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황제의 제의에 로건이 응하며 벌어진 판.
그 판은 곧 마당의 중앙을 완전히 비워 진검 대련으로 이어졌다.
“황궁 한가운데서 이게 무슨…….”
“폐하의 뜻을 누가 막겠나.”
“뭐, 초인과 일반 기사의 싸움이 길게 가지는 않겠지.”
“그야 그렇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귀족들이 두 사람을 중심에 두고 마당의 양편 끝, 기사들의 앞쪽에 나눠 자리했다.
자연히 로건 역시 별궁에 남겨 두었던 자신의 갑옷과 무구를 챙겨 왔고, 이내 궁전의 앞마당 한가운데서 적을 마주했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제롬 디카이드.
초인치고는 어리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이 50에 대륙제일검의 칭호를 받은 괴물.
그가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된 건 대략 그때쯤이었다.
하지만 그란디아의 유민들에게 있어 그의 의미는 또 달랐다.
그가 대륙제일검의 칭호를 받기 십여 년 전, 불과 30대의 나이로 그란디아 정복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초인.
왕국 유일의 마도사이자 최고 세력가인 후안 더글라스의 목을 잘라 전쟁의 승리를 확정 지은 이.
자연히 그란디아 해방 전선의 주 암살 목표 중 하나였다.
‘물론 실제로는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만.’
정복 전쟁 이후 20년 뒤.
전생의 로건이 죽기 직전의 제롬 디카이드는 그야말로 괴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초인 중의 초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이라도 물리는 게 어떻겠소. 이렇게까지 되면 나도 적당히 하기 어려운데.”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를 보며 비웃음을 흘리는 얼굴은 전혀 그 괴물 같지 않았다.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적수가 없다는 자신감을 보이는데 그 실력은 아직…….
‘애송이군.’
고작해야 블레이크나 루터 카일, 예전의 위켄 칼리아 수준의 초인이었다.
물론 초인도 되지 못한 로건이 불과 서른에 숙련된 오러유저가 된 이를 애송이라 폄하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왠지 로건은 절대 자신이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아티팩트를 총동원해 위켄과 호각을 이루고, 운으로나마 요르단을 죽였던 그때.
그때와 지금의 그는 또 수준이 달랐으니까.
더구나 로건은 제롬의 특성에 관한 정보도 가지고 있는 마당이니, 자신이 없을 리가 없었다.
“적당히 안 하셔도 됩니다. 저도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요. 황제 폐하께 제대로 실력을 보여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폐하께서는 인재를 보는 눈이 높으시지. 어떻게 운이 좋아 초인을 이긴 적이 있나 본데, 내가 보기엔 그냥 좀 신기한 경우라서 폐하의 관심을 끌었을 뿐이야.”
“예?”
설마 황제가 정말 고작 그것 때문에 자신을 불렀을까.
그 생각에 한 반문이었지만, 제롬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러니 착각은 말게. 그런 운이 연달아 따르리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아. 자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짐짓 어른인 척 충고를 건네는 모습이 가소로웠다.
아무리 그게 일반적인 상식이라 해도 말이다.
“충고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허허. 명을 재촉하는군, 자네.”
그러자 제롬과 로건 사이에 서 있던 한 사람, 완연한 백발에 푸른 눈을 한 노기사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두 사람 다 준비되었는가?”
연로한 목소리에 실린 강렬한 기세.
그 모순되는 기묘한 느낌이 인상적인 노기사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현 대륙제일검 트리스 혼스비.’
아까 로건을 압박하던 기세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초인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느낌이 조금 달랐다.
초월 감각에 미약하게 잡히는 불협화음.
무언가 꽉 찬 항아리에서 물이 새어 나가는 느낌이랄까.
완성된 예술 작품에 무언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흠이 새겨진 듯한 모호한 느낌.
그 묘한 느낌에, 로건은 이 대륙 전체에 이름난 검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자가 정복 전쟁 당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도…….’
왕국의 입장에서야 그나마 위안이 되는 추측이었지만, 이 강대한 초인 역시 세월에 좀먹히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니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예, 스승님. 준비되었습니다.”
“저도 준비되었습니다.”
제롬의 목소리를 따라 로건 역시 고개를 끄덕이니 트리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잡아끌기라도 한 것처럼 뒤로 스르륵 몸을 물렸다.
동시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너른 공간에 울려 퍼졌다.
