만 적용되어도 전투력이 2할은 증가할 거야.’
얼마의 돈을 투자하더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할 연구였다.
“언제쯤이면 연구가 완성될 것 같습니까?”
“빠르면 두 달 안에도…….”
“빠르면이 아니라 최악으로 가정한다면요?”
“……흐, 흠. 그래도 반년에서 1년 안에는 결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번이고 실패를 거듭해 온 마도사가 이를 질끈 물며 대답했다.
처음 대답보다 확연하게 늘어난 기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아니, 조금 늦어져도 괜찮습니다. 완벽하게만 성공해 주시면 됩니다.”
“……반드시 약속한 기간 내에 해내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더욱 좋지요. 다른 지원이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아, 제가 없더라도 드웨인에게 지원 요청을 하시면 될 겁니다.”
“……어디 가십니까?”
“본의 아니게 자리를 비워야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예?”
쓴웃음을 지은 로건은 어리둥절한 마도사를 남겨 놓고 그 즉시 마탑을 돌아 나왔다.
‘아직 사람이 모자라. 타운에 있는 공방도 아예 이곳으로 옮기는 게 낫겠어. 인부들도 더 보내고.’
다행히 타렌에서 부족한 점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다.
로건은 다시금 미래의 발판이 될 요새 도시, 타렌을 꼼꼼하게 훑어본 뒤 곧바로 다시 말을 돌렸다.
제국으로 가기 전 마지막 준비를 하려면 잠깐의 시간도 낭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