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
19화늙은 드워프를 닦달한 지 한 달 반이 지났을 때, 하마르는 기한을 2주나 앞당겨 작업을 완료했다.
무려 여분의 석궁까지 100개를 만들어 낸 그는 드러누워 한동안 파업을 선언했다.
물론 로건은 그것을 흡족하게 받아들였다.
바로 다음 날, 로건은 즉시 용병대를 찾아갔다.
작은 석궁의 모습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던 용병들은 로건의 시연을 본 후엔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오, 대단한데?”
“꽤 멀리 날아가네.”
“연사도 돼. 신기한 석궁일세.”
물론 용병들의 감상은 대부분 그저 그 정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가치를 한 번에 알아본 이도 있었다.
“흐어…….”
카이는 자신이 훈련시킨 이 300명의 기마부대가 저 연사 석궁으로 무장한 모습을 떠올리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장을 초토화할 수 있다.’
저건 미리 알고 대비하지 않으면 기사급도 위험할 수 있는 무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카이는 절로 박수가 나왔다.
“대단합니다. 이걸 염두에 두셨기에 석궁기마병을 말씀하신 거군요.”
효율성이 전혀 없다시피 한 석궁기마병을 요구하면서도 철저한 훈련을 당부할 때부터 느껴지던 괴리감이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그리고 석궁의 뒤에 카트리지, 탄창은 억지로 분해하려 하면 아예 망가지게 설계되었으니 열어 볼 생각도 하지 말라고 전해.”
“……역시, 저런 위력을 낼 무기면 그 구조 역시 복잡하겠군요.”
사실은 그 반대였다. 의외로 단순하기에 부가적인 보안 장치까지 만든 것이다.
‘언젠가는 퍼질 수밖에 없지만, 아직은 유출을 용납할 수 없지.’
적어도 다가올 영지전을 극복하고 세력을 넓힐 때까지는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하마르를 돕기 위해 수배한 장인들 역시 각기 공방에서 자신이 담당한 부품만 만들게 했고, 용병대의 예비용 석궁 이상의 수를 만들 생각도 없었다.
‘영지전을 극복하는 것은 용병대만으로 충분해.’
혹시나 더 공급한다 해도 기사단 정도였다.
‘물론 기사들이 석궁을 쓰려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로건은 피식 웃으며 신무기를 공급할 대상의 선을 정했다.
어차피 일반 병사들에게까지 모두 이 무기를 공급하는 건 시간과 자금 사정 때문에라도 무리였지만, 할 수 있다 해도 유출의 위험이 더 마음에 걸렸다.
‘그러니 용병대의 훈련만 완료되면…….’
사실상 영지전을 위한 물질적 준비는 거의 끝나게 된다.
‘그래, 거의…….’
이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아 있었다.
“확인을 해 봐야지.”
“예?”
“용병대 모두 석궁 장비시키고 출진 준비해. 영지 밖, 남부 산맥의 바로 아래까지 마주치는 모든 몬스터를 청소한다.”
“예? 그건…….”
“저걸 보고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으음.”
산맥 아래의 모든 몬스터라 해 봤자 밀려 내려온 하급 몬스터가 대부분이었다.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할 수도가 아니라, 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예?”
로건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카이가 반문했지만, 그는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가자!”
히이이잉!
신무기를 장착한 용병대가 그 화력을 시험하기 위해 성문을 나섰다.
* * * 두두두두.
용병대가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들판을 질주하자, 100여 마리의 크롤 떼가 그들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방향을 꺾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처리하는 데 한세월이 걸렸던 하급 몬스터 무리였다.
무리를 발견한 카이의 눈이 빛났다.
그러고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더니 이내 손바닥을 쫙 폈다.
그 신호와 동시에 3열 종대로 달리던 용병대가 가로로 쫙 흩어졌다.
“들어! 쏴!”
슈슈슈슉.
어느새 2열 횡대, 지그재그 모양으로 늘어선 용병대가 발사한 화살이 과거에 사용하던 석궁보다 훨씬 조용한 소리를 내며 도망치던 크롤 떼를 덮쳤다.
키에에엑!
한 번의 일제 사격에 100여 마리에 이르던 크롤 떼 대부분이 죽어 나갔다.
소수의 운 좋게 살아남은 녀석들도 곧바로 이어진 2차 사격에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아무리 용병대의 삼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숫자라고는 하나, 한 무리의 몬스터 떼가 전멸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초 남짓이었다.