“폐하께서 지켜보신다. 두 사람 모두 최대의 기량을 발휘하라! 단 이 대련의 목적과 위험성을 고려하여 아티팩트의 사용은 허가하지 않겠다.”
두 사람의 눈빛이 동시에 달아올랐다.
‘제롬 디카이드. 초인 특성은 흔치 않은 초능 중에서도 꽤 특이한, 절대적 시야(Absolute Sight).’
미래의 괴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공격을 한발 앞서 분쇄하고, 모든 방어를 한 수 앞서 뚫어 버리며 대적하는 모든 적을 압도하던 괴물이었다.
당시 그를 이길 방법은 압도적으로 많은 병력, 혹은 그가 알면서도 반응하지 못할 절대적인 속도나 마법뿐이라 평가되었다.
거기에 초인으로서도 최절정의 기량을 가지고 있던 그를 압도하는 속도나 파훼하지 못할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반드시 부언으로 따라붙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콰아아앙!
자신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 내는 ‘비’ 오러유저에게 놀라는 애송이일 뿐이었다.
“오러를 막아?!”
그 일격의 교환만으로도 로건은 간단히 견적을 낼 수 있었다.
‘아직 자신의 특성도 제대로 못 다뤄.’
그가 아는 제롬이었다면 공격을 막아 낼 것도 예상해서 다른 수를 썼을 테니까.
당황하는 놈의 표정이 로건에게는 기회로 느껴질 뿐이었다.
“합!”
짧은 기합과 함께 놈의 전면으로 쇄도한 로건. 당황하던 놈의 눈동자가 은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면서도 로건은 그저 할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검을 뻗었다.
손쉽게 간격을 벗어나는 제롬을 향해 휘둘러진 검의 궤적과는 상관없이, 높이 솟구친 황금빛 빛줄기가 뱀처럼 휘어지며 놈의 목을 노렸다.
“엇?!”
스각.
‘아깝다……!’
은빛으로 빛나는 눈을 노렸던 회심의 한 수가 놈의 관자놀이를 스쳐 지나갔다.
눈 옆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 일그러지는 놈의 표정만큼 로건의 표정 역시 그리 좋지 않았다.
‘이러면 곤란한데…….’
그 불길한 생각대로, 상석에서 거센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제롬!!”
그의 스승, 트리스가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듯 벌떡 일어서서 그의 이름을 외치는데.
“아직! 아직입니다! 방심했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여유로운 미소가 사라진 제롬이 발작하듯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에 인상을 찡그린 트리스가 뒤를 돌아봤지만.
“흥미롭군. 계속 진행하게.”
흥미로운 표정을 지은 황제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폐하.”
제롬이 다시 황제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인 순간에야 물러나 지켜보던 귀족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뭐야. 신성이 진 거야?”
“아니, 진 건 아니지. 그냥 부상을 조금…….”
“피가 철철 흐르는데 조금은 무슨!”
“방심했다잖아.”
웅성거리는 목소리 사이에서 잠시 머리를 짚은 제롬의 손길이 금세 흐르는 피를 멎게 했다.
‘역시…….’
아무리 애송이라도 초인은 초인.
얕게 베인 상처를 지혈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자네를 얕본 것 같네. 사과하지. 오러유저도 아니면서 오러를 받아 내고, 그 희한한 공격까지. 확실히 자네는 대단해. 하지만 지금부터는 쉽지 않을 거야. 주의하게.”
“기대하겠습니다.”
제롬의 긴 경고에 로건은 짧고 담백하게 답했다.
그것에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굳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제롬은 이내 처음부터 은빛으로 바뀐 눈으로 로건을 향해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그런 그를 향해 로건 역시 서슴지 않고 돌격했다.
눈동자만 살짝 은색으로 바뀐다는 미래의 괴물에 비해, 지금은 대충 봐도 과도한 힘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과연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까.’
의지가 일어남과 동시에 로건의 칼끝에서 솟아난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뱀처럼 휘어지며 달려오는 제롬의 옆구리를 노렸다.
찔러 가는 검은 그대로, 그리고 자유롭게 휘어지는 포스블레이드는 또 다른 방향으로.
로건이 선택한 제롬의 특성에 대한 대처법이었다.
한때 호적수였던 프란츠의 월광검이 가진 단점을 깨끗이 없앤 로건의 이중 공격.
그에 대한 제롬의 대처는 간단했다.
