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짹짹.
창밖으로 비치는 햇살과 새소리가 아침이 왔음을 알려 주었다.
온갖 생각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한 빅토르는 벌게진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편안한 숙소였지만, 이곳은 적지.
그리고 자신은 주군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기사였다.
쿵.
손에 잡히는 묵직한 중갑을 가볍게 뒤집어쓰자, 그 차가운 감촉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오늘 아침부터 저녁때까지는 자신과 조원들이 주군을 수행할 차례.
밤새 눈앞에 아른거리던, 어제 본 초인들의 대결은 억지로라도 떨쳐 내야 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기사로서 어찌 오러유저를 꿈꾸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자신이 당연히 초인이 될 것이라는 주군의 기대와 달리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경지에 마음이 답답했다.
‘막막하기만 한데…….’
인간의 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어 포스유저조차 일반적이지 않았다던 고대.
이런 중갑 하나 혼자 입지 못해 시종의 도움을 받았다던 그 시절의 기사가 포스유저를 보았을 때의 느낌이 이랬을까.
포스유저 상급의 경지에서 보는 오러유저는 자신과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 같았다.
피식.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어디야.’
빅토르는 머리를 몇 차례 털고 숨을 한번 크게 내쉰 뒤 방문을 나섰다.
자신은 맥라인의 천재기사로, 동생은 마탑의 기대주로.
하룬의 노예 시장에서 고통받던 남매의 인생은 이미 180도 바뀐 지 오래였다.
그리고 오늘은 그것을 가능케 해 준 은인이자 제 주군을 수행해야 했다.
빅토르는 잡념을 털어 버린 채 당당한 걸음으로 주군에게 향했다.
* * *
“이곳 루스펠하임에 주둔 중인 서부 3군단은 우리 왕국의 국경 지대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는 우리 왕국을 공격하는 선발대가 될 수도 있지. 그러니 놈들을 잘 봐 두도록 해.”
빅토르는 나직하게 이어진 주군의 마지막 말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노골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주군은 제국을 언젠가는 싸워야 할 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니 그렇게 고개를 숙여 가며 부탁을 하셨겠지.
– 경의 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 그런데, 경이 다스리는 3군단의 위용도 견학할 수 있을까요? 부족한 저희 영지에 참고해 보려 합니다.
주군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이루어진다. 반드시.’
빅토르는 포스를 머리 쪽으로 돌려 약간의 피로조차 날려 버리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루스펠하임 외곽에 마련된 군사 주둔지에 들어섰을 때.
그는 제국 서부 3군단이 자랑하는 위용에 절로 안색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전체 차려! 귀빈들께 경례!”
“충!”
시야를 가득 메운 병력. 연무장에 도열한 천여 명의 ‘기사’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그들을 향해 검을 세웠다.
그리고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어제의 오러유저, 블레이크가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어떻습니까, 로건 공. 손님들께 보이려고 평상시 하던 훈련을 조금 변형해 보았습니다만, 괜찮으셨습니까?”
“놀랍군요. 제국 군단의 위용을 잘 알겠습니다.”
주군의 감탄에 블레이크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뭘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십니까. 사실상 군단 병력 대다수가 국경 지대에 파견 나가 있어 이 정도만 보여 드릴 수 있는 게 아쉽군요.”
그란디아의 최고 영지 중의 하나였던 발터마임이 천 명이 넘는 기사단으로 위세를 떨쳤었다.
그것이 이곳에서는 고작…….
‘서부 3군단. 즉, 서부 8군단 중 하나일 뿐. 이게 제국이구나…….’
그 제국이 적이라고 생각하자 빅토르는 여유롭게 웃고 있는 주군처럼 표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어제 그 덩치 큰 분에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제가 도발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욱하고 말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루터 경도 결과엔 승복하는 분이니,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삐져서 아직도 안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주군이 하는 말에 감히 딴지를 걸 수 없는 빅토르로서는 잠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적’ 오러유저가 기사단의 가장 앞에 서 있던 기사 30명을 불러 로건에게 소개했다.
“이들이 저와 함께 로건 공을 황도까지 호위할 3군단의 정예들입니다.”
“귀한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30명의 기사가 일제히 한목소리로 외치며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좀 전의 모습도 그렇고, 3군단이 정말로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걸 순간순간 느낄 수 있었다.
