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이런!”
물러나 있던 트리스의 검이 번뜩이는 순간 마당의 중앙에 돌풍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런 놀라운 이적보다는 돌풍이 걷어 간 흙먼지 안의 상황에 더욱 집중했다.
자욱했던 흙먼지가 날아가자, 사람들은 동시에 탄식을 토해 냈다.
“저런…….”
“이럴 수가!”
검을 떨어트린 채 기절한 듯 움직임이 없는 제롬.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그의 머리 쪽에서 핏물이 흥건하게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눈썰미가 있는 자들은 그것이 쓰러진 제롬의 오른쪽 눈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순간.
“감히!!”
트리스가 벼락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그의 옆 두 초인과 함께 번개처럼 쇄도했다.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제롬과는 달리, 찢어진 옆구리를 감싸 안고 있긴 하지만 멀쩡히 서 있는 로건을 향해.
그들의 번뜩이는 살기에 로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다.
“어딜!!”
비슷한 타이밍에 고함을 지르며 뛰어나오는 거인이 보였지만.
아무리 봐도 한참은 느려 보일 뿐이라, 로건은 이를 악물며 검의 방향을 틀었다.
황제의, 제국의 자존심을 너무 간과한 것일까.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데리고 간다!’
가능할지 모를 열망을 연료 삼아 억지로 투지를 뽑아냈다.
그러나 이미 바닥을 드러낸 힘은 한계를 쉽게 넘어서지 못했다.
콰앙!
트리스의 공격에 루터 카일이 허무하게 튕겨 나감과 동시에, 두 명의 초인들이 지친 로건을 가볍게 제압하곤 팔다리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비, 빌어먹을.’
이렇게 죽는 건가?
이토록 허망하게?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무는데, 그의 머리에 강한 충격이 더해졌다.
쿵.
“끅!”
로건의 머리를 밟아 누른 트리스.
그가 조용히 검을 겨눴다.
“제국의 인재를 해한 죄, 목숨으로 그 값을 치러라.”
냉엄한 목소리가 로건의 귀를 파고든 그때.
“지금 뭐 하는 거지?”
고요하지만 미묘한 기세가 실린 음성이 좌중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같은 공간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저절로 목소리가 들려온 상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황제의 살짝 찌푸려진 얼굴을 확인한 트리스가 그 자리에서 바로 무릎을 꿇었다.
“폐하. 감히 폐하의 눈앞에서 제국의 인재를 해한 자이옵니다. 처참히 죽여 폐하와 제국의 권위를 세우셔야 합니다.”
“내가 시킨 일인데 결과가 불미스럽다고 하여 처벌하라? 내 꼴을 우습게 만드는군.”
놀랍게도 황제의 냉엄한 목소리는 오히려 트리스를 향했다.
그 순간 낯빛이 창백하게 변한 트리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고는 다시 바닥에 이마를 내리찍었다.
“저, 절대 아니옵니다! 폐하, 저는 그저 제국을 위하는 마음에서…….”
“내가 제국이고, 제국이 곧 나다. 그런데 내 명을 거부하면서 나를 위한다?”
무감정하게만 느껴지는 어조.
그 말에 부르르 몸을 떤 트리스가 대전의 바닥에 연달아 머리를 박아 댔다.
쾅. 쾅.
포스로 몸을 보호하지도 않았는지, 깨어진 이마에서 흐른 피가 그의 얼굴을 흥건하게 적시고.
“죄송합니다, 폐하. 소신이 폐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히 주제넘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트리스는 그 얼굴 그대로 고개를 들어 크게 외쳤다.
“죄를 청합니다!”
“죄를 청합니다!”
그를 따라 로건을 제압했던 초인들 역시 일제히 바짝 엎드렸다.
그 당혹스러운 광경에 발작하며 달려들려던 루터 카일도 얼어붙고, 로건 역시 멍한 표정을 짓는데.
황제의 담담한 어조가 이어졌다.
“흠. 그래도 늦지 않게 죄를 깨달았으니 그대가 평생토록 제국에 공헌한 것을 고려하여 처벌을 결정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말에 로건은 조금이나마 정신이 들었다.
‘역시 보여 주기겠지.’
로건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데, 이어진 황제의 말은 그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트리스, 그대는 황실기사단장의 지위를 몰수하고 작위를 강등하겠다. 루너스, 파비안. 너희 둘도 마찬가지.”
의도치 않은 항명, 그것도 어찌 보면 황제를 위한 일로 볼 수 있는 행동에 대한 대가로는 너무나도 과한 처벌이었다.
‘이게 무슨?’
