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설마 용병대에 지휘관 노릇을 할 사람도 없느냐?”
“……있습니다만, 제가 만든 용병대입니다. 그러니 제가…….”
“너는 가문의 장자다. 하급 용병들과 함께 전장에 나서서 적의 전공이라도 세워 주고 싶은 것이냐!”
가주의 꾸짖음에 듣고 있던 이들의 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대에 대해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로건은 물러나지 않았다.
“기사단에서 제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차라리 용병대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전체 전력에도 보탬이 될 것입니다.”
“뭐라?!”
애초에 로건은 영지전에서 용병대와 함께 활동할 생각이었다.
연사 석궁은 완벽하게 만들어졌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대책이었던 기사단 합류는 이제 없는 경우의 수가 되었다.
그동안 기사단 훈련에 계속해서 참여했던 것은 자신의 발전과 영지전 이후의 미래를 생각한 행동일 뿐이었다.
‘어차피 기사단은 아버지가 지휘한다. 나는 용병대와 움직이는 것이 나아. 그 녀석들은 내가 죽으라 하면 적어도 죽는시늉은 할 테니까.’
로건의 입장에서는 가장 합리적으로 내린 판단이었지만 당연히 패드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네가 용병대와 함께 움직이다가 사로잡히거나 죽게 될 경우, 아군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게 될지 예상해 보았더냐!”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전쟁이 애들 장난 같으냐? 네가 훈련시킨 하급 용병들이 무적의 부대 같더냐? 아니면 현실과 망상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것이냐?!”
마지막 말에는 분노가 절실히 묻어났다.
패드릭은 철없는 아들이 비상사태에도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한다 여겼다.
하지만 그가 속이 터질 일은 이제 시작이었다.
“멍청한 것도, 현실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있어야 할 자리, 제가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고작 네 병정놀이 부대다?”
“제 용병들은 병정놀이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워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로건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패드릭에게는 그저 떼를 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더욱 그의 화를 불러일으켰다.
“……꼭 그리하겠다면 지금부터 나는 너를 아들로 생각하지 않겠다. 이번 전쟁에서 사로잡혀도, 설령 전사한다 해도 우리 가문과 상관없는 이 취급을 하겠다는 말이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극단적인 패드릭의 발언에 모여 있던 가신들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대공자의 대답은 더욱 놀라웠다.
“그리하셔도 좋습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꼭 내 복장을 뒤집어야겠느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야! 세상 모든 것이 네 뜻대로 돌아갈 것 같으냔 말이다! 그리도 생각이 없어!”
얼굴이 벌게진 패드릭의 분노가 폭발하며 날 선 외침이 로건에게 쏟아졌다.
“그래. 네 멋대로 해 보거라. 하나 내 말을 잊지 말아라. 이 전쟁에서 너는 가문의 직계로 대접받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드시 공을 세우겠습니다.”
“이익! 도대체가…….”
위기 상황 때문인지 패드릭은 평소보다 더욱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패드릭의 평점심을 뒤흔드는 것은 로건만이 아니었다.
“가, 가주님! 비상사태입니다!”
가문 회의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이 문을 박차고 들어 왔다.
전시 상황보다 비상이 있겠나 싶었지만 시종이 들고 온 소식은 실로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카이로스 가문에서 병력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전해 왔습니다! 시기가 맞지 않고 자금의 유동성이니 뭐니 이야기는 하는데…….”
그 말에 가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메리안에게 꽂혔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진 메리안이 떠듬떠듬 변명하듯 말을 꺼냈다.
“뭐, 뭔가 착오가 있을 것이야.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레 소리를 높였지만, 시종은 굳은 얼굴로 확언을 내렸다.
“드웨인 님께서 몇 번이나 확인을 한 사안이라고 하십니다.”
그 말에 순식간에 메리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내, 내가 직접 확인해 보겠다!”
