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그날 이후.
더 이상 황제의 눈에 띄기 싫었던 로건은 별궁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축제가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며 별궁 안에서 수련에 집중하던 로건은 어느 순간 그조차 한계에 달했음을 깨닫고 허망한 웃음을 흘렸다.
정확히는 한계가 아니라…….
“좋은 일인데, 분명히 좋은 일인데. 하…….”
별궁의 연무장 가운데에 홀로 서 있던 로건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우우웅.
심장의 포스코어가 여느 때보다 더욱 격렬한 흐름을 보이고, 손안에 피어오른 황금빛 상서로운 빛은 당장이라도 임계점을 넘어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새롭게 거듭나는 탈각의 순간을 예감한 몸이 환희로 부르르 떨렸다.
루터 카일의 예상대로였다.
오러를 완전히 이해한 순간, 그것을 몸에 적용하면 초인이 된다는 것을 로건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수련 중 무심결에 각성하고 만다는 일반적인 초인들과는 전혀 다른 상황.
하지만 그렇게 각성의 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음에도 로건은 그 욕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 돼. 황도에서 초인이 되는 순간 정말로 발목을 잡힌다.’
지금 상태에서도 이미 황제의 과도한 관심을 끌고 있는데, 초인이 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황제는 외교적 무리를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을 붙잡으려 할지도 몰랐다.
미묘한 광채가 번뜩이던 황제의 두 눈을 떠올린 로건이 솟구치는 진화의 욕구를 억눌렀다.
우우웅.
심장의 포스코어가 이 불합리한 억제를 항의하듯 진동했지만, 로건은 조심스레 포스를 가라앉혔다.
‘최소한 아세리안을 떠나고 나서! 지금은 아니야! 절대!’
우웅.
투정을 부리듯 진동하는 4성의 포스코어를 달래며 억지로 힘을 갈무리하자, 새롭게 거듭나길 고대하던 포스가 아쉬움을 남기며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로건은 이 상황이 그저 아쉽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건…… 오히려 좋은 일이야.’
잠깐이나마 각성의 순간을 경험한 것만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진화할 자신의 상태와 그로 인해 얻게 될 힘을 분명히 인식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다듬고 쟁취할 일종의 준비 시간을 갖는다면, 진정한 각성의 때에 더욱 완벽한 진화를 할 수 있으리라는 직감도 들었다.
‘절대 늦어지는 게 아니야. 더 큰 도약을 위한 준비다.’
루터 카일이 꿈꾸듯 말했던 각성 설계라는 개념이 구체적인 형태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막연한 바람이 아닌, 완벽한 실체를 가지고.
‘남은 시간 동안 그 준비를 하고, 황도를 벗어난 후에…….’
꿈을 현실화시킨다.
로건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렇게 기분 좋게 수련을 마치고 연무장을 나서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빅토르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다지 좋지 않은 표정.
“무슨 일이지?”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그냥 무시하라고 했을 텐데.”
“그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뭐?”
로건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되물었고, 이내 빅토르의 대답을 듣고서는 긴 한숨을 쉬며 납득했다.
“그래, 가자.”
지난 파티 이후, 별궁 구석에 자리한 선물 더미는 점점 더 크기를 불려 가고 있었다.
하급 귀족 중에는 하루에 두 번씩 드나들며 로건을 찾아 대는 이도 있을 정도였고, 이전에는 직접 움직일 생각을 않던 백작급 이상의 귀족들도 하나둘씩 별궁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너무 번잡스러워진 상황에 로건이 마지못해 만난 한 백작이 말하길.
– 황제 폐하의 눈에 들었으니 당신은 언젠가 제국의 최고위 귀족이 될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욕심내는 인재는 이제껏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미리 연을 만들어 두고 싶은 거지요.
기가 차는 소리였다.
한마디로 자신이 제국으로 귀화하는 것을 모두가 당연시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로건이 아예 별궁 밖으로는 얼굴도 비추지 않고 수련만 하게 된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손님은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일행의 설득이 먹힐 만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별궁을 지키는 제국의 병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끼이이익.
문이 열리자, 새하얀 백발에 흰 수염이 인상적인 노년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초인이면서도 그에게 허락된 세월의 끝에 다다라 있다는 느낌을 주는 노인.
