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트리스 혼스비가 남긴 충격은 컸다.
육체적 상처는 없었음에도, 그 후로 사흘이나 지난 뒤에야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게다가 수련을 재개하고 그 알 수 없는 수법에 대한 투지를 다시 불태울 수 있게 되기까진 거기서 일주일이 더 필요했다.
듣도 보도 못한 수법을 태연하게 펼치는 초인.
‘확실히 스승님보다 강해. 그것도 한 수 이상 차이가 난다.’
암담한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느낀 감각이 정확하다면 그는 수명이 다해 가는 초인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힘을 선보인 것이 경악스러웠고, 또 그의 말대로라면 그런 초인이 제국에만 넷이나 더 있다는 말이기에 두려움이 커졌다.
– 배우고 싶다면 제국으로 오게.
더군다나 마지막에 남긴 그 말은 황제가 말한 그 어떤 유혹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영혼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이겨 낼 수 있어. 언젠가는.’
대륙제일검이 보여 준 충격적인 수법은 자신이 미래에 성장해야 할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해 주었다.
그랬기에 그는 그 충격을 극복하고 유혹을, 미련을 털어 낼 수 있었다.
‘반드시!’
그 생각 하나만으로 로건은 다시 별궁에서의 수련을 이어 나갔다.
‘제대로 된 각성은 황도를 벗어난 후에. 지금은…….’
그 후 로건은 황제와 약속한 기한이 다 지나서야 처음으로 별궁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봄 축제의 끝.
황제에게 왕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전하기 위하여.
“전해 주시오.”
로건은 붉은 눈을 들어 황금룡이 새겨진 문을 바라보았다.
황도를 떠나기 전 넘어야 할 마지막 고비가 저 안에 있었다.
“그란디아의 로건 경이십니다”
– 들라 하라.
끼이이익.
다시금 황제를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의 집무실, 3주 만에 만난 황제가 주는 압박감은 여전했다.
검은 눈에서 번뜩이는 기이한 광채는 여전히 가슴을 불안하게 했고, 좀처럼 생각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은 그 불안감을 더했다.
“흐음. 오랜만이군, 로건. 그래, 내 선물은 잘 받았나?”
선물.
트리스 혼스비의 그 일격을 말하는 것이다.
로건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예.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로건의 대답에 황제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트리스는 자네가 새삼 인상적이었다고 하더군. 그래, 생각은 바뀌었나?”
인상적이라.
‘과분한 평가군.’
그때의 추태를 떠올린 로건은 잠시 씁쓸한 기분을 느꼈지만, 대답은 지체 없이 나왔다.
“폐하. 과분한 평가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또 죄송합니다. 저는 역시 그란디아의 신민으로 남고 싶습니다. 오늘로 축제의 기간이 끝났으니, 이만 왕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흐음……?”
그 단호한 답변에 황제는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로건이 우려했던 말을 내뱉었다.
“아느냐?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원하는 것을 포기해 본 적이 없다.”
절대로 놔주지 않겠다는 뜻.
예상했던 최악의 반응에 로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렇다고 황제의 강요에 응할 수는 없으니, 강경하게 나가는 수밖에.
“……그러시다면 저의 죽음만을 얻게 되실 겁니다.”
“허허허. 죽음을 불사하겠다? 너의 왕이 너에게 그렇게 큰 의미더냐? 네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충성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황제의 판단이 무엇에 근거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대로 핵심을 찔렀다.
움찔하는 로건을 보며 황제가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니 원하는 것을 말하거라. 무엇을 원하건 그 이상의 대가를 주마. 너의 왕이, 너의 왕국이 절대 줄 수 없는 것을.”
눈앞의 지배자는 확실히 기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확고하게 뜻을 정하고 온 로건조차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하지만 로건은 무의미한 미련을 떨쳐 버리고 다시금 확고하게 뜻을 전했다.
“저는 자유를 원할 뿐입니다, 폐하.”
“자유? 왕국을 향한 충정이 아니라?”
빈말로는 이 확고한 눈의 지배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기묘한 광채를 뿌리는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고, 그 안에 담긴 욕심은 포기를 몰랐다.