’30명 중에서도 아홉 명은 상급, 나머지는 중급이다. 거기다 한 명은…….’
기세가 잘 파악이 안 되는 이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마도 최상급…….’
군단의 본분과는 상관없는 사절의 호위로 이만한 정예들을 차출해 낼 수 있는 여유가 무서울 정도였다.
“너무 과한 전력이 아닙니까? 블레이크 공만 해도 부담스럽습니다만.”
“그래도 폐하의 손님을 허투루 모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불상사 없이 안전하게 모실 수 있도록 최대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어제 본 과격한 초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정중한 모습만 보이는 블레이크.
황제의 손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초인이 저렇게까지 나올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하하.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그 호의,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블레이크 공, 제가 제국의 무장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아서 말입니다만. 3군단의 병사들은 주로 어떤 무기를 씁니까? 혹시 석궁 같은 것도……?”
왕국 제일의 세도가.
내전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
그 모든 자존심을 잠시 접어놓은 듯, 적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주군의 모습에 빅토르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정말 전쟁을 준비하시려는 거구나…….’
빅토르 역시 새삼스러운 눈으로 3군단의 기사들을 재차 살필 수밖에 없었다.
‘이자들이 선발대가 될 수 있다. 수준을 파악해 둬야 해. 그리고…….’
이 삶을 지키기 위해.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
별다른 재주가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수련뿐.
빅토르는 자신과 동생의 운명을 구해 준 은인이자 주군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굳게 다짐했다.
“석궁이요? 그런 비효율적인 무기를 왜 쓰겠습니까. 하하,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흔들림 없는 블레이크의 눈동자를 보며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조사해 보면 바로 나오겠지만, 아직 제국의 연사 석궁은 실전 배치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 예를 든 것뿐입니다. 저희 쪽에서는 쓰고 있으니까요.”
“예? 어, 그게 사냥이면 몰라도 전쟁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까?”
블레이크가 아직 왕국의 사정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도 확인했고.
“아, 개량한 무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뭐든 이렇게 용맹한 기사들이 많은 제국에서야 통하지 않겠지만요.”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십시오. 기사들이 훈련 시에 사용하는 시설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소국…… 아, 죄송합니다. 왕국에서도 차용할 점이 많을 겁니다.”
왕국과 별다른 점 없는 기사 숙소까지 자랑하는 그 과한 애국심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렇게 그의 안내를 따라 3군단의 주둔지 내에서 훈련 시설과 무기 등의 상태를 쭉 훑어본 뒤.
‘3군단 예상 총 병력 2만 5천 정도. 20년 뒤보다는 확실히 적어. 석궁은 없고, 기사는 1,100명가량……. 숨기는 건 없는 것 같군.’
전생과 비교해 가며 남겨진 흔적만으로 3군단의 실태를 유추해 낸 로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블레이크가 너무 적극적으로 나와 준 덕분에 생각보다 시간이 짧게 걸렸다.
“과연 역시 제국은 다르군요. 많은 걸 배웠습니다.”
“아닙니다. 젊은 영웅답게 군사력에 큰 관심을 보이시는 게 저 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이곳을 떠나 황도로 가는 길에는 이만한 대도시가 더는 없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황도는 다르지요. 아세리안에 도착하시면 정말 별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호오. 그 정도입니까?”
블레이크는 대부분 친절하게 말해 주기는 했지만, 나름의 선은 확실히 지켰다.
로건이 최대한 말을 돌리고 화제를 바꿔 가며 은근히 물어본 다른 군단의 정보라던가 현재 진행 중인 황위 계승전의 상황, 황도 부근의 병력 배치에 관한 질문 등 군단장이면 충분히 알 만한 다른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쪽은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말을 하기 싫은 것인지, 말할 수 없는 것인지.
자신의 군단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벌리던 블레이크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았다.
‘초인인 군단장이라도 절대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만큼 초인의 위에 있는 사람, 황제의 권위가 강하다는 말일 터였다.
제국의 현실에 관해 알게 되는 게 많아질수록 얼굴도 모르는 황제의 그림자가 점점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일행이 루스펠하임을 떠난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
로건이 자신이 얻은 정보를 다른 여러 경로를 통해 확실히 검토한 뒤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필립이 만들어 놓은 맥라인 상단 지부의 역할이 컸다.