상석에 있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며 다급히 발걸음을 움직이는데, 가신들에게 익숙한 덩치가 뒤늦게 대전에 들어서며 침통한 표정으로 재차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가모님. 카이로스 가문의 공식적인 거절이 맞습니다. 동시에 오늘부로 우리 맥라인에 대한 재정 지원도 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드웨인의 말은 충격을 넘어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차후에 더욱 큰 폭탄이 될 수 있는 재정 지원의 문제는 당장은 화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완벽한 아군으로 생각했던 가주의 처가가 비상 상황에서 손을 떼었다는 사실, 당장의 지원 병력이 없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대전을 혼란으로 뒤엎었다.
“아냐! 아냐!”
“어, 어머니. 진정하세요.”
“뭔가 잘못된 걸 거야! 아니, 착오야! 착오가 분명해!”
“어머니!”
메리안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전을 뛰어나가자,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로니안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로건은 그런 동생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형님.”
절망적인 상황에서 홀로 희망을 말하는 형의 모습이 자신을 위로하는 허세라 생각했기에 로니안은 더욱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카이로스 가문이 던진 충격은 컸다.
다른 가신들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수군댈 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그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가주를 보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냉철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역시나 그렇게 되는가.’
카이로스 가문이 영지전에서 조력을 거절한 것은 전생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다른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선 긋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에 로니안이 오러유저가 되어 가문을 다시 되살렸을 때도 외가와 연락을 끊은 것을 보면 이 관계가 다시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았다.
물론 로건에게는 어떻게 되든 의미 없는 소리였다.
‘이걸로 새어머니는 이전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할 것이다. 영지전만 승리한다면 더 이상 가문 내부에 걸림돌은 없다.’
오히려 찜찜한 걸림돌 하나가 치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로건은 거리낌 없이 앞으로 나설 수 있었다.
“저는 준비를 위해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추후 지시하실 사항이 있다면 따로 연락을 주십시오.”
누구도 호응하지 않는 공허한 울림이었지만, 대전을 나서는 로건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 * *
“전쟁……입니까?”
“그래. 놀라지 않는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무슨 끔찍한 소리를…….”
“무기가 생겼으니 써 보고 싶은 게 당연한 사람 심리 아닙니까.”
카이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용병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전쟁에 익숙한 용병들이라고는 하나, 이들의 자신감은 너무 과해 보였다.
‘하지만 그럴 만하지.’
지난겨울 동안 맥라인 본성까지 내려온 몬스터 떼는 예년의 1/10도 되지 않았다.
가문 내부에서야 그런 해도 있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분위기였지만 로건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난겨울의 몬스터 떼는 어느 때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고작 300여 명의 용병대에 학살당했다.
이들의 자신감은 허세나 오만이 아닌, 확실한 근거가 가져다준 확신이었다.
“자! 그럼 적들을 쓸어 버리러 가자!”
“예!”
예상치 못한 전쟁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어수선한 맥라인 가문.
그중에서 오직 314명의 사람만이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 * * 전쟁은 맥라인 가문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시작되었다.
“서부 경계선에서 테스론 자작가의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후방에 하만 테스론 자작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놈들이 관례도 무시하고…….”
선전포고 후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테스론 자작가의 병력이 벌써 맥라인 영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의 주력이 테스론 본성에서 출발했을 것을 고려하면,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적의 병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기사의 수만 100명이 넘습니다. 정규병력으로 보이는 놈들도 1천 이상입니다!”
“거, 거기다 징집병으로 추정되는 전력이 거의 일만! 총력전입니다!”
“뭐라?! 하만 그놈이 정말 미쳤구나!”
속속 들어오는 기겁할 소식에 패드릭이 노성을 터트렸다.
국가 간의 전쟁도 아니고, 명분을 내세운 국내의 영지전이었다.
한데 방어하는 쪽도 아니고 공격하는 쪽이 징집병까지 동원하다니.
더구나 보통 사람에겐 초인과 다르지 않을 기사들이 주전력이 되어 격돌하는 것이 현시대의 전투다.
징집병은 아무리 많아도 그저 승세를 굳히거나 열세를 늦추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만 테스론이 ‘그것’을 얻고 싶어서 환장했다는 거지.’
