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이 별궁에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폐하는 언제 뵐 수 있소?”
“페하께서 직접 초청하신 분이니, 아마 곧 부르실 겁니다.”
……아무리 공용어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들, 그 ‘아마 곧’이라는 단어가 일주일을 뜻할 정도로 다르게 쓰이진 않을 것이다.
황궁에 입성한 지 7일 차.
화려한 별궁 내에서 진귀한 음식을 먹고 있는 일행의 표정은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지 않게 굳어 있었다.
“여기에 얼마나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으냐?”
자신의 체구만큼 거대한 접시의 산을 쌓아 놓은 루터 카일이 으르렁거렸다.
그 옆에서 음식을 나르던 시종이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설 정도였지만, 로건은 작은 한숨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제가 알겠습니까?”
“너에게도 언급이 없다는 거구나.”
“예, 그렇습니다.”
태평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점점 마음이 초조해지는 건 로건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사신의 기를 죽이기 위한 제국 황실의 관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데.’
황궁에 들어온 이후, 외부의 소식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예상한 일이었는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아직 일주일이야. 고작 일주일. 초조해할 필요가 없어.’
그사이에 전쟁이 터질 일은 없고, 가문이나 왕국이 망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 봤지만, 마음이란 게 생각한 대로 조절될 리가 없었다.
‘내가 강박이 있었군.’
이 초조함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자, 그나마 괜찮은 척이라도 할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지요. 이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정확히는 알고 있는 상식에 근거한 추론이자 희망 사항에 불과했지만.
다행히 그 말은 바로 그날 오후 현실이 되었다.
“폐하께서 손님들을 모시라 이르셨습니다. 아, 알현을 허락하신 것은 로건 님과 루터 님 두 분뿐입니다. 다른 분들은 별궁에 머물러 주십시오.”
시종장이 전해 온 메시지에, 로건은 황궁의 시종들이 준비해 준 예복을 입고 본궁으로 향했다.
거인이라 불리는 루터 카일의 머리 위로도 한참은 높이 솟은 천장에는 어떻게 그렸는지 모를 화려한 벽화가 가득했다. 천장에서 시선을 조금 내리면,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알 수 없는 재질의 기둥이 높다란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게 보였다.
대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모든 기둥과 바닥, 벽조차도 예술 작품으로 꾸미려고 작정을 한 듯 휘황찬란한 궁전.
그런데 그들을 안내하는 시종장의 발걸음은 그런 화려한 궁전의 바깥으로 향하고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 오늘은 폐하께서 궁중 대전이 아닌 본궁 입구의 마당에서 대소 관료들을 소집하셨습니다. 지금 그리로 가는 길입니다.”
“궁전 앞마당?”
뒤에 따르던 루터 카일이 고개를 갸웃하자 시종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보통 황실의 큰 행사가 있을 때나 이용하는 곳입니다. 폐하께서 두 분을 그만큼 환대한다는 의미지요.”
집주인이 집안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그란디아와는 사뭇 다른 문화.
로건은 생소한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시종장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별궁을 나와 성의 내성 안을 빙 돌아 다시 본궁의 입구로 향하는 데만 세 개의 문을 지나야 했다.
“그란디아 왕국의 손님들이 입장하십니다!”
– 들라 하라신다!
기사들이 마지막 세 번째 문을 열어젖히자, 황금빛 드래곤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거대한 궁전이 눈에 들어왔다.
솟구쳐 오른 첨탑은 드래곤의 머리요, 그 아래로 늘어진 커다랗고 현란한 궁정의 처마와 황금빛 장식들은 드래곤의 몸체와 비늘 같은 모양이었다.
궁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 같은 느낌.
“허어……!”
긴장해야 한다고 누누이 어필하던 루터 카일이 탄성을 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궁전의 앞쪽으로 펼쳐진 넓은 앞마당엔 기사들이 촘촘히 늘어선 채 경비를 서고 있었고, 멀리서도 서늘함이 느껴지는 그 냉엄한 기세 안쪽으로는 좌우로 대열을 갖춰 길게 늘어선 제국의 관료들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런 그들의 가운데로 쭉 이어진 대로의 종착점.
궁전으로 들어서는 입구를 휘감은 용의 배 아래, 황금빛 금룡으로 장식된 거대한 보좌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로건 일행이 서 있는 입구에서 족히 2~3백 미터는 떨어져 있음에도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감에 주변의 모든 이들이 시야에서 지워지는 듯했다.