– 추론하신 내용이 얼추 맞습니다. 정확한 정보는 여기에.
그란디아 출신으로, 루스펠하임에서 장사만 10년을 했다는 지부장의 일 처리는 빠르고 확실했다.
최근 얼굴을 보지 못한 필립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을 정도로.
‘3군단에 대한 정보는 확실히 정리됐고. 여기에 연사 석궁이 더해진다고 가정하면 그 전력이 제국 전쟁 초기 선발대의 전력이라고 봐야겠군.’
그것만으로도 루스펠하임에서 머문 기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로건은 자신을 성문까지 바래다 주는 시장을 보며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잘 머물다 갑니다!”
“하하하.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로건 공. 부디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아직도 그 소리인가.
왕국의 최고위 귀족이 제국에 투신하리라는 덧없는 기대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시장을 보며 로건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이어진 여정은 편안했다.
제국의 초인이 깃발을 걸고 직접 동행하는 이상, 제국의 미개척지에서 횡횡한다는 반란군이나 도적 떼가 일행을 습격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더구나 루스펠하임에서 황도로 가는 길에는 큰 대도시가 없는 만큼, 루터 카일이 시선을 끌 일도 별로 없었다.
더구나 중소 도시나 작은 영지에서도 블레이크 때문인지 아니면 황제의 초청장 때문인지 일행은 항상 환대를 받았으니, 자연히 불편함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로건 개인만큼은 조금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영광입니다.”
“조금만 더 머물다 가시지 않고요.”
“제 딸아이입니다. 예쁘지 않습니까?”
환대를 넘어서서 아부, 아부를 넘어서서 혈연으로 엮어 보려는 제국 귀족들의 공세에 식은땀을 흘리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
거기다 도시에 머물 때나 야영할 때, 이동 시간 외에는 항상 수련에 매진하는 일행을 눈여겨보던 블레이크가 어느 날 조심스레 말을 꺼낸 후부터는 불편함이 조금 더 늘어났다.
“이동 중에도 기사들이 항상 수련 중이시더군요. 그 실력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와도 대련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저번에는 아티팩트의 효과로 오러를 받아 냈을 뿐입니다. 아무래도 초인과의 대련은 몸에 무리가 가서…….”
블레이크의 합류 후 좀처럼 오러에 관한 수련을 할 수가 없어서 심통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의 밑천을 봤지만, 굳이 내 밑천을 보여 줄 필요는 없으니까.’
철저한 계산이 깔린 정중한 거절.
황제 폐하의 손님이라며 로건을 어렵게 대하던 블레이크가 거기에 무어라 다시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다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행의 수련, 특히나 루터와 로건의 수련을 지켜보며 계속해서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것은 심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깍듯한 태도에 드리워진 황제의 그림자가 새삼 무겁게 느껴졌기에 더더욱.
그렇게 일행의 여정은 한 달이 넘도록 이어졌고, 연달아 제국의 여러 영지를 경험한 일행에겐 조금씩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왜 제국, 제국 하는지 알겠습니다. 작은 영지에도 저희 영지에 없는 게 종종 있습니다. 정말이지…….”
4조 조장인 핸더슨의 말.
일행은 제국의 영지를 통과하는 동안 접한 새로운 문물의 편리성과 화려함에 깊게 감명받아 있는 상태였다.
“배울 수 있는 건 배우고, 영지에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도 다 적어 놔. 가져갈 수 있다면 가져가 보게.”
“정말입니까, 공자님?!”
이런 말 하나에도 반색할 정도로.
‘배우라는 말이 본론이다, 이놈아.’
로건이 속으로 한탄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대화가 늘어날수록 블레이크를 비롯한 3군단 기사들의 콧대는 은근히 높아져만 갔다.
“언젠간 저희 영지도, 아니 왕국도 제국 이상의 국력을 갖게 될 겁니다. 주군이 계시니까요.”
빅토르의 과한 기대에 로건이 쓴웃음으로밖에 답하지 못하던 무렵.
일행은 한 달 반의 여정 끝에 대륙 최대의 도시, 제국의 황도 아세리안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