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대공자님이시다!!”
“공자님이 돌아오셨다!”
맥라인 타운의 환대는 타렌보다 더했다.
곧 새해가 시작되기에 수확 철부터 거의 네다섯 달 동안 타운을 떠나 있었던 로건이 해가 지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 모양새가 되었으니까.
로건은 그 모든 환대에 미소만으로 답해 주고는 곧바로 관저로 내달렸다.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숨넘어가겠습니다. 영주님께 인사도 안 하시고 오셨다던데요?”
오랜만에 본 드웨인이 너털웃음과 함께 로건 앞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급해. 앞으로 한 반년은 또 자리를 비워야 하니, 그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가야지.”
“예?”
“아. 아직 소식이 안 들어왔나? 그런 게 있어. 나중에 말해 줄 테니 일단 보고부터.”
드웨인은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이내 자세를 가다듬었다.
“흠. 흠. 일단 궁금해하실 것 같아 로니안 공자님의 행방부터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금 제국 남부에서 로안이라는 이름으로 용병을 하고 있는데…….”
“호오……?”
드웨인의 보고는 길었지만, 동생은 생각보다 용병의 삶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기겁하시겠지만…… 좋은 선택이다, 로니.’
남부 산맥의 탐사 용병이 된 것은 그 위험성을 제외하면, 아니 그 위험성만큼 성장하기엔 좋은 선택이었다.
인간과의 전투가 아닌 마물과의 전투는 로니안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줄 테니까.
“절대 너무 깊게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당부해. 꼭!”
“그, 그게…… 이미 영주님께서 그리하셨습니다. 마님이 한 번 기절하시는 바람에.”
저런, 이미 들으셨구나.
작게 한숨을 내쉰 로건은 이어서 맥라인 상단의 상행 결과에 대한 보고도 받았다.
“……거기까지가 상단이 해 온 결과물이구요. 생각보다 이윤을 꽤 남겼습니다. 다만, 지난 반년간의 수익은 상품 재구매와 거래 루트를 뚫고 대도시에 상단 지부를 세우는 데 모조리 다시 사용하겠다고 합니다. 공자님이 허락하신 일이라고…….”
“그래. 당연하지. 그쪽은 보고만 충실히 받아 놔.”
“예. 알겠습니다. 영지 내부의 사정은 서류에 적어 두었습니다. 예산 정리는 끝났고, 남은 예산이 딱 그 정도입니다.”
“……좋아. 관리들 사이에 다른 문제는 없고?”
로건이 과거 귀족 출신 행정관들을 생각하고 물었더니.
“물론입니다. 파비안과 로크만을 위시한 새 관리들 덕분에 예산 정리도 훨씬 빨라졌습니다. 데미안이 공자님이 시키신 일을 한다고 수도로 빠져나간 것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요.”
“……다행이군.”
충실한 가신의 표정은 그때보다는 확연히 밝았다.
억지를 써서 작위를 받아 준 것이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예산 사용처에 대한 세부 내용은…….”
“거기까지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자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으려고.”
“공자님…….”
덩치 큰 행정관이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짓자, 그냥 서류 작업이 싫었을 뿐인 로건이 황급히 말을 돌렸다.
“아, 혹시 아직도 영지에 유민들 들어오나?”
“예. 새롭게 영지가 배분되면서 이전보다야 줄었습니다만, 새로운 영주라고 해도 이전 영주보다 더 낫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에 반해 저희 영지에 관한 소문은 전국에 파다하게 퍼진 상태고…….”
“그래. 그럼 유민들을 타렌 지방으로 보내. 그리고 그중에 열심히 일하고 신원이 확실히 확인된 사람만 타렌 안쪽에 살도록 조정하고. 식량 원조도 한동안은 꾸준히 하고.”
“예. 알겠습니다.”
“타운에 남은 드워프들도 일단 전부 타렌으로 보내. 앞으로 맥라인의 생산품은 전부 타렌에서 나오게 할 테니까. 그에 맞게 인력 배치도 신경 좀 써 주고.”
“예, 그건 이미 조치 중입니다.”
“좋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드웨인. 절대 관둔다는 말 하지 말고.”
“물론입니다, 공자님!”
나이를 먹은 탓인지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고 생각하면서 드웨인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게 행정 관련 보고를 간단하게 마무리한 로건은 가장 마음에 걸리는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행히 그 사람도 그를 찾기 위해 관저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방금까지 훈련을 하다 온 듯 약간 땀에 젖은 붉은 머리칼에 갑옷 차림을 한 여기사가 맞은편에 보였다.
그러자 로건의 입가에 자동으로 미소가 걸렸고, 그것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건 공자! 오셨다는 말 듣고 찾아가는 길이었어요.”
“예. 안 그래도 저도 찾아가려 했습니다.”
“역시…….”
“예?”
“저도 딱 성과 보고를 하고 싶었거든요.”
“……?”
