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
2화
“공자님, 여기…….”
“그래, 고마워. 나가 봐. 오늘 이 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예?”
“……왜 자꾸 말을 두 번씩 하게 만들지?”
“아, 아니. 저한테 고맙다고 하시는 게 너무 이상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그래 다 내 잘못이지.”
주변 식솔들의 평판이야 자신의 행동이 바뀌면 알아서 바뀌겠지만, 그 잘못 하나하나를 자각할 때마다 양심이 따끔따끔 쑤셔 왔다.
게다가.
“공자님, 정말 괜찮으신 거죠? 아직 머리가 아프시다거나…….”
빠직.
실수로 움켜쥔 펜을 그대로 부숴 버릴 뻔했다.
“아! 괜찮다고! 당장 꺼져!”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오히려 릭의 표정은 조금 밝아졌다.
“예, 예, 알겠습니다. 쉬십시오.”
쿵.
– 소리 지르는 걸 보니 정상 같다. 가서 일들 봐.
– 예!
“어흐으…….”
문밖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다시금 머리를 감싸 쥐게 했다.
하지만 당장은 저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당장 중요한 것은…….
“후우우…….”
혹시라도 잊기 전에 생각나는 것들을 모조리 적어 놔야 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살려야 해! 반드시!’
그리고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아직은 기억이 생생한 이 시점에 미래의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놔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했다.
‘제국 전쟁.’
10년 뒤에 벌어질 전쟁이었다.
휘청거리던 맥라인 가문이 최연소 오러 유저 로니안 맥라인의 등장으로 기지개를 켤 무렵, 동생과 가문은 물론이고 나라 자체를 망하게 해 버린 재앙.
그것을 막아 내는 것을 목표로 계획을 짜야 했다.
‘그때까지 최소한 이 나라를 움직일 만한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자면 그때까지 가문에 닥쳐올 시련을 하나하나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했다.
특히나.
‘1년 뒤에 있을 영지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갑자기 터진 영지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시련은 바로 그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그 결과 가문이 반파되어 로니안이 오러 유저가 될 때까지 암흑기를 걷게 되니까.
당장 1년 뒤에 닥쳐 올 위기지만.
‘할 수 있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큰 무기다.
로건은 불타오르는 희망에 열정적으로 글을 써 내려 갔다.
탁.
“후우우. 됐다.”
로건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정보를 현시점에서는 자신만이 아는 암호로 기록해 두었다.
30년 뒤 미래, 그란디아 해방 전선이 쓰는 암호로.
혹시나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없어야 하니까.
‘만에 하나라도…….’
로건이 적은 정보는 말 그대로 미래의 일을 적어 둔 것.
당장 이 글이 퍼진다 해도 단번에 그에게 벌어진 일을 알아낼 순 없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보의 출처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 혹여라도 그가 과거로 회귀했다는 말이 세간에 퍼지는 순간.
제국과는 또 다른 의미로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인 9대 신의 교단이 적으로 돌아선다.
독선적인 교단이 배교자, 혹은 신성모독자를 어찌 처리하는지는 그도 몇 번이나 보았다.
휘말리는 순간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도 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이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밀이었다.
혹시나 잘못 적었거나 유출될 가능성은 없는지 다시 한번 종이의 내용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좋아.”
확인을 마친 뒤에야 두 번째 작업을 시작했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의 정보만큼 중요했다.
‘비전서, 신의 검(神劍).’
과거로 돌아오기 전 로건이 불태워 버렸던 황금빛 매가 수놓아진 서적.
신의 검술이라 이름 붙은 거창한 비전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보물이었다.
고대, 세상을 지배하던 사악한 용을 쓰러트리고 ‘인간의 시대’를 열었다는 영웅.
후에 검술의 신(劍神)으로까지 추앙받았다는 고대 영웅의 비전은 개인의 무력이 곧 사회적 지위와 힘이 되는 현 대륙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적에서 그 비전서를 찾아냈다는 소식에 제국의 수뇌부가 환호했고, 그란디아 해방 전선에서 대부분의 정예를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빼냈어야 할 정도로.
그 마지막 소유자가 자신이었다.
고대어에 능통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보물을 맡았고, 그 때문에 지독하게 쫓기다가 죽었다.
‘잊기 전에 적어 놔야 해.’
독립군의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달달 외웠던 비전서.
비전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완벽히 익히기만 하면 제국의 오러 마스터나 대마법사도 두렵지 않을 최고의 비전일 것이 분명했다.
