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이건 또 웬 미친놈들인지…….’
머리가 아파 왔다.
상식적으로 이제 와서 테러를 일삼으며 계승권을 주장한다 한들 그 누가 인정을 하겠는가.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생각이다.
그 말인즉, 1왕손이었던 클래비스를 핑계 삼아 까닭 모를 테러를 자행하는 놈들이 나타났다는 뜻인데, 그 목적을 모르니 배후를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어떤 놈들이지?”
[확실한 건 1왕손을 추종하는 무리라는…….]“1왕손이 언제 적 1왕손이야.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지금은 그저 반란군일 뿐이다.”
[아, 예. 그렇죠. 아무튼 그 클래비스를 추종한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없습니다.]로건이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고작 반년 정도를 떠나 있었을 뿐인데 이런 엉뚱한 일이 생기다니.
“데미안은 아무 말 없나?”
[예, 없습니다. 아직은 조직을 건설하는 단계라 돈만 쓰고 있다고 죄송하다는 메시지만 전했습니다.]“끄응. 그래, 그렇겠지.”
혹시나 했던 기대도 역시나로 끝나고 마는데.
또 엉뚱한 소리가 이어졌다.
[다만 정보 길드 녹스에서 전하길, 테러범들을 목격한 이들 중에 클래비스를 보았다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뭐?”
진짜 클래비스가 있다고?
설마 진짜 정신 나간 테러 집단이 존재한다는 건가?
절로 한숨이 나오는 이야기.
‘아니, 아니겠지. 녀석을 이용해서 뭘 꾸미는 놈들이 있다는 거야. 알아봐야겠어.’
왕국 내부 단속을 위해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놈들에 대한 로건의 생각은 딱 그 정도였다.
물론.
“빨리 돌아가야겠군.”
그 때문에 루스펠하임에서 맥라인까지의 여정은 절반 이하로 단축되었다.
* * *
“대공자님이 돌아오셨다!”
근 반년 만에 돌아온 영지.
맥라인 타운의 영지민들은 로건과 그 일행을 성대하게 환영해 주었다.
갈 때는 없었던 사두마차 여덟 대와 그 안에 가득한 재물만 보더라도, 대공자가 또 무언가 한 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오러유저인 루터 카일이 맥라인에 정착하기로 했다는 것까지 알려지자, 다시금 영지 전체가 로건에 대한 칭송으로 들썩였다.
– 역시 대공자님!
이제는 맥라인에서 거의 관용어처럼 사용되는 표현.
그 격한 환호 속에서, 로건은 고개를 갸웃하며 관저에 들어섰다.
자신이 돌아온 것을 가장 반겨야 할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까닭이었다.
“그, 그게…… 집무실에 가 보시면 압니다.”
왜인지 시선을 피하는 드웨인을 보며 로건이 조심스레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 안에서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불쑥 솟아올랐다.
산발한 붉은 머리칼, 진해진 눈 밑 그늘.
“누구……?”
피로에 찌든 목소리의 소유자는 로건과 시선이 마주치자 순간 얼어붙었다.
“에일렌?”
“로건 공자?! 어, 언제 왔…….”
말을 하다 말고 에일렌의 머리가 다시 사라졌다. 서류 더미 뒤에서 우당탕탕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길 잠시.
조금 전보다는 한결 단정해진, 그러나 여전히 피로에 절어 있는 듯한 얼굴의 그녀가 조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로건의 앞에 섰다.
“오, 온다는 말은 들었는데, 일에 치이다 보니 오늘이라는 걸 깜박했어요. 좀 추레……하죠?”
“아니,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에일렌이 왜 여기에 있어요?”
“그, 아버님이 출장을 가신다고 결제권을 저에게 맡기셨어요. 이제 저도 슬슬 가문 돌아가는 걸 알아야 할 것 같다고.”
허. 이 양반이.
여자라고 차별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아예 일을 통째로 떠맡겨?
사람이 변해도 그렇게 변하나?
황당한 이야기에 잠시 멍해져 있던 로건은 한 박자 늦게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출장이요?”
“그게, 내용은 비밀이라고……. 그냥 로건 공자가 맡기신 일을 하러 간다고 하셨어요.”
“아……!”
녹스가 가져다주었던 목록.
에일렌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아버지에게 맡겼던 일을 떠올린 로건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럼 지금쯤…….’
로건이 생각에 잠기자, 바뀐 분위기를 읽었는지 에일렌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제국에서는 별일 없었나요? 좋아 보이긴 하는데.”
