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4년 전 의뢰하신 다섯 명의 신원 확인 의뢰 관련, 미확인 대상 네 명 중 세 명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아래 첨부한 자료를 보시면……(중략)……. 이상입니다.
– 녹스
“공교롭네…….”
로건은 요즘 따라 한숨 쉴 일이 많다고 생각하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제국과 그란디아의 전력 비대칭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초인의 숫자.
그리고 그 불균형을 더욱 심화하며 과거 그란디아를 완벽한 절망 속에 밀어 넣었던 것이 바로 무소속 초인 다섯과 왕국의 암적인 존재였던 귀족 학살자 빅토르였다.
그중 빅토르는 자신의 휘하에 들어왔고 웬만한 초인 두셋 이상의 파급력을 자랑했던 아티팩트 마스터, 학살의 마도사 크라우네는 죽었다.
심지어 그 연구 결과도 손에 넣었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초인들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둔다면 그들은 5년 뒤 다시 제국 측 용병으로 나서 왕국을 침략하게 될 테니까.
‘특히나 반 조니 이 자식은 반드시 죽여야 해.’
꾸깃.
로건은 녹스의 편지를 구겨 버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무소속 초인들은 제국 전쟁 당시 갓 초인이 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제국 황실에서 뒤늦게 접촉하여 용병이 된 것이기도 했고.
‘지금은 초인이 아닐 확률이 훨씬 높을 테니 처리하려면 지금이 딱인데.’
빠를수록 좋은 일.
당장 이 건부터 처리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쿵!
“로건, 제국행 행렬 말이다. 정말 그렇게 소수로 갈 거냐? 아무리 그래도 가문의 체면이란 게 있는데…….”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아버지의 말대로 제국의 황도로 출발해야 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영지에 벌여 놓은 이런저런 일들을 확인하기 위해 가뜩이나 빡빡하게 잡은 일정이었다.
‘뭐, 반드시 내가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이름, 인상착의, 그리고 영입해야 할 놈과 죽여야 할 놈. 그 정도만 구별해서…….’
“왜, 왜 날 그렇게 보는 거냐. 난 그냥 가문의 체면을 위해 행렬을…….”
“아버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응?”
“비밀리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도 저나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해야 할 일이요.”
“지금 이 시점에?”
“예. 반드시.”
“하아……. 또 무슨 일이더냐. 말해 보거라.”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 진지한 눈빛.
패드릭은 아들의 눈을 보며 본래의 용건을 포기하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수소문해 놓은 인재들이 있습니다. 웬만하면 제가 직접 가서 영입해야 하는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아버지께서 가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예. 그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재들입니다. 제가 아니면 아버지가 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구나. 그런데 그런 말을 왜 그렇게 무게를 잡고 하느냐?”
“만약 그들이 영입을 거부한다면 죽이셔야 하니까요.”
“뭐?!”
패드릭의 인상이 대번에 구겨졌다.
“그러니까 지금, 재능 있는 인재가 있는데 일단 영입 제안을 해 보고 오지 않는다고 하면 죽여라? 일국의 후작인 내가?”
“예. 그래서 더 남의 손에 맡길 수가 없습니다. 저나 아버지가 직접 하는 게 낫습니다.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일이니까요.”
패드릭은 살벌한 얘기를 태연한 목소리로 이어 가는 아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 시점에 우리가 데려오지 않으면 나중에 제국의 전력이 될 확률이 높은 자들입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전부 초인이 될 것이라 확신하는 인재들이구요.”
그 말에 패드릭의 입이 다물어졌다.
아들은 제국이 침략 전쟁을 할 것이라 믿고 있었고, 그 예측이 맞아떨어진다면 그 과격한 조치도 이해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이 모두 다 초인이 되는 건 아니다. 한때는 나도……. 흠. 흠. 그랬으니까. 너무 과한 생각 같은데?”
“아버지께서는 로니안이나 빅토르가 초인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이십니까? 또 에일렌은요?”
그 말에 패드릭이 또 한 번 말을 잃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들.
기사단 내에서도 그들 서로만이 비견될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이라는 말이 나오는 천재들.
