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맥라인군이 반란 세력의 중심지인 자히드 성까지 도착하는 데에는 2주의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각지로 흩어진 다른 토벌군이 있다고 해도, 명목상의 주력은 맥라인.
산발적인 습격을 예상했음에도 진군로는 조용하기만 했다.
‘한군데서 총력전을 하겠다? 그게 될 것으로 생각하나?’
자히드 성에 도착한 뒤에야, 로건은 그 의문을 확실히 풀 수 있었다.
넓은 성벽 위에 빽빽하게 도열해 있는 익숙한 무기, 연사 석궁들을 발견한 것이다.
“이게 이렇게 돌아오나…….”
왕국의 전력 강화를 위해 유통한 것이었는데.
“이미 왕국 전역에 풀리긴 했습니다. 그래도 반란군 손에까지 들어갔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제국에 다녀온 뒤, 언제부터인가 부관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빅토르가 로건의 탄식에 답했다.
“기사로 보이는 놈만 얼추 500이 넘는 것 같다고 했고, 최상급도 있다고 했나?”
“예. 확인된 놈은 셋입니다.”
“더 있을 수도 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에 보고된 병사 수도 1만을 넘었습니다.”
“뭐, 그 정도야 상관없어. 그렇지?”
“예.”
빅토르의 자신감 어린 대답에 로건 역시 미소를 지으며 전열의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전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함을 내질렀다.
“성안의 반란군은 들어라!”
아군과 적군, 전장에 존재하는 모든 이의 시선이 로건에게로 모여들었다.
“구시대 폭군의 자손을 섬기는 자들은 그 일가족까지 모조리 처형될 것이다! 죽고 싶지 않은 자는 지금이라도 무기를 내리고 투항하라! 내가 직접 선처를 보장하겠다!”
다짜고짜 항복을 권유하는 말.
“물론 클래비스를 충동질하여 이런 사태를 만든 귀족들은 선처 없이 처형이다. 어차피 죽을 놈들의 말을 듣지 말고, 무기를 내려라. 투항하면 살 수 있다!”
대놓고 병사들의 분란을 노리는 목소리가 자히드 성 여기저기에서 소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웃기지 마라!”
성벽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마주 소리를 지르는 이.
“전쟁과 상관도 없는 왕실의 핏줄들까지 모조리 죽여 버린 학살자의 말을 누가 믿겠느냐! 로건 맥라인, 네가 바로 폭군이다!”
그의 목소리가 자히드 성의 소란을 잠재웠다.
“우리는 폭군의 치하를 벗어나 클래비스 전하의 온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와아아!”
로건과 대조되는 푸른 머리칼을 가진 중년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병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로건은 몇백 미터의 거리를 넘어 놈의 갈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저놈이구나. 반란군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는 최상급기사가.’
초인만큼은 아니라지만, 제국도 아닌 그란디아에서 최상급기사들의 가치는 상당했다.
그리고 그 대다수는 부유한 영주나 귀족 집안 아래에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놈은 갑자기 클래비스 옆에서 튀어나왔지.’
최소한 저놈만큼은 이 사태의 배후를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꼭두각시 왕을 세워 나라를 어지럽히는 폭군, 로건 맥라인을 오늘 이 자리에서 척결하자!”
피식.
로건은 놈의 도발을 들으며 검을 뽑아 하늘 위로 치켜세웠다.
“투항하는 자는 살 것이고, 저항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너희가 말하는 폭군의 힘을 보여 주마!”
압도적인 기세가 담긴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박살을 내 주마!!”
로건의 칼끝이 성을 향하는 순간.
맥라인의 진영 가운데에서 붉은 빛을 발하는 돌들이 성벽 안으로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폐하. 맥라인의 정예가 빠졌으니 제가 반란군에게 크게 당할 거라 생각하셨다면 큰 착각입니다’
로건은 성벽을 초토화하기 시작한 리베라티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전에서 활약한 맥라인의 무기들은 이미 왕국 전역에 소문이 자자했다.
일반인이 기사나 마법사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무기들이었으니까.
전략이나 전술에 관심이 있는 자들 중엔 맥라인의 무기가 대륙의 전사(戰史)를 바꿀 지표가 될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강력한’ 맥라인의 기사들과 요르단 발터마임을 쓰러트린 ‘비(非)초인’ 로건 맥라인에게로 집중됐다.
거기에 더한다면 마도사인 클레이튼 정도.
기사와 영웅, 그리고 마법사.
천 년이 넘도록 쌓아 온 문화가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주목하게 만든 것이다.
더구나 내전 후에 로건이 연사 석궁을 전국에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무기는 더 이상 특별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거기다 두 번째 무기인 리베라티오는 필요한 재료가 귀해 생산량이 적다는 거짓 핑계를 들어 애초에 외부에 유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정거리의 한계 때문에 공성전이나 난전에서는 효용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었다.
