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0)
20화로건은 그 순간 자신이 한 단계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코어를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을 공전하는 새로운 코어.
두 코어가 그 어떤 것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코어에서 육체로 바로 공급되던 포스가 이제는 두 번째 코어를 거치며 순식간에 두 배로 증폭되었다.
우우웅.
갑작스레 불어난 힘에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거기다 포스가 질적으로도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더욱 끈끈하고 촘촘해진 느낌은 단순한 양적인 성장 이상의 효율을 보여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구나 2성을 이루었다는 것은 비전의 다음 비기를 익힐 기본이 갖춰진 것이기도 했다.
‘무쇠 가르기, 단금참(斷金斬)…….’
1식이 보여 준 위력만 생각해도 2식의 힘은 충분히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고도 남을 것이다.
그 비기를 전쟁 전까지 익혀 낼 수만 있다면 상급기사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고양된 의식은 자연스레 비전을 떠올렸고, 그때부터 시작된 탐구는 새롭게 밝아 온 아침 해가 그의 감은 두 눈을 자극할 때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음…… 역시 쉽지 않네.”
아쉬움을 담은 말과 달리, 로건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1식인 물결 가르기를 익힐 때도 석 달은 걸렸다.
차분히 노력한다면 전쟁 전까지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로건이 그리 생각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새로운 아침의 햇살을 즐기는데, 그 고요함을 제대로 누려 보기도 전에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공자님, 간밤엔 안녕하셨습니까.”
히죽 웃으면서 들어온 사람은 릭이었다.
수도 없이 본 저 얼굴이 저렇게 웃을 때면 항상…….
“또 곤란한 일이 생겼나 보지?”
“에이, 곤란한 일이라뇨. 제가 그런 일이 있다면 웃을 리가 없잖습니까.”
“나만 곤란하고 너는 재밌는 일이 있을 때 표정인데?”
“하, 하하. 공자님 농담도…….”
“그럼 별일 없다는 거지? 나 훈련하러 간다?”
“가주님께서 식사를 같이하자고 하셨습니다! 가족분들 전부요!”
로건이 곧바로 일어서서 방문으로 향하자, 어색하게 웃던 릭이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로건은 그런 녀석의 볼을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있잖아, 곤란한 일! 이 자식이 어디서 개수작을.”
“아아! 진짜 아파요! 가족끼리 밥 먹는 게 뭐가 곤란한 일입니까! 공자님 가출 사건 이후 처음인데!”
“이놈아, 그거야 일반적인 가족 관계에서나…….”
“몇 년 전까지는 항상 아침 같이 드셨잖아요!”
“……어?”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까마득한 일이라 잊고 있었지만.
‘그래. 그랬던 시절도 있었지.’
머리를 스치는 몇몇 기억들에 순간 멍해지는데, 릭 녀석은 감상에 잠길 틈도 주지 않았다.
“빨리 오라고 하셨습니다. 훈련 중이면 빠지고, 자는 중이라면 깨워서라도.”
“……지금? 왜?”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오늘 공자님 생신이시잖아요! 그것도 스무 번째!”
“……아!”
“아는 무슨 아! 빨리 가셔야 한다구요!”
릭의 독촉에 로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제국의 귀족 가문 중에서는 직계의 성년을 기념하며 성대한 파티를 여는 곳도 있다고 하지만 그란디아 왕국, 그것도 맥라인 가문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그저 평소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여 식사를 함께하며 축하하는 것이 관례라면 관례였다.
물론 로건에게는 그 조차 너무나도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이런 사소한 관례는 무시해도 될 텐데.’
이 자리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생일 당사자의 생각이라기엔 어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의 분위기를 본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식전에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드린 로건과 로니안의 인사를 제외하면…….
“너도 이제 성년이구나.”
“예.”
식사 도중 나온 대화라고는 이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냥 빨리 먹고 일어나자.’
로건은 자신의 접시에 놓인 후식을 한입에 꿀꺽 삼켰다.
