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기사들! 뭐 하나! 손님들 움직이시게 길 만들어!”
시장의 외침에 루스펠하임의 기사들이 황급히 일행의 앞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어어! 밀지 마!”
“기사들이다, 옆으로 붙어!”
“저, 저기 병사들이다! 젠장, 붙어!”
가뜩이나 넘치는 인파로 바글바글하던 성문에 혼란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저항하는 이들은 없었고, 이내 로건 일행의 앞에 일직선으로 뻥 뚫린 길이 생겨났다.
“뭐야 저 거인 일행은?”
“지금 저것들 때문에 이러는 거야?”
“젠장, 이거 귀족 아닌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하지만 그 불평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뚫린 길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시장은 고개를 숙이며 로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이리로 들어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졸지에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게 된 로건 일행은 조금은 뻘쭘한 표정으로 그런 시장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보통 국가 사절이 파견되면 이렇게 하는 겁니까? 시장이 성문까지 직접 나와서?”
“그럴 리가. 나도 10년 전쯤 와 봤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네. 그때도 저 작자가 시장이었는데.”
당황스러운 상황에 로건이 루터 카일에게 귓속말로 물었지만, 의문은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더구나.
“시장님 왜 저래?”
“몰라. 평상시라면 관저에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셨을 텐데?”
“내 말이.”
예민한 청각을 통해 들려온 루스펠하임 기사들의 말에, 로건의 의아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로건 맥라인 백작님, 백작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란디아의 신성, 왕국의 젊은 영웅에 관한 이야기로 온 도시가 어찌나 떠들썩하던지…….”
제국 중부 출신인 듯, 그란디아인에게는 조금 이질적인 억양의 공용어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자신을 루스펠하임의 시장이라 소개한 드미트리 라이언, 이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중년인은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거기다가 그 대부분이 로건을 띄워 주려는 말이라, 듣는 로건으로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왕국의 사정을 이상할 정도로 잘 아는 것과는 별개로.
“자네, 혹시 저자와 무슨 인연이라도 있나? 거의 업고 다닐 기세인데?”
루터 카일의 어이없다는 표정도 충분히 이해될 정도로 시장의 태도는 너무 과했다.
그렇다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 사람에게 왜 그러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
로건은 지나친 칭찬에 낯이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시장의 뒤를 따랐다.
성문 안쪽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은 로건을 비롯한 일행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폭이 50m는 될 듯한 널찍한 대로의 좌우로, 끝이 안 보이게 이어진 3층 높이의 건물들이었다.
같은 규격, 같은 간격으로 똑같이 늘어선 건물들은 갑갑해 보이기보다는 깔끔한 느낌을 주었고.
수많은 사람이 그 건물 안쪽과 대로변에서 각양각색의 물건을 늘어놓은 채 장사를 하고 있었다.
“외성의 구역 대부분이 시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 루스펠하임이 대륙 동부 최대 교역 도시라 자부하는 근거지요. 아, 물론 가시는 아세리안만큼은 아닙니다. 제국은 세계 최대의 나라고, 그만큼 없는 것이 없지요. 혹시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찾아보십시오. 정말로 없는 것 빼고는 모두 있으니까요.”
여태 로건의 칭찬만 늘어놓던 시장이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거리를 돌아보며 좌우로 팔을 펼쳤다.
과연 그런 자부심을 가질 만큼 보이는 광경도 인상적이었다.
“대륙 서부 끝에서 온 귀한 동물입니다. 구경하세요!”
“마수, 캘커타의 뿔과 가죽 팝니다!”
“남부 산맥 깊숙한 곳에서만 난다는 과일입니다!”
그란디아에서는 본 적도 없는 수많은 물건이 일행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제국은 발전 속도도 빠르군.”
가장 연장자라고 할 수 있는 루터 카일이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고, 다른 일행들 역시 대도시에 처음 온 촌놈들처럼 정신없이 주위를 구경하기 바빴다.
“확실히 우리 영지도 공자님 덕분에 엄청나게 발전하긴 했는데, 여긴 차원이 다르네. 역시 제국…… 윽! 왜? 아……. 야, 너희들 대열 안 맞춰?! 놀러 왔지?!”
연신 감탄사를 늘어놓던 핸더슨이 빅토르에게 옆구리를 얻어맞고는 억지로 정색하며 대열을 조정했다.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시장이 로건에게 시선을 옮겼지만.
정작 로건의 얼굴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20년 뒤보단 확실히 못 해.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사방의 문물을 구경하기 바쁜 일행과는 달리, 시장의 사이사이 배치된 병사들과 기사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다.
‘치안 병력 수준은 전생과 그리 다르지 않아. 하지만 20년 뒤와 현재 병력의 차이가 없다는 건…….’
그렇게 홀로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 로건의 표정을 본 시장이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을 내뱉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맥라인에서 온 상단이 얼마 전 이곳을 방문했었습니다. 인상적인 분들이더군요. 금세 상단의 지부까지 만들 정도였으니.”
“……시장께서 일개 상단에도 신경을 쓰십니까?”
“하하. 루스펠하임의 위치가 위치다 보니, 가까운 그란디아의 소식엔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더구나 맥라인 가문 관련이라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지요. 나중에 보고를 들으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최대한 편의를 봐드렸습니다.”
“이런, 본의 아니게 신세를 졌군요.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시장님.”
“아닙니다. 양국의 우호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지금 그란디아의 실세는 맥라인 가문 아니겠습니까.”
“하하. 과분한 평가십니다.”
