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이게 대체?”
굳은 안색으로 잠시 말이 없던 왕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씀드렸듯 반란군 수괴들의 목입니다, 폐하.”
“아니, 그게 무엇인지는 알겠소만 이걸 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왕은 이내 대전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깨닫고는 살짝 안색을 굳혔다.
그러고는 헛기침 후에 태연히 말을 이었다.
“어려운 와중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로건 공.”
그러나.
“확실히 정예들이 빠져 어렵기는 했습니다.”
그 단도직입적인 말에 왕이 다시 움찔하고, 좌중의 시선은 다시 로건에게로 쏠렸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맥라인의 정예들이 왕의 강권으로 수도에 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그 상황에서도 무리 없이 반란군을 토벌한 것이기에 더 놀라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자연히 귀족들은 로건이 앞으로 어찌 나올지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로건이 지금 당장 왕실을 엎어 버리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다행히 그런 극단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지요. 폐하와 왕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다시는.”
그 말이 왕을 향한 경고임을 듣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얼굴이 붉어진 왕은 한동안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지 못했지만,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로건을 치하했다.
“물론입니다. 로건 공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가 있는 한 앞으로도 왕국은 ‘그 어떤 분란’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려 놓으십시오, 폐하.”
왕의 억지 미소는 로건의 차가운 붉은 눈과 마주치는 순간 그대로 굳어졌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 찰나,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
“반란군을 토벌하신 로건 경의 공을 치하하기 위한 자리 아닙니까. 폐하, 흉한 물건들은 속히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왕의 아랫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자의 말.
로건의 눈길이 자연스레 그에게로 쏠렸다.
‘클레오라고 했던가?’
중년 관리의 부름에 내궁부의 왕실 시종들이 종종걸음으로 황급히 달려와 나뒹구는 수급들을 챙겼다.
그 조용한 부산스러움이 대전에 감돌던 어색한 공기를 날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왕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궁내부장의 말이 옳다. 더구나 우리 왕국의 기둥인 로건 공이 왕국의 네 번째 초인이 되었다고 하던데, 사실이라면 그 경사를 축하하는 자리도 되어야 하지 않겠나. 로건 공, 그 소문이 참말입니까?”
“운이 좋았습니다, 폐하.”
로건이 옅은 미소로 답하자, 대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그란디아의 별!”
“저 나이에 정말 대단하군.”
그 찬사를 들은 왕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게 로건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나아가 짙은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입과는 달리 딱딱하게 굳어진 눈매 또한.
그러나 왕은 다시금 부드러운 목소리를 토해 냈다.
“역시 그렇군요. 하하, 정말 왕국의 경사입니다. 로건 공, 어찌 그 어린 나이에…….”
꽉 쥐어진 주먹을 숨기려는 듯, 혹은 직전에 지었던 당황한 표정을 숨기려는 듯 뒷짐을 지고 일어난 왕이 대전에 모인 신료들을 보며 양팔을 활짝 펼치고는 크게 외쳤다.
“자, 그럼 왕국의 새로운 초인이 탄생한 것과 반란군의 토벌을 축하하며 성대한 파티를 열겠다! 대소신료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도록!”
그러더니 옥좌에서 천천히 내려와 보란 듯이 로건의 손을 꼭 잡았다.
“로건 공,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공이 없었다면 이 왕국이 어찌 되었을지, 정말 상상만으로도 심란해집니다.”
내가 있어 심란한 것은 아니구요?
“감사합니다, 폐하.”
겉으로는 미소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고,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겉보기에는 왕과 로건이 완전히 화해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 모습에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귀족들이 그제야 로건의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후작 각하!”
“경사를 축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각하!”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그것을 지켜보던 왕은 조용하고 엄숙한 얼굴을 유지한 채 가장 먼저 대전을 벗어났다.
로건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 뒤를 지켜보는 가운데, 중년의 관리 클레오만이 그 뒤를 조용히 종종걸음으로 쫓았다.