설령 놈들이 기사단과 만났다 할지라도 이보다는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고무적인 성과에 가장 뒤쪽에서 말을 달리던 로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것은 직접 무기를 사용한 용병 당사자들이었다.
“반동이 거의 없어!”
“사거리도 생각보다 더 긴데?”
“내 건 한 마리 관통하고 두 마리째 머리에 박혔어.”
하지만 그들의 성과는 그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고용주의 닦달과 함께, 용병대는 그 후로 마주치는 모든 몬스터 떼를 말 그대로 쓸어 버리며 남쪽을 향해 질주했다.
들판에 몬스터들의 비명이 연달아 퍼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몬스터들이 용병대가 질주하는 방향을 피해 물결치듯 물러나기 시작했다.
300여 명의 용병대들이 만들어낸 ‘역(逆)’ 몬스터 웨이브가 맥라인 영지 남부의 황무지를 진동시켰다.
“대공자의 용병대다. 성문 열어!”
“저놈들 이 시간까지 뭐 하는 거야?”
“그러게. 남쪽엔 몬스터 때문에 개척 마을도 없는데.”
“쉿. 대공자도 있어.”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갈 무렵, 맥라인 외성벽의 병사들은 뒤늦게 성문의 도르래를 돌리게 만든 용병대를 향해 불평을 터트렸다.
물론 가장 선두에 영지의 대공자가 있었기에 대놓고 불평하지는 못했지만, 그 분위기를 용병대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용병들은 병사들의 반응은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히야, 이게…….”
“너는 이제부터 내 보물 1호다.”
“고장 내면 대장이 우릴 고장 낸다고 했어. 조심해서 다뤄!”
“안 그래도 그러고 있다!”
그저 하나같이 자신이 들고 있는 석궁을 쓰다듬으며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불과 반나절의 사냥, 그것도 하급 몬스터가 대부분이었기에 가치 있는 부산물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 300여 명의 세 배가 넘는 천여 마리의 몬스터를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돌아왔다.
평범한 C급 용병들은 꿈도 꾸지 못할 무력을 갖게 된 것이니, 들뜨는 것이 당연했다.
“이걸 저 대공자가 만들었다는 말이지?”
“바보야. 드워프가 만들었잖아.”
“그 드워프가 대공자 노예잖아.”
“설계도 직접 했다던데.”
“에이, 그건 아니다.”
덕분에 돈 많고 살벌한, 하지만 소문은 좋지 않은 이상한 고용주에 대한 평가가 한없이 상승하고 있었다.
그런 용병들의 가장 앞쪽에 선 중년의 용병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고용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만족하십니까?”
“어느 정도는.”
“예?”
로건의 탐탁지 않은 대답에 더없이 만족하고 있던 카이가 의아한 눈으로 되물었다.
“여전히 기존 석궁을 쓰던 전술이 몸에 배어있어. 한 발 쏘고 전열을 바꿀 필요가 있나? 탄창 바꾸는 속도도 높였으면 좋겠고.”
기다렸다는 듯 바로 나오는 요구사항에 카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화력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고? 도대체 뭘 할 생각인 거야?’
돈 많은 귀족의 특이한 취미 생활이라는 생각은 이제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는 고용주의 태도에 카이는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당연히, 그 마음을 그대로 내비치지는 않았다.
“……신무기에 맞춰서 다시 훈련 시키겠습니다.”
“그래. 조만간 다시 확인하지.”
카이에게 불만 사항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사실 로건은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드워프 하마르가 만들어 낸 석궁은 그의 기대 이상이었고, 그로 인한 용병대의 화력 역시 이미 그가 처음 계획했던 기준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탄창은 몰라도, 석궁을 더 만드는 것도 당장은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연사 석궁의 위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다짜고짜 곧 전쟁이 일어날 테니 병사들에게 이 신무기로 훈련을 시키자고 해도 먹힐 리가 없었다.
미친놈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일까.
‘일단은 내 성장에 집중하자.’
그 과정에서 가문의 주력인 기사단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더욱 좋았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가운데서도 완전히 걱정을 떨칠 수는 없는 로건이 다시금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 * * 시린 겨울이 끝나고 어느덧 불어오는 바람에 온기가 실린 시기가 찾아왔다.
겨우내 가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친 대공자와 천재 이공자의 이야기는 그 후로 미친 대공자가 별다른 이슈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로건의 평판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디서 나온 소문인지는 몰라도 천재인 이공자가 가문을 이어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다.
그러나 오직 한 군데.
기사단에서만큼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와, 진짜 체력 하나는 끝내준다.”