그에 로건이 다시금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약혼녀를 바라보았다.
완전히 고생한 몰골임에도 아름답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물론 평소의 건강미 넘치던 모습이 더 좋은 것은 당연하지만, 피곤하고 초췌한 표정조차 보듬어 주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얼마나 피곤했으면.’
황당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교차해서 쉽게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손을 들어 황금빛 서광을 보여 주었다.
그녀 또한 기사이니 이 의미를 알 것…….
“오러!! 우와아아아!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으억! 자, 잠깐만. 소, 손 좀……!”
갑자기 화색이 돈 에일렌이 거의 멱살을 잡을 듯 달려드는 바람에 로건은 포스를 끌어 올려서야 간신히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게, 루스펠하임에서부터…….”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말이 길어졌다.
하지만 그 긴 이야기, 제국에서의 일을 다 듣고 난 후의 에일렌은 오히려 눈빛을 처음보다 더욱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었다.
특히나 제국의 초인들과 각성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유독 더.
그 눈빛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피식 웃음도 나왔다.
“역시, 당신도 서류 체질은 아니죠?”
“예. 솔직히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솔직한 대답에 피식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왜 당신이 이 일을 다 해요. 여군 일도 있을 테니 드웨인에게 맡겨도 됐을 텐데.”
“아! 안 그래도 여군 관련해서 보고할 것도 있어요. 훈련 결과도 잘 나오고 있고, 얼마 전 남자 병사들과 대련했을 때의 결과도…….”
“에일렌.”
“……좋아서 이제 증원을 해도 될 것 같, 예?”
“알았어요. 이제 쉬어요. 내가 왔으니 이제 내가 할게요. 그 일은 서류로 보고를 해도 될 테니 좀 쉬어요. 힘들어 보여요, 많이.”
“……정말 괜찮은데.”
그런 말을 하면서도 책상에서 슬그머니 멀어지는 것을 보니 서류 작업이 얼마나 하기 싫었는지 짐작이 갔다.
로건은 쓴웃음과 함께 자리를 넘겨받고는 힘차게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쾅.
쾅.
또 쾅.
초인적인 육체 능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빠르게.
홀가분한 표정의 에일렌이 집무실을 나서려다 말고 멈춰서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저기, 로건 공자. 내용은 안 봐요?”
“이거 확인하기 싫어서 유능한 관리를 뽑은 건데요. 최종 확인은 드웨인이 다 했을 거예요.”
“어, 그러다 뭐 잘못되면요……?”
“그럼 담당자 책임이죠.”
“헐…….”
무언가 굉장히 억울한 표정의 에일렌이 입을 벌리고 눈가를 씰룩일 때.
관저 밖에서 로건 일행이 가져온 재물을 분류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던 털보 행정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어으. 왜 갑자기 춥지.”
서류 작업이야 대충 해치웠지만, 로건은 드웨인을 통해 자신이 알아야 할 영지의 변화에 관한 사정은 전부 챙겨 들었다.
실제로 로건이 직접 나서서 할 만한 일은 여군의 추가 모집 공고와 요새 도시 타렌에 관련된 일뿐이었으니, 전체적인 영지의 변화를 파악하는 데에는 고작 사흘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제야 여유가 생긴 로건이 테러범에 관한 일을 다시 떠올리며 정보를 수집해 볼까 생각하는 순간.
드웨인이 집무실로 뛰쳐 들어왔다.
“대공자님!! 그 반란군들이 최근 왕국 동북부에서 봉기했다고 합니다!”
“봉기? 놈들에게 그럴 병력이 남아 있어? 대체 어디 영지에서?”
“옛 자히드 백작령이라고 합니다. 1왕자파였다가 처형당한 백작이 다스리던 곳이요. 그런데 근처 남, 자작들의 군대가 모두 쓸려 나갔다고 합니다!”
“뭐? 놈들이 대체 어디서 그런 병력을 모은 건데?”
“그거야 저도 잘 모르지요. 안 그래도 왕실에서 대책 회의를 연다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아무래도 수도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
고향에 돌아온 지 고작 3일 만에, 로건은 곧바로 다시 수도로 향해야 했다.
* * * 정신없이 말을 달려 사흘 만에 도착한 수도, 그랑.
로건은 자신의 저택도 들리지 않고, 바로 스승에게로 향했다.
“왔느냐.”
초췌한 표정의 스승.
하지만 로건을 보는 순간이나마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국에서의 이야기는 들었다. 거창하게 저질렀더구나.”
“저지르다뇨?”