로건이 지금 자신만 이상한가 하여 주변을 둘러보는데.
“관대한 처분에 감사드립니다!”
오히려 초인들은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황제의 앞에 부복하였다.
아무런 유감도 없는 모습.
적어도 겉으로 읽히는 그들의 얼굴은 확실히 그래 보였다.
‘아무리 군주의 권위가 강하다지만, 초인들을 이렇게…….’
로건이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는데, 황제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처음부터 이상하게 시선을 잡아끌던 검은 눈동자의 광채.
그 광채가 다시 보이는가 싶더니.
“불행한 일이지만, 무인들의 싸움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고다. 이에 관한 죄를 묻지 않겠다. 오히려 짐은 상식을 뛰어넘는 무력을 가진 젊은 영웅, 로건 맥라인의 무용에 감탄하였노라. 하여 그의 승리를 선언하고, 걸맞은 대가를 하사하고자 한다.”
“오오!”
좀 전에 벌어졌던 초인들의 추태를 지우려는 듯, 모여든 대신들이 유난히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로건 맥라인, 그란디아의 젊은 영웅이여. 내게 충성을 맹세하라. 그리하면 그대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작은 왕국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더한 권세와 부귀영화를 약속하겠다.”
예상치 못한 황제의 말에 로건조차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주겠다.
그 말 자체만으로도 이미 상상을 벗어난 제안.
로건 역시 혹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이렇게 많은 신하 앞에서 허언을 뱉을 리는 없으니.
‘여기서 고개만 끄덕이면 나와 가문에 닥칠 위험은 사라진다.’
시간을 거슬러 회귀한 이후 가장 큰 목표였던 가족의 안전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귀화하는 순간 나는 제국 정복 전쟁의 선봉에 서야 하겠지.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내가 고향을…… 쳐야 한다.’
정복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았다.
전생에 들었던 소문을 굳이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황제의 검은 눈동자에는 욕심이 가득했다.
비록 지금은 그것이 자신을 향하고 있지만, 평생 그 어느 것도 양보해 본 적 없는, 할 필요가 없었던 이의 성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남의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자신의 마음도 문제였다.
가족을 위해 얌전히 고개를 숙이는 상상을 하자마자 솟구쳐 오르는 기억들이 편한 선택을 거부하라 외쳐 대고 있었다.
– 적응해서 살면 되지 않겠냐고? 썩은 왕국 귀족들의 폭정이나 제국의 압제나 뭐가 다르냐고?
– 내가 명확한 답을 말해 주지. 그래도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놈들과 물건으로 보는 놈들의 차이다.
– 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죽을 것이다!
루이스 하이온.
현 검공의 오른팔이자, 전생의 그란디아 해방 전선 지도자가 추구했던 가치.
복수심에만 불타오르고 있었던 당시의 자신은 한 귀로 듣고 흘릴 뿐이었지만 대다수의 동지는 그 사상에 동조했고, 그 말에 따라 사람으로 살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캐시, 라이먼, 트레이…….’
그렇게 죽어 간 동지들의 이름이 언뜻 떠오르는 것만 수십이었다.
지금은 자신의 가문 아래 있거나, 어딘가의 야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이들.
포스유저나 마나유저라면 제국의 2등 신민이 되어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으면서 살 수 있음에도 그것을 거부하던 이들.
반쯤 미쳐 있던 인생이라 살갑게 대하지는 못했어도 동료라고 각인 되어 있던 이들의 최후가 기억 속에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그와 더불어 바닷가 도시의 생선처럼 얼기설기 엮여서 제국의 중심부로 끌려가던 그란디아 유민들의 모습도.
전쟁의 상흔으로 온통 피폐해진 국토도.
‘전생의 나는 그들처럼 이상을 위해 싸우지는 않았어.’
그리고 지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왕국과 동포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이 그렇게 크다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오직 분노로만 싸워 왔던 전생의 기억은 그 분노를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멍청하다고 해도 좋다.
바보 같다고 해도 상관없다.
전생에 쌓인 한을 잊을 수 없는 이상, 그는 편한 길을 택할 수가 없었다.
설령 그 끝이 파멸이라고 해도.
‘내 가문, 내 가족은 내가 내 힘으로 지켜 내면 돼!’
그러니.
“과분한 제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폐하. 하지만 저는 뼛속까지 그란디아 사람으로서, 타국의 군주를 섬길 수는 없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헉, 하는 소리가 주위 어딘가에서 터져 나온 것 같았다.
황제의 안색 역시 살짝 굳어지는데.
“허어. 나는 네게 그란디아 왕국만 한 영지를 줄 수도 있고, 그 왕국 전체보다 더한 부를 줄 수도 있다.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 하는 답이더냐?”