‘가능해. 충분히.’
회귀 전의 그야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한참은 늦은 나이였던 데다가 본디 재능도 부족하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성년도 되지 않은 팔팔한 나이.
그리고…….
우웅.
로건의 의지에 따라 일어난 황금빛 기운이 그의 몸을 따라 움직였다.
생명의 힘, 포스(Force).
전생의 이 시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힘이 그의 기대를 증폭시켰다.
꾸욱.
육체의 젊음과 포스를 다뤘던 경험. 이것들이 조화된다면 자신의 부족한 재능으로도 이 고대의 비전을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익혀 낼 것이다.
‘로니안. 이번에는 혼자 고생하도록 두지 않으마. 절대.’
달라질 미래에 대한 벅찬 기대가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렇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나자 목표는 정확해졌다.
‘지금 당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명백하다.’
1년 뒤의 영지전.
우선은 그 위기를 넘겨야 한다.
‘할 수 있다. 자 일단 처음에 해야 할 것은…….’
로건이 금방이라도 영지전을 시작할 것처럼 열정을 불태우며 아이디어를 짜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 * * 10시간 후.
털썩.
한참이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내려진 결론은 명확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로건은 밤을 새워 푸석해진 얼굴을 감싸 쥐며 책상에 엎드렸다.
영지전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영지 전력의 강화.
그것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 역시 명확했다.
“기사나 병사의 전력 강화나 무기 증강과 개발.”
당장 떠올린 방안은 몇 가지 있지만, 그 모두가…….
“돈, 돈이 필요해.”
단순히 지금 자신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것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만에 하나 평판이 좋아서 확고한 후계자였다 한들 변하는 것은 없었다.
“……왕국에서 유명한 거지 가문이었지. 젠장.”
집안 자체에 돈이 없다.
돈을 벌 방법. 그것도 당장, 가까운 시일 이내에 떼돈을 벌 방법이 필요했다.
그런 편리한 방법이…….
“있겠냐고…….”
쿵. 쿵.
연신 책상에 머리를 박아 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희망이 생겼다고 좋아하던 게 불과 어젯밤이었다.
어제의 자신을 쥐어 패고 싶었다.
‘차라리 좀 넉넉하게 5년, 아니 3년 전으로라도 회귀했으면…….’
오죽 답답했으면 이미 기적을 경험한 주제에 그 이상을 바라는 염치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계속 현실 도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있는 자원을 쥐어짜서라도 준비하는 수밖에.’
영지전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보존하고 살아남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일단 전생의 실력부터 회복하고, 평판을 바꿔 나간다. 개인적인 일이야 3개월 뒤 그 일만 무사히 넘기면 끝…… 응? 가만?’
갑자기 뇌리를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오호. 그러고 보니 그때 분명히…….’
잘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 방법이 떠올랐다.
‘3개월 뒤라…….’
떠오른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 *
“가주님을요? 찾아가시겠다고요? 일부러요?”
“그래.”
“왜요?!”
“허락을 받아야 할 일이 있으니까.”
대충 예상은 했지만 놀라는 릭의 표정을 보니 이 당시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가 더욱 또렷하게 기억났다.
하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
로건은 방문을 나서며 차분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렸을 때는 자상했고, 좀 커서는 엄했으며.
자신이 스스로 망가진 즈음에는 차갑기만 했던 사람.
– 넌 이제부터 내 자식이 아니다.
그 말이 나오기 전부터 사실상 그에 대한 기대를 끊은 부친.
실례로 이번 공식 대련에서의 사건으로 머리를 다쳐 쓰러졌을 때도 아버지는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다.
망나니 아들과 차가운 아버지.
그 관계가 만들어 낸 감정의 악순환은 그가 쫓겨날 때까지 이어졌다.
물론 전생에는 쫓겨나고도 몇 년간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기에 바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의 최후를 듣고 나서야 좀 더 빨리 찾아가 용서를 빌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 후회의 세월이 무려 20년이 넘었다.
게다가…….
– 자식을 쫓아낸 부모는 얼마나 속이 썩었을까.
가문에 돌아가 용서를 빌어도 될까 망설이던 시절 들었던 말.
어떤 늙은 용병의 말이 가슴속에 저릿하게 남아 죄책감을 더했다.
그런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일이니 긴장될 수밖에 없었고, 미세하게나마 손까지 떨려 왔다.
죄책감?
아니면 두려움?
아니면 기대?
