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칼리아 지방 북부에 늘어선 산들.
산맥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낮고 띄엄띄엄 솟아 있지만, 오가는 이들의 원활한 통행엔 방해가 되는 곳.
거기다 그 야트막한 산들이 하필 그란디아 북부에서 중부 평야를 거쳐 흘러내리는 테논 강 중류의 물줄기를 가로막고 있기까지 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테논 강 중류와 남쪽의 루터 강 중류 사이에 뜬 타렌을 비롯한 일부 지방들은 거대한 강을 남북으로 끼고 있으면서도 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농사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바로 작년까지는.
그그그긍.
콰콰콰콰콰콰.
쏴아아아아아.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가 조금씩 줄어들며, 이내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는 정도로 변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점점 잦아들어 갈 때.
“과연 대단하군.”
댐의 수문 위쪽에서 수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로건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타렌 지방의 북부, 가장 유명한 세 봉우리 산 아래 구멍을 뚫어 만든 댐이었다.
테논 강의 물을 끌어들였기에 테논 댐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댐은 간단한 레버 조작만으로 수량(水量)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맥라인 평야의 댐보다는 확실히 진일보된 방식이었다.
“이 세 봉우리 산 밑으로 터널을 파고 테논 강의 물을 끌어들이느라고 나랑 동족들이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요.”
“흠. 뭐, 좋아. 가지고 있던 자루들 다 풀어.”
그 말에 하마르를 비롯한 드워프 100여 명이 동시에 움찔했다.
마법 계약서로 맹세까지 한 몸들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짊어지고 온 몸통만 한 자루에 담긴 가루가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정말 이걸 물에다 풉니까? 다 녹아서 사라질 텐데요?”
“대량의 마나포션이라도 만드시려는 게 아니라면…… 아니, 마나포션도 약간의 가공이 필요한 법인데 정말 확신이 있으신 건지…….”
로건의 의견을 지지해 준다며 따라온 클레이튼조차 막상 일을 실행하려니 망설여지는 듯했다.
지금 그들이 가져온 마정석 가루만 해도 액수로 따지면 천만 골드는 가볍게 넘어설 테니까.
“이미 가루로 만들어서 가지고 온 것 아닙니까. 어차피 그대로 두면 며칠 안에 동화 작용이 시작될 텐데 그냥 뿌려 버리는 게 낫지요. 자, 뭣들 해? 부어!”
로건의 말에 눈을 질끈 감은 드워프들이 일제히 등에 메고 온 자루를 풀었다.
– 마나는 자연에 희미하게 산재해 있고, 특수한 조건 아래 생성된 마정석도 일반 환경에 놓아두면 서서히 자연에 녹아든다.
– 그런 마정석의 자연 동화 과정은 그 덩어리의 부피가 작을수록, 습한 환경일수록 빨라진다.
관심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마정석의 특징.
이미 가루를 내서 댐으로 가져온 이상, 그들이 들고 있는 마정석들은 이미 그 가치가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을 테니까.
이내 자루 안에서 영롱한 푸른 빛을 내는 가루들이 수문 안에 고인 물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자연의 힘, 마나가 특수한 조건에서 결정화된 광석인 마정석의 가루.
그 빛나는 가루는 물에 들어감과 동시에 녹듯이 사라졌고.
“아으.”
“이걸 어째.”
“아깝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 대다수는 절로 탄식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로건의 눈에는 물속에 녹아든 마나들이 영롱한 푸른 빛을 희미하게나마 계속해서 퍼트리는 것이 보였다.
“자, 이제 다시 수문을 열어라. 지금 이 물들이 경작지로 전체로 퍼져 나가도록.”
로건의 얼굴에 자연스레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정석을 녹인 물.
이른바 마정수를 활용한 농법은 전생의 제국에서도 예기치 않은 사고로 탄생한 방법이었다.