쾅!
왕은 대전의 문이 닫히자마자 옆에 있던 화분을 걷어찼다.
곁에 있던 기사가 움찔하는 것을 보며 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흠, 꽃이 부실하군. 다시 채워라.”
“예, 폐하.”
차마 다시 미소를 지을 여력도 없던 왕은 그저 억지 핑계를 둘러대고 걸음을 빨리할 뿐이었다.
이내 아무도 없는 복도에 다다르자, 왕은 제 옆에 따라붙은 클레오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찾아봐. 놈의 허점이 될 만한 거면 뭐든지.”
까득.
이가 갈리는 소리.
대충 들어도 무리한 명령이었다.
자연히 클레오의 안색도 굳어졌지만.
“특히 이번 반란군 진압 관련해서 조사해 봐. 아무리 초인이 됐다 해도 너무 빨리 처리했어. 분명 뭔가 무리한 게 있을 거야.”
냉막한 얼굴로 분노를 토하는 왕의 앞에서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대전에서 이어진 파티 자리.
로건이 그 정신없는 축하 자리에서 간신히 벗어났을 땐 이미 해가 기울고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가문의 기사들마저 먼저 저택으로 돌려보낸 상황.
고즈넉한 달빛 아래서 생각을 정리하려던 로건은 왕성을 나서는 길에 이 소란의 와중에도 한동안 보지 못했던 이를 만났다.
“스승님.”
“내가 늦었구나.”
“아닙니다. 당연하지요. 국경에서 오신 걸 알고 있습니다. 폐하의 명이었다는 것도요.”
“그래. 그랬지.”
씁쓸한 웃음을 짓는 검공의 옷자락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이 나라의 2인자인 대공의 옷차림이 흙먼지로 얼룩지고 시종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아마도 소식을 듣자마자 홀로 달려온 듯했다.
“미안하구나. 내가 국경으로 가는 동안 폐하께서 일을 그리 처리하실 줄은 몰랐다. 손발을 다 떼어 놓고 반란군을 처리하라고 하셨다니…….”
“다 지난 일입니다. 그리고 해냈구요.”
제자의 뿌듯한 미소를 보며 검공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 소란이 없는 것을 보니 폐하께서는 무사하신 모양이구나.”
“……예?”
“아, 아니다. 내 노파심이 과했다. 고생했을 텐데 내 저택으로 가자꾸나. 스텔라가 요새 들어서 자꾸 너를 찾고는 하니…….”
씁쓸히 웃음 짓는 스승의 모습에 로건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이 무슨 걱정 때문에 저런 모습으로 달려온 것인지 그제야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제가 폐하를 해하리라 생각하셨습니까?”
“솔직히 반반이라 생각했다.”
“반이나요?”
“네가 충분히 화를 낼 만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제가 폐하를 해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그분을 왕위에 올리려고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느냐.”
그 달라진 상황 때문에 제가 왕을 공격했다면 스승님께서는 어찌하시려 했습니까.
로건은 마음속에 치밀어 오른 의문을 뱉어 내는 대신, 얌전히 고개를 저었다.
“다르지 않습니다. 제국의 위협은 여전하고, 저는 그것 때문에라도 귀찮은 갈등을 이어 갈 생각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견제하려 하지만 않으신다면 달라질 일은 없습니다.”
“……너는 아직도 그 얘기를 하는구나.”
“예?”
그나마 자신의 말을 이해해 주던 스승의 어조에서 부정적인 느낌을 받은 로건이 되물었다.
“제국의 황제가 너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느냐. 재위 기간이 10년이 넘어가도록 국지전조차 일으키지 않았던 그 황제가 말이다.”
“제가 직접 만나 보고 더욱 확신한 것입니다. 황제는 자신의 욕심을 포기할 사람이 아닙니다.”
