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오랜만에 만난 부자는 서로에게 할 말이 많았다.
그랬기에 부르델을 당장 머물 거처로 안내해 준 다음, 돌아서자마자 서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어떻게 된 겁니까? 칸쿤과 반조니는요?”
“…….”
“…….”
비슷하게 닮은 붉은 눈 두 쌍이 마주치자, 조금 더 어린 쪽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부터 말씀드릴게요.”
로건은 제국에서 겪은 일과 초인이 되던 과정, 그리고 반란군의 토벌과 왕과의 일까지 그 모든 과정을 숨김없이 말했다.
패드릭은 그 긴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그러더니 결국 탄식했다.
“그 정도면 이미 폐하와의 사이가 너무 틀어진 것 아니더냐. 앞으로는 어찌할 생각이냐?”
“나라 자체의 분위기를 바꿀 생각입니다.”
“분위기?”
“예. 제가 만들어 낸 흐름을 거스르려면 민심까지 거스르게 되도록 말입니다.”
“그게 가능한…… 아니, 가능하다 쳐도 결국 일시적인 것 아니냐? 검공 어르신께 너무 짐을 넘기는 것 같은데…….”
패드릭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떨쳐 내지 못했고, 로건 역시 작은 한숨으로 그에 동의했다.
그러자 패드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탄하듯 말했다.
“권력이 무섭긴 무섭구나. 영민한 왕자로 알려지셨던 분이 고작 2년도 안 돼서 그렇게 변하시다니…….”
“2년도 아닙니다. 제가 제국에 가기 전부터…… 아……?”
쓴웃음을 지으며 동조하던 로건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즉위한 지 1년도 안 돼서 자신을 제위에 올려 준 공신을 적대한다는 게 정상인가?’
상황이 상황인 만큼 휩쓸리듯 급박하게 넘기기 바빴던 당시에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의문.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자 묘하게 찜찜한 느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의문을 품고 보니, 항상 왕의 곁에 있던 그놈이 특히나 거슬렸다.
‘클레오라고 했던가? 확실히 이상하긴 이상해. 한번 조사해 보라고 해야겠어. 조금 무리수를 두더라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데.
급변하는 아들의 표정을 본 패드릭이 걱정스레 되물었다.
“뭐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느냐?”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왜 부르델만 데리고 오신 겁니까? 반조니야 그렇다 치고, 칸쿤은 용병이니 고용하기가 더 쉬울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하……. 그놈은 대놓고 시비를 걸더구나.”
“예?”
아버지의 짧은 한숨 속에는 온갖 복잡한 감정이 다 실려 있었다.
“자신은 제국의 중요 인사가 될 몸으로,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시골 왕국에 고용될 생각은 없다더구나. 정 원한다면 한 달 임시 고용 정도는 응해 주겠다면서…….”
“한 달 고용이라도 해 놓고 설득해 보시지 그러셨어요.”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미래에 제국 내 수많은 용병 길드를 하나로 통합하고 용병왕으로 불리는 인물이 칸쿤이었다.
물론 그것은 제국 전쟁 이후로도 십여 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지만, 놈은 그만큼 뛰어난 인재.
그런데.
“100만 골드를 불렀다. 한 달에.”
안타까운 어조로 탄식하던 로건의 눈빛이 확 변했다.
100만 골드. 5서클 마법사를 초빙하는 조건으로 농담조로 나오는 몸값이었다.
그런데 포스유저가 한 달 몸값으로 그걸 요구해?
“……미친놈이었군요. 아, 그래서 시비라고.”
“그래. 그 보고서에 인성은 적혀 있지 않더구나. 뭐, 놈이 먼저 그렇게 시비를 걸어 주니 나로서는 오히려 편했지.”
등용이 아니면 죽음을.
아들이 자신에게 신신당부했던 조건이 그렇게 쉽게 지켜질 줄은 몰랐다며 패드릭은 웃었다.
“최상급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감이 넘쳤던 거야. 애송이가…….”
패드릭은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확실함에도 자신을 무섭게 몰아치던 30대 용병을 다시금 떠올렸다.
싸우는 도중에도 시시각각으로 발전하는 놈을 보며 아들이 한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고, 결국 놈은 자신이 비웃던 시골 왕국의 귀족에게 심장이 꿰뚫리며 명을 달리했다.
“덕분에 그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놈의 용병단에게 쫓겼다. 부르델의 도움이 없었다면 돌아오기 힘들 뻔했다.”
그제야 로건은 반쪽이 된 아버지의 얼굴을 이해했다.
“고생 많으셨…….”
“아직 말 안 끝났다.”
“예?”
“네가 말한 반조니라는 놈은 더했으니까. 루갈하임의 통합 범죄 조직 이블원의 두목. 하……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구나. 범죄자 두목이 초인이라니.”