정확히는 테러의 결과였고, 더 정확히는 그란디아 해방 전선에서 일으킨 마정석 수송 마차 습격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루이스를 비롯한 독립군들은 자신들이 쓰지 못할 바에야 아예 제국에도 보내지 않겠다며 대량의 마정석들을 테논 강에 모조리 풀어 버렸다.
사실상 반(半)광물, 반(半)에너지체에 가까운 마정석은 금세 강물에 모두 녹아 버렸고, 그로 인해 제국은 막대한 손해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다음 해, 테논 강의 물줄기가 지나가는 평야들에서 사상 유례없는 풍년이 들어 그 역학 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물에 녹아든 마정석이 일정 비율 이상 토지에 흡수되면, 적어도 10년 정도는 흩어지지 않고 그 토지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의 생장을 극대화한다……라는 거였지.’
물론 전생에 테논 강에 쏟아졌던 마정석의 양은 정확히 모른다. 그저 1년 치 채굴 분량으로만 알고 있을 뿐.
그 후 제국이 도입한 마정수 농법의 상세 사항은 극비로 관리되었고, 당시의 로건으로선 가장 적합한 마정석 비율에 대해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마나가 눈에 보이니까.’
그그그그극.
쏴아아아아아.
로건의 붉은 눈에는 흐르는 물속에 퍼져 나가는 마나와 그 마나를 머금은 물이 토지에 어느 정도의 비율로 스며드는지가 똑똑히 보였다.
‘더는 마나 농도가 짙어지지 않는 지점, 그때까지만 부으면 된다.’
그렇게 지켜보고 있자니, 곧 마정수가 스며든 땅에서도 은은한 푸른 빛이 찬란하게 퍼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아름다운 광경.
푸르고 영롱한 자연의 에너지가 대지에 퍼지는 광경은 그 의미를 떠나 과정만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이 자신뿐이라는 게 안타까울 만큼.
“자자, 차례차례 쏟아 넣어! 그리고 루터 댐으로 간다!”
타렌의 황무지를 경작지로 바꾼 두 개의 댐.
로건은 새로 개발된 타렌 평야가 모두 충분히 빛날 때까지, 두 댐을 왕복하며 마정석을 쏟아 넣을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의미 없는 자원 낭비로 보이는 일.
로건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일을 멈춘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더 지난 후였다.
* * *
“요새 이상하게 밀들이 쑥쑥 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어, 너도?”
“야, 이것들아. 다 기분 탓이야, 기분 탓!”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은데.”
“타렌 타운이 생기면 집도 땅도 생긴다니 신이 나서 그런 거겠지. 나도 신나서 일하러 가는 발걸음이 이리 덩실거리는데. 그래도 밀이 자라는 게 느껴진다는 건 너무 하잖아, 인마!”
“……그런가?”
피식.
새벽이라 말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이른 아침.
멀리서 밭일을 나가는 인부들의 대화를 들은 로건의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이제 타렌에서 내가 직접 손대야 할 건 거의 끝났어.’
그러니 이제 다시 맥라인 타운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나중에 타렌 타운이 완전히 완공된 후 영지의 중심을 옮기는 문제라면 모를까, 이제 타렌은 남은 이들만으로도 충분히 돌아갈 것이다.
그때, 흡족한 마음이 가득한 로건과는 달리 혼란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정말 농토에도 고정된 마나가 있을 수 있음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대지의 마탑에서도 몰랐던 일을 공자님은 대체 어떻게……?”
클레이튼이 좀 전에 인부들이 중얼거리던 말들이 결코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해 준 것이다.
“제국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 허, 제국은 벌써?”
절반의 사실을 담은 답변으로 클레이튼을 또 다른 혼란에 빠지게 만든 로건은 피식 웃으며 그대로 기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맥라인 타운으로 향했다.
그렇게 맥라인 타운에 도착한 로건이 맥라인 댐에도 마정수 작업을 끝낸 지 보름 후.
제국에서 돌아온 이래 소식을 듣지 못했던 아버지가 ‘한 사람’을 데리고 타운으로 돌아왔다.