검은 머리에 각진 얼굴, 제국 황실의 핏줄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노란 피부, 장대한 체격을 가진 장년인은 팔걸이 한쪽에 팔꿈치를 댄 채 늘어지듯 몸을 기대고 앉아 단상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엔 진한 호기심이 가득했고, 무엇보다 검은 두 눈에서 이상한 광채를 번뜩이며 로건의 시선을 사로잡고는 놓아주질 않고 있었다.
‘……뭐지?’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에 앞서, 긴 거리를 뛰어넘어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에 로건의 고개가 갸웃했다.
‘설마…….’
일반인의 시력으로는 얼굴 형태도 구별하기 어려운 거리.
표정을 세세하게 살피는 것도 자신이나 가능한 일이기에 거리낌 없이 살핀 것인데 눈이 마주치다니?
하지만 다시금 시선이 마주쳤다 느낀 순간, 황제가 싱긋 웃음을 보였고.
이내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자세를 바로 한 황제가 그를 향해 손짓했다.
“가까이 오너라, 그란디아의 젊은 영웅이여.”
미묘한 기세가 실린 음성이 수백 미터는 떨어진 로건의 귀에 박히듯 파고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이는 기묘한 느낌에, 로건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마법……? 아니 기세? 뭐지?’
하지만 깊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눈이 달렸다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체격의 루터 카일이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오직 로건만을 지목하는 모습.
수많은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바로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천하의 루터도 이 순간만큼은 그저 천천히 대전으로 들어서는 로건의 뒤를 바짝 쫓을 뿐이었다.
“뭐야, 저 덩치는?”
“젊어 보이지는 않는데?”
“앞쪽의 청년이겠지, 이 사람아.”
“저쪽은 너무 임팩트가 없고.”
“그래도 뭐가 있으니까 폐하께서…….”
“그런데 그란디아가 어디야?”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리는 목소리들.
하지만 로건의 시선은 전면의 황제에게 고정된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왜지? 왜 시선이 끌리는 걸까?’
황제에게 절로 시선이 가는 이유.
그 이유를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너무 오래 쳐다보았기 때문일까.
‘흡?!’
어느 순간, 갑자기 전신을 억누르는 압박감이 로건을 상념에서 깨어나게 했다.
우우우웅.
심장의 포스코어가 기세를 밀어 내며 존재감을 발휘하고 나서야 로건은 자신이 황제의 보좌 50m 안쪽까지 들어왔음을 인식했다.
그리고 자신을 억누르는 이 기세가 황제의 좌우에 늘어선 열 명의 기사들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것 또한.
그것을 깨닫는 순간 로건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부 초인이라고?!’
우드득.
그때부터는 발걸음을 하나씩 옮기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주변의 웅성거림은 고사하고 바로 뒤를 따라오는 루터 카일에게도 신경을 분산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전신을 짓누르는 기세들.
– 보좌의 30m 앞, 얕게 파인 지점에서 멈춰서 인사를 드리십시오.
시종장이 말한 지점까지 남은 십여 미터의 거리가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의 압박감이었다.
까득.
다행히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압박감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로건에게 먼 거리를 격하고도 이 정도의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초인들에게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
개중에 좀 더 부족한 이들부터 하나둘 기세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시종장이 말한 30m 지점에 도달했음에도, 전신을 옭아매는 기세는 여전히 다섯 종류나 남아 있었다.
그 말인즉.
‘최소 스승님 수준의 초인만 다섯. 빌어먹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찔한 직감.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실제적인 압박감을 넘어서는 심리적 무게가 영혼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차이가 나다니…….’
준비를 충분히 해 왔다는 자신감이 저 너머로 사라지고 초조한 마음만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황실에 있는 초인만 벌써 열 명. 거기다 아세리안의 7대 마탑을 이끄는 마탑주 7명도 분명히 마도사일 터.
거기에 서부 8군단과 동부 7군단장이 전부 초인이라고 치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초인이 32명.
그 외에 숨겨진 강자는 또 얼마나 더 있을 것인가.
생각만으로도 아득해지는 전력이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수치를 실제로 마주하고 나니 가슴에 거대한 공포가 새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하지? 대체 어떻게?’
열심히 해 온 준비가, 철저하다고 생각한 준비가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고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너무 오래 한 것일까.
“무례하다!”
기세를 거둔 이들 중에서 조금은 앳된,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의 초인이 고함을 질렀다.
로건은 곧 정신을 차리고 즉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초청에 감사드립니다. 그란디아의 로건이 제국의 지배자를 뵙습니다.”