“황제의 권유를 뿌리쳤다는 말 말이다. 왕국만 한 영지를 주겠다는 말도 했다던데?”
“그거야 뭐, 저야 그란디아 사람이니까요.”
말을 하면서도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맥라인 영지와는 달리 스승은 아세리안에서 벌어진 일을 상당히 자세히 알고 있었다.
‘데미안에게 자금을 좀 더 투자하면 빨라질까.’
새삼 개인 정보 조직의 필요성을 자각하는데,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스승이 눈에 이채를 띠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 이 녀석, 설마 벌써……?”
“제국행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로건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스승을 바라보았다.
스승이 자신의 각성을 알아챈 것처럼, 오러유저의 경지에 올라서 보는 스승의 기세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제는 얼추 그 한계가 보인다는 사실이 스스로 뿌듯하기도 하고, 또 암담하기도 했다.
‘확실히 루터나 위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야. 하지만…….’
제국의 트리스, 그 수준은 절대로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루터는 하급, 스승은 상급 정도일까.
그렇게 복잡한 감정을 담아 스승을 보는데.
그 눈빛을 어찌 해석했는지 스승이 어깨를 두드렸다.
“고맙다. 이 나라를 버리지 않아 줘서.”
“버리긴 왜 버립니까. 제 고향인데.”
“그래서 고맙단 말이다, 이 녀석아.”
“그 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니, 폐하께서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진 않으셨다. 그저 국정에 힘쓰고 계실 뿐, 네가 걱정하던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스승의 얼굴은 왜인지 어두워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폐하야 별일이 없다지만, 반란군이라니. 이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그들이 만나게 된 이유가 이유였으니 말이다.
“주변의 하위 귀족들이 모조리 쓸려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한 병력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수가 있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옛 변경백 수준의 병력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문제인데, 심지어 이 순간에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더구나.”
“더 커지고 있다고요?”
“내전에서 실각한 하위 귀족들이 연달아 놈들에게 참여하고 있다더구나. 도대체 무슨 가능성을 본 건지…….”
“허……. 짐작 가시는 게 전혀 없으십니까?”
“그래. 그러니 그것을 의논하기 위해 대책 회의를 한다는 것 아니겠느냐. 누군가는 정보를 가지고 있겠지.”
자신이 모르는 정보망을 가진 스승도 놈들의 배후를 모른다.
그 말에 로건의 안색이 살짝 찌푸려졌다.
스승을 만나면 무언가 분명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반란군이라는 놈들이 죄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인데.’
그 찜찜한 기분 속에서, 로건은 스승과 함께 왕궁의 대전 회의에 참석했다.
* * *
“펠릭스 에스페란자 대공과 로건 맥라인 백작 드십니다!”
그그그긍.
왕궁 대전의 문이 열리자, 그 안에 도열한 수많은 귀족의 시선이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전 안으로 들어선 그들이 상석의 왕을 향해 다가가는 짧은 순간에도, 주변의 귀족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 왔다.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각하,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국 황제가 크게 감탄했다죠? 역시…….”
“우리 그란디아의 별, 황제가 직접 칭호도 내렸다지요. 과연 대단하십니다.”
제국에서의 소식을 어디서 접했는지 하나같이 아부를 해 오는 귀족들.
“지금 내 얘기나 할 때가 아닐 텐데요?”
인상을 찌푸리며 뱉은 말에 단숨에 찌그러지는 이들을 보며, 로건은 작은 한숨과 함께 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로건 맥라인이 그란디아의 군주를 뵙습니다.”
“펠릭스 에스페란자가 그란디아의 군주를 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대공. 그리고 로건 경. 제국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던데,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날 선 태도로 일관하던 이전 왕의 모습은 없었다.
부드러운 웃음으로 환영하는 왕의 모습에 로건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염려하신 덕분입니다.”
“내가 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왕이 능력이 없다 보니 반란군이 생기는 것이겠지요. 고작 그대가 자리를 비운 반년 사이에 말입니다.”
“……반란군은 곧 처리될 것입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들으니 든든합니다. 자, 얼른 놈들을 처리할 방도를 마련해 봅시다.”
군주와 최고 실권자들의 화기애애한 모습.
로건과 왕의 불화설을 들었던 귀족들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회의에서도 왕은 로건을 향한 그 신뢰를 아낌없이 보여 주었다.
“맥라인이 직접 나서 주면 쉽게 끝날 일이 같은데. 로건 공,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부드럽게 미소 짓는 왕의 시선이 로건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