돌격하던 기세 그대로 상체를 뒤로 젖히며 미끄러지듯 태클을 거는 제롬.
그의 발끝, 각반에 실린 은빛 오러가 로건의 하반신을 부술 듯이 쏘아졌다.
그에 살짝 점프한 로건의 몸이 각반을 피하고, 그대로 찍을 듯 내려치는 룩스와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각기 다른 급소를 향해 번개처럼 쏘아졌다.
하지만 그 목과 하반신을 동시에 노린 공격을, 제롬은 누운 자세 그대로 하반신에서 머리 위까지 직선으로 휘두른 검만으로 동시에 받아쳤다.
꽈아아앙!
‘큭!’
오러의 힘이 양방향에 실린 로건의 검력보다 더 강했기에 가능한 일.
그 순간, 튀어 오르듯 상체를 일으킨 제롬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 나간 로건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그의 검 끝에서 살벌하게 솟구치는 오러가 로건의 가슴을 뚫을 듯 솟구치는 순간.
승리를 확신한 듯 은빛으로 물든 제롬의 눈동자가 제빛을 찾아 가고,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아직 미숙해.’
그러나 허공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것 같던 로건은 방어는커녕 그 옆으로 그대로 마주 찔러 들어갔다.
동시에 제롬의 얼굴을 향해 쏘아지는 황금빛 빛줄기.
커지는 눈동자와 흔들리는 검 끝이, 놈이 이렇게 같이 죽자는 식의 개싸움에 익숙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하지만 놈의 눈가에 다시금 은빛 광채가 드리워지는 순간.
흔들리던 놈의 칼끝이 망설임 없이 옆으로 그어졌다.
꽈아아앙!
‘쯧!’
오러의 폭발.
그 단순한 한 수로, 룩스로 놈의 검격을 비틀고 스네이크 블레이드로 급소를 노리려던 이중 공세가 시도조차 불가능해졌다.
오히려 허공에서 균형이 흔들린 채로 억지로 착지를 하자마자, 눈앞으로 서슬 퍼런 은빛 오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로건은 눈앞에 쏘아진 은빛 오러보다도 변화한 제롬의 눈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흰자위까지 은빛 찬란한 빛을 내뿜던 놈의 눈이, 눈동자에 미약한 은빛만 서린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었기에.
푸른 호수에 뜬 은빛의 달.
은은하게 비치는 사신의 눈.
‘괴물’ 제롬 디카이드의 상징과도 같은 특징을 묘사하는 문구들.
‘흐……. 이런 어처구니없는.’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자신이 적을 진화시켜 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그런 만큼 더욱 물러설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놈을 망가트린다!’
반드시.
결심이 서는 순간, 로건의 몸이 귀신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은빛 오러가 귀신이 남긴 그림자만 허망하게 훑고 지나가는 순간.
제롬의 눈빛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절대 시야를 파훼하는 몇 안 되는 방법.
압도적인 속도.
적어도 지금 로건은 미숙한 초인 제롬보다 훨씬 빨랐다.
채채채챙!
“큽!”
초인이, 초인이 아닌 자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
그 생소한 광경에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무력이 부족한 이들이라도 제롬이 한자리에서 일방적으로 방어만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저런?!”
“저게 말이 돼?”
시끄러워지는 대신들.
하지만 일방적으로 제롬을 몰아치는 로건의 마음은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도 이걸 다 받아 낸다고?’
우우웅.
가슴에서 저릿하게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한계치 이상의 힘을 뽑아내고 있는 포스코어가 한계가 다가왔음을 줄곧 어필하고 있었다.
게다가 적은 점점 더 가속한 움직임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까득.
‘어린 괴물도 괴물이라 이거지? 그렇다면…….’
이제 승부를 걸 것은 하나뿐이었다.
전생의 제롬이 가지고 있던 얼굴의 기다란 검상.
괴물의 유일한 상처였기에 그 이유조차 너무도 유명했다.
– 미숙한 시절,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었다.
그 말을 떠올린 로건이 빠르게 움직이던 속도 그대로 제롬의 앞에서 검으로 땅을 내리찍었다.
쏟아지는 포스의 파도.
16겹의 포스의 파도가 룩스가 꽂힌 지면을 중심으로 폭발하듯 전면을 뒤엎었다.
콰아아아앙!
비산하는 먼지들.
그 순간 자욱한 흙먼지 속으로 은빛과 황금빛이 교차하고, 대련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