“으하하하! 이 녀석, 초인이 되었다면서?!”
생각보다 고생이 많았는지, 유난히 초췌한 모습의 아버지가 크게 웃으며 로건을 반겼다.
“운이 좋았습니다, 아버지.”
“그게 운이 좋다는 말로 될 일이냐. 초인, 그것도 대륙 최연소라니.”
그 호칭에 로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대로라면 동생이 가져야 할 명예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대륙 최연소라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조금 불편했다.
그래서 그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런데 뒤에 저자는……?”
“부르델이다. 네가 말한 사람 중에 하나지. 마수 사냥꾼을 하고 있더구나.”
패드릭이 웃으며 자신의 뒤에 선 이를 가리키자 로건의 눈이 빛났다.
‘셋 중 둘을 예상했지만 하나뿐. 하지만 그 하나가 부르델이라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야.’
그 심중을 알 리 없는, 한여름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 가죽옷을 입은 무표정한 인상의 사내가 로건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부르델입니다. 초인을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런데 공자께서 저를 찾으셨다고……?”
갈색 머리에 푸른 눈, 미동도 없는 담담한 눈동자가 로건을 바라보았다.
‘궁수가 포스유저 최상급. 확실하군.’
그 기세에서 로건은 전생에서는 먼발치에서만 보았던 ‘유령 궁수(Phantom Archer)’의 재능을 느낄 수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통틀어도 유일했던 궁수 오러유저의 자질을.
“그렇습니다. 제국 북부의 마수림 근처에 활을 귀신처럼 잘 쏘는 마수 사냥꾼이 있다는 소문이 이곳에까지 들리더군요. 맥라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부르델. 편히 지내십시오.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겠습니다.”
유령 궁수 부르델은 그 유일무이한 능력만큼 전장에서 남긴 전과 역시 화려하다 못해 신화적이라, 그 무용을 직접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대다수의 전과가 전부 과장된 것이라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궁수는 어엿한 무인이라기보다 병사로 취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전생의 로건은 부르델의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직접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평야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날아온 붉은빛 화살이 동료들의 머리를 연달아 날려 버리는 광경을.
‘혼자 살아남아서 미친 듯이 발광했었지. 적을 찾아내려고.’
후에 그것이 3km 밖의 산봉우리에서 쏘아진 화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했던가.
그리고 또 얼마나 두려웠던가.
그 당시를 회상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살기가 솟구쳤다.
“윽! 로건?!”
“헛!”
패드릭은 단순히 놀라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서 그쳤지만, 부르델의 대응은 신속했다.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난 그의 손에는 어느새 검은 윤택이 나는 장궁이 들려 있었고, 기괴한 모양으로 꼬여 있는 활시위에 걸린 검은 화살은 부르르 떨리며 로건을 겨냥하고 있었다.
명확하게 정련된 붉은 색 기운을 담은 채로.
무표정하던 부르델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초인의 살기를 정면에서 접한 까닭이었다.
잘못은 자신에게 있었으니 로건은 작은 한숨과 함께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가 실수를 했군요. 활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생각나서…… 미안합니다. 활은 내려놓으시죠. 아니면 여기서 실력 확인이라도 한번 해 볼까요?”
“아……!”
무섭게 굳어 있던 부르델의 얼굴이 그제야 살짝 풀어졌다.
자신이 지금 맥라인의 심장부에 들어와 있고, 그 가문에 의탁하기로 했다는 것을 그제야 떠올린 것이다.
“죄송합니다. 워낙 험하게 살아오다 보니, 살기에 무의식적으로…….”
“괜찮습니다. 반응이 빨라서 감탄했으니까요. 일부러 시험한 것은 아닙니다만, 가만히 있었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겁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쪽이 먼저 한 실수인걸요.”
분위기는 금세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전생의 제국 전쟁 당시 제국 측 초인 용병 중 하나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제국의 고위 귀족이 된 초인.
그중에서도 전술적 활용도가 가장 높은 유령 궁수가 맥라인에 합류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