“초인이요?!”
“그래. 반조니 그놈은 이미 초인이었다. 내가 놈을 죽이려고 접근했다는 것을 들켰다면 죽는 건 오히려 나였을 거다.”
패드릭은 굳은 표정으로 이를 갈았고.
“허…….”
로건은 헛웃음을 흘리다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다.
제국 전쟁까지 이제 불과 4년.
4년 뒤 갑자기 초인이 되는 것보다는 그 전에 이미 초인일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랬으면 반조니의 성격상 이미 신분 세탁을 했을…….’
심중에 떠오른 의문은 아버지가 바로 해결해 주었다.
“처음엔 양지로 나갈 길을 찾고 있다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등용을 청하더구나.”
“그 반조니가 말입니까?”
“그래. 내가 제국이 아닌 왕국의 귀족이라고 하니 바로 말을 바꾸긴 했다만.”
“으음.”
“아무튼, 추격하는 칸쿤 용병단을 정리해 달라는 의뢰를 했더니 큰 자금이 생겼다고 좋아하더구나. 덕분에 난 거지가 됐지만.”
“그나마 다행이었군요.”
“그래. 놈들이 핑곗거리가 되어 준 덕에 괴물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지. 그 작은 괴물에게서 말이다.”
로건은 고개를 끄덕여 동조하며 반조니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드워프족도 아니면서 그와 비슷할 만큼 작은 키,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점. 그리고 번들거리는 회색 눈동자.
그것이 후세에 악명을 떨치는 이블 소드(Evil Sword) 반조니의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악착같이 실력을 키우게 된 동기였다고 스스로 말하던 초인.
거기서 그쳤다면 열악한 신체 조건을 딛고 일어난 초인으로서 인간승리의 표본이 되었을 테지만, 놈은 그로 인해 비틀린 욕망을 힘없는 자들에게 표출하며 무수한 죄악을 저질렀다.
결국 제국 전쟁 5년 뒤에는 인재를 아끼는 제국에서조차 추살령을 내리며 쫓아냈을 정도로 극악한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었는데.’
그 인성과는 별도로 놈이 개화한 특성은 그보다 약한 다수를 학살하는 데 특화된 힘.
부르델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전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초인이었으니까.
“놈이 아직 그 루갈하임에 남아 있습니까?”
살기를 번뜩이는 아들의 눈동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았지만, 패드릭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신분 세탁을 위해 사라졌을 거다. 마지막 뒷골목 의뢰라며 웃었으니까.”
“끄응, 안타깝군요.”
놈은 5년 뒤, 아니 이제 4년 뒤에 있을 제국 전쟁에 초인 용병으로 참전할 것이다.
‘놈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등장하는 즉시 바로 죽여야겠어.’
아버지로서는 최선을 다하셨고, 생각지도 못한 생명의 위기까지 겪었다.
이 이상 부언해 봐야 고생하신 분을 타박하는 꼴이 될 뿐이었다.
“면목이 없다. 내가 좀 더 실력이 있었다면…….”
“절대 아닙니다, 아버지.”
로건은 굳은 표정이 된 아버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칸쿤을 죽이고 부르델을 데려오신 것만 해도 잘하신 겁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반조니는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래. 믿겠다.”
“네.”
예상과 조금 어긋난 것도 있었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는 지금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 * *
그 뒤 로건은 자신이 말했던 흐름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바로 착수했다.
바로 맥라인을 발전시켰던 전체적인 구상, 댐과 연사 석궁. 그리고 병사 선발에 대한 기준을 왕국 전역에 공개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 맥라인의 병사들이 강한 비결이 이것이었다.
– 황무지를 경작지로 만드는 새로운 농법.
– 이것만 있으면 우리도……!
강물을 끌어들여 댐을 만들 수 있는, 그리고 황무지가 있는 모든 영지에서 댐 공사가 시작되었고.
왕국 영지 대부분에서 병사 선발 기준이 일제히 바뀌었다.
물론 그 바람에 농번기임에도 강제로 공사에 동원된 영지민들의 아우성이 들려오는 곳도 있었지만, 왕국은 분명 전체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 상황에서 변화의 흐름을 더욱 크게 만들 로건의 선언이 이어졌다.
– 댐을 건설하는 데 노하우가 부족하다면 직접 가서 설계 시공을 도와주겠다. 당장의 자금 사정 때문에 어렵다면 돈도 빌려주겠다.
타 귀족들에 대한 금전적인 도움은 물론.
– 병사 선발과 훈련 과정에 관한 의문이 있다면 기사를 보내 직접 다듬어 주겠다.
맥라인의 가신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극적인 노하우 전수 정책을 펼친 것이다.