현 대륙제일검 트리스 혼스비.
불과 얼마 전 제롬과의 대결에서 발생한 일 때문에 황실기사단장 자리에서 해임된 자였다.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것은 처음이군요. 로건 맥라인입니다.”
“트리스 혼스비. 제롬 녀석의 스승이다.”
노기사의 소개는 담백했고, 그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감정을 읽은 로건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만.
“복수라도 하러 오신 겁니까?”
피식.
“복수라…… 폐하께서 용서하신 마당에 그런 감정이 가당키나 할까.”
노기사의 표정은 오히려 평온하게 바뀌었다.
“그럼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차라리 복수 때문에 온 것이라고 했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까.
로건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굳어지는데, 노기사가 손을 내저었다.
“그리 긴장하지 말게. 폐하의 명은 지엄한 것이니 내가 폐하의 손님인 자네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을 것이네.”
“그럼……?”
“단지 폐하께서 자네를 걱정하시더군. 두문불출하고 도통 나오질 않는다고 하니, 직접 또 다른 ‘넓은 세상’을 보여 주라는 명을 내리셨네.”
“예?”
“사실 나도 자네가 제롬 하나를 이기고 제국에 인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던 차라 기꺼이 자원했네.”
“그게 무슨……?”
로건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트리스 혼스비의 전신에서 불꽃 같은 기세가 일어났다.
은유적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불꽃처럼 ‘보이는’ 기세.
“기세의 유형화일세. 이 정도가 가능한 이는 제국에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니 좋은 경험이 될 걸세.”
로건은 단순한 기파를 눈에 보일 정도로 유형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충격으로 커진 눈으로 그 이적을 멍하니 보고만 있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영혼이 망가질지도 모르네.”
노기사의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그 불꽃이 전신을 억눌러 왔다.
‘끄윽!’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사방이 불꽃에 휩싸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화염 속으로 뛰어든 느낌.
움직일 수도 없게 신체를 구속하는 엄청난 압력과 함께 전신에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지독한 고통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으윽! 이, 이게 무슨?!’
정말 이게 기세만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초인의 벽을 바로 앞에 둔 자신을, 마법사도 아닌 기사가 손도 대지 않고 곤경에 빠트린다고?
전, 현생의 경험을 모두 통틀어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상황.
‘이건 말도 안 돼!’
오히려 그 강렬한 충격이 이끌어 낸 오기가 전신을 불태우는 듯한 고통을 참아 내게 했다.
우우우웅.
이윽고 심장에 자리 잡은 포스코어에서 뿜어진 힘이 전신을 맴돌며 맹렬히 파고드는 기세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몸을 옥죄는 압력과 작열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으으으.”
구석구석까지 포스가 흐르고 있음에도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몸, 버틸 수 없는 압력.
로건이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런 고통 속에서도 변화가 없는 신체 상태 때문이었다.
‘물리적 실체를 가진 공격이 아니야. 하지만 그럼 어떻게?’
환각 마법 같은 저급한 술수는 아니었다.
지금 그의 수준이라면 웬만한 마법으로 인한 속임수 정도엔 속아 넘어갈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정신을, 영혼을 직접 타격하는 술수라고? 기사가?’
가능하리라 생각지도 않았던 수법이었지만, 그 정체가 짐작이 가는 순간 해결책도 같이 떠올랐다.
‘불꽃 가르기.’
이내 로건의 머리에서부터 황금빛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오러를 버티게 해 주고, 결계를 부수고, 작정하고 만들어 낸 상처에는 신성력조차 통하지 않게 만드는 힘.
모든 이능을 잘라 내는 이 비전은 이제 개념만으로도 응용이 가능할 정도로 완숙해진 상태였다.
로건의 의지를 따라 일어난 황금빛 포스가 영혼을 옭아매는 ‘알 수 없는 이능’을 그대로 갈라 갔다.
화아악.
단숨에 잘려 나가는 붉은 공간.
‘됐다!’
시뻘겋게 타오르던 주변의 공간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그 앞에 선 노기사의 놀라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
네가 감히 이걸?
로건이 그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을 보며 여유 있게 웃어 주려는데, 눈매를 살짝 찡그린 노기사가 오른손 검지를 들어 그를 겨눴다.
단순히 무언가를 가리키는 단순한 행동.