헙!
대전 여기저기서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황제가 보이는 이 파격적인 태도가 흔한 것이 아니라는 방증.
하지만 로건의 얼굴은 흔들림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하지만 폐하께서 베푸신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저 정중히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일 뿐.
황제의 체면이 있다면 이 이상은 잡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허……. 허허. 흐하하하하! 거절, 거절이라니! 이거 오랜만의 경험이구나. 그래, 하지만 그래서 또 더욱 탐이 나는구나.”
뭐?
“뭐, 멋진 광경을 보았으니 오늘은 그걸로 되었다. 그대는 조금 더 황궁에 머물라. 좀 더 제국을 겪어 보고, 그대가 무엇을 누릴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그 마음 역시 바뀔 것이다.”
웅성웅성.
황제의 파격적인 제안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무언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여기서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좋다. 주교를 불러 제롬과 손님을 치료하라! 그리고 축제의 시작을 즐겨라! 내 손님에게 제국의 풍요로움을 알려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우렁찬 함성과 함께 대전의 파란이 막을 내렸다.
* * *
“아게론 님의 종, 플렌타스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딘가 창백해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여사제가 로건의 앞에서 합장했다.
9대신의 두 번째 서열, 금과 상업의 신 아게론의 사제라고 보기에는 다소 수수한 복장이었지만, 머리에 쓴 길고 높은 법관만으로도 그 지위를 알 수 있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주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 큰 부상도 아닌데 폐를 끼치게 되는군요.”
“황제 폐하께 그만한 대가를 받은 것이니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형제님.”
플렌타스 주교는 아게론의 주교답게 답하며 싱긋 웃었다.
상급 사제도 아니고 무려 9대신의 주교를 단순한 상처 치료를 위해 부르려면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겠지만, 로건이 거기까지 신경 써 줄 필요는 없었다.
‘주교를 부른 것은 나 때문이 아닐 테니까.’
그래서 자연히 그 결과가 궁금했다.
“제롬 경은 어떻습니까, 주교님?”
“아, 결투를 치르셨다는 제롬 경의 오른쪽 눈은 안타깝게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예?!”
놀라는 척.
그에 플렌타스가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오러유저는 그 강력한 기운 때문에라도 신성력이 잘 듣지 않기 마련이지만, 제롬 경의 부상은 이상할 정도로 낫지 않더군요.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겠지요.”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말.
불꽃 가르기. 이능을 갈라 내는 비전이 담긴 마지막 찌르기가 미래의 괴물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로건은 속으로는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겉으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래서 주교님 표정이…….”
“폐하께서는 크게 괘념치 않으신 듯했지만, 제롬 경은……. 음, 이건 제가 할 말이 아니군요. 형제님 상처나 보겠습니다.”
“아, 제 부상은 그리 크지 않아서…….”
“아닙니다. 오러에 의한 부상은 여독을 주의해야 합니다. 지금은 사소해 보일지라도 후유증을 남길 수 있습니다.”
창백한 얼굴의 주교가 그리 말하며 바로 기도를 시작했다.
“세상을 굽어보는 아홉 신께 미천한 종이 청하나이다…….”
동시에, 오랜만에 느껴지는 보다 근원에 가까운 은밀한 에너지가 주변에 요동쳤다.
넘실거리던 에너지는 이내 로건의 전신에 스며들었다.
스텔라의 성명식에서 보았던 흰빛과는 조금 다른, 황금빛의 신성력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자잘한 부상들이 일순간에 씻긴 듯 나은 것은 물론, 제압당할 때 얻은 약간의 내상조차 순식간에 완치된 것이다.
“우와. 과연 대단한 신성력입니다, 주교님.”
로건이 연신 감탄하는데, 플렌타스 주교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러에 의한 상처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은 처음 봅니다. 아무래도 형제님의 강건한 체질 덕분인 것 같네요.”
잔여 오러는 이미 로건이 밀어 냈다는 것을 모르는 주교로서는 당연한 추측.
로건은 그저 씩 웃어 보이며 주교에게 고개를 숙였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좋은 거래였으니까요.”
웃으며 고개를 젓던 플렌타스.
그러다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녀가 불쑥 물었다.
“아, 형제님이 그란디아에서 오셨다고 하셨지요? 그곳에서 꽤 높은 지위시라고 들었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주교인 사제 앞에서 신분 자랑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로건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수긍하는데.
“아, 다름이 아니라 그란디아의 교구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서 말입니다.”
“이상한 이야기요?”
“예.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아기들이 종종 태어나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혹시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