덕분에 영지를 가진 귀족들은 모두 환호하며 맥라인이 만들어 낸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애썼다.
그란디아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 여겼던 여군의 창설조차 하나둘 따라 하는 이들이 생길 정도.
그것은 로건조차 의외였다.
‘그 편견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최초의 여기사 에일렌 플로이드가 바로 로건 맥라인의 약혼자다.
강한 여성이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왕국 사교계에서 시작된 이 한 줄기 소문이 점차 커지며 변화를 이끌어 내리라고는 짐작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로건이 의도한 것이기도 했지만, 맥라인이 왕국의 흐름을 선도하는 가문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정치적, 군사적 이유를 떠나 실리적인 이유에서라도 이제 이 나라에서 맥라인에 반하는 귀족들은 사라졌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사이, 로건은 목표로 했던 두 가지가 완수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왕국 전역에 지부 설치 완료했습니다.]“수고했다, 필립.”
왕국 전역에 공개적으로 상단 지부를 만들고.
[영지 귀족들 대부분의 곁에 사람을 심어 두었습니다. 이제 왕국 귀족가의 어떤 움직임도 저희 ‘불꽃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을 겁니다.]“잘했다, 데미안.”
비공개적인 정보망을 구축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불과 반년 만에 이루어 낸 성과였다.
그만큼 정신없이 달려온 나날들.
창밖을 보자, 하얗게 쌓인 눈 사이로 새해의 첫 태양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앞으로 제국 전쟁까지 3년 반.’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로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이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자신이 생기고 있었다.
“이제 흐름은 만들어졌다. 더 가속하기만 하면 돼.”
로건이 그렇게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같은 이유로 인상을 구기는 사람도 있었다.
쾅!
“대체 누가 왕이야! 누가!”
국왕은 개인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책장을 후려치며 분노를 토했다.
“평화의 시기에 끝도 없이 병력을 늘려 대는 놈을 대체 왜……!”
가슴속에 끓어오르던 분노를 토해 내던 왕은 대기하던 시종들의 목이 움츠러드는 것을 보고는 억지로 분을 삭이며 하고픈 말을 숨겼다.
그러고는 애써 목청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흠. 국무의 스트레스 때문에 과인이 좀 흥분했구나. 너희들은 이만 물러가고, 내궁부장을 불러오너라.”
“예, 폐하.”
기다렸다는 듯한 대답과 함께 시종들이 사라지자, 태연함을 연기하던 왕은 다시 초조한 표정으로 방안을 서성이며 무언가를 궁리했다.
– 폐하. 클레오입니다.
“들어오라!”
끼이이.
조심스러운 마찰음과 함께 열린 문으로 평범한 인상의 중년 관리가 들어서더니 이내 왕의 가까이로 다가와 넙죽 엎드렸다.
“폐하, 소신을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자네 의견을 좀 듣고 싶어서 불렀다.”
“예?”
“여자를 병사를 만드는 것은 이 나라의 전통을 망치는 일 아니더냐?”
“아, 예……. 물론 그렇사옵니다.”
“풍요로운 이 나라에서 쓸데없이 산에 구멍을 뚫어 논밭을 늘리는 것은 또 어떻더냐?”
“……예?”
“괜히 국토의 정기를 해치는 일이 아니냔 말이다!”
“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래. 그렇게 타당한 말을 하는데도 대신들이라는 놈들은 그놈의 편만 들지. 대체 왕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거침없이 쏟아지는 왕의 분노 앞에서 클레오는 연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폐하의 고견을 알아듣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일 뿐입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원래 영지 귀족들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왕의 권한이 아니요, 모두가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는 정책을 따르고 있는데 홀로 거부하는 자는 영주의 자격이 없는 바보다.
클레오는 그런 당연한 진실을 말하는 대신 그저 왕의 비위를 맞춰 주며 그를 위로했다.
전형적인 간신의 처세였지만, 왕은 그것이 기꺼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기분이 좀 풀리는군. 역시 그대가 있어 다행이야.”
“아닙니다, 폐하. 제 존재로 폐하께서 근심을 조금이라도 더실 수 있다면 제가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그 지극한 아부의 말에 왕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후……. 그래, 그래서 더 답답하구나. 신하들이 반만이라도 자네 같았으면 좋았을 텐데.”
“로건 맥라인 공의 입김이 강한 만큼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게, 그게 가장 큰 문제지.”
“폐하……?”
“확실히 무슨 수를 내야겠어. 이대로는 안 돼.”
겉으로 보기에는 한결 차분해진 모습.
하지만 왕의 심중에 솟구치는 위험한 불꽃은 그의 눈빛을 점점 이상하게 물들이고 있었다.