채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이미 상급기사가 된 그들이 미래에 초인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 전에.
‘본인 얘기는 안 하는 건 겸손이라고 봐야 할까.’
고작 스물세 살의 나이에 이미 자신을 아득히 능가한 천재.
당장 초인이 되었다고 말해도 믿을 천재 중의 천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패드릭이 한숨을 쉬며 말을 받았다.
“그 인재라는 자들이 그 아이들 수준의 천재라는 말이더냐?”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만, 아마도 확실하게 초인이 될 사람들입니다.”
로건이야 전생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푸는 것뿐이니 확신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패드릭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만한 재능이라면 여태 소속이 없는 것도 이상한데? 그리고 이 아이는 그것을 또 어떻게 알았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에는 아들이 지난 몇 년간 보여 주었던 놀라운 활약들이 마음에 걸렸다.
누가 봐도 허점이 많거나, 이상한 계획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성공시키며 지금의 가문을 만들어 낸 아들.
천재적인 전략가라고 하기에는 허술한 아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성공해 낸 수많은 일들.
그 맥락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는 말해 주겠지.’
지금껏 아들이 해 온 일들이 가문을 위해서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패드릭은 그래서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네 말대로 하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또 다른 계획은 무탈하게 진행될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저, 저기 웬 사람이…….”
“뭘 그리 놀래? 방문객인가 보지.”
“그게, 멀리 있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 크지?”
“뭐? 어, 어어……?”
맥라인 타운의 동문을 경계하던 병사들은 동쪽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 그림자가 가까워지는 순간, 그의 정체를 알아챈 한 병사가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루터 카일!!”
“초인이다!”
반년 전 내전에서 그들과 대치했던 괴물 같은 덩치의 초인.
그 위압감을 기억하는 이들은 홀로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도 자신도 모르게 비상종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뎅! 뎅! 뎅!
그리고 그 급박한 종소리는 관저에서 계획을 짜고 있던 로건까지 동문으로 튀어나오게 했다.
“하, 저 양반이…….”
로건 역시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어찌 된 영문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 네가 제국으로 가는 길에 내가 호위를 하나 붙여 주마.
– 흐흠. 그건 나중의 재미를 위해 비밀로 해 두마.
내전 이후 작위가 강등되고 강제로 에스페란자 기사단에서 복역하는 형벌이 내려진 초인, 루터 카일.
그는 표정까지 보일 거리까지 다가와서도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 점점 소심하게 보폭을 좁히고 있었다.
멀리서도 확연하게 보이는 덩치, 그 비율에 맞는 얼굴 크기 탓에 내키지 않은 기색이 역력한 것도 확연히 읽을 수 있었다.
그 마음을 왠지 알 것만 같아 피식 웃은 로건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루터 공! 오실 거면 오시고, 아니면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이내 흥, 콧방귀를 뀐 거인이 발걸음을 빨리해 타운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가 점점 다가올수록 더욱 크게만 느껴지는 덩치.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면서 얻은 3m가 넘는 근육질의 덩치는 보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압박감을 선사했다.
“괴, 괴물.”
“저게 사람이야?”
“쉿. 들리겠다.”
이미 들리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 표정도 없는 루터 카일을 보며, 로건은 스스럼없이 앞으로 나섰다.
“맥라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루터 공.”
그가 다가올 때부터 느껴지던 부리부리한 눈에서 쏘아진 날카로운 시선이 로건에게 집중되었다.
“스승님의 명령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렇다. 나더러 네 보모 노릇을 하라더군.”
“보모가 아니라 호위겠지요.”
“그거나, 그거나.”
“굳이 원치 않으시면 따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스승님께는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쾅!
“나보고 약속을 어기는 소인배가 되라는 말이냐!”
힘을 실어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땅이 울리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초인.
비록 맥라인과의 전투에서는 클레이튼의 그래비티 컨트롤 때문에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기는 했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보여 준 일시적인 위용만으로도 그것을 기억하는 이에게는 공포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히엑!”
“고, 공자님이 위험…….”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말이다.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의 호위를 받아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시겠지만, 제가 굳이 호위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라고 자부합니다.”