“그러게. 저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은 유전이 아니면 답이 없다.”
“진짜 가주님을 닮았으면 저 괴물 같은 체력만큼 검술도 뛰어날 텐데.”
“그래도 도미넌 건을 보면…….”
“그건 참고가 안 되잖아. 그 노인네 실력이…….”
“그렇지만…….”
“아서라. 각성하기 전 이공자한테도 졌잖아. 너도 봤으면서.”
“그건 확실히…… 크흠, 참 희한하단 말이지. 오로지 체력만 딱! 저럴 수가 있나?”
“저 몸으로 패악질할 시간에 검술 연습을 더 했으면…….”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사단 내부에서는 적어도 대공자가 미쳤다고 말하는 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몇 달간 그들의 훈련에 합류했던 대공자가 보여 준 모습은 꾸준함 그 자체였으니까.
게다가 처음 로건을 쫓아내기 위해 만들었던 훈련인, 말을 둘러맨 채 산길을 질주하는 승마(承馬) 달리기는 이제 기사단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그저 기사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이 괴악한 훈련을 이어 간 것뿐이었지만, 그간 느긋하게 훈련을 해 왔던 하급기사들에게 자극이 되는 것 외에 뜻밖의 효과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푸르륵.
“그래, 그래. 레이, 좀만 더 자라. 곧 끝나.”
기사 핸더슨이 어깨에 멘 자신의 애마를 쓰다듬으며 조심히 말을 건넸다.
그와 비슷한 광경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강제로 약을 먹여 재웠던 말들이 훈련 중 깨어나며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말들이 점차 훈련에 적응하면서 기수인 기사와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기사(Knight)는 곧 기사(騎士).
말은 기사의 전투력을 강화해 주는 또 하나의 무기였다.
실제로 말과 교감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소통이 원활해질수록 기사들의 전투력이 늘어났다.
그것은 단순히 기분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급 이상의 기사들은 포스로 말을 강화하여 속도를 빠르게 하고 체력을 강화하는 기승 스킬을 사용했다.
자신의 말과 친밀할수록 기술의 사용이 한결 효율적이었다.
승마 달리기 훈련 이후로는 하급기사들조차 자신의 애마와 끈끈한 감정의 소통으로 무의식적으로 그 비슷한 흉내를 내고 있었다.
자연스레 경지의 상승을 위한 훈련이 된 것이다.
‘이게 전부 대공자 덕분은 아니지만…….’
헤인켈은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따스한 눈으로 로건을 보고 있었다.
마치 굴러들어 온 복덩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로건이 바란 인식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확실히 긍정적인 변화임은 틀림없었다.
* * * ‘이번엔 될 것 같은데.’
환한 달이 떠오른 밤.
침대에 좌정하고 앉은 로건의 눈에는 옅은 기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몸을 혹사하는 기사단의 훈련과 내부의 의식을 자극하는 명상 수련의 반복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확실한 진전을 가져다주었다.
내면의 의식을 관조할 때마다 포스코어가 성장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포스코어가 꿈틀거릴 때마다 무언가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까지 했다.
로건은 머릿속에 새겨진 책의 지식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럴수록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조급해하지 말고…….’
하지만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조금씩 마음이 동요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의 목표를 생각한다면 개인의 무력을 높이는 것 또한 가문의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기대대로만 진행된다면 그가 가진 무력이 결국 가장 위험한 미래를 바꿀 최대의 변수가 될 테니까.
‘그 괴물들…….’
로건은 전생에 보았던 초인 중의 초인, 오러 마스터와 대마법사들을 떠올렸다.
홀로 전장의 승패를 바꾸고 흐름을 만드는 초인들.
그가 최종적으로 극복해야 할 적 중에는 그런 괴물들도 있었다.
‘내 재능과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한계까지,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해져야 해.’
다행히 그는 신검의 비전이라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아직은 시간이 있었다.
‘내가 한 단계 성장하는 것만으로도 영지전의 승률이 달라진다.’
당장 닥쳐올 위기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웃기게도 미래의 위기를 생각하자 순간적으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제는 익숙해진 명상을 위한 주문을 외우자 로건의 의식은 그의 내부에 자리한 심장의 코어에 집중되었다.
우우웅.
실제로는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을 크기겠지만 로건의 의식 속에서 포스코어는 그의 몸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그것도 오늘따라 유난히.
로건은 본능적으로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번쩍!
로건의 의식이 집중되는 순간 그의 심장 부근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이내 황금빛 포스코어가 자그마한 또 하나의 코어를 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