물론 내전이 끝난 지도 벌써 1년이 지난 만큼, 전보다 작고 가볍게 개량이 이루어지긴 했다. 그러나 그 본질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다만, 맥라인에는 그것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들이 있었다.
그그극.
3m는 될 듯한 거대한 골렘은 유난히도 오른팔이 두꺼웠다.
그 굵은 오른팔이 수레에서 푸른 돌 몇 개를 집더니, 정확한 각도를 유지하며 성벽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 투척은 돌이 날아가는 동안 받을 압력까지 정확하게 계산된 행동이었고, 곧바로 붉게 달아오른 돌들은 성벽 위의 병사들에게 적중했다.
꽈아앙!
쾅! 콰앙! 쾅!
“으아악!”
“이, 이게 뭐야!”
“사, 살려 줘!”
한 번에 폭탄 세 개씩을 정확한 지점에 투척하는 기형 골렘.
그런 골렘을 무려 50개체나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클레이튼 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하하. 개량된 리베라티오와 제 골렘 아미의 조합은 웬만한 마도사 대여섯보다 나을 겁니다.”
로건의 칭찬에 클레이튼이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골렘을 조종하느라 이마에 땀방울이 살짝 맺혀 있었지만, 골렘이 타격을 받아 부서지지 않는 한 이 정도는 이제 가벼운 운동 수준에 불과했다.
더구나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지팡이형 아티팩트, 켈라한의 지팡이는 마나(Mana)가 아닌 마력(Mana force)의 운용을 절대적으로 보조해 주는 아티팩트.
한때는 후안 더글라스의 애병이었던 최고의 아티팩트였다.
“마도사 대여섯 이상의 화력이라, 확실히 그렇네요. 돈이 좀 들어서 그렇지.”
스크롤과 비교해 말도 안 되는 가성비라는 것이지, 리베라티오도 돈이 왕창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리베라티오가 실시간으로 뭉텅뭉텅 줄어드는 광경을 드웨인이 본다면 심장에 무리가 올 것이다.
하지만 클레이튼은 웃고 있었다.
“뭐 어떻습니까. 그만한 가치를 하는데요.”
자신이 만들어 낸 파괴의 향연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는 그 모습에서, 예전에 그 평화를 사랑하던 마법사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로건으로선 선량한 마법사 하나를 타락시킨 듯하여 살짝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필요한 일이니까.’
아무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 광경에는 가치가 있었다.
“거기다 저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클레이튼의 시선을 따라가니 각기 골렘을 움직이는 그의 제자들이 보였다.
골렘 마탑이 맥라인의 상징적인 마탑으로 성장하며 수십 명의 수습 마법사가 생겼지만, 전투에 투입될 만한 이는 아직까지 기존의 제자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도 충분했다.
특히나 그릭과 에난, 트루스. 이제는 각기 4, 3서클의 마법사가 된 이들의 골렘은 클레이튼의 골렘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모습으로 그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나 그릭의 골렘은 아예 투척을 위해 양팔을 변형시킨 듯, 양손으로 각기 4~5개의 리베라티오를 집어 들고는 한 지점에 정확하게 투척하고 있었다.
꽈아아아앙!
“아아악!”
한 번의 공격이 거의 4서클의 화염 마법에 준하는 수준.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이제 조금씩 숙녀티가 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어린 십 대의 소녀, 빅토리아였다.
‘역시 천재는 달라.’
그녀는 아틀란의 지팡이를 들고 2m 크기의 골렘 열 개체를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사형들의 골렘과는 달리 리베라티오를 딱 하나씩 던지고 있을 뿐이지만, 열 개체의 골렘이 동시에 정교하게 성벽 위의 목표를 맞출 수 있도록 조종하는 일은 마법 문외한이 보기에도 훨씬 어려워 보였다.
“허……!”
로건이 감탄하며 멍하니 보고 있자, 뿌듯한 표정의 빅토르가 끼어들며 동생을 자랑했다.
“리아가 얼마 전에 벌써 4서클을 달성했답니다. 더구나 응용력과 마나 컨트롤 능력은 그 이상이라고 하고요. 클레이튼 님이 역사에 남을 천재라고 어찌나 자랑을 하시던지.”
“나도 그때 같이 들었다, 이놈아.”
핀잔을 주기는 했지만,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고작 열여섯 살에 4서클 마법사.
어쩌면, 아니 확실히 또 하나의 마도사가 될 인재였으니까.
로건은 새삼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골렘들의 마법 폭탄 폭격으로 이미 아수라장이 된 성벽 위.
‘리베라티오의 물량도 벌써 절반이나 사용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수십 대의 수레에 싣고 온 리베라티오가 순식간에 절반가량 거덜 났다.
골렘 군단이 한 번 투척하는 것만으로도 200개에 가까운 물량을 소모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
그 대가로 성벽 위의 병사들은 이제 다시 고개를 내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비명만 지르고 있었고, 적의 정예들은 죄다 성벽 안으로 숨어 버렸다.
‘이 이상 물자를 낭비할 필요는 없지.’