로건은 담담하게 루터 카일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자.
“……타국의 사신이라면 나보다야 보통 체격을 가진 놈이 좋겠지. 하지만 위켄 놈은 네 녀석 얼굴만 봐도 칼로 찔러 버리고 싶을 것 같다고 극구 사양했다. 그래서 내가 온 것이다.”
“루터 공은 제게 별로 유감이 없으신가 보군요.”
“어찌 없을 수가 있을까. 다만…….”
무언가 말을 망설이던 루터는 의미 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더니 이내 말을 삼켰다.
“흥. 됐다.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긴 귀찮으니 잠자리나 다오. 마구간이라도 상관없다.”
“어찌 감히 초인에게 그런 대접을 하겠습니까. 편안한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흥. 아부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안내해 드리죠. 그리고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그딴 것 없…….”
꼬르르르르륵.
“……다.”
루터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의 배에서 그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위가 일순간 침묵에 빠졌다.
“흐흠. 식사부터 준비해 드려야겠군요.”
킥.
주변에서 억지로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루터 카일을 향하던 시선들이 하나둘 반대로 돌아섰다.
벌게진 얼굴의 거인은 이전보다 훨씬 힘 빠진 발걸음으로 앞서가는 로건의 뒤를 따랐고, 그 작은 사건 하나가 괴물 같은 덩치에 대한 공포를 상당수 지워 버렸다.
로건이 제국으로 출발하는 날은 바로 이틀 후였다.
“정말 그렇게 단출하게 갈 것이냐?”
“기사 세 개 조, 18명. 저와 루터 경까지 총 20명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요.”
좀처럼 끊이지 않는 아버지의 걱정에 로건이 빅토르를 위시한 주변의 기사들을 보며 웃음 지었다.
“인원수를 말하는 게 아니잖느냐. 황제에게 초대를 받아 가는 길에 시종도, 마차도 없이……. 나라 망신시킨다는 말이 나올까 두렵구나.”
“그럴 리는 없습니다.”
로건은 아버지의 걱정을 단호한 부정으로 받았다.
그가 시종도, 마차도 모두 빼고 기사들 위주로 일행을 구성한 것은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 빠르게 움직이기 위함이 첫 번째 목적이긴 했지만.
“어떤 행색을 하고 가건 제국의 귀족들은 우리 왕국을 무시합니다. 어차피 우릴 무시할 자들에게 굳이 잘 보이려 노력하고 싶지 않습니다.”
뭐라고 하든 어차피 언젠가 싸워야 할 적들일 뿐이었다.
그렇게 코웃음을 치는데.
“……너 지금 제국 처음 가는 것 아니었느냐?”
이어진 아버지의 반문이 로건을 당황하게 했다.
“아……. 그, 전에 한 번 갔다 왔지 않습니까. 아티팩트 가지러.”
“흐음. 그래, 뭐. 네가 대표니 네 뜻대로 하거라.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패드릭의 시선이 이내 일행의 다른 한쪽으로 쏠렸다.
“루터 공. 정말 괜찮으시겠소? 말도 없이.”
“괜찮소이다. 어차피 내 무게를 견딜 말도 없는데, 뭘.”
작위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루터 카일은 패드릭에게 반 존대를 했다.
다른 사람에게도 퉁명스럽게 대하기는 했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운 것이 저택에 머물면서도 기물을 파손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게 눈에 보여 신선하게 느껴지는 사람.
불과 하룻밤의 인연이었지만, 전쟁으로 만났던 그 악연 때와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 준 루터 카일이었다.
– 요르단이나 후안을 장인으로 둬서 그렇지, 그 녀석들이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다. 내가 책임진다.
스승의 장담이 불과 며칠 만에 이해가 갔다.
“그럼 루터 공. 굳이 배려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오실 수 있겠죠?”
“흥. 물론.”
“그럼, 모두 출발한다!”
히이이잉.
로건의 말을 선두로 기사들의 말이 연달아 질주했고.
쿠구구궁!
그 가장 앞에서 한 명의 거인이 맨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나란히 질주하는 보기 드문 장관을 만들어 내며, 일행은 서쪽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