로터 카일 역시 로건의 뒤를 따라 똑같이 예를 취했지만, 황제의 시선은 오직 로건에게만 향해 있었다.
좌우의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인 것을 확인한 황제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래, 로건 맥라인.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만나서 반갑군. 실제로 보니 듣던 것보다 더욱 뛰어나 보이는구나.”
“……감사합니다, 폐하.”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 말 덕분에 좌중의 시선이 또 한차례 달라졌다.
“폐하께서 저리 극찬을……?”
“대체 누구야?”
“그란디아면 동부의 소국인데…….”
여기저기서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그제야 로건의 귓가에 파고드는데.
“아니야. 확실히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단 더 나아. 오러유저 슬레이어, 초인을 죽인 자. 그 명성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내 방금 확인했다.”
역시나 테스트였군.
불쾌하기는 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현재 제국 초인 전력의 일부나마 확인한 것을 위안으로 삼고 로건은 차분히 대답했다.
“과찬을 거두어 주십시오, 폐하. 저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래? 뭐, 그거야 확인해 보면 알겠지. 제롬!”
“예, 폐하!”
황제의 말에 좌측에 있던 비교적 젊은 얼굴의 초인이 바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좀 전에 로건에게 호통을 쳤던 초인.
왜인지 낯선 얼굴과 그 이름이 겹쳐지는 순간, 로건의 머릿속엔 한 사람이 떠올랐고.
‘제롬? 설마 제롬 디카이드?’
순간적으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로건의 심정과는 상관없이 황제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란디아의 젊은 영웅과 겨루어 보거라. 우리 제국의 신성과 그란디아의 영웅 중 어느 쪽이 뛰어난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구나.”
“명에 따르겠습니다, 폐하.”
타국의 인물을 초청해 놓고 본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 대뜸 겨루기라.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만들었구나.’
애초에 이것을 위해.
황당할 뿐이었지만, 그 황당한 짓거리에 항의하는 이는 없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황제 폐하. 로건 경은 저희 왕국의 대표로 폐하를 찾아뵌 것입니다. 갑작스레 이런 상황은 관례에 비추어 보아도 좋지 않…….”
루터 카일이 그답지 않게 유려한 설명을 이어 가는데, 황제가 피식 웃으며 말을 끊었다.
“음? 나는 사절을 초청한 것이 아니라 로건 맥라인 개인을 초청한 것이거늘, 그 어디에 관례를 논할 틈이 있지? 루터 카일, 왕국의 초인이여. 지금 짐의 결정에 반하는 것인가?”
루터의 커다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순간.
로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마땅히 응해야지요. 하지만 불상사가 생긴다고 해도 탓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올곧게 황제를 바라보는 로건의 눈빛에는 투지가 넘쳤다.
그 모습에 초인, 제롬의 미간이 좁혀지는데.
별안간 황제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상사? 푸하하하! 자네 진심인가? 이거 정말 재미있군, 재미있어. 타국의 젊은 인재여. 나는 그저 젊은 인재들끼리 서로 역량을 겨뤄 보라는 것뿐이었다. 설마 진심으로 할 생각이었나?”
그 말에 로건이 오히려 당황했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이면 전력으로 부딪치는 게 폐하께서 보시기에도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말에 황제는 다시금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황제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가 침묵하고 있는 대전에서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은 충실한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란디아의 젊은 영웅은 정말 이길 자신이 있는 듯한데. 제롬, 너는 어떠냐?”
“제국의 스승님들을 제외하고는 저를 꺾을 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들어 본 적도 없는 소국의 인재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어조.
올해 갓 서른, 그럼에도 초인의 경지에 오른 지 3년 차인 제국의 신성 제롬 디카이드의 눈빛에는 투지만이 가득했다.
지금 그를 보는 로건의 눈빛처럼.
‘제롬, 제롬 디카이드라니…….’
지금은 제국의 신성이라 불리는 모양이지만, 20년 뒤 그에게 붙는 별명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대륙제일검.
대륙 최강의 오러유저이자, 그랑디아 해방 전선에겐 사신으로 불렸던 최강의 적.
그것이 로건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의 초월 감각으로 판단한 제롬은 아직은 다른 초인들에 비해 한참 미숙해 보였다.
그러니 승산은 충분했다.
‘최소한 절대 회복할 수 없는 중상을 입힌다.’
미래의 난적에게서 그 가능성을 빼앗을 기회.
혹은, 현 제국의 초인 전력을 줄일 기회.
황제의 변덕이 만든 유희는 로건에게 그런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