이제 확실하게 마무리를 할 때가 되었다.
“루터 공!”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전부터 애병을 꺼내 들고 있던 루터 카일이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성문부터 부숩시다.”
“좋아. 그럼 내가…….”
“아니,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기꺼이.”
로건의 생각을 짐작한 루터가 자연스레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라!”
리베라티오의 폭발음조차 잡아먹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황금빛 빛살에 휩싸인 로건이 성을 향해 번개처럼 내달렸다.
“놈이다!”
“빨간 머리!”
“놈이 혼자 달려온다!”
로건의 뒤에서 달려오는 거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성벽 위에서 외부 시야 확보를 위해 억지로 버티던 몇몇 기사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에 응답하듯, 질주하는 로건의 위로 살아남은 병사들이 쏘아 낸 쿼렐의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
‘굳이 오러를 쓸 필요도 없지.’
로건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그의 전면에 둥그런 막을 형성했다.
타다다다당!
“괴물…….”
“어서 막아!”
“대체 어떻게……?!”
그저 돌격하는 것만으로 성벽 위의 병사들에게 공포 섞인 비명을 선물해 준 로건이 사납게 웃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30m가 넘게 솟구친 황금빛 빛줄기가 이내 커다란 검의 형상을 취했다.
그리고.
“무너져라!!”
쩌어어어억.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실린 거인의 검이 성문을 중심으로, 성벽을 단숨에 비스듬하게 양단했다.
성문 안에 준비된 철창도, 그 위에 대기하던 기사도.
그리고 성문 안에서 돌진을 준비하던 기사들의 일부까지.
“합!”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재차 휘둘러진 거인의 검은 성문을 포함한 중앙 성벽을 완벽하게 무너트렸다.
우르르르릉.
콰아아아앙.
한 명의 인간이 성벽 자체를 박살 내는 광경.
그 비현실적인 파괴의 향연에 전장의 모든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솟구쳤던 흙먼지가 잦아드는 순간.
“모두 꿇어라! 저항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투항하는 자는 살 것이다!”
황금빛을 흩뿌리는 붉은 머리 괴물의 고함에 두려움에 질린 다수의 병사가 무기를 떨어트렸다.
‘빌어먹을 괴물 자식!’
푸른 머리의 최상급기사, 리차드 역시 속으로 비명을 지른 것은 마찬가지였다.
믿기지 않는 장거리 폭격에 기사 수십을 허무하게 잃었을 때도 이렇게 암담하지는 않았다.
초인을 이겼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30m가 넘는 포스블레이드를 휘두르다니. 누가 믿겠냐고!’
차라리 놈이 오러유저라는 게 더 현실성이 있을 듯했다.
아득한 압박감이 느껴졌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속마음과 반대되는 고함을 내질렀다.
“놈은 혼자다! 죽여!”
그가 말에 올라타며 포스블레이드를 뽑아 올리자.
“지금이 기회다!”
“정신 차려!”
옆에 있던 동료, 데릭 클랑과 쿠퍼 펄슨이 호응해 주며 그와 함께 전장을 독려했다.
“우와아아!”
물러설 길이 없는 수뇌부의 선동에 기사들이 호응했다.
모두가 바보라서가 아니었다.
든든한 숫자의 힘이 눈앞의 압도적인 폭력에 저항할 용기를 준 것이었다.
폭격과 조금 전의 거대한 포스블레이드로 조금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아직 500 가까이 남아 있던 기사들이 그렇게 정신 무장을 마쳤다.
“돌격! 로건 맥라인을 끝장내라!”
히이이잉.
그렇게 무너진 성벽을 넘어 돌진하는데.
“모두 죽겠다 이거지?”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황금빛 서광이 비쳐 들었다.
꽈아아아앙!
뒤이어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최상급기사 셋이 동시에 땅을 나뒹굴었다.
“커, 커흑. 오, 오러?!”
“쿨럭! 초인이라고?”
“말도 안 돼!”
최상급기사 셋이 지른 비명 같은 외침에 돌진하던 기사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거기다.
“푸하하하! 누가 혼자라더냐?!”
꽈아아아앙!
어느새 로건의 옆에 나란히 선 거인이 자신의 몸만 한 워 해머를 휘두르며 선두의 기마들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루터 카일!”
“반거인!”
“뒤, 뒤에도 온다!”
그 뒤편에선 이제는 왕국 전체에 명성이 자자한 골렘 마스터가 만들어 낸 기사급의 골렘 50여 개체가 쇄도하고 있었고, 폭탄을 투척하는 대신 직접 전투에 나선 그 골렘들 옆에는 맥라인의 기사들 50여 명이 함께 돌진해 오고 있었다.
거기다 멀리 뒤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일반 병사들까지.
앞에서 막아 줄 병사들이 무너져 버린 반란군 기사들로선 엄청난 부담이었다.
“반항하는 자, 모두 죽을 것이다.”
차가운 미소를 지은 로건의 황금빛 오러가 사신의 손길처럼 적 기사들에게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