“잘 먹었습니다. 그럼 전…….”
“앉아라.”
“……예.”
그러나 이 불편한 자리를 벗어나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로건의 짜증 섞인 표정을 보며, 마찬가지로 후식을 단번에 삼키는 것으로 식사를 끝낸 패드릭이 입을 열었다.
“로건, 너는 이 맥라인 가문의 장자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좋지 않은 예감에 로건의 눈가가 씰룩이는데, 예상대로 정말 불편한 주제가 나왔다.
“본래대로라면 네가 성년이 되는 날이니 가문의 후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보!”
“……하지만.”
깜짝 놀라는 부인을 손을 들어 진정시킨 패드릭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간 네가 해온 행동들은 가문의 후계자에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그 말에 비로소 메리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지만, 패드릭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나! 최근에 기사들의 의견을 듣자 하니,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들었다. 그러니 전에 약조한 대로 1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겠다. 이후에 네가 보이는 모습에 따라 가문에서의 네 지위가 결정될 것이다.”
“여보! 그건!”
“그만하시오. 로니안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니.”
차마 더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할 말이 많은 듯 메리안의 얼굴이 연신 붉으락푸르락했다.
그 곁에서 로니안은 자신이 고기를 씹는지 고무를 씹는지 모르게 억지로 음식을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숨 막히는 상황에서 로건이 대뜸 폭탄을 던졌다.
“굳이 1년 뒤까지 기다리실 필요 있습니까?”
“뭐?”
“가문의 후계 자리, 그냥 로니안에게 주십시오. 저는 관심 없습니다.”
다른 이들은 모르고 있지만 가문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당장 이번의 위기를 넘긴다 해도 10년 안에 또다시 절망적인 위기가 닥쳐올 것이다.
‘그것에만 집중해도 무사히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후계 따위에 신경 쓸 시간 없어.’
로건은 확고한 의지를 담아 다시 말했다.
“무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로니안이 기사 가문의 후계자에 더 어울립니다.”
핑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결국 얼굴까지 붉어지며 호통이 터져 나왔다.
“맥라인 가문의 후계가! 이 자랑스러운 자리가 우습게 보이느냐! 누구 마음대로 주고 말고를 논해!”
쩌렁쩌렁한 고함이 저택을 가득 울렸다.
아버지, 패드릭 맥라인은 마치 세상에 다시 없는 모욕을 당한 듯 자신의 큰아들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의외의 상황에 모두가 굳어 버린 순간.
벌컥.
우당탕탕!
“여, 영주님! 테스론 자작가에서 선전 포고를 해 왔습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변수가 그 살얼음판 같던 분위기를 단번에 박살 내 버렸다.
* * * [억울하게 돌아가신 선조부(先祖父) 케일 테스론 님의 원한을 맥라인 가문에 묻겠다!]
느닷없이 날아든 마법 통신 하나가 맥라인 가문을 뒤집어 놨다.
순식간에 비상이 걸리고 가문 회의가 소집되었다.
2대 전, 무려 60여 년 전의 일이었다.
맥라인 가문의 추락이 시작되던 그 시절의 해묵은 원한이 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인지 원인을 따져 보고 사절을 보내야 한다는 의견부터 전쟁 준비가 먼저라는 의견까지.
가문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대회의로 대응 방향을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모두가 당황하는 가운데, 로건 역시 다른 의미로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 벌써?!’
전생의 기억보다 두 달 가까이 빨랐다.
‘아직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떤 변수가 영지전을 앞당겼는지 도통 짐작이 되질 않았지만, 고민만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공자님! 회의 시간입니다!”
“알고 있어.”
시간이 좀 더 있어서 신검의 비전 2식까지 터득했다면 좀 더 자신감이 생겼겠지만, 지금도 크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언제가 됐건 이기면 그만이다. 무력은 지금도 충분해.’
갑작스레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그간 착실히 준비해 온 만큼 자신감은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테스론 자작가의 병력은 기사단만 해도 우리보다 반 배가 더 많습니다. 아무리 가주님이 계시다고 한들 승산이…….”