하지만 그 손끝이 허공의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지는 순간.
쩌어어억.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 선을 따라 세상이 절반으로 갈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선에 마주 닿은 자신의 몸 또한 세로로 쪼개지는 모습이.
‘안 돼!!’
튀어 나오지 못한 비명이 속에서만 맴돌고, 부서지는 세상과 함께 의식이 무너져 내렸다.
‘이렇게 죽는다고?’
생각지도 못한 죽음.
그 고통스러운 자각이 영혼을 침식하는데.
안 돼.
이대로 어처구니없이 끝낼 수는 없어.
절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들끓어 오르는 분노와 오기가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 속에서 영혼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꺼윽!”
불현듯 다시 찾아온 감각과 함께 시야가 어지럽게 일렁였다.
마치 부서진 세상이 다시금 제 형태를 찾아가듯.
너무나도 강렬한 어지럼증에 주저앉아서도 계속해서 구토가 나왔다.
“우웩!”
“공자님!”
“주군!”
“저자가 감히!”
이상한 괴리감.
주변의 집기와 건물들이 멀쩡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고, 자신이 쓰러지고 나서야 기사들이 달려왔다는 것도 너무 이상했다.
로건은 한 손을 들어 달려오는 부하들을 멈춰 세운 채 억지로 눈을 똑바로 떠, 그의 앞에 서 있는 노기사의 얼굴을 보았다.
이 모든 사태를 유발한 주범이 저 노인이었으니까.
“이, 이게 무슨……?”
후유증으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눈물과 콧물을 줄줄 쏟아 내며 억지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소울 블레이드(Soul Blade). 영혼을 가르는 검격이지. 오러유저가 궁극에 가까워졌을 때 체득하게 되는 비전이다.”
“소울……?”
“그렇네. 이게 제국의 정점이 자네에게 보여 주는 ‘넓은 세상’일세. 평생의 자랑으로 삼아도 좋아.”
지랄은.
갑작스레 사람을 공격해서 이렇게 만들어 놓고!
하고 싶은 말은 욕뿐이었지만, 그조차 쉽게 뱉어 내지 못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현재의 대륙제일검은 담담히 등을 돌렸다.
“배우고 싶다면 제국으로 오게.”
너무나도 오만하게 느껴지는 그 한마디만을 남겨 둔 채로.
* * * 곰곰이 생각에 잠겨 걷고 있던 트리스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고개를 들자,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제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불미스러운 일로 한쪽 눈을 잃고 만 제자의 얼굴이.
“제롬…….”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단순히 눈을 하나 잃은 수준이 아니었다.
권능에 가깝다고 느껴지던 특성의 힘까지도 반쪽으로 줄어든 제자.
그러나 그런 비극을 겪은 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제자의 목소리는 평온하기만 했다.
‘확실히 그릇이 커.’
시련에 침몰하기보다는 극복하고 강해지는 것을 택한 넓은 그릇.
그것이 눈앞의 제자였다.
하지만.
“……기세의 유형화도 견디더구나. 오러유저도 아닌 놈이.”
“역시 그렇군요. 그 정도는 되어야 상대할 가치가 있지요.”
자신의 눈 하나를 앗아 간 상대의 강력함이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 웃는 녀석.
녀석의 굳건함은 기꺼웠지만, 좀 전에 본 로건이 남겨 준 인상에 비교하자니 그조차 부족해 보일 뿐이었다.
‘소울 블레이드를 버텨 냈다. 그놈은…….’
본래는 쓸 생각도 없었던 수법.
기세의 유형화를 너무 쉽게 이겨 낸 것이 체면이 상해 과한 수를 꺼내 든 것인데, 반폐인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법을 멀쩡히 견뎌 냈다.
“확실히 폐하께서 주목하실 만한 천재더구나.”
너를 능가하는.
‘정말 제국으로 온다면 이 생이 끝나기 전에 진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제자에게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삼킨 채.
트리스 혼스비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소울 블레이드를 맨정신으로 버텨 내는 놈이 자신의 의지를 꺾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폐하, 잡지 못한다면 죽이셔야 합니다.’
이 말을 군주에게 전해 놈을 죽일지, 아니면 선배 기사로서 그 찬란한 재능이 만들어 낼 역사를 기대하며 잠시나마 숨죽여 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