줄곧 웃고 있지만, 로건의 눈빛은 더욱 가라앉았다.
그란디아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라고는 하지만 사흘을 말을 달려야 하는 거리.
그런 도시의 시장이 그란디아의 소식을 염두에 두고 일개 상단의 소식까지 챙긴다?
‘제국 전쟁 때도 이자가 시장이었을 텐데……. 설마 이때쯤부터 전쟁을 준비 중이었던 걸까?’
조심스레 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수다스러운 시장과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가 바로 루스펠하임의 관저입니다. 제 사무실 겸 집이기도 하지요.”
그란디아에서는 소수의 마탑 같은 건물에서나 볼 수 있는 7층짜리 거대 건물의 앞에서 드미트리 시장은 뿌듯한 표정으로 로건을 돌아보았다.
“안쪽에 귀빈실을 마련해 드릴 테니 원하시는 만큼 푹 쉬시다 가셔도 좋습니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로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시장님의 과분한 배려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쭉 나눴던 대화처럼 의미 없는 인사치레였을 뿐인데.
“하하하. 그래 주시면 저야 정말 감사하죠.”
이상한 대답이 따라붙었다.
누가 봐도 예의상 한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양새.
로건은 어색한 표정으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제가 도와드려야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런데.
“아, 아닙니다. 그저 혹시나 제국 고위층이 되시면 그때 저를 잊지 않아 주셨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시장의 말이 이상했다.
“제국의 고위층? 제가 말입니까? 그게 무슨……?”
어처구니가 없다는 속마음이 그대로 담겨 나온 말.
그럼에도 시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황제 폐하의 초청장을 받으신 분이니까요.”
왜 질문을 했는데 헛소리가 돌아올까.
제국의 시장이 덜떨어진 머저리도 맡을 수 있는 자리였던 걸까.
로건의 황망한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그의 옆에 서 있던 거인을 향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나도 모르겠다.”
“제 귀가 잘못된 게 아니죠?”
“그래. 내가 보기엔 저놈이 미친 것 같다.”
안색이 일그러진 루터 카일은 시장에게도 충분히 들릴 만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떠들었다.
하지만 그 말을 진짜 못 들은 것인지, 못 들은 체하는 것인지 시장은 전혀 변하지 않은 표정으로 여유롭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로건은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게 아닙니까? 저는 국가 사절로 방문을 한 겁니다만?”
“아, 로건 공께서야말로 약간 착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예?”
네가 아니라? 내가?
로건이 노골적으로 황당한 표정을 짓는데.
“로건 공께서 가지고 계신 초청장은 일반적인 초청장이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서 국가의 사절이 아닌, ‘로건 맥라인’이라는 개인에게 보낸 초청장이지요. 그것은 아주 다릅니다. 달라요.”
“그게 제가 좀 전에 들은 헛소…… 흠흠, 말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그 말에야 비로소 시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 폐하의 지명 초청장을 받았던 몇 되지 않은 인물들은 지금 대부분 그분의 곁에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인재를 사랑하시는 만큼, 그 재능과 능력에 걸맞은 위치를 내려 주시더군요.”
이제야 시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었다.
“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경우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제국에 비하자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저는 이미 든든한 가문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당연한 말에도, 시장은 그저 웃으며 답했다.
“그저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니, 새겨만 두십시오.”
그 말에 로건의 뒤에 있던 기사들의 인상이 험상궂게 구겨졌다.
시장이 맥라인을, 그리고 그란디아를 무시한다고 여긴 것이다.
“감히 우리 왕국을 무시하는가?!”
루터 카일은 대놓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지만, 로건이 오히려 그런 그를 말렸다.
“루터 님. 진정하십시오. 제가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신에게 갖춰야 할 도리라는 게 있는데 저런 막말을……!”
“저자 기준으로는 막말이 아닌 거지요.”
“허…….”
로건은 루터 카일의 앞을 막아서며 다시 시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그의 표정을 보며 확신했다.
‘이자, 정말로 내가 그럴 확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제정신인가?’
제국의 귀족들이 가진 지독한 제국 우월주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시장님의 마음 기억해 두겠습니다.”
그 거만함까지 말이야.
로건이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려는데.
“황제 폐하의 손님이 오셨다고 들었소이다, 시장.”
갑자기 들려온 날카로운 목소리 하나가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저자는?!’
목소리의 주인은 흔한 갈색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콧수염을 기른 중년인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인상의 주인이 내뱉은 목소리에 주변의 모든 사람이 반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저자, 초인이다.”
쿵.
루터 카일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낯선 이의 위험함을 알리자 일행 모두의 안색이 바뀌었다.
이미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던 로건을 제외하고.
“누구……십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아! 블레이크 경이시군요. 로건 공, 저분은 블레이크 이븐도어 백작님이십니다. 제국 서부군의 정예이신 3군단을 맡고 계신 분이지요.”
“시장님, 말씀이 과하십니다. 그냥 서부 8군의 하나일 뿐인데 말이오. 그런데 혹시 이분이……?”
“예. 그분이십니다.”
시장이 그리 답하자, 블레이크가 로건을 향해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폐하의 초청장을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로건은 이 황당한 사태에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품 안의 초청장을 내밀었다.
그것을 꼼꼼히 살펴본 초인은 이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다시 두 손으로 정중히 초청장을 돌려주었다.
로건이 엉겁결에 초청장을 다시 받아 드는데.
“황제 폐하의 친필 서한, 확인하였습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
“이제부터 이 맹격의 블레이크가 로건 님을 황도까지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황당한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