이 전쟁의 진짜 원인을 알고 있는 로건이 볼 때도 황당한 수준이 었으니, 가뜩이나 분주했던 맥라인 가문은 난리가 났다.
“미친 자식들. 징집병 1만? 영지민을 쥐어짠 거야?”
“기사가 100명이라고?!”
“언제 그렇게까지…….”
징집병도 징집병이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적의 주전력, 기사단이 몇십 명이나 늘어났다.
“하만, 이 미친놈이 영지의 운명을 걸었구나.”
까드득.
패드릭이 얼굴을 구기며 부러질 듯 이를 악물었다.
“우리 준비 상황은?”
“기사단 53명 준비 끝났습니다.”
“정규병력 552명 준비 끝났습니다.”
“징집병들은 하루 정도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로건 용병대 314명 준비 끝났습니다.”
패드릭은 큰아들의 시답지 않은 보고는 무시한 채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이제 와 선대의 원한 운운하는 것을 정말로 믿을 머저리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현 맥라인 영지가 그다지 매력적인 먹이가 아니라는 것을 패드릭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미 적의 병력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 이유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정신 차리고 당장 필요한 일을 하자, 패드릭 맥라인.’
패드릭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세를 바로 했다.
몰락한 가문, 이제는 고작 남작에 불과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군주였다.
결코 흔들리고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었다.
“무기를 들 수 있는 남자를 모두 모아라! 우리도 전력으로 응대한다!”
“예!”
“병력이 모이는 대로 출진한다! 우리 앞마당에 겁도 없이 들어온 놈들을 박살 내 주겠다!”
징집을 최대한으로 한다 한들 맥라인 가의 병력은 5천 남짓이었다.
징집병을 제외한다 해도 기사단과 정규 병력의 차이만 두 배가 났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심각한 전력 차이였다.
그런 마당에 패드릭은 수성전도 아닌 야전을 지시했다.
하지만 가신들은 아무런 반대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것도 그대로.’
로건은 찡그린 얼굴로 아버지의 지시를 듣고만 있었다.
전력이 불리함에도 평원에서의 전면전을 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현시점에서 전쟁의 주 전력은 누가 뭐래도 기사단이었다.
포스유저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초인들이 튼튼한 무장을 하고 방진을 이루어 돌진하는 순간.
그들은 동일한 수준의 강자들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파괴 병기가 되었다.
높고 튼튼하지만 아무런 마법적 효과가 없는 맥라인 본성의 성벽은 다수의 기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성벽이 뚫린 뒤 불리한 전력으로 난전을 벌이느니 뭉쳐서 대응할 수 있는 전면전이 차라리 나은 것이다.
그리고 맥라인 가문에서는 따로 기대하는 바도 있었다.
바로 상급기사 패드릭 맥라인의 존재였다.
귀한 전력인 기사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달성한 경지의 강자가 바로 그였다.
보통 포스유저 중급, 중급기사의 경지에만 올라도 웬만한 기사단의 수위 기사급으로 인정받는다.
상급기사는 그런 수위 기사급 강자를 열 명 이상 상대할 수 있는 전력으로 평가되었다.
그렇기에 패드릭과 가신들은 비록 테스론 기사단의 반수밖에 되지 않는 맥라인 기사단이지만 상급기사인 가주가 있으니 최소한 밀리지는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영지전은 결국 그 실권자인 영주가 항복하거나 사망하면 끝나는 전쟁이었다.
상급기사인 패드릭이 하만 테스론을 잡거나 죽이면 이 전쟁도 끝날 것이다.
‘……라고 생각하겠지.’
로건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라 간의 전쟁도 아닌 변방 영지 간의 전쟁이었다.
기막힌 전술과 전략보다는 힘과 힘의 승부가 되는 것이 정상이었다.
가문의 전술 같지 않은 전술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문이 진다는 걸 내가 알고 있지 않았다면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전생과 달리 로건 자신과 그의 용병대가 있다.
‘그러니 결과를 바꾼다. 반드시!’
모두가 분주한 대전에서 홀로 외면받고 있던 로건이 두 눈을 빛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