로건 자신도 지금 스스로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다.
후읍.
로건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그리고 당당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 어머나! 요, 용서해 주세요. 대공자님.”
“…….”
미소를 지어야 한다.
“사, 살려 주십시오. 대공자님!”
미소를…….
“자, 잘못했습니다. 화를 거둬 주십시오!”
……조금 다른 이유로 손이 떨려 왔다.
하아아.
“빌어먹을…….”
시종들의 과민반응에 오히려 더 긴장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다.
이 시기에 저질렀던 폭언과 폭행들.
그 패악질들이 쌓인 결과물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양심이 콕콕 쑤셔 왔지만 이건 차차 바꿔 갈 수 있다.
시간을 가지고 변한 모습을 보여 주면 될 것이다.
결코 웃는 표정이 어색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렇게 차분히 숨을 고르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아버지의 집무실이 눈에 보였다.
똑똑.
“아버지, 로건입니다.”
“……로건? 흠, 들어와라.”
덜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가 쪽 책상 앞,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거대한 덩치의 붉은 머리 중년인이 그를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 붉은 눈동자. 사나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은 덩치만 다르지 누가 봐도 로건과 판박이였다.
그 고집스러운 눈매의 중년인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로건은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얼마나 원망했던 얼굴인가.
얼마나 후회하게 만든 사람인가.
그리고 얼마나…….
그리웠던 사람인가.
‘죄송했습니다. 정말…….’
한스러운 마음에 묻고 싶던 말도 많았다.
혹시 자신이, 이 못난 아들도 당신에게 사랑이었는지.
내치실 때 아프셨는지.
그리고…… 그립긴 하셨는지.
전생에 하지 못한 모든 말과 복잡한 감정이 가슴속에 휘몰아쳤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가슴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그저 꿈으로 여기고 담아 두었던 말을 쏟아 내기만 했던 동생의 때와는 다르다.
지금은 우선 변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할 때.
흔들리던 눈빛을 바로잡은 로건은 성큼성큼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생각보다 멀쩡하구나. 그래, 무슨 일이냐?”
그리움과 회한이 뒤섞인 로건의 복잡한 감정과 달리, 아버지의 반응은 첫마디부터 차갑기만 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였다.
“……선산에 들어가 폐관 수련을 하려 합니다. 허락을 받으러 왔습니다.”
이미 각오하고 있던 로건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3개월 뒤,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전생의 경지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무력이 개인의 지위와 권력까지 좌지우지하는 시대.
지금의 평판을 뒤집고, 조만간 겪을 사건에서 발언에 힘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런 그의 생각과 달리 돌아오는 반응은 좋지 않았다.
“폐관 수련? 네가?”
“그렇습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황당함이 가득 찬 눈빛.
“흐음. 동생한테 졌다고 도피라도 하고 싶은 것이냐?”
“그동안 제 노력이 너무 부족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 보려 합니다.”
“노력만 부족했을까…… 아직도 그리 정신 차린 것 같지는 않구나.”
로건이 나름 다부진 표정으로 준비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믿음이라고는 1g도 느껴지지 않는 어조와 한기가 도는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그동안 제 행실 역시 문제였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 말도 이미 여러 번 들었다.”
“그동안 저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지 않고, 주변에 화를 전가했습니다. 어리석고 미숙했습니다. 이번에 수련하는 동안 그 미숙한 마음도 다잡아 보려 합니다.”
“……흐음.”
진심 어린 말이 통했을까, 아버지의 표정이 비로소 조금 변했다.
“……이번엔 그냥 둘러댄 변명 같지는 않구나.”
“더 이상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여태까지는 실망시켰다는 것도 알고.”
“…….”
“얼마 전까지 입으로만 반성한다면서 눈으로는 억울해하던 놈 같지 않구나.”
할 말이 있을 수가 있을까.
로건은 그저 입을 다문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얼마나 있을 생각이냐?”
“3개월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고작 그 정도로 로니안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로니안을 이기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저 짧은 기간이나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되는 일은 겸허히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그 지체 없는 대답에 의외라는 듯 잠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가 어느 순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조금은 변한 것 같구나. 그래, 변해야지. 좋다. 허락하겠다.”
“감사합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인 후 곧바로 돌아서는데, 머뭇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봄이다. 선묘는 잠자리로는 추울 터이니. 따뜻하게 챙기거라.”
예상치 못한 따듯한 말에 움찔한 로건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방문을 나서는 걸음걸이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