“여군 훈련 상황 점검하시려는 거죠?”
아니, 그건 맞긴 맞는데.
왠지 조금 섭섭……하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건데.
로건은 떨떠름한 감정을 숨기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하하. 예, 맞습니다. 훈련장에서 오는 길이에요?”
“예, 따라오세요. 성과를 보여 드리죠.”
자신만만한 미소에는 자신이 이뤄 낸 성과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환한 미소가 어떤 개인적인 안부 인사보다도 더욱 든든하게 로건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예. 가 봅시다.”
* * * 로건이 훈련장에 도착했을 때는 달리기 훈련의 막바지였다.
가까이 다가가면 오히려 훈련병들의 집중을 해칠까 싶어 멀리서만 지켜보는데, 그것만으로도 변화한 여군들의 모습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악, 하악.”
“10분 휴식 끝. 모두 제자리로!”
“제자리로!”
맥라인 병사들의 기초 훈련 코스라고 할 수 있는 타운 외곽 달리기를 막 끝낸 훈련병들이 교관의 지시에 따라 복창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내 훈련장 구석에 비치된 목창들을 집어 든 훈련병들이 일제히 같은 간격으로 늘어서자마자.
“타아!”
유난히 큰 키가 돋보이는 여자 훈련병의 기합을 중심으로 훈련병들이 일제히 똑같은 동작으로 창을 내밀었다.
아직은 미숙해 보이지만 절도만은 살아 있는 동작.
불과 반년 전에는 오와 열도 제대로 못 맞추던 여자 훈련병들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모습이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232명. 전부 그대로 있네요? 설마 낙오가 한 명도 없었습니까? 정규 훈련을 똑같이 했는데?”
그것이 가장 의외였고, 대단한 점이었다.
아마도 에일렌이 가장 자랑하고 싶었던 부분도 그것이리라.
“예. 단 한 명도.”
대답하는 에일렌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반년간 체력 훈련을 중점적으로 시켰고, 한 달 전부터는 무기술 훈련도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신입 남자 병사들과 비교해 뒤처지는 훈련 속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구요. 재능 있는 인재도 꽤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에일렌은 일에 관해 보고할 때만큼은 깍듯한 자세였다.
“재능 있는?”
“예. 이를테면 저기 가장 앞에 있는 카산드라라는 훈련병 같은 경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근력과 유연성을 타고났습니다. 감각도 뛰어난 게, 어려서부터 검술을 배웠다면 지금쯤 포스유저가 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호오……?”
에일렌의 의견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다시금 그 큰 키의 훈련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로건의 눈이 어느 순간 유난히 커졌다.
“……그리고 에블린이라는 어린 훈련병도 재능은 출중하죠. 그 둘만 보더라도 확실히 여자들도 남자들만큼 할 수 있다는 방증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캐시?”
“예?”
“아, 아니에요. 아는 얼굴 같아서. 착각이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로건은 잘못 본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저 녀석이 지금 왜 여기에……. 허, 참. 이거 재밌군.’
그란디아 왕국 출신으로 제국의 A급 용병까지 올랐던, 그란디아 해방 전선에서도 활약했던 옛 전우의 얼굴.
예상치 못한 만남인 만큼 유난히 반가웠지만, 선뜻 움직이려는 발걸음을 이성이 가로막았다.
‘어차피 지금 캐시는 날 모를 텐데.’
조금 씁쓸한 생각도 들었지만, 로건은 이내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버렸다.
회귀한 덕분에 많은 것을 이뤘다.
그래 놓고 끊어진 인연 한 가닥에 아쉬움을 표하기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다만 그 반응이 에일렌에게는 좀 다르게 와닿았나 보다.
“아는 사람인가요, 공자?”
“아, 아니에요. 다른 사람과 착각한 것 같습니다.”
“흐흠……. 뭐, 그런 거로 하죠.”
그런 거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 건데.
이번 생에는 인연이 없다고.
지난 생에도 그냥 전우…….
“저 훈련병은 제가 특별히 더 신경을 써야겠네요.”
“……예. 확실히 재능 있어 보이긴 합니다.”
“흐음? 이 거리에서 그게 보인다고요?”
로건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에일렌의 눈동자를 애써 외면하며 옛 전우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에일렌은 그런 로건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서는 이후 훈련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까운 시일 내에 훈련이 익숙해지면, 남자 신입 병사들과 대련 훈련도 할 생각입니다.”
“대련 훈련이요?”
“예. 외부에 보이기 위한 거죠. 1기 훈련생들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 지원자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해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대로 실행하죠.”
“예.”
가장 궁금했던, 그리고 가장 걱정스러웠던 여군의 훈련이 기대 이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
홀가분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곧 제국으로 가야 하는데, 적게 잡아도 반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호위 병력이 필요하겠군요. 제가…….”
“아뇨. 에일렌의 실력은 알지만, 여기서 훈련을 맡아 줘야죠. 여군들이 당신을 믿고 있는 게 여기서도 느껴지는데요.”