그렇기에 로건은 제 진심의 일부를 고스란히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저의 왕은 저를 강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폐하는 다르시지요. 그렇기에 저는 제국에 남을 수 없습니다.”
“뭐라? 흐……하하하하! 그러니까, 너의 왕은 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왕국에 남겠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더냐?”
“예. 그렇습니다.”
“푸하하하하! 이거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놈이로구나. 하하하하, 이런 미친…….”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황제의 웃음소리가 한참 동안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조아린 로건도, 황제의 뒤를 지키던 초인도 고개를 갸웃할 즘이 되어서야 황제의 웃음이 멎었다.
그리고 입꼬리가 씩 올라간 황제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좋다. 보내 주마!”
생각보다 쉽게 나온 포기 선언.
그에 로건이 놀라면서도 반색하는데, 황제가 바로 말을 더했다.
“하지만 그냥은 안 된다.”
빙긋 웃는 얼굴에 로건은 미약한 불안감을 느꼈지만, 이어지는 황제의 말에는 헛웃음 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황제는 말 그대로 로건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 내 손님에게 박하게 굴었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지. 약소하게나마 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황제가 보낸 그 약소하다는 선물들은 그 이전까지 별궁에 쌓인 귀족들의 모든 선물을 합한 것보다도 많은 양이었다.
갖은 보석과 재화들이 사두마차 다섯 대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가히 제국 중소 귀족의 전 재산을 가볍게 능가하는 가치였다.
결국 로건 일행은 마차가 아닌 말에 올라, 재물로 가득한 다섯 대의 사두마차를 호위병처럼 운송하는 꼴로 황도를 나서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온 제국이 떠들썩해질 일이었지만, 제국 귀족들에게 더욱 화제가 된 건 로건 개인에게 하사된 아티팩트, ‘신의 견갑’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그란디아의 손님에게 무구형 아티팩트를 선물했다.
기묘한 황금빛 문양이 그려진 그 어깨 갑옷이 화제가 된 건 그 자체의 가치보다도 황제의 의도 때문이었다.
황제가 자신이 정말 아끼는 기사에게만 무구를 하사한다는 것은 제국 내에 널리 알려진 사실.
왕국의 사절이 황제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그래서 이런 소문이 황도에서부터 제국 전체로 빠르게 퍼져 나가는 것도 그리 이상하진 않았다.
덕분에 로건은 황도를 나선 첫날부터 인상을 잔뜩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곤란하게 만들었어. 그 양반…….”
“혹시 강도라도 들까 싶어서 그러십니까?”
피식.
말하는 자도 듣는 자도 웃을 수밖에 없는 말.
오러유저와 기사들이 뭉쳐서 움직이는 일행에게 달려들 강도라면 그냥 천치들일 것이다.
“이런 소문을 달고 돌아가는 게 문제지.”
“예?”
어리둥절한 빅토르의 반문에 로건이 설명을 덧붙였다.
“재물을 받아도 너무 받았고, 상징성 있는 보물까지 받았으니 누가 봐도 내가 황제랑 친하다고 생각할 거 아냐.”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시빗거리를 만든 거야. 옳다구나 하고 덤빌 놈들이 있을 테니까.”
“예? 그란디아에서 감히 누가 주군을 적대한다고……?”
왕이.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던 로건은 그저 쓴웃음만 배어 물었다.
물론 황제의 장난질이 곤란하기는 해도, 그로 인한 문제보다는 제국행으로 인해 얻은 것이 더 컸으니 불평만 하기에도 우스웠다.
‘황제를 직접 보고, 그런 초인이 있다는 것을 안 것만 해도 제국에 온 가치는 있었어.’
아직은 거대하게만 느껴지는 황제의 모습과 상상치도 못한 수법을 쓰는 압도적인 실력의 초인.
그 존재들을 직접 보고 느낀 것은 앞으로 놈들을 상대해야 할 로건으로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거기다 덤으로 얻은 보물.
우우웅.
황제가 신의 견갑이라 명명한 아티팩트가 어깨에서 존재감을 발산했다.