“그들이 동원 가능한 정규 병력도 천 명이 넘어요. 우리 가문의 곱절이 넘습니다! 화의를 청해야……”
기사와 일반 병력, 그 모든 전력이 두 배가량 차이가 났다.
상급기사 패드릭 맥라인의 존재를 고려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분명한 열세였다.
그랬기에 회의장은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관례에 따른다면 선전포고 후 일주일 뒤 출전할 것입니다. 적의 본성에서 저희 본성까지는 3일 거리로…….”
“저희 병력이 적으니 수성의 전략을 택하는 것이…….”
“일단 징집령을 내리셔야 합니다. 최대한 병력을 끌어모아 경계를 세우고 순찰도…….”
“아니. 일단 사절부터 보내야…….”
와글와글.
귀족가의 회의답지 않은 소란스러움으로 대전이 가득 찼다.
인상을 찡그리며 이 난장판을 지켜보고 있던 패드릭이 일순간 발을 굴렀다.
쿵!
“모두 조용히 하라!”
모두를 압도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시끄러운 장내를 강제로 침묵시켰다.
“아무리 왕실의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 한들, 왕실의 허가도 없이 대뜸 선전 포고를 한 놈들이다. 작정하고 일을 벌인 것이 분명한데 화의를 말하는 이들은 생각은 하고 입을 여는 것이더냐?”
냉엄한 눈길이 대전을 훑자, 사절과 화의 등의 단어를 내뱉던 이들이 모조리 입을 닫았다.
일갈로 가문의 의견을 전쟁으로 모은 군주가 연이어 소리쳤다.
“모두 전쟁을 대비하라! 그리고 승리의 방책을 말하라! 그 외의 의견은 용납하지 않겠다!”
덕분에 단숨에 방향이 정해지고, 가신들의 의견은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징집은 사흘에 걸쳐…….”
“병사들의 무기와 무구는…….”
“기사단의 훈련은…….”
전쟁을 위한 준비와 편제가 정해지는 가운데, 로건과 관계된 의견도 나오기 시작했다.
“공자님들도 출진하는 겁니까?”
이미 포스유저인 형제들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대공자님은 기사단과 훈련도 함께하신다던데.”
“공자님들은 기사단에 합류하시는 건가?”
몰락하긴 했지만 오랜 기사 가문인 맥라인 가였다.
그들의 입장에서 성년이 된 가문의 직계가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말에 패드릭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들들 역시 출전을 할 것이다. 특히나 로건은 이제 성년이니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겠지.”
로건 역시 당연히 반발하지 않았고, 그로써 로건의 출정은 확정되었다.
다만 그 방향이 조금 문제가 되었다.
“대공자님이 보유하신 용병대가 기마 훈련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제대로 훈련된 기마병은 보병 셋 이상의 전력으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공자님의 용병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충분히 하고도 남습니다.”
드웨인의 말에 로건은 자신감 어린 미소로 응답했다.
하지만 그 말을 정말로 믿는 자는 극소수였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대공자의 병정놀이가 그래도 도움이 되려나.”
“설마. 기껏해야 하급 용병들인데 다 도망이나 안 가면 다행이지.”
로건에 대한 평판이 용병대까지 이어져, 그들의 훈련을 본 적도 없는 이들이 죄다 부정적인 의견만 늘어놓았다.
로건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아버지. 제 용병들은 보병 셋이 아닌 열 이상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몇 달 동안 합을 맞춰 훈련해 온 만큼, 별동대로 따로 운용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가문의 지휘를 받지 않겠다는 뜻이냐?”
“따로 움직이는 게 오히려 전력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뭐 나쁘지 않겠지. 허가한다.”
너무나 쉽게 허가가 떨어졌다.
아마도 용병대를 실질 전력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야 어쨌건 로건으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단, 지휘는 따로 맡기고 너는 기사단과 함께 출진한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