“위험한 길 아니에요? 그럼 조금이라도 강한 사람이……!”
“절대 위험한 길 아니에요. 어찌 보면 제국 황제가 보증한 길이니까요. 걱정 안 해도 괜찮아요.”
“……정말이죠?”
“네. 무사히 돌아올게요. 가능한 한 빨리요.”
“……믿을게요.”
“네.”
걱정했던 문제도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바에야.
로건은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에일렌의 손을 꽉 잡았다.
풉.
“뭐예요? 그 바보 같은 웃음은?”
“…….”
의도대로 잘 먹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상황을 점검해야 할 것이 어찌 여군뿐일까.
기사단에 관한 건은 아버지에게 일임했다 치더라도 새롭게 늘어난 병사들에 대한 점검도 필요했다.
‘선임 병사들이 타렌으로 많이 가 있을 테니 군기가 빠졌을지도…….’
하지만.
로건이 그런 걱정을 한 게 무색하게, 병사 훈련소에선 더욱 기꺼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각성?”
“예. 공자님이 직접 뽑으신 병사 1기생들 중에서 트레이와 애덤을 비롯한 다섯 명이 포스를 각성했습니다. 현재 수습 기사로 대기 발령 중입니다.”
카이솔론의 대답에 로건의 미소가 짙어졌다.
“4년, 고작 4년 만에?”
“예, 그렇습니다. 공자님의 혜안이 놀라울 뿐입니다.”
아무리 여러 전쟁과 실전이 병사들을 강제로 연마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는 해도, 일반적으로 재능 있는 병사가 기사가 되는 기간의 절반 이상을 단축했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누가 봐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은 아니었으니까.
“바로 가지. 가서 봐야겠어. 일단 병사들도 집합시켜 봐.”
“예!”
각성한 이들을 확인하고, 다시금 당시 뽑은 이들 중 살아남은 이들을 확인한 로건은 만면에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처음 뽑았던 천 명의 병사들 중 살아남은 이들은 5백 명 남짓.
그중에서 백여 명의 병사들이 유의미한 수준의 포스를 내재하고 있었다.
아마도 1, 2년 이내에 그들 중 상당수가 기사급 전력으로 거듭날 것이다.
“좋아! 다들 수고 많았다! 오늘부터 3일간 휴식!”
“우와아아아!”
병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로건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내 떠오른 생각에 다시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제국은 이미 전국에서 그 기준으로 병사를 뽑고 있을 거야. 내가 만든 좀 더 자세한 기준이 있다고는 해도…….’
과연 그것이 제국과의 격차를 유의미하게 줄여 주는 정책이 될 것인가.
물론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우리 영지만으로 안 되면 왕국 전체에 시켜야지.”
“예?”
“아, 아니야. 수고했어, 카이. 보너스는 두둑이 챙겨 주지.”
“감사합니다, 대공자님!”
앞으로 5년.
반드시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다.
‘지금도 생각보다 더 잘되고 있어.’
로건은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금 전의를 불태웠다.
* * *
“돌아오자마자 일이라니, 너도 참…….”
관저로 돌아서는 길에 만난 아버지가 헛웃음으로 그를 환영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아니, 아니다. 그게 다 영지를 위한 일일 텐데. 다만 스스로 몸은 챙겨 가면서 일하거라. 네가 영지의 기둥인데.”
“다행히 유능한 가신들 덕분에 크게 신경 쓸 일은 없는 듯합니다. 생각보다 더 잘되고 있어서 안심이 좀 됩니다.”
“말뜻이 묘하구나. 안심? 무슨 일 있느냐?”
“……소식이 전해졌을 줄 알았는데요?”
어째 영지의 모든 사람이 수도의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새삼 혀를 차는데,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무슨 소식 말이냐?”
“아닙니다. 제가 너무 무심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버지, 저 조만간 제국의 수도에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아버지의 표정이 확 변했다.
“……제국 황제의 초청이라. 그럼 어쩔 수 없겠구나.”
수도에서의 일을 전하자, 아버지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황제의 초청으로 가는 길이니만큼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제국에 가는 일 자체가 위험한 일 아니더냐. 네 말대로라면 제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은 더욱 절 못 건드릴 겁니다. 대놓고 전쟁을 선포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래. 지금 왕국에서 네 위치라면…….”
“다행히 영지 일은 잘 풀리고 있어서 홀가분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구나.”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
하지만 로건은 그런 아버지의 얼굴이 한층 더 무거워질 말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제가 없는 동안 수도의 동향을 확실히 파악해 주셨으면 합니다.”
“수도?”
“예. 특히 폐하의 동향을요.”
“왜,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아무래도 폐하께서 저를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뭐?”
로건이 말을 잇는 동안 아버지의 표정은 예상대로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지만.
로건은 비로소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는 생각에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제국행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 갈 무렵.
갑자기 녹스에서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