“너를 얻기 위해 왕국과 전쟁이라도 할 거라는 말이냐?”
“제가 아니라 세상을 얻으려 할 겁니다.”
로건의 말이 의외였던 것일까.
검공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본의는 아니지만 국경에 가서 느낀 것이 있다. 우리 서부 국경, 그러니까 제국의 동부 국경에서 병력이 많이 빠지고 행상에 대한 세금도 많이 줄었더구나. 너 때문인지 몰라도 친왕국적 정책으로 돌아선 것이야. 그래도 그리 생각하느냐?”
“예. 기만책입니다.”
너무나도 확신 어린 어조에 검공이 잠시 멈칫했지만, 로건은 스승의 눈을 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의 현상만을 보지 마시고, 과거 황위 계승전이 끝난 이후 제국이 전쟁을 벌인 비율을 생각해 주십시오. 예전에는 동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랬지. 허…….”
“스승님. 그러니 폐하께서 저를 견제하는 것을 막아 주십시오. 지금은 왕국 안에서 분란을 일으킬 때가 아닙니다.”
“나 역시 정말 그랬으면 좋겠구나.”
허탈한 스승의 미소를 보며 로건은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답했다.
“스승님께서 폐하의 폭주를 막아 주십시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왕국을 위해서라도요.”
제가 정말 선을 넘지 않도록 말입니다.
로건이 차마 하지 못하고 삼킨 말을 짐작한 것일까.
아니면 로건의 눈 속에 서린 각오를 읽었을까.
‘허어. 이 일을,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검공은 그 이상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선택을 내려야 할 날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며칠 뒤.
아직도 로건과 반란군 토벌에 대한 소문으로 수도가 떠들썩하고, 로건은 군을 추슬러 귀환하려던 그때.
왕이 검공과 함께 로건을 호출했다.
“그란디아의 군주를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공들.”
며칠 전 대전에서 창백한 안색으로 물러났던 왕은 다시금 생기를 찾은 듯 의욕적인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의욕적인 표정의 이유는 곧바로 밝혀졌다.
“로건 공. 며칠 전에는 너무 경황이 없어 미처 몰랐는데, 반란군 토벌에서 좀 문제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네?”
로건과 검공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반란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병사들 대다수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맥라인의 비호 아래 말입니다.”
검공을 보며 웃는 왕의 모습에, 로건은 오히려 표정이 굳었다.
이걸 이제 와서?
“로건? 그게 무슨 말이냐?”
왕의 시선을 받은 스승이 자신을 돌아보자, 로건이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아, 그게……. 그들은 잘못을 깨닫고 바로 전향한 병사들입니다. 덕분에 반란군들을 쉽게 토벌할 수 있었지요.”
혹시나 해서 준비했던 답변을 간신히 꺼내 드는데.
“병사들이 7천이 넘게 동시에 전향했다는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로건 공, 좀 더 설득력 있는 답을 하셔야지요. 검공께서도 납득하실 수 있게.”
기다렸다는 듯 바로 튀어나오는 왕의 말에 검공도, 로건도 그의 속셈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완고한 스승님을 배경으로 나를 압박하겠다?’
헛웃음이 나왔다.
병사들은 그저 상급자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음을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니, 그 사실을 떠나 7천에 가까운 병사들은 어쩌면 미래의 기사들이요, 왕국의 전력이다.
군주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오히려 보존하려 하는 게 당연할진대…….
“반란군은 연좌제까지 적용하여 처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물며 그 당사자를 살려 두다니요.”
이 왕은 달랐다.
“로건 공. 그대가 반란군을 감싸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그놈들을 모두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며칠이나 지났다고 또 이러는가.
‘정말 끝까지 가 보겠다는 겁니까, 폐하?’
로건의 가슴속에서 시작된 불꽃이 두 눈으로 옮겨 가는데.
그 위험을 아는지 모르는지, 왕은 오직 검공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공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