– 오러에도 부서지지 않는 무구다. 단단한 것이 전부지만 곧 초인이 될 너에겐 어설픈 아티팩트보다는 이런 무구가 훨씬 나을 것이다.
황제조차 그리 설명하며 건넨 물건.
하지만 로건에겐 받을 때부터 익숙한 느낌이 드는 물건이었다.
겉으로 느껴지는 미약한 마나 저편에 훨씬 커다란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느낌.
비프로스에서 얻은 풍신의 부츠와 크라우네에게서 얻은 괴력의 건틀릿이라 이름 붙인 아티팩트를 처음 쥐었을 때와 동일한 느낌이었다.
‘이런 걸 이렇게 얻을 줄이야.’
황도를 떠난 즉시 포스를 주입해 본 결과.
역시나 그의 포스를 엄청나게 빨아들인 견갑은 되돌아온 포스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숨김없이 알려 주었다.
‘내구력 강화와 회복력 증가. 4클래스급 실드 마법에 자체 복원까지.’
자신의 포스에만 반응하는, 이제는 기묘한 인연으로 느껴지는 특별한 아티팩트들이 벌써 세 개째.
비프로스나 크라우네는 둘째치고, 황제조차 이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물론 이전의 방치되었던 물건들과는 달리 이 녀석은 오러를 버틴다는 것만으로도 높은 가치의 아티팩트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이런 아티팩트들이 더 있을까? 있다면 왜 내게만……?’
아직은 알 수 없으나, 나쁜 일은 아닌 만큼 로건은 기꺼운 마음으로 새로운 무구를 착용했다.
그리고 이번 제국행으로 얻은 보상은 황제와 초인에 대한 정보, 그리고 아티팩트만이 아니었다.
우우웅.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황금빛 상서로운 빛.
이제부터 얻게 될 힘은 제국에서 경험한 거대한 저력을 버텨 낼, 그 미래를 헤쳐 나갈 가장 큰 열쇠가 될 것이다.
“루터 공. 잠시 호위를 부탁드립니다.”
“음? 갑자기?”
“곧 재밌는 것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로건이 손끝을 들어 오러의 광채를 보여 주자 그 뜻을 알아들은 루터가 눈을 부릅떴다.
“너, 설마…… 진짜? 벌써?”
많은 부분이 생략된 그 말에 로건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일행은 황도를 벗어난 첫날 저녁부터 유난히 일찍 야영지를 정하게 되었다.
* * *
“폐하, 그렇게까지 해 주실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로건이 떠난 자리.
아무도 없는 집무실 허공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하지만 황제의 수호 기사인 레오나드도, 황제도 놀라지 않았다.
“과하다고 여기는 것인가?”
피식 웃는 황제의 목소리에 보이지 않는 이가 대답했다.
“쥐여 준 재물 정도야 그리 대단할 것이 없습니다만, 무구형 아티팩트를 하사한 것은 좀 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폐하께서 쌓아 온 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별다른 효용이 없는 아티팩트라 하나, 타국의 기사에게 지나친 호의를 보이신 듯싶습니다.”
황제의 행사를 비판하는 이.
제국의 신하들로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황제는 그리 불쾌해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과하지 않다. 20대 초반에 불과한데 초인이라는 무력도 무력이지만, 황궁의 한가운데서 나를 도발하는 기개가 더 가치 있다. 저런 의지를 꺾고 언젠가 내게 오게 만들려면 그 정도 투자는 해야지.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다. 내가 이놈을 찜했다고.”
“……놈이 끝내 폐하를 거부하고 제국을 적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가서 부수면 될 뿐이야.”
황제의 사고는 확실히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듯, 그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했다.
다만.
“……2황자 전하께서 그란디아에 손을 쓰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분의 성향을 봤을 때, 아무래도 그와 적대할 확률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어진 말에는 황제도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스? 그 아이가?”
“예, 폐하.”
“흠. 뭐, 그것도 재미있겠군.”
“그냥 두고 보시렵니까?”
옅은 미소를 지은 황제가 덤덤한 어조로 답했다.
“젊은 인재들이 서로 치고받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는 법이지. 알아서 하도록 두어라. 다만 로건 그놈은 가능한 회유